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한국 성리학의 주류는 일원론이다.

현대에 와서 율곡보다 퇴계가 더 조명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잘못 이해된 것이다. 조선 성리학의 주류는 율곡 이이에서 우암 송시열로, 화담 서경덕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였다.

율곡의 일원론은 상대적으로 더 과학이다. 퇴계의 이원론은 상대적으로 더 종교에 가깝다. 과학으로서의 유교는 사망하고 있고 종교로서의 유교는 명맥을 잇고 있다. 그래서 퇴계가 조명되고 있을 뿐 퇴계는 조선성리학의 주류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문화는 차별에서 통합으로, 구분에서 조화로, 분리에서 공존으로, 클래식에서 팝으로, 귀족문화에서 대중문화로 발전한다.

이는 역사의 필연법칙이자 미학원리다. 왜냐하면 그 모든 논의의 본질이 바로 소통에 있기 때문이다. 소통되지 않을 때는 필요에 의해 구분하지만 소통되고 나면 그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까닭이다.

헤어지는 연인이 거울을 두쪽으로 나눠가지는 뜻은 나중 둘을 하나로 합쳐보기 위함이다. 군사의 암호가 둘로 나뉘어지는 까닭 또한 나중 그것을 하나로 합쳐보기 위함이다. 모든 나뉘어지는 것은 하나로 합쳐지기 위함이며 그것을 합해지게 하는 것은 시간이다.

천(天)과 지(地), 위와 아래, 남자와 여자, 음과 양,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세상의 모든 구분은 본질에서 소통되는 것과 소통되지 않는 것의 구분이다.

유교주의의 차별적 질서는 소통의 장벽을 발견하고 그것을 현시하여 드러낸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원래 소통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따로 구분지어 별도의 그룹 안에서 소통하자는 것이 유교주의다.

그것은 정치가들이 외부에 적을 만드는 통치술과 같다. 안을 단결시키기 위해서는 밖을 적대해야 한다. 그러나 내부의 소통이 충분히 달성된 다음에는 그 바깥과도 소통해야 한다.

사회가 발전하면 남자와 여자 사이에도 충분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차별에서 통합으로, 분리에서 공존으로, 클래식에서 팝으로, 귀족문화에서 대중문화로 발전하는 것이다.

장벽을 발견하기와 장벽을 뛰어넘기

처음 어느 특정한 지역이나 집단이나 계급에서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출현하면 그것이 전파하여 가면서 곧 국경과, 계급와, 신분과, 언어와, 민족과, 성별이라는 장벽들을 만난다.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중간계급으로서의 사(士)가 필요하다. 브로커가 필요하고 중간상인이 필요하고 뚜쟁이와 매파가 필요하다.

문화는 본래 소통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문화가 발전하여 충분한 소통이 이루어지면 중간집단인 사(士)는 필요없게 된다. 뚜쟁이는 사라져야 한다. 중간상인은 없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예술은, 모든 문화는, 모든 사상은, 모든 종교는, 모든 철학은, 모든 주의는 그러한 장벽을 허물어 없애기 위하여 존재한다.

장벽을 넘기 위하여 초기단계에서 일시적으로 필요로 한 권위주의와 차별적 질서를 무너뜨릴 수록 진보이다. 역사가 가는 방향이 그러하다

클래식의 의미는 음악을 이해하고 문화를 이해하는 귀족집단과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민계급을 구분하는데 있다. 더 고상한, 더 완벽한, 더 수준높은, 더 엄격한 가치를 발견하므로서 이에 접근하지 못하는 대중들과 무제한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기네를 차별하자는 것이 클래식의 목적이다.

클래식은 완벽한 화음, 완벽한 조화, 완벽한 음질, 완벽한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고전주의는 완벽한 형식미를 추구한다. 완벽한 운율의 정형시를 추구한다.

