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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019 vote 0 2009.12.23 (00:46:02)

진짜배기가 필요해

똑소리 나는 진짜 글 하나 쓰고 싶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글은 글 자신의 논리가 있고 법칙이 있을진대, 그 글 자체의 결을 따라 세상끝까지 뚜벅뚜벅 걸어가보고 싶었다.  

어떤 글이 진짜 글일까? 남의 것에 빌붙지 않아야 한다. 남의 생각을 비판하지 말고, 남의 의견에 주석달지도 말고, 남의 아이디어를 가공하지도 말고, 남의 나라 것을 번역하지도 말아야 한다.

나의 자궁에서 싹이 튼, 내 배 아파서 낳아낸, 내 안의 글이 진짜다. 남이 세워둔 줄 뒤에 가서 서지 말아야 한다. 비판하든, 평가하든, 계승하든 남의 아이디어로 시작하면 이미 거기에 종속된 것이다.

그런 글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것은 재미를 파는 소설이 아닐 것이고, 영감을 파는 시도 아닐 것이고, 안목을 파는 평론도 아닐 것이다. 직업을 위한 전문서도, 흥미를 위한 대중서도 아닐 것이다.

학술서도 교양서도 아니고, 개인의 일기도 집단의 경전도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 모두에 해당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진짜배기 글 하나 툭 던져놓고 어찌되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인간을 이롭게 하자면

세상에 글쟁이들이 많으나 대략 꼴이 우습다. 다들 잔뜩 골이 나서 우거지상을 하고 있다. 왜 골이 났을까? 그들이 가진 자부심의 크기에 비해서 사회로부터 충분히 대접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글쟁이가 대접받지 못할까? 글이라는 것이 그다지 실용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이 인간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 소설이 준다는 읽는 재미? 시인이 준다는 영감? 평론이 준다는 사리분별하는 안목?

대략 한물 간 레파토리에 불과하다. 소설의 재미래야 심심풀이 아닌가? 시인의 영감이래야 젊었을 때의 치기에 불과한 것, 평론가의 보는 눈썰미래야 거리에서의 말다툼 재치에 불과한 것이다.

장사치들이 목청 높이는 시대다. 글쟁이들의 콧대는 낮아졌다. 이런 때 진짜배기 하나가 절실하다.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진짜 글이 하나 떠주어야 한다. 진짜는 무엇일까? 상승하는 것이다.

오직 상승하는 것만이 진실로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다. 건희에 몽구, 폰팔이에 차팔이라. 장사치 따위가 대접받는 사회 아닌가? 금전의 힘으로 인간이 상승할 수 있다고 믿는 풍조 때문이다.

판검사에 변호사, 의사에 박사다. 그들이 가진 라이선스가 인간을 상승시킨다고 믿는 풍조 또한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어설프다. 표면으로는 굴복할 뿐 누구도 내심으로는 거기에 승복하지 않는다.

장사치의 돈으로 하인을 부리고, 라이선스의 권세로 사람을 억누르지만 진짜가 아니다. 상대가 낮아졌을 뿐 자신이 높아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를 굴복시킬게 아니라 자신을 높여야 한다.

진짜는 무엇일까? 예로부터 지식이야말로 인간을 상승시킨다고 믿어져왔다. 그러나 문자가 보급되고 미디어가 보편화된 이 시대에 과연 지식이 인간을 상승시킬 수 있을까? 역시 한계가 있다.

지식은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것이다. 지식 역시 상대적인 비교우위에 불과하다. 아무리 알아도 조금 더 아는 사람이 있다. 점수 매겨서 줄세우는 방법으로 허세를 부려봤자 비웃음이나 살 뿐이다.

진짜배기라면 인간을 상승시킬 수 있어야 한다. 점수매기고 줄 세우는 지식으로는 불가하고 오직 깨달음으로만이 가능하다. 깨달음은 누군가를 상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존재 그 자체를 상승시킨다.

깨달음의 글이 진짜다. 깨달음은 소통을 낳고, 소통은 집단지성을 일군다. 한 사회의 집단지성이 그 자체로서 독립적인 인격성을 획득할 때 사회의 수준은 상승하며 깨달음은 그 상승을 견인한다.

사회를 통째로 상승시킬 때 인간의 상승은 가능하다. 그것이 우리가 밀고가야 할 대승의 큰 수레다. 참된 깨달음의 길은 함께 가는 길이다. 고립된 채로 혼자서 우쭐대는 깨달음이랬자 우스울 뿐이다.

깨달음이어야 진짜다. 깨달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문학은 죽은 문학이다. 깨달음을 전하지 못하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다. 깨달음을 평가하지 못하는 평론은 죽은 평론이다. 깨달음 없이 글 없다.

