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11113 vote 0 2003.05.28 (19:06:16)

[치료비 모아놨는데 10여일째 행방불명]
고대 앞 명물 ‘원만이 아저씨’를 돕기 위해 모금운동 까지 벌였던 고대생들이 난감해 하고 있다. 썩어 가는 다리의 치료를 거부하던 원만이 아저씨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관심과 도움이 도리어 그의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 ‘안 하니만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고려대 앞에서 학생들에게 손을 내밀며 ‘백 원만’ 달라던 원만이 아저씨가 10여 일째 보이지 않고 있다. 근처 상가 주민 김모씨는 “2~3일 동안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경우는 있었지만 10일 이상 자리를 비운 적은 없었다”고 의아해 했다.

‘원만이 아저씨’는 20년이 넘게 고려대에서 터를 잡고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노숙자 명물. 이름은 학생들에게 ‘백원만 달라’고 하는 데서 유래됐다.

실라 콘웨이 교수 주도로 학생들은 지난달부터 원만이 아저씨의 점심을 챙겨 주는 한편, 축제 기간에 자선 콘서트와 일일 호프 등 모금 행사를 열었다. 이렇게 해서 모아진 성금이 총 1100만 원.

학생들은 “비록 구걸을 했지만 500원을 주면 400원을 돌려 줄 정도로 결벽증이 있던 아저씨가 공식적 도움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면서 “모금행사를 벌여 치료를 해주려 했는데 행방을 감췄다”고 안타까워 했다.

학생들이 병원 치료를 권했을 때 원만이 아저씨는 “의사들에게 신세를 져야 하는 등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게 부담스럽다”고 치료를 거부해 왔다.

콘웨이 교수는 “홈리스에게도 프라이버시가 있다. 원만이 아저씨가 자신의 체면이 손상됐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루 빨리 삶의 터전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승호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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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앞 원만이아저씨는 왜 사라졌을까? 그는 왜 치료를 거부했을까? 단지 체면 때문에? 천만에! 노숙자에게 무슨 체면이 있다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치료를 빌미로 학생들은 그의 직업을 빼앗으려 한 것이다. 단지 직업을 빼앗기기 싫어서? 천만에!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구걸을 하기 위해서는 체면을 잊어버려야 한다. 체면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는 세상과 나 사이에 금을 그어야 한다. 세상은 그 금 너머에 있고 나는 그 금 이쪽에 있다.

그 그어진 금 너머의 세상은 이곳저곳에 돈을 떨어뜨린다. 원만이 아저씨는 그 돈을 수집하는 채집경제에 종사하고 있다.

콘웨이 교수와 영문학과 150명의 학생은 그 금을 무너뜨리고 그 그어진 금 이쪽으로 침범해 왔다. 원만이 아저씨는 자기영역을 침범당한 것이다.

한 집안의 가장이라면 자신의 안위보다 가족을 먼저 보살피려고 할 것이다. 치료를 마다하고 원만이아저씨가 보호하려는 가족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의 나와바리였다. 그의 채집경제였고, 그의 직업이었고, 자기만의 영역이었고, 세상과 맞서는 그의 방법이었다. 그에게는 그것이 곧 가족이었고 그 자신의 건강보다 더 소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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