팝은 반대이다. 국경을 넘어, 계급을 넘어, 인종을 넘어, 무차별적인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 차별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팝의 진실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필연적으로 클래식에서 팝으로, 이원론에서 일원론으로, 공간적 구분에서 시간적 통합으로, 소승에서 대승으로의 패턴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도 마찬가지다. 계급구분에의 집착은 알갱이에 의존하고 본성(本性)의 논리, 성품의 논리에 집착하는 즉 클래식의 논리다.

프로레타리아 일계급 독재를 주장하는 바도 마찬가지로 『차별후 통합』이라는 논리전개의 패턴을 정확하게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종교의 개인작업 학문의 공동작업

학문과 비학문은 그 내부에 미학적 자기 완결성으로서의 체계가 갖추어져 있는지의 여부로 구분된다.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스승이 만든 뼈대에 제자가 점차로 살을 붙여나갈 수 있는 개방된 구조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수학이나 과학이라면 항구적인 발전이 있다. 지속적으로 체계가 갖추어진다. 종교라면 스승이 만든 논리에 제자는 1획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문이 안으로 닫혀 있는가 아니면 밖으로 열려 있는가이다. 주관인가 아니면 객관인가이다. 특정인의 개인작업인가 아니면 인류의 공동작업인가이다.

소크라테스는 미완성이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을 향하여 던진 것은 하나의 화두 곧 하나의 개념에 지나지 않았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화두를 받아 거기에 논리를 부여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논리에 체계를 부여하였다.

논리를 부여하였다는 것은 안으로 미학적 자기완결성을 부여하였다는 뜻이며, 체계를 부여하였다는 것은 밖으로 뻗어날 가지를 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안과 밖이 두루 갖추어진 것이다.

비유하자면 화두 곧 개념의 정립은 학문에 있어 하나의 씨앗이다. 안으로의 논리부여는 그 씨앗이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것이며, 밖으로의 체계형성은 그 씨앗이 대지를 박차고 나와 하늘을 바라고 가지를 치며 잎이 돋아난 것이다.

동양정신의 경쟁력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공자도 미완성이다. 공자의 개념에 맹자의 논리와 주자의 체계가 차차로 가지와 잎이 되어가며 세상을 향해 뻗어나간다. 제자가 구름처럼 몰려들어 하나의 흐름이 형성되고, 류가 만들어진다.

반면 예수나 석가의 작업은 개인작업이다. 아무도 예수나 석가의 작업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살을 보태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나 공자의 문은 밖으로 열려있다. 석가나 예수의 문은 안으로 닫혀 있다.

공자는 열다섯에 뜻을 세우고 예순에 이르러 겨우 남의 말을 알아들을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는 시간 상에서의 점진적인 전진을 의미한다.

공자는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배우는 자이다. 그는 학생이지 선생이 아니다. 하여 맹자나 주자에 의해 단계적으로 확대계승된다.

논어가 『학이시습지..』로 시작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는 문을 안으로 닫아걺이 아니라 밖으로 열어제침이다. 1인의 독점이 아니라 천하가 공유함이다.

유교주의의 핵심은 천(天)사상이다. 불교의 범(凡)과 통한다. 이는 보편주의다. 객관화 하겠다는 것이다. 독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곧 유교주의는 공자 한 사람의 개인작업이 아니라 인류의 공동작업임을 천명한 바 된다.

공자가 주나라모델의 정치적 이상주의와 요순모델의 유토피아론을 끌어오는 것도 같은 원리다. 여기에는 시간상의 전진이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후세에 받아들여지기를 공자의 시간개념이 미래로의 전진이 아니라 과거로의 퇴행으로 오해된 점이다. 그 책임의 일정부분은 공자 자신에게도 있다.

석가의 범(凡) 개념에는 상대적으로 시간개념이 불분명하다. 공자의 시간개념은 인류의 문명의 긍정과 진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공자는 진보주의자일 수 있다.

반면 석가는 그 자리에서 완성되어버렸으므로 시간성이 배제된다. 거기서 게임이 끝나버린 것이다. 2라운드는 없다. 석가의 내세지향은 허무주의일 수 있다.