갇힌 자로 하여금 사슬을 끊고 떨쳐 일어나게 하는 것, 눈이 감긴 자로 하여금 시야를 틔워주는 것, 입이 닫힌 자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 그렇게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떨치고 일어선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어우러져 짝을 짓는다. 무수히 만나고 무수히 통하고 무수히 짝지어 대열을 이루고 나아갈 때 대승의 큰 행렬은 이루어진다. 사회의 진보가 그 안에 있다.

인간을 상승시켜야 진짜다. 떨치고 일어나자. 종속과 의존을 끊고 제각기 독립하여 흩어졌다가 더 높은 레벨에서 다시 만나자. 사회는 진보하고 인간은 상승하며 글은 인간에게 그것을 줄 수 있다.

 

몸에서 맘으로 다시 삶으로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물질이 몸을 쾌락하게 한다고 하나, 그 물질적 조건들은 모두 인간의 외부에 있다. 밖으로 팔을 뻗어 구하려다가는 필연 그 외부의 환경에 종속되고 만다.

정신의 수행이 마음을 평안케 한다고 하나 안에서 자가발전 하려다가는 단절과 고립을 피할 수 없다. 떨치고 일어서지 못하고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에너지의 입출력이 없기 때문이다.

몸의 욕망을 따르며 바깥에 홀리지 말아야 하고, 맘의 욕망을 따르며 안으로 숨지도 말아야 한다. 진정한 것은 따로 있다. 몸의 욕망을 극복하고 마음의 욕망을 넘어서며 삶의 꿈을 따르는 것이다.

몸의 병은 의사가 해결하고, 몸의 혜택은 장사치가 베풀어준다. 결국 바깥에서 길목을 지키고 있는 해결사들에게 붙들려 종속되고 만다. 물질에 중독되어 의존하게 된다. 그것이 욕된 것이다.

마음의 병은 휴식으로 달래고, 마음의 혜택은 지식에서 얻는다. 그러나 소극적이다. 자신을 보호하고 현상을 유지할 뿐 얻는 것이 없다. 답은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시공간 안에 펼쳐진 삶이다.

삶의 병은 친구가 고쳐주고, 삶의 혜택은 세상과의 관계맺기에서 얻어진다. 오늘 내가 당장 갈 곳이 있고, 가서 만날 사람이 있고, 만나서 함께할 일이 있고, 실제로 그 일을 해낼 수 있어야 진짜다.

언제라도 초대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친구와 함께 부를 노래가 있다면, 친구가 먼 길을 함께 가는 동지가 되어준다면, 동지와 함께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 바로 인생의 정답을 찾은 셈이다.

● 몸≫맘≫삶

몸의 쾌락을 떨치고, 마음의 평안을 넘어, 진정한 삶으로 나아가라. 천하를 나의 몸으로 삼고, 문명의 진보를 나의 마음으로 삼아 그 세상 몸, 세상 마음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거라.

몸은 과거, 맘은 현재, 삶은 미래의 소식이다. 몸이 요구하는 것은 과거부터 결정된 것, 맘이 요구하는 것은 현재 교섭하고 있는 것, 삶이 요구하는 모든 것은 미래를 위하여 계획하는 것이다.

몸은 짧고, 맘은 길고, 삶은 통짜덩어리다. 배가 고프든 성이 고프든 몸의 욕망은 그 순간이 지나면 그 뿐이다. 우울하든 불안하든 맘의 고픔은 그 공허감이 지속된다.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친구가 고프든 꿈이 고프든 삶의 고픔은 인생 전체를 건다. 한 명의 친구라도 세상 전부와 맞먹을 때가 있고, 작고 소박한 꿈이라도 세상 전체와도 바꿀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만치 소중하다.

몸의 고픔은 물질을 채울 때 해소되고, 맘의 고픔은 지식을 익혀서 비켜질 수 있으나 삶의 고픔은 오직 인생 전체를 통째로 걸고서야 해소된다. 인생을 걸만한 목표를 만나지 못하면 삶은 고프다.

몸의 이로움은 좋은 차를 소유하는 것과 같고, 마음의 이로움은 운전실력을 닦아 그 차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과 같다. 삶의 이로움은 최종적으로 그 차를 몰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좋은 차를 얻어도, 뛰어난 운전실력이 있어도 시궁창으로 몰아가면 시궁창 냄새를 맡는다. 몸의 소식과 마음으로부터의 소식은 진정한 삶이라는 목적지에 앞서 거쳐가는 정거장들일 뿐이다.

삶은 나아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좋은 사과라도 먹으면 그냥 사과로 끝나지만 그리면 모델이 된다. 그 방법으로 사과와 작가는 관계를 맺는다. 그 방법으로 존재 그 자체를 재창조한다.

