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3703 vote 0 2002.09.10 (11:37:20)

홍시언님께 - 요청되는 세계의 통합과 세계의 비전

[잘못 분류구분된 이념의 갈래들]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가 있다면 '신진보주의'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
겠습니까? 거부 소로스가 진보를 자처한다면 또한 진보인 것입니다.

저의 사유에 대해서 구태여 따지시려면 제 홈(baw.co.kr)을 방문해서
저의 명상에 관한 글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치관련 글쓰기는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저의 오락이나 취미일 뿐입니
다. 저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철학의 제반문제는 언어-논리학적, 미학적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되었
다고 봅니다. 엄정한 분류학의 체계에 의해 바로잡힐 수 있다고 믿으
며 기존의 진보-보수 구분은 잘못 분류구분된 것이라고 믿으며 이는
철학의 출발점인 분류학을 게을리한 철학자들의 태만에 그 이유가 있
다고 봅니다.

이념이란 무엇인가? 저의 이념은 저의 유토피아관으로 설명될수 있겠
지만 이념은 무엇보다 종교, 정신적인 영역에서 검토되어야 합니다.

물론 저는 기성종교를 신앙하지 않지만 유신론자로서 신을 믿으며 매
일 기도를 하고 명상을 합니다.

제가 이념적으로 강고한 사람인 것은 저의 종교적인(종교가 아니나)
믿음과 확신 및 일관성과 생활방식에서 결정된 것입니다.

열살 때 '미신타파'를 강조하는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과학자가 될 꿈
을 키웠던 바 권장하는 반공도서를 읽다가 공산주의가 과학임을 발견
하고 자생적 공산주의자를 자처했고 열네살 때 공산주의가 과학적 자

연법칙으로 검증되는 물리학적 효율성과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하고 마
르크스의 유토피아관에 기초한 공산주의를 버렸으며 저의 세계관, 역
사관, 가치관, 도덕관, 인생관이 지시하는 바 '인간으로서의 존재목적'

을 탐구한 끝에 상당히 종교적(?)인 결론에 도달하여 내가 확신하는
'인간과 문명의 궁극 목적에 대한 신의 의지'에 대한 응답으로서 진보
-좌파의 목소리로 또한 세상과의 싸움에 '응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의 좌파됨은 신의 의지와 위대한 문명적 진보의 일관성에 대한 저의
정당한 대응방법이자 응답함인 것입니다. 고로 종교가 아니지만 저의
좌파적 신념은 승려들에 있어 종교와 같은 무게인 것입니다.

줄여 말한다면 신이 좌파이므로 하여 저 또한 좌파인 것입니다.

학교를 그만두어 정치운동의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박정희 죽은 날 만
세를 불렀고 전두환이 사고치던 날 광주로 싸우러 가야한다고 떠벌였
으며(말로만) 전두환에 기여하기 싫다는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 않

았고(다른 이유가 컸지만) 평화의 댐 모금에 돈내지 않았고 6월항쟁때
종로 4가의 한 파출소를 부셨고 그날 이후 제가 말한대로 세상이 바뀌
어져 왔으며 그 사회의 상당한 진보가 저에게 기쁨을 준 것은 사실입
니다.

호주제라든가 일체의 가족주의적인 관습을 부인하고 법외의 동거부부
로 살지만 그것을 '자유주의'라고 말한다면 지극히 한국적인 기준이 되
겠습니다. 왜 프랑스나 스웨덴의 기준을 적용하지 않습니까? 그사람들
이 본다면 저는 별로 자유주의적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단지 파트너를 '신의성실의 원칙'에 기초한 룸메이트로 인정할 뿐 그
이상 일체의 가족주의적인 의무나 신념, 가부장적인 권위와 책임을 인
정하지 않고 실천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또한 과학이 검증한 바 상당
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김대중정부의 현실적인 정치노선은 환경의 산물입니다. 40퍼센트정권
으로 자민련과 동거하며 한나라당이라는 상식이하의 정치집단을 파트
너로 두고 하필이면 IMF를 맞아서 그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수
단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김대중정부를 '신자유주의적인 보수노선'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다분
히 목적적이자 의도적인 발언입니다.(상당한 비열함이 숨은) 물론 세
상은 변하며 10년이나 20년 후에는 작금의 신자유주의붐은 사라지고
새로운 정치지형이 형성될 것입니다.

그 미래를 기준으로 보아 김대중노선은 말대로 보수이고 우에 해당하
겠지만 김대중이 야당총재이었으면 더 좌일 것이고 재야학자라면 더
좌였을 것이고 진중권처럼 젊은 자유기고가라면 더 좌였을 것입니다.

