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6004 vote 0 2003.07.11 (15:29:57)

『이어지는 5번째 글입니다. 노무현과 김구는 약자의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엘리트지도자가 공격과 방어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할 때, 노무현과 김구는 생존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합니다. 이 원리를 알아야 노무현의 전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9. 라이벌을 존경하는 사람이다

감옥에서 쉬는 날에는 이승만박사의 손때와 눈물자국이 반반한 ‘감옥서’라는 도장이 찍힌 광학류편, 태서신사 등 서적을 보았다. 나는 그런 책자를 볼 때마다 배알치 못한 이박사의 얼굴을 보는 듯 반갑고 무한한 느낌이 있었다. [백범일지]

김구가 존경하는 사람은 이승만이었다. 30년 후 두 사람은 정치적 라이벌이 된다. 노무현도 과거 라이벌이었던 김근태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적이 있다. 노무현이 정몽준과의 단일화에 합의한 것은 단일화를 주장한 김근태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였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살다보면 괜히 좋은 사람이 있다. 나에게는 김근태의원이 바로 그런 분이다.』『김근태가 나를 이렇게 평가해 주다니. 아, 내가 확실히 뭔가는 하고 있는가 보다 하는 자부심마저 생겼다.』 [노무현 칼럼]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지금은 사라진 역사의 인물을 들거나, 혹은 자기 가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은 아버지의 복제다.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존경한다는 말이 될 수가 있다. 역사의 인물은 신화가 되어 있다. 신화 속의 인물을 존경한다는 말은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라이벌을 존경할 수 있어야 한다. 존경한다는 것은 배운다는 것이다. 라이벌을 존경하는 사람이 그 라이벌을 꺾을 수 있다. 살아있는 현세의 인물을 존경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은 과거의 인물보다 살아있는 현세의 인물에게 배울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체면과 위신을 따지지 않는 서민 출신의 지도자만이 가능한 태도이다.

필자의 개인 홈페이지에 필자가 존경하는 인물로 백범 김구, 장준하, 노무현, 전태일, 김대중, 김어준, 강준만, 김정란, 등의 이름을 써놓았더니 딴지일보의 김어준 같은 사람을 존경하느냐고 힐난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가지라도 배운 것이 있으면 그 사람을 존경할 수 있어야 한다.

 

10. 한 편의 소설 같은 삶

대군주가 친히 전화한 것은 사실이다. 이상한 것은 그때 서울 이외에는 장거리전화가 인천까지가 처음이요 완공된 지 3일째 되는 날이라. 만일 전화 준공이 못되었어도 사형이 집행되었겠다고 한다. [백범일지]

왜놈을 죽이고 인천의 감리영에 수감되어 있었던 김구는 사형집행일 당일에 고종황제의 특명을 받고 사형집행이 유예되었다. 바로 며칠 전 서울에서 인천까지 전화가 개통된 덕분이었다. 김구의 삶에는 이와 같이 드라마틱한 장면이 무수히 있다.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대통령 당선과정이 한 편의 그림 같은 드라마이다. 만약 누군가가 소설을 이같이 썼다면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평론가들의 비난에 직면했을 것이다. 국민경선의 기적, 후보단일화의 성공, 노사모의 활동, 유세마감 세시간을 남겨놓은 정몽준의 배신 등 하늘의 개입이 아니고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들이다.

사지 않는 복권이 당첨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우연히 얻어진 행운이 아니라 부단히 행운의 복권을 구매했기 때문에 얻어진 당연한 귀결이다. 이는 기본적인 삶의 태도에 관한 문제이다. 백범은 재판을 받으면서 죽을 힘을 다하여 왜놈 감시인 도변(渡邊)을 꾸짖었다. 이러한 노력 때문에 국모보수(國母報讐)의 명분이 고종황제의 귀에까지 전달되었고 그 결과로 사형집행이 유예된 것이다.  

『사자는 새끼를 벼랑에 떨어뜨려 살아 돌아온 놈만 키운다는데 나도 부산에서 세 번 떨어졌지만 후보가 돼 돌아왔으니 확실히 밀어달라』[노무현어록]

백범이 체념하고 순순히 재판을 받았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노사모가 우연히 노무현을 도운 것은 절대로 아니다. 정몽준이 우연히 기행을 벌인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확률이지만 평소의 생활태도로서 그 확률을 높여놓은 사람은 노무현 본인이다.

초나라 왕족의 후예인 엘리트출신 초패왕 항우가 중앙을 차지할 때 농민 지도자였던 한 고조 유방은 외곽을 돌며 민심을 얻기에 주력하였다. 귀족의 후예인 원소와 조조가 중앙 정계에서 크게 성공하고 있을 때 돗자리 장수 유비는 변방에서 민심을 얻었다.  

엘리트지도자는 권력의 중심에 바로 뛰어든다. 반면 민중의 지도자는 권력의 중심에 가까이 가지 않고 외곽을 돌며 자기편을 만드는데 주력한다. 왜? 인맥과 학벌과 돈 없이 중앙에서는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 민중의 지도자가 외곽에서 얻은 인심은 평소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상황이 50 대 50으로 첨예해 졌을 때 극적인 반전을 이루며 주인공을 돕게 된다. 한 편의 그림 같은 드라마가 완성된다. 기적처럼 보여지나 실은 기적은 아니라 예술이다.

 

11. 민중의 마음을 빼앗는 기술

명색이야 의병이든 도적이든 왜놈이 순한 백성이 아니라고 하여 감옥에 가두어 두는 것이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병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 [백범일지]

백범이 양반 지식층과의 교유하면서 어느덧 민중의 마음과 멀어진 자신을 발견하고 문득 깨달아 다시 민중의 아버지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백범이 감옥에서 만난 의병장들은 말이 의병장이지 실은 떼강도와 다름이 없는 형편없는 인격의 소유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백범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을 계몽하여 바른 길로 인도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할 때이다. 노동자들이 쉬는 날 하는 짓이라고는 화투를 치거나 음담패설을 늘어놓거나 싸움을 벌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노무현도 한 때는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부끄러운 짓을 저질렸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도 조직되고 교육받으면 무섭게 변한다. 노무현은 일용노동자 조합을 도우면서 요즘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알게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백범이 포기하지 않았듯이 노무현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을 핸들링 할 자신과 경험과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엘리트들이 훌륭한 인격을 보이는 것은 교육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단 내부에서 공론이 이뤄지고 개인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중에게는 그러한 내부시스템이 없다. 공론이 없고 개인에 대한 평가가 없다. 무력해진다. 민중이 곧잘 천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러한 내부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다. 어느 상황에서 민중의 마음에도 그러한 시스템이 형성된다면 민중은 무섭게 변한다.

동료 죄수들부터 나를 이인(異人)으로 안다. 사형을 당하는 날인데도 평소와 똑같은 생활을 한 것이 내가 죽지 않을 것을 미리 아는 듯 하였다 한다. 관리들 중에도 그렇게 아는 사람이 있고, 어머님도 나를 이인(異人)으로 아신다. [백범일지]

민중에게 필요한 것은 행동통일이다. 행동통일을 위해서는 체험의 공유가 필요하다. 체험의 공유를 위하여는 드라마가 필요하다. 백범이 자신을 이인(異人)으로 연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무현의 드라마틱한 삶도 민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을 발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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