몸은 그저 주어져 있는 것이고, 마음은 그 주어진 것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삶은 그 주어진 대상에 침투하여 재창조하는 것이다. 들판에 진흙 한 덩이가 있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진흙도 아니다. 그저 들판의 일부로 종속될 뿐이다. 몸의 소식은 항상 어딘가에 빌붙어 있고 종속되어 있어서 존재가 불명하다. 내가 그 진흙을 손으로 만질 때 비로소 내게로 다가와 진흙이 된다.

내가 그 진흙을 빚으면 빛나는 도자기가 된다. 삶은 들판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존재가 불명했던 흙덩이에 혼을 불어넣어 나의 존재를 개입시켜 빛나는 도자기 작품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몸은 돌 속의 금을 알아보지 못하고 돌로 취급하는 것이며, 마음은 그 돌 속의 금을 겨우 알아보는 것이며, 삶은 그 금을 녹여 반지로 만들어 누군가의 소중한 약속의 징표로 삼는 것이다.

몸에 집착한다면 무지다. 맘에 집착한다면 소승적 태도다. 삶으로 나아감이 대승적 태도다. 그것은 나의 주도권을 개입시켜 나의 결을 불어넣어 존재 그 자체를 재구축하고 재창조하는 것이다.

인간은 몸에 의해서도 맘에 의해서도 상승하지 않는다. 돈으로 몸을 이롭게 하고, 지식으로 맘을 이롭게 하나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삶을 이롭게 함으로써 상승할 수 있다. 관계맺기로 가능하다.

몸을 이롭게 한다는 물질주의, 쾌락주의 버리고, 맘을 이롭게 한다는 심리주의, 정신주의 버리고 삶을 이롭게 하는 진정한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기획에 참여하는 것이다.

월든의 소로우가 그 호숫가에서 찾으려 했던 진정한 삶이 그것이다. 룻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을 때 그 자연의 진짜 의미가 그것이다. 물론 숲이나 호수에 그것이 있을 턱이 없다.

세상 몸을 나의 몸으로 삼고 세상 맘을 나의 마음으로 삼을 때 저절로 분명해진다. 그 안에 결이 있다. 결따라 길이 있다. 호흡이 있고 맥박이 있다. 그 흐름을 탈 때 함께 부르는 노래 들려온다.

김대중 대통령이 말씀하신 바 ‘무엇이 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라’던 그 실천 말이다. 사랑을 하되 누군가의 연인이 되려 하지 말고 사랑 그 자체를 실천해야 한다.

사랑 그 자체의 호흡을 타고 그 사랑의 결을 어루만지고 그 사랑의 호흡과 일치시켜야 한다. 애국자가 되려 하지 말고 그 나라의 진보하는 호흡과 굽이치는 맥박의 결을 타야 한다. 일치해야 한다.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은 상승 뿐, 상승의 길은 깨달음 뿐, 참된 깨달음의 길은 몸의 소식이나 맘의 소식을 따름이 아니요 삶의 결을 따르는 것이다. 세상몸 세상맘과 하나되어 춤추며 나아가기다.   

http://gujoron.com


[레벨:15]오세

2009.12.23 (01:30:27)

아, 한 때 아예 <깨달음>이란 말을 포기하려 했소. 너무나 왜곡되고 오용되는 단어라 보았기에 말이오.
그러나 그 참 뜻을 살려쓰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니 그 말을 포기할 수가 없겠소.
몸에서 맘으로, 맘에서 삶으로 나아가야 함을 진즉 알고 있었으나, 주로 맘에 머물며 살았소.
이제 겨우 꿈을 가지고 삶으로 나아가는 시점에 구조론을 만났고, 비로서 <심>을 보았소.

나는 몸에서 맘으로 나아가는 상담심리학, 명상을 넘어 맘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차원의 학문을 열고 싶소.
구조론을 OS로 삼아 각종 응용프로그램들을 만들 작정이오. 구조론 뿐 아니라 통합심리학, Lightning Path도 소스로 가져다 쓸 작정이오.
비록 님처럼 학문의 자궁까지 거슬러 올라가진 못했지만, 이미 그 일을 한 사람이 있으니 나는 그 위에 집을 짓겠소. 구조론이란 터에 <깨달음의 심리학>이란 집을 지어 보려 하오. 구조론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식의 창의는 하지 못하나 그 아랫 단계의 창의는 할 수 있소.

내 생각은 이렇소. 이제 심리학은 마음의 결을 넘어 삶의 결을 따라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학문이 되어야 할 때가 되었소. 심리학은 마음이 아니라 원어의 뜻 그대로 영혼(Psyche)을 담을 수 있는 학문(logy)이 되어야 하오. 구조론은 이미 그 단서를 던져주고 있소. 