고로 미래의 기준으로 현재를 판단하여 김대중정부를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함은 부당하며 야비한 의도가 숨은 목적적인 것이고 오히려 과거
(김대중의 성장기)를 기준으로 판단하여 그의 좌를 인정하는 것이 도
덕적으로 타당할 것입니다.

좌냐 우냐의 판단은 그의 현실적인 직업과 입지와 입장과 상당한 미래
예측에 의하여 탄력적으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저는 미래를 부단히 예측하는 사람이며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김대중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김대중정부가 현실적으로 처한 환경
과 마찬가지로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30대인 제가 50대가 되었을 때도 여전히 작금의 김대중노선을 주장하
고 있을 것으로 본다면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겠지요.

신자유주의는 냉전해소와 신경제라는 특정시대의 부산물이며 이는 길
어야 10년을 갈 한 시대의 조류일 뿐입니다. 결코 이데올로기가 될 수
가 없어요.

벤처에 몸담고 있는 것은 우연히 기회가 왔기 때문이며 이것이 저의
인생의 목적이나 목표도 아닙니다. 벤처 역시 잠깐 동안의 붐일지 모
릅니다. 또 세상은 변하는 것입니다.

직업과 이념은 엄격히 분리되어야 합니다. 모든 경제인을 보수주의라
고 규정할 수는 없지요. 그것은 개인의 심리성격이나 가문의 전통이나
기타의 환경을 두고 이념을 논해서 안되는 것과 같습니다. 마르크스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보수적이고 완고한 가부장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사회의 만연한 형식주
의를 혐오하고 권위주의를 증오하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 윗세대
한테 "말대꾸할 자유를 달라"고 외쳐왔고 그때문에 부딪처왔음에도 저
는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님이 보수적인 것이 아니라 보수를 대신할 진보이념과 확신과 유
토피아관과 일관성과 논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수
는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착오와 무지에 기초한 망설임과 두려
움들, 확신의 부재에 다름 아닙니다.

>저는 이데올로기에 얼매이지 않은 객관적인 정세분석과 문제해결 능
력을 찬양합니다. 실용성을 강조합니다. 냉전적 사고에 대해서는 거창
한 인도적 이유나 민족주의적 감상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그냥 퀴퀴하
고 불편하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이념과 현실정치는 얼마간 구분되어야 합니다. 정치는 상대가 있는 게
임이어서 진보가 현실정치에 임하여 상당히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은
정치력의 발휘이지 이념의 훼절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또한 정치가의 탄력적 대응과 재야 학자의 원칙이 항상 일치해야만 하
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겠지요.

기독교 목사나 카톨릭의 신부가 불교 승려와 대화하고 협의했다고 해
서 만인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야할 신성한 기독
교인의 의무를 저버리고 지옥에 갈게 뻔한 우상숭배자를 그냥 지옥에
가도록 방치했으니 또한 지옥이나 가야할 배교자라고 말한다면 언어도
단이겠지요.

제가 정치를 한다면 상당히 현실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으로 결정하겠
지만 곧 그것이 신 앞에서의 이념을 버린 것으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인간성자체에 대해서는 굉장히 제한적으로만 신뢰하
고 있습니다. (인간은 항상 모순적이며 때로는 자기파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위대한 문명도 한수간에 무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인간
사회의 발전가능성에 대해서는 굉장히 제한적으로만 낙관하고 있습니
다.

저는 인간의 진보와 위대한 문명의 성과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
습니다. 님도 18세기 청조의 중국에 살았다면 인류의 진보나 과학의
성과는 조금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 길게 봐야지요.

>사회정책에 있어서도 신중한(prudent)한 방식을 선호합니다. 저는 현
재 김대중대통령을 지지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진보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실용적 리더쉽"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지금
까지의 위기관리능력은 제가 경험한한 김영삼이나 노태우보다 월등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김대중이 진보의 상징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김대중의 진
보는 그의 정치적 성장기인 60~90년대의 진보일 뿐 우리가 살아가야
할 2000~2050년대의 진보는 아닌 것입니다.

제가 김대중을 진보로 평가한다면 그가 정치에 뛰어들 60년대의 그가
가진 진보의 이상을 실현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지 우리가 달성해야
할 2050년대의 진보의 전망을 제시한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자 그럼 "보수적인" 저와 "진보적인"귀하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님은 님의 사회의식을 형성한 80~2000년대의 의식만을 가지고 있는 것
으로 보여지며 무엇보다 미래를 대비한 목적과 의식과 전망이 결여되
어 있습니다.

