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 주변 사람들만 보아도
우울증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정말 국가에서 심리 상담 치료비를 의료보험으로 지원해줘야만 하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질병은 별 것 아닌 것입니다.
마음의 병은 눈으로도 엑스레이로도 확인할 수가 없기에.
심지어 시간대에 따라서 없어진 듯 없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 무시무시하죠.
서점에서, 인터넷에서, 도서관에서
이렇게 마음의 질병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공부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유명해진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 씨,
본인만의 철학사조를 연구하고 제창하지 않았는데도 철학박사로 인정받고 있는 강신주 씨 등등,
제가 유년시절에는 김정일이라는 미남 정신과 의사가 한창 급부상하기도 했었습니다.
환자와 스캔들이 생겨서 추락해버렸지만.
마음에 대해 깊이 공부한 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치유법은 딱 하나 더군요.
바라보기, 인정하고 관찰하기.
저는 의아했습니다.
능동적이지 않은 태도로 그렇게 바라보고 그저 인정하는 것이, 대체 어떻게 치유가 되고 극복이 된다는 것인지
오랜 시간 동안 궁금했습니다.
이제 알 것 같습니다.
2015년 1월 17일 오후 5시 50분 기준으로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점 선 면 그리고 그 다음.
1차원 2차원 3차원 그리고 그 다음 차원.
비라보고 인정하고 관찰하는 건 물리학적으로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넘어가는 것이더군요.
구조론 동영상 강좌와 김동렬 선생님 책이 크게 도움 되었습니다.
1.
과거의 좋지 않은 경험과 그에 대한 기억 때문에 힘들어한다.
2차원 상태인 것입니다.
컴퓨터 슈팅 게임처럼 내 감정과 내가 1:1로 대면합니다.
얻어 터집니다.
3차원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CCTV관점에서 나와 내 감정을 한꺼번에 바라보겠다는 것.
여기서 나1과 나2로 나뉩니다. 나2가 생겨납니다.
나1은 감정과 싸우고 있는 나.
나2는 인생이라는 옥타곤 안에서 감정과 싸우고 있는 나1을 관찰하는 나.
처음에는 무게중심이 CCTV속 나1에게 실려 있겠지만,
바라보기 신공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 점점 나2의 비중이 더욱 묵직해지고 든든해집니다.
그리고 결국 나1의 문제와 감정은 스르르륵 휘발되어 버립니다.
CCTV는 CCTV일 뿐이니까요.
나2만 남습니다.
CCTV를 끄고 현재 할 일에 시선을 돌립니다.
임상에서의 구체적 방법으로서 미술 치료, 음악치료, 사이코 드라마 등등
온갖 대체 대안 치유 요법들이 동원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종다양한 치료 방법들의 요지는 하나일 것입니다.
바라보기.
인정하기.
관찰하기.
이렇게 현대인은 과거의 문제를 졸업하고,
묵은 기억을 극복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위의 3차원이 전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라보기 신공이 끝이 아닐거라는 이상한 예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바라보거나, 관찰하거나, 인정하거나,
이게 전부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조론을 알기 전에는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인생을 살면 만사 오케이인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전부가 아니었죠.
신과 대면하는 1인칭 주체적 관점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심리학과 마음 명상 서적, 영성계 신비주의자들이 설명하는
3인칭 관점 신공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인데.
저는 그 답이 구조론에 있을 것만 같습니다.
구조론의 1인칭 주체적 관점으로써
개인이 자신의 감정, 트라우마를 대하는 방법의 마지막 단계,
그리고 구체적 예가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저는 지금 마치,
살빼러 핫요가에 다니다가,
지방 제거하는 게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근육을 만들면 살은 저절로 빠진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여대생마냥,
설레이는 중입니다.
구조론 분들의 조언 부탁드려 볼게요 +.+
다시 읽어보니 우울증에 관한 내용이 아니었군요 ㅎㅎ
단지 마음의 병? 마음의 병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존엄을 획득하면. 한단계 위로 상승하면 저절로 치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