근래 상담심리학, 긍정심리학 같은 이른바 응용심리학이 뜨고 있는 것은 그것들이 마음의 결을 넘어 삶의 결로 나아가는 단초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나 아직 불완전하오. <누가 물어봤냐?>, 그리고 <그래서 어쩌라고?>에 답하지 못하고 있소. 아직도 인간의 정신을 개인의 몸에 갇힌 블랙박스처럼 취급하기 때문이오. 
 
정신은 두뇌 속의 난쟁이, 신경회로의 창발현상, 유령같은 존재의 작용이 아니라 종소리처럼 세상이라는 종과 나라는 당목이 만나 내는 소리같은 것이며, 인간의 의식 경험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안>과 <밖>, <내면>과 <외면>, 마음과 물질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하나의 사건이기에, 심리학은 더 이상 마음에 머물 게 아니라, 마음 밖의 모든 것들에 눈을 돌려야 하오. 학자들도 이를 알아차리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심리학의 외연은 점점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오.

그렇지만 사회심리학, 문화심리학, 정치심리학 등 심리학의 외연을 넓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는 노력들은 오히려 더 분열된 감이 없지 않소. 실험과 관찰을 통해 발견한 온갖 가설들을 한 줄에 꿸 원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오. 정신-의식-의지-의사-감정은 이러한 가설들을 한 줄에 꿸 원리가 될 잠재력을 품고 있소. 조만간 심리학의 각종 분야들, 발견들을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본 글을 써볼 예정이오. 

구조론을 읽다보면 머릿 속에 순간순간 영감이 스쳐갈 때가 있소. 지금은 산만하게 이리저리 늘어놓고 있지만, 조만간 정리된 글을 쓸 것이오. 암튼, 구조론은 계속해서 생각의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귀중한 동력원이오. 오늘 동렬님이 올린 글은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선물로 부족함이 없소.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오. 

<세상몸 세상맘과 하나되어 춤추며 나아가기다.>
춤은 추는 자체가 기쁨이니, 그 어찌 즐겁지 않으리오. 

진짜배기 글은 쓰는 자체가 기쁨이오 즐거움일터이니, 읽는 이에게도 그것이 전달되더라.   

 
[레벨:15]LPET

2009.12.23 (05:42:40)

<깨달음의 심리학> 기대되오.
심리학이 몸과 마음과 세상 사이를 모두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면,
이전 시대에 철학과 신학과 과학이 번갈아가며 담당했던 모든 역할 (지금은 누구도 하려고 하지 않는)
몸-맘-삶의 연결을 총체적으로 해석하는 학문의 장남 역할을 해낼 것이오.

[레벨:7]꼬레아

2009.12.23 (12:55:57)

캬 !
감탄사가 절로 나는 글입니다
조각같은 글이군요
정말 정말 잘 생긴 광채가 나는 조각같은 남자가 생각납니다
너무 너무 아름답은 햇살같은 여자가 생각납니다
옥구슬이 굴러가는 글
온세상이 하얗게 되어버린 하~얀 눈의 나라가 펼쳐지고요
소리로 치면 음....탁음이 없는 그 자연의 소리?
너무 상쾌한 바람의 소리가 들립니다
동렬님의 이글이 저에게는 글로써 표현 못할 그 무엇 맑은 소리로 들립니다
동렬님 ^^
4343년에는 더욱 더 건강하십시요
언젠가 맥주나 막걸리나 소주나 한잔하고 싶습니다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09.12.24 (01:30:50)

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박철은 법정에서는 이겼지만, 현실에서는 졌고,
백지영은 기성언론에서는 뭇매를 맞았지만,
새 언론인 인터넷에서는 승리를 거둔다.

무얼까? 현실을 빙자한 팩트이면에 기저에 흐르는
'세력'이있다는것. 물론 그걸 '기'니 자연정화니 운운하며
삿된짓거리할거라면 어불성설.

비틀즈가 마약을 했지만, 그의 자유정신이
전세계의 68세대를 자극했다는 점이 중요하고...

권위나 군중에 휩쓸릴게 아니라,
자신의 삶의 균형을 가지고, 목조같은 자신의 구조를 완성하는것.

돈도 명예도 지나가면 그뿐.
삶의 완성도가 그 공명이 중요한 시대.
퇴행하지 않고,

지극히 세련되면서도, 베테랑의 웃음을 가질 수 있는.

삶의 과학화. 전문화. 자기사업화.
이와 동시에 얻어지는 잉여가 다시 사회 후속세대와
약자에게 돌아갈수 있는 순환가능시스템.
[레벨:1]수인

2009.12.28 (18:46:04)

이런 말을 편안히 자판 앞에서 들을수 있네요..

새해에는 저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저로 하여금 행복해 질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즐거운 삶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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