저는 시대를 뛰어넘어 2000년 이후 더 먼 미래를 보고 전망을 제시하
고자 합니다. 저는 진보가 과학이라고 믿고 관념과 구호와 감상적인
수식어가 개입한 봉건적 환상으로서의 좌를 인정하지 않으며 잠깐의
붐에 불과한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으
며 또한 탐구되고 모색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인터넷혁명 이후 21세기는 신자유주의를 넘어 전혀 다른 정치지형을
형성할 것입니다. 본래 좌는 노동자 농민 운운하는 특정 정치적 이슈
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전체 인류를 포괄한 세계의 비전이며 세계의 비
전은 세계의 통합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비전을 위한 세계의 통합이 먼저 달성되어야 했고 그 세계의
통합은 세계혁명의 실패로 좌절되었으며 세계혁명을 대신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인터넷혁명입니다.

물론 인터넷혁명이 레닌이 꿈꾸었던 단일한 세계통합을 이룰 것으로는
전혀 믿지 않습니다. 필요하지도 않구요.

레닌 이후의 세계통합구상은 세계적 이슈에 기초하고 있고 당시의 세
계적 이슈는 제국주의의 위험입니다. 제국주의의 퇴조로 세계통합은
불필요해졌으나 그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지금 아프리카에서는 인구의 1/3이 에이즈로 죽어가고 있고 결국 1억
이상이 희생될 것으로 보이는 인류의 대재앙입니다. 세계는 지금 침묵
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남아공의 대통령이고 핵을 가지고 있다면 인류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미국에다 핵을 발사할 것입니다. 아프리카인 1억명을 구하기 위해
미국인 100만명 쯤 희생시킨들 대수이겠습니까?

물론 남아공은 미국에 날려보낼 핵미사일이 없지만 산업의 발전에 의
해 제국주의의 위험에 상응하는 더 큰 위험이 속속 등장할 것이며 미
국위주 패권주의적 군사대응은 명백한 한계에 부닥치게 될 것입니다.

인터넷에 의해 세계적 이슈가 부각될 것이며 상당한 부분에 있어 세계
적 통합과 세계적 비전의 제시가 있어야 하며 EU통합 등을 보더라도
세계는 결국 그러한 방향으로 진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그 때와 정확한 시점을 특정하기 어려울 뿐이지요. 1만년 인류사
에 있어 21세기 역시 한 점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역사의 도전에 대한 응전을 게을리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봅니다.

김대중정부를 신자유주의라 비난하며(비난할 거리 있어서 좋겠다) 아
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과거의 감상주의적 봉건구호들만 되뇌
이는 그 바늘구멍같은 좁은 시야의소유자들, 주체 운운하는 민족또라
이들, 반미아르바이트생들의 구호들이 논의가치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극복하여야 합니다.

작금의 시대는 세계의 전망, 세계의 통합, 세계의 비전, 세계 안에서의
역할이 모색되는 위대한 전환의 시대입니다. 긴장을 늦추고 지엽말단
에 빠지거나 회의주의에 침잠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장 우리는 '우리모두'에 그치지 않고 '세계지식인들의 인터넷연대'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후진국에 인터넷이 충분히 보급되지
않았다는 것이 난점의 하나가 되지만 3~5년 이후에는 또 달라집니다.

조만간 유럽여러나라에서의 권장되는 취미 중의 하나는 기금을 형성하
여 남미 정글이나 아프리카의 오지부락과 결연을 맺고 경제적, 정치적,
학문적으로 후원하는 등의 다양한 대안운동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충분히 즐거운 우리들의 무수한 일거리를 외면하고 지엽말단적
인 논의에 빠져 있는 관념적 진보들이 한심하지 않습니까?

물론 세계의 문제가 언제나 우리들의 입을 것과 먹을 것을 해결해주지
않지마는 걸핏하면 중소기업과 노동자, 농민이 죽어가는데 운운하며
(죽기는 왜죽어? 누가 죽어?) 거리의 노숙자들이 죽어가는데 운운하며

(노숙 많이 해봤지만 그런 관심은 부질없다고 봅니다) 소박한 감상에
빠져서 공연히 분노하고 비분강개하여 지나가는 똥개 걷어차며 위선과
가식에 가득찬 낡은 도덕의 구호들에 은신하여 '빌어먹을 넘의 신자유
주의 김대중정권 비판'에 나서는 그 졸렬한 행태에 대해서 약간의 서
글픔을 느껴도 좋은 것입니다.

세계는 레닌이 구상한 바 단일국가, 단일체제로는 통합되지 않습니다.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계통합의 문제는 부분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특히 정보패권주의와 관련하여) 이 문제가 소홀히 취
급되어져서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거기서 찾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거대이론, 거대담론, 거시적인 안목, 세계적 이슈에의 관심을 촉
구합니다. 언제까지 시골촌넘이어야 하겠습니까?

이런 주요 선점과제들이 언제까지 노숙자, 농민, 북한인권 등 지리멸렬
한 관심에 파묻혀져서 좋은 것은 아닙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인터넷 세계정부가 결의 한번으로 MS를 도산 시킬
만한 파워를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또한 즐거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도 좋은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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