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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ahmoo
read 8585 vote 0 2009.05.14 (10:12:22)

 

IMG_7938.JPG   IMG_7939.JPG

"풍선이 쪼그라들어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요. 풍선예수예요."




인간은 채우려고 하는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 빈 자리가 있으면 채우려고 한다. 빈 시간이 있으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 도시에서 사람들의 걸음이 빨라지는 까닭은 빈 공간을 채우려는 충동 때문이다. 한 사람이 빨리 가면 빈 공간이 생기고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그 공간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턱대고 채우려는 욕구는 사람의 리듬을 흩트린다. 자신의 속도를 잃어 낙오되는 일이 흔하다. 요행히 무리를 따라가더라도 결국 뒤따라가기만 하는 자신의 모습에 황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일단 무리의 흐름에 휩쓸리게 되면 비어있는 것 의미 없는 것 쓸데 없는 짓은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긴장으로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채움 중독이 되어간다.

 

아이는 커다란 여백의 존재이다. 아이의 투명한 눈에는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의 모습이 목격될 것이다. 달리고 또 달리는 사람들. 서로서로 꼬리를 물고 달린다. 달리는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만 두지 않는다. 그 여백을 두고 볼 수 없어 채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여백이 없는 사람은 누군가를 초대할 수 없다. 그는 누군가를 수동적으로 따라가거나, 혹은 자신을 앞서지 않도록 방해하는 관계만을 만들게 된다. 여백이 없으면 거리를 두고 가늠할 수 없다. 거리를 두어야 전모를 볼 수 있고 더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다. 너무 가까이 붙어있으면 주도적으로 상황을 구성할 수 없다.

 

무리에서 벗어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엄밀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무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휩쓸릴수록 눈이 탁해진다. 아이가 친구가 거의 없는 왕따라도 타인으로부터 특별히 개입 당하지만 않는다면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가 무리로부터 떨어져 있는 만큼 새롭고 선명한 자신의 시각을 가지는 시기가 될 것이다.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징검다리 건너듯 점프해서 지나가면서 지식을 구성한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들로 이미지를 만드는 셈이다. 그러나 그림은 대상과 여백의 역동적인 결합이다. 대상만으로 화면을 구성할 수 없다. 대상과 대상 사이의 여백을 인식하지 못하면 결코 균형 잡힌 화면을 구성할 수 없다.

 

여백을 무언가로 채우려고 하기보다 한걸음 떨어져서 일과 여백이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구성을 조망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시간을 유용한 것들로 빽빽하게 채우기보다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무용한 시간도 다른 중요한 스케줄과 함께 적절히 엮여야 한다.

 

그저 빈 시간을 기계적으로 주기보다는 매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과 그 일을 완수하여 주어질 보상으로서의 자유라는 두 아귀가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긴장은 이완이라는 보상이 보장될 때 활력이 된다. 무조건 꽉 채우는 일이나 그에 대한 반발로 그저 비워놓으려는 두 극단은 사람의 일을 완성시키지 못한다.

 

긴장과 이완, 일과 보상, 채우기와 비워놓기, 유용과 무용을 완성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그러면 이 두 극단은 상황에 따라 끊임없는 미세조정을 통해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 저울의 두 날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질 것이다. 기계적인 조정과 세팅보다는 사이클의 완성이라는 중심을 명확히 하고 상황에 따른 양 날의 균형을 적절히 잡아가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09.05.14 (11:47:06)

좋은 글이오만
'비우다/채우다'의 피상적인 관념

혹은 가시적인, 표면에 드러나는 결과론적 측면에 천착한다면 곤란하오.
이건 아무님의 본문과는 상관없는 말입니다만.

주로 '명상한다'는 분을 겨냥하여 하는 말인데
무(無)에 집착하여 그 무에 매달려서 전혀 진도 나가지 못하는 분들 많소.
 
'창의'하다보면 저절로 비우게 되어 있소.
그러나 의도적으로 비우고자 한다면 비우기에 실패하게 되오.

세잔이 사과를 그린다면 '형태'에 집중하기 때문에 저절로 단순하고 질박해지는 것이오.
 조선시대 분청사기처럼 심플해지는 것이오.

