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를 읽다가 느낀것은 칸트가 물체가 태어나기전에 힘이 먼저 태어난다고 얘기하던데, 우린 그 보다 이백년 앞서 서경덕선생이 그얘기 하시던데.
우리문화도 멋지고 어디가서 꿀릴것 없는데, 우리것 얘기하면 먼저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싸울수도 없고 가만히 있습니다.
민족, 문화, 철학 모두 의사결정 필요에 의해서 개발된 의사결정모델입니다.
민족구분은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구분만으로는 어떠한 일을 할 수 없어요. 우리는 이미 핏줄이 많이 섞였습니다. 균질화가 많이 진행되었어요.
중국은 한족이라는 민족을 구분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한족 문화권에 의해서 바운더리를 설정하고 의사결정을 해서 일을 추진합니다. 문화 바운더리 구분은 아직 먹힙니다.
그러나 글로벌 문화에 의해서 그 입지가 약해지고 있지요. 문화 역시 균질화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민족보다 더 추상화하여 상부구조로 만들어진 문화권에 대항하여 민족을 들고나오면 의사결정게임에서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도지사 뽑는 선거에 나와서 집안사람들, 문중의 지지로만 당선되겠다는 생각처럼 한계가 있는 안일한 발상이지요.
문화권보다 더 나은 구분은 철학의 구분입니다.
철학(다른 이름을 붙일 수도 있음, 그러나 본질에서는 철학)에 의한 바운더리 설정으로
문화권의 경쟁을 무력화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애완견은 순종이니 잡종이니 하면서 작고 앙증맞은 것을 예뻐하는데,
그 것은 인간에게 예쁘 것이지
개한테는 동물권 침해라고 봅니다.
개가 잡종교배를 못해서 한 피만이어 받으니
나쁜 유전자는 고치지 못하고 계속 이어져 와서
작은 것 같은데요.
지난 겨울에 지구사진전에서 프랑스에서
말을 잡종교배한 것과 순종교배한 것을 보여주는데
잡종교배는 덩치도 커지고 달리는 속도도 빨라지고
깃털도 좋아지고
순종교배는 몇십년 흐르니까 노새하고 차이가 없는 거예요.
덩치도 하나도 안 커지고, 모양새도 노새와 같고.
몸에 순종의 피가 흐른다는 거 좋은 것은 아니더라구요.
가끔은 일본천황의 유전자를 검사하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게
이천년동안 한가문의 핏줄이 이어져 내려져온다고
어떻게 이천년동안 한 핏줄이 내려져 올수가 있는지...
유전병 검사하면 뭔가 나올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어깨도 굽은 것 같고, 턱도 나온 것 같고
어쩔때는 예전의 유럽왕실처럼 입이 잘 다물어지지 않을 것도 같고
뭔가 좀 약해 보여요.
지구에서 가장 궁금한 사람의 DNA가 일본왕실이예요.
저는 십만년 동안 한 가문의 핏줄을 이어왔는데요?
부계로는.
그러니까요.
글을 쓰면서 이해했네요. 부계는 머..........
가끔 보면
몽골이 우리를 침략해서 욕보였다며 열변을 토하며
몽골은 우리의 철천지 원수라고 비난하는데
얼굴 생긴게 몽골리안.
아버지를 비난하는 격.
혈통으로 보면 우리나라 1/5은 몽고의 후예입니다.
함경도 사람은 일단 여진족 후예로 보면 되구요
중국계도 1/5은 됩니다.
일본인의 반은 한반도에서 건너갔구요.
민족은 핏줄이 아니라 문화공동체입니다.
여진족은 중국에 2천만 있는데 한족이 되었지요.
한족은 혈통개념이 아닙니다.
중국인은 얼굴만 보고 상해인인지 북경인인지 아는데
상해인과 북경인의 유전자 차이는 매우 큽니다.
한국인과 몽고인의 유전자 차이가 1이라고 하면
상해와 북경은 그보다 훨씬 큰 숫자라는 거지요.
정통 한족은 객가족이라는 말도 있고.
민족은 의사소통-의사결정 단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소통해왔고 어떤 결정을 해왔느냐를 논해야 합니다.
그 정수는 결국 미학입니다.
인간의 차이는 피부색 차이가 아니라 수준 차이이며
피부색은 달라도 친구가 되지만 수준이 다르면 친구가 못 됩니다.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의사소통의 코드요
그것은 문화입니다.
그것을 나타내는 것은 미학입니다.
한국인의 미학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일본은 청결하지만 형식적이고
중국은 지저분하고
한국은 깊이가 있지요.
한류가 먹히는게 그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설명하는 언어를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철학자인데 철학자가 없어서리.
자부심을 가지려면 철학자가 있어야 합니다.
철학자의 직업이 그거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