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9번째 글입니다. 지난해 대선 전에 씌어진 글이나 일부는 지금 현실에 맞게 고쳤습니다. 』

 

3. 16부작 드라마의 주인공 노무현

예수도 고향에서 박해받았다. 노무현도 고향 부산에서 냉대 받고 낙선하였다. 예수의 삶이 한 편의 드라마라면 노무현의 삶에도 무수한 드라마적 요소가 있다. 문화일보 김용옥기자가 쓴 기사에 의하면 노무현은 즉흥적인 자기연출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한다. 무심코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관객을 의식하고 계산된 행동이었더라는 것이다.

“노무현후보는 모든 순간을 일정한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감각이 뛰어나다. 노후보의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은 실상 모두 정확히 연출된 것이다. 그러나 이회창후보는 자기가 치열한 선거의 와중 속에 들어 있다고 하는 의식조차 없다.” [문화일보 도올 김용옥기자]

김기자의 분석이 옳다. 초선의원 주제에 의원직을 내던진 89년의 의원직 사퇴는 분명히 쇼맨십의 요소가 있다. 나중에 사퇴를 취소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실패한 연출이 된다. 낙선을 각오한 여러 번의 부산출마에도 명백히 이러한 드라마의 요소가 있다.

『사람은 자기가 설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남자는 죽을 자리라도 가야 할 땐 가야 합니다.』 [노무현어록 - 14대 총선에 낙선 후]

일부러 사지(死地)로 뛰어든다. 자신을 숨기므로서 남들이 자신을 찾아 나서게 한다. 노무현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면 아무도 숨은 노무현을 찾으러오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라면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노무현을 찾으려들 것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이 갑작스레 신분상승을 하면 주위로부터 질시와 견제를 받게 된다. 이때 자신의 위상을 확인하는 방법이 이런 식으로 잠적하는 것이다. 천하가 진정 자신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고도의 복선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은 숨고 또 숨었다. 그는 도망가고 또 도망갔다. 낮추고 또 낮추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숨은 노무현을 찾았고, 도망간 노무현을 다시 불렀고, 낮아진 노무현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는 서민출신의 지도자만 할 수 있는 자기연출이다.

관객역할의 국민이 호응해주지 않았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드라마였다. 주인공 노무현이 낙선이라는 형식으로 잠적할 때마다 관객인 국민이 노무현을 찾으러 달려갔기에 가능한 드라마였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의 궁극적인 연출자는 신이요, 역사요, 하늘이다.

언젠가 짠 하고 나타나줄 암행어사 이몽룡을 믿었기에 춘향은 수절할 수 있었던 거다. 그렇다. 노무현은 믿었던 거다. 신을 믿고 역사를 믿고 국민을 믿었던 거다. 믿을 수 있어야 한다.

 

4. 노무현의 숨은 포부를 발견하다

이 기록은 94년 노무현의 자서전 ‘여보 나좀 도와줘’를 토대로 하고 있다. 자서전을 쓸 당시 노무현은 부산에서 출마하여 낙선하고 자서전이 팔리면 세비라도 건져서 1년 반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나 대비할까 하는 때였다. 언감생심 대통령은 꿈도 꾸지 않고 있을 때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찬찬히 읽어보면 행간에 언뜻언뜻 대통령의 야심을 비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보 나좀 도와줘!”

노무현의 국회의원 당선에 권양숙여사의 도움까지가 필요할까? 천만에! 까놓고 이야기하자. 국회의원은 노무현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역구를 옮기기만 해도 당선은 확실한 것 아닌가? 당적을 바꾸기만 해도 당선은 떼논 당상이 아닌가? 그런데 왜 노무현은 부인에게까지 도움을 구하고 있을까?

암유다. 행간을 읽어야 한다. 실은 부인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 하는 말이다. 본심은 이렇다.

“국민 여러분 노무현이 대통령에 출마할 결심을 굳혔습니다. 저 좀 도와주세요.”

아마 노무현이 지금 이 자서전을 다시 읽어본다면 감회가 새로울 거다. 이 자서전은 마치 미래의 대통령 당선을 예견하고 『거봐! 내 말이 맞았지.』 하기 위해 쓴 듯 하다. 그렇다! ‘여보 나 좀 도와줘!’는 부인에게 영부인이 될 준비를 해달라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폭로하자! 들통내자! 이미 얻어버린 대통령자리다. 목표는 달성해 버렸다. 겸손한 노무현, 낙선한 노무현, 서민 노무현의 숨은 포부와 야심을 마음껏 뽀록내기로 하자!

페이지마다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끝없는 비우기다. 야심을 비우고, 희망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기다. 그는 왜 자꾸만 비우는 것일까? 그렇게 비우고 또 비워서 하늘만큼 땅만큼 넓혀진 그릇에 무엇을 담으려고?

아아! 그것은 야심이다. 작은 것을 버리므로서 큰 것을 얻자는 야심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의 자서전 ‘여보 나좀 도와줘’는 대통령 출마의 변처럼 읽혀진다. 큰 싸움을 앞두고, 자신의 과거를 한번 정리를 해본다는 자세로 씌어졌다. 끝없이 야심없음을 강조하므로서 하늘보다 더 큰 야심을 자랑하고 있다. (하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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