그러나 청나라 여진족들은 무식해놔서 화려한 채색을 좋아하는데
색깔을 칠하다보면 저절로 가득 채워지게 되오.

말하자면 원근의 배치≫형태의 양감≫구도의 밸런스≫동세의 표현≫데생의 정확성들 중에서
우선순위가 앞서는 것을 추구하면 저절로 비우게 되어 있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원래 지옥문의 일부로
높은 곳에 조용히 짱박혀 있었는데

그게 지구의 중력을 나타냈기 때문에
지옥문에서 살살 내려와서 독립적인 작품으로 취급된 것이오.

즉 로댕은 아무 생각없이 가득채웠는데
평론가와 관객들이 살살 끌어내서 비워버렸다는 말이오.

그러므로 중력을 추구하고 형태를 추구하고 밸런스를 추구하면
설사 작가가 채워놔도 관객과 평론가들이 어떻게든 비워버리고 마는 것이오.

그러나 그 반대로 하위디렉토리로 가면
즉 자신의 창의가 없이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기초 위에 건설하게 되면

어느 새 가득채우기 곧 인테리어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오.
먼저 온 사람이 터를 닦고 기초를 놓을 때는

당연히 불도저로 대지를 밀어서 비우는 것이며
뒤에 온 사람이 남이 다 지어놓은 집에서 뭐 어떻게 해보려면

할게 도배밖에 없으니 도배지로 가득채우는 것이오.
그러니 비운다 채운다에 집착할 이유가 없이

소재 혹은 캔버스의 질감≫안료의 배합≫명암의 대비≫윤곽선의 두께≫색채의 조화들 중에서
순서적으로 앞서는 것을 하면 저절로 비워지게 되오.

맨 뒤에 오는 색채의 조화를 추구하면 저절로 화면을 채울 수 밖에 없소.
현대예술은 점점 상업화되고 디자인 패션으로 되어가는데

그건 모드와 모럴을 추구하기 때문이오.
모드는 어떤 둘의 일치. 모럴은 몸에 올리기.. 이건 채우는 것이오.

그러나 어떤 것이든 독창적인 것은 전부 비우기가 되오.
디자인은 원래 채우는 것이오.

노트북이 있으니까 그 노트북의 표면을 디자인으로 채우는 것이오.
그런데 애플의 디자인은 비우기 위주로 심플한데

그건 스티브잡스가 천재이기 때문이오.
원래 천재는 비우고 둔재는 채우게 되어 있소.

왜냐하면 천재는 밖에서 아이디어를 조달하기 때문에
밖에서 가져오려면 대문을 열고 마당을 쓸어야 하므로 저절로 비워지는 거고

둔재는 남의 아이디어로 접붙이기를 하기 때문에
기존의 아이디어에 자기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다보면 저절로 번거럽고 난삽해지는 것이오.

그러므로 막연히 '비워라'고 압박할 일이 아니라
너의 오리지널리티는 뭐냐? 하고 물어야 할 것이오.

복잡하게 채워져 있다면
그게 남의 아이디어에 접붙이기 했다는 증거가 아니냐 하고 추궁해야 할 것이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09.05.14 (12:04:16)


30113-large.jpg


쓸데없이 가득 채워놓은 로댕의 지옥문
지붕 위에 세 사람이 있고 그 아래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RodinTheThinker.jpg

평론가와 관객들은
로댕의 지옥문 중에서 생각하는 사람을 별도로 분리해내길 좋아한다.

나는 로댕이 생각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지구의 중력을 조각했다고 생각한다.
아류들은 로댕이 생각을 조각했다고 믿고 '생각'을 훔치려들지만 실패다.

본질은 중력이기 때문이다.
지옥문 지붕 위에 세 남자도 팔을 아래로 늘어뜨려서 중력의 무게를 강조하고 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청동의 무거움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청동의 무거움은 생각의 무거움, 슬픔의 무거움, 존재의 무거움, 운명의 무거움으로 가지를 쳐나간다.


첨부
[레벨:3]파워구조

2014.10.16 (00:53:22)

아무님의 균형론, 그리고 김동렬 선생님의 독창성과 여백의 관계. 


제가 그 동안 얼마나, 난삽하고 지저분한 행위를 반복해왔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글 감사합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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