물론 공자의 정치적 유토피아가 주나라의 봉건제도를 이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과거회귀적이다. 그러나 공자가 현실을 긍정하는 방법으로 문명이라는 개념에 접근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명백히 진보적인 가치가 내재해 있다.

인류가 고안한 모든 사상은 진보주의 혹은 보수주의로 해석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의 말세개념은 보수적이나 구원과 심판에서 진취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도 있다.

서구가 진보하던 시대에는 기독교도 진보적인 시각에서 해석되었고, 서구가 암흑에 빠져 있을 때는 기독교 역시 보수적인 시각으로만 해석되었다.

유교주의 역시 마찬가지로 양면성이 있다. 공자의 사상에서 일부 진보주의적인 측면을 재발견 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것만 우선으로 취하는 것이다.

공자의 위대성은 종교적 편향으로 기울지 않고, 학문의 객관성으로 중심을 세웠고, 개인작업이 아닌 인류의 공동작업으로 나아갔고, 더우기 문명의 진보라는 본질을 파악한데 있다.

현실을 부정하고 내세를 추구하는 불교나 기독교에는 문명이라는 결여되어 있다. 보편가치의 추구도 없다. 무엇보다 시간에 대한 이해가 없다. 그들은 역사를 공부하지 않았다.

『현실세계를 긍정하는 범위 안에서 인류문명의 진보를 모색하기』는 공자가 소크라테스보다 노자보다, 석가보다, 예수보다 우뚝한 부분이다.

공자의 인(仁)이 의미하는 것은 그 문명의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인류에 의해 공유되고 있는 사회라는 거다. 이에 비해 예수의 사랑이나 석가의 자비에는 사회개념이 박약하다.

인(仁)은 인(人) + 이(二)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의 공존이다. 두 사람 사이에 필요한 것은 의사소통이다. 공자의 인을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예수의 사랑이나 석가의 자비도 두사람 이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분히 주관적이다. 나의 입장에서 너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반면 공자의 인은 자신의 주관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다.

공자의 인은, 너에 대한 나의 인이 아니라, 공유되는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인이다. 너에 대한 나의 인은 구분되는 것이다.

너와 나는 본래부터 다르다는 논리다. 사랑이 풍부한 예수와 사랑이 부족한 우리는 다르다. 자비가 풍부한 석가와 자비가 부족한 우리는 다르다.

공자의 인은 개인의 뛰어난 자질이 아니라 널리 공통되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것은 칸트의 이성과 가까운 것이다.

공자의 인은 상대적으로 미학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미학의 논리란 자기일관성을 의미한다. 선비의 일관된 삶을 위해선 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의 사랑이나 석가의 자비는 부자가 거지에게 금화를 나누어주듯 자신이 풍부하게 가진 것을 동정심을 유발하는 특정한 대상을 향하여 소비하는 것이다.

공자의 인은 선비가 자기 삶의 미학적인 완결성을 위하여 일관된 태도를 지켜가는 것이다. 인이 궁극적으로 얻는 것은 자연스러움이며 아름다움이다.

인이 아닌 것은 부자연스러움이며, 어색한 것이며, 떳떳하지 못함이며, 비굴함이며, 부끄러움이며 저열한 것이다.

인은 당당한 것이며, 태연한 것이며, 호쾌한 것이며, 떳떳한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며,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즉 아름답고 고상한 것이다.

다수가 공존하는 사회가 지향하는 바로서 인류의 공동선이 인이다. 이 점에서 공자는 사회주의자로 비유되어도 좋다. 이것이 공자의 진보다.

석가와 예수의 목표는 구원이다. 구원은 개인의 구원이다. 공자의 목표는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이상향으로서의 천하이다.

공자가 꿈꾼 이상적인 사회는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한 사회이다. 그 문명은 문화적가치에 의해 고양된 정신의 문명이다. 이상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사회이다.

종교는 개인이 선택하기의 문제이다. 문명은 인류의 공동작업이다. 확실히 예수나 석가나 노자에게는 문명이 발전하고 사회가 진보하며 역사가 발전한다는 생각을 한 흔적이 없다.

