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6276 vote 0 2003.07.04 (17:43:39)

『이어지는 글 4번째입니다. 노무현과 김구의 삶은 닮은 꼴입니다. 노무현은 존경하는 인물로 김구를 말하다가 링컨으로 바꾸었는데 김구와 노무현의 삶이 너무 닮아있기 때문에 이를 숨기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6. 복수를 결심한 적이 있다

고향에 강씨 집안이라고 있었어.양반인데 대대로 우리 가족을 괴롭혔지.할아버지를 몰매 때리기도 하고.아버님이 어린 마음에 깊이 사무치셨던 모양이야.중국에서도 본국에 돌아가면 강가놈 원수 갚겠다 되뇌셨을 정도야. [아들 김신의 증언]

노무현도 복수를 생각한 일이 있다. 고시에 합격한 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지만 고시 공부를 할 때까지도 집안을 박해했던 깡패 몇몇에 대해 반드시 보복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하고 있다.

하기야 옛날에는 가문간에 원수가 져서 대대로 복수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필자도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빨치산시절 가문간에 대대로 이어져온 복수극 때문에 한 마을이 초토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625를 전후로 한 무수한 비극들 중 상당부분은 이념의 차이보다는 대대로 이어진 가문간의 원한관계에 대한 복수의 관행 때문이었을 수 있다.

김구선생도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진정으로 복수할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원수였던 강가놈의 자제가 광복군으로 들어오자 흔쾌히 받아들이고 복수는 잊어버렸던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가지는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이다.

요는 세상과의 관계 맺기다. 세상과 어떤 위치에서 각을 세우느냐이다. 자신을 억울한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반골기질일 수도 있다. 복수가 인생의 틀거리를 규정짓는 테마가 되면, 항상 자신을 복수할 수 있는 낮은 위치에 두어야 한다. 쉽게 출세하고 성공해버리면 세상에 복수할 수 없는 것이다.

노무현과 김구는 습관처럼 자신을 낮은 자리에 둠으로서 세상과의 큰 싸움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문열 식으로 표현하면 시대와의 불화(不和)이다. 소극적으로 말하면 저항의식이고 적극적으로 말하면 전복적 사고이다.

조갯살 속에 작은 모래알 따위 작은 이물질이 들어오면 조개는 이물질을 배척하기 위하여 키틴질의 막을 씌운다. 처음 그것은 하나의 상처이다. 상처가 점점 자라서 마침내 영롱한 빛을 내는 진주로 승화되는 것이다.

조개가 진주를 품듯 노무현에게, 김구에게 처음 그것은 작은 하나의 상처였다. 커다란 기상도 처음에는 작은 복수심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작은 하나의 상처가 아물고 덧나고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호연지기가 되고 하늘을 찌르는 기상이 된다.

7.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있다

하은당스님부터 『애야, 원종아!』를 기탄없이 부르고, 『미련스럽게 생겨서 이름 높은 중은 못 되겠다. 얼굴은 어찌 저다지도 밉게 생겼을까. 어서 나가서 물도 긷고 나무도 쪼개어라.』하신다. [백범일지]

양반의 세력이 건재하던 시대에 상놈으로 태어난 백범은 신분으로 보나 학식으로 보나 남 윗자리에 설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도가 혁파되었다고는 하나 독립운동은 양반들이 주도하고 있었고 상놈 주제에 감히 지도자로 나설 수는 없었다. 백범의 표현으로 하면 자굴지심(自屈之心)이요 현대용어로 하면 콤플렉스다.  

오늘날 우리의 형편이 초라하다고 자굴지심(自屈之心)을 발하여, 우리나라가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해낼 것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모욕하는 일이다. [나의 소원]

백범은 콤플렉스가 심했던 만큼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컸던 것이다. 콤플렉스에 대한 지독한 경계가 뒷날 어떤 나라에도 의존함이 없이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자주정신으로 승화된다.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콤플렉스를 저항의식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이름을 구(九)라 하고 호를 백범(白凡)이라 고쳐서 동지들에게 알려주었다. 우리나라 하등사회 곧 백정(白丁) 범부(凡夫)들이라도 애국심이 지금 내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이 되겠다는 소망을 가지자는 것이다. [백범일지]

백범이라는 호에는 다른 한가지 의미가 더 있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백정, 범부로 비하하므로서 여전히 양반들이 주도하고 있는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서민 출신 지도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다.

커다란 콤플렉스가 큰 영웅을 만드는 법이다. 나폴레옹도 원래는 작은 키에 못생긴 소년이었다. 귀족출신은 당연히 기병장교로 편성된다. 코르시카섬에서 온 촌놈 나폴레옹은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기병장교가 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남들이 마다하는 포병을 지원하였던 것이 뒷날 연전연승을 이루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백범과 노무현의 자기비하 습관을 오해해서 안된다. 엘리트와 서민의 출세과정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엘리트는 한 두 번의 실수가 있어도 인맥과 학맥과 자본에 의해 2중 3중으로 보호받는다. 서민의 출세는 위태로운 곡예여서 아차 하는 순간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다. 살아남는 방법은 첫 번째도 굽히는 것이요 두 번째도 굽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많이 굽힌 스프링이 가장 높이 튀어오르는 법이다.

8. 탁월한 중재자이다

원동 3당 통일회의를 열어 한국독립당을 탄생시켰다. 하와이 애국단과 하와이 단합회가 자기 단체를 해체하고 한국독립당 하와이 지부가 성립되니 실은 3당이 아니고 5당이 통일된 것이다. [백범일지]

백범은 중경정부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좌파와 우파세력을 중재하여 합작을 실현해낸다. 김구는 고집 센 원칙가가 아니라 탁월한 중재자였던 것이다. 해방후 김구가 이승만의 단정을 반대한 것은 선비의 지조가 아니라 실은 탁월한 중재자로서의 노하우를 사용하려 했던 것이다.

『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노무현어록 - 노동현장을 방문해 중재하겠다며]

노무현 역시 노조와 재벌을 중재해 본 경험이 있다. 정몽준과의 단일화 과정에도 중재의 경험이 반영되었음은 물론이다. 노무현은 언제나 원칙을 지켰지만 통일민주당과 꼬마민주당, 통합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를 거치면서 분열을 야기한 적은 한번도 없다.

노무현은 변호사이다. 변호사의 업무 중의 하나가 원고와 피고 사이를 중재하는 일이다. 변호사의 경험으로 중재에는 일가견이 있는 것이다. 또 노무현은 변호사로서 재판마다 승소한 사람이다. 중재할 때는 중재하지만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 하는 것이 변호사인 것이다.

노무현은 변호사시절의 경험으로 원칙을 지켜야만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반면 타협할 타이밍에는 때를 놓치지 않고 타협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체면과 권위의식 때문에 맹목적으로 원칙에 집착하는 엘리트지도자와는 그 원칙의 질이 다른 것이다.

이승만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때부터 무수히 분열을 야기시켰다. 이유가 있다. 엘리트지도자에게는 권위를 빼면 남는 것이 없다.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권위가 꺾이고 권위가 꺾이면 정치생명이 끊어진다. 서민 지도자에게는 그 권위가 없다. 서민 지도자가 원칙을 지키면서도 분열을 야기하지는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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