이는 그들의 세계관이 공간으로 닫혔을 뿐 시간으로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월이 흘러봐야 말세밖에 오지 않을 것이라 내다보았다.

문명은, 사회는, 역사는, 진리는, 진보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천하의 것이다. 천하에 대한 개념이 바로서지 않으면 결코 공자와 같은 발상을 할 수 없다.

노자는 산골에 은둔하였고, 예수는 시골뜨기였으며, 석가도 숲속을 헤매다녔다. 그들은 한번도 문명의 중심에 서 보지 않았다.

공자는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다. 역사는 공간이 시간의 기록이다. 공자가 활약한 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시대였다.

공자는 문명과 야만의 차이를 깨달았다. 인류가 점차 진보하여 문명을 이룩하였다는 것을 알아채었다. 문명과 야만의 차이는 소통되는 사회와 소통되지 않는 사회의 차이다.

공자는 윤리라는 수단으로 심지어는 도척과도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소통되는 범위 곧 문명권을 넓혀가는 것을 정치의 목적으로 삼았다.

문명이 개인의 깨달음(석가)이나 어떤 돌발적인 뒤집기(모세의 출애굽사건)가 아니라 인류의 공동작업에 의한 점진적인 진보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데 공자는 동의하고 있다.

공자의 위대성은 공자 개인의 위대성이 아니다. 개인으로 보면 공자 역시 일신의 영달을 쫓아 군주를 찾아다닌 무수한 세객들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말하자면 공자는 소피스트다.

위대한 것은 공자가 만든 학문의 전통이다. 그 학문이 일으킨 동양문명의 체계이다. 공자가 세운 뼈대에 맹자와 주자와 왕양명이 조금씩 업그레이드 해 나가는 전통이다.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가 던진 하나의 화두를 플라톤이 받았고 플라톤의 논리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를 부여했다. 그 전통이 맥을 끊기지 않고 이어져 근대과학으로 발달하고 있다.

동양문명이라는 피라밋이 있고 공자가 그 피라밋의 꼭지점에 있다. 위대하다는 것은 피라밋을 두고 하는 말이지 그 꼭지점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피라밋이 가진 저변의 넓음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공자의 시대는 난세였다. 전쟁은 주로 토지분배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토지분배의 곤란함은 결혼관계를 통한 상속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공자는 토지분배와 결혼관계에 관한 규칙을 정하므로서 토지분배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모든 분쟁을 차단하고자 했다.

공자는 위계질서를 강조하여 백성을 억압한 위인으로 볼 것이 아니라 결혼관계와 토지분배에 관한 세칙을 마련하여 분쟁을 줄이는데 성공한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공자로 하여 동양사에서 분쟁은 실질적으로 줄어들었다. 그것이 곧 공자의 예다.

유목민 사회에서 동생이 형수를 취하면 천륜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상속문제를 두고 분쟁이 발생한다.

유목민의 말과 양떼는 분배하기 쉬우므로 형사취수제가 큰 문제로 되지 않으나 농경민의 토지는 분할하기 곤란하므로 형사취수제가 큰 문제가 된다. 그 차이다.

2003년 이 시대에는 화폐경제의 발달로 하여 토지분배의 곤란함이 유발하는 문제들이 없어졌다. 화폐는 신용을 창출하고 신용은 분배와 상속을 용이하게 한다.

공자가 예법으로 하여 해결하려 한 대부분의 문제들이 21세기에는 화폐경제로 하여 해결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공자의 낡은 방법을 되살리려 해서는 안된다.

알아야 할 부분은 공자가 신용을 창출하는 방법으로 분쟁을 줄이려고 시도 했으며 이 방법이 2500년전 그 당시에는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화폐경제가 대신하게 되었으므로 체계의 의미로서의 공자의 예법은 폐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신용을 창출하는 방법으로 분쟁을 줄이려 했던 그 개념과 논리는 그대로 계승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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