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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 우리는 하수가 아니다.

저번에 쓴 타짜 이야기와 이어지는 글입니다. 타짜.. 영화평을 하자는 것은 아니고.. 영화가 도박판을 빗대어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저는 영화를 빗대어 정치를 이야기하자는 거지요.

요지는 세상이 바뀌니까 영화도 바뀌더라 뭐 이런 말씀.. 영화는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는 이야기..

홍콩영화의 몰락은 거대중국에 흡수된 이후 기세가 꺾인 홍콩의 현실과 같이 가는 거고.. 마찬가지로 근래 한국영화의 성공은 대한민국의 성공과 같이 가는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거죠.

그렇다면 왜 제가 이 부분을 특별히 밑줄그어 강조하느냐? 사실이지 80년대 학번 사람들이 그동안 변변히 이루어 놓은게 없어요. 데모 하나는 잘했지요. 정권창출도 했고.. 인터넷도 좀 하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너희들이 잘하는게 뭐냐?”

기성세대들의 이러한 물음.. 조중동과 수구꼴통들의 도발적인 질문에 우리는 어떤 답변을 준비해놓고 있느냐 이겁니다.

우리가 이승만세대 처럼 전쟁을 잘한 것도 아니고.. 박정희세대 처럼 노가다를 잘 뛴 것도 아니고.. 멍박이처럼 불도저를 잘 모는 것도 아니고.. 불신이죠. 신구세대 사이에 거대한 장벽이 있습니다. 그 장벽은 불신의 장벽입니다.

사실이지 저는 이 나라의 근본적인 문제가 압축성장과 압축민주화에 따른 세대간의 헤게모니 갈등이라고 봅니다. 본질은 서구에서 60년대 후반에 일어난 학생혁명이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죠.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너무나 확연히 차이나는 철학과 가치관과 스타일과 문화의 차이.. 그에 따른 문화충격.. 이에 따른 코드의 불일치.. 지속되는 엇박자.. 그리고 불협화음.. 거대한 부조리와 언밸런스가 실제로 있습니다.

정치는 실제로 있는 그 모순을 반영할 뿐.. 그런데 둘러치기 전문의 논객들은 이 문제를 이념문제로 환원시키는 초식을 구사하지요. 그게 거짓이라는 말씀.

식민지에 주눅들고.. 625전쟁에 기죽고.. 분단에 쪼들리고.. 미일중소 사강의 압박에 억눌려 순치되고 나약해진 기성세대, 노예근성에 찌든 기성세대와 구김살 없이 자라난 신세대와의 사이에 거대한 의사소통의 장벽이 존재합니다.

한국의 문제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간의 의사소통 장애 문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득권을 차지한 기성세대가 그 수구꼴통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80년대, 90년대 학번 사람들을 향하여 질문하는 거죠.

“너희들이 할 줄 아는게 뭐야?”

확실히 그렇습니다. 우리는 회창이 처럼 목에 힘주어 권위를 세울 줄도 모르고.. 박녀처럼 우거지상으로 인상을 써서 민심을 회유할 줄도 모르고.. 멍박이처럼 불도저를 몰 줄도 모릅니다. 제대로 할 줄 아는게 없어요.

그러나 최근 뜨고 있는 한국영화, 한류드라마를 보면 이 젊은이들이 인터넷만 잘하고.. 데모만 잘하는게 아니고 그 외에도 잘하는게 하나는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거죠.

하여간 최근 한국영화의 성공은 80, 90년대 학번의 우리세대도 잘하는게 있고 대한민국에 기여한 것이 있다고 내세울만한 근거가 됩니다.

식민지와 전쟁, 분단, 독재를 겪은 기성세대와 구김살 없이 자라난 신세대 사이에 철학과 가치관과 스타일과 문화와 코드의 차이를 놓고 이루어지는 패권경쟁.. 헤게모니 싸움..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본질입니다.

이 논리로 가면 조중동은 반드시 집니다. 왜냐? 역사의 법칙 상 신구세대의 갈등은 결국 신세대의 승리로 끝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왜? 젊은이는 태어나니 숫자가 자꾸만 늘어나고 늙은이는 사망하니까 숫자가 자꾸만 줄어들잖아요.

그래서 조중동은 이를 이념의 문제로 환원시키려고 합니다. 저놈들은 죄다 빨갱이다 이거죠. 그러나 거짓말입니다. 거짓말도 전술이 될 때가 있지만 두 번 써먹을 전술은 못돼죠. 양치기 소년노릇도 하루이틀이지 말입니다.

하여간 다음 대통령은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 맞게.. 먹고사니즘 대통령도 아니고 불도저 대통령도 아닌 문화 대통령이 나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동의합니까? 뭐 속에 있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영화 타짜를 끌어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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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주유소 습격사건 이후 박정우 작가가 작업한 모든 영화와 범죄의 죄구성 이후 최동훈 감독의 모든 영화.. 그리고 킬러들의 수다 이후 장진사단이 만든 대부분의 영화를 지지하기로 합니다.

그 이유는 영화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뭔가 배짱이 맞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의 영화는 좋은 것도 있고 그저 그런 것도 있겠지만.. 뭔가 숨통이 트이고 시원시원한 맛이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최동훈 감독.. 평경장 백윤식 입을 빌어.. 이승복처럼 아가리가 찢어지고 싶거든.. 뭐 이런 식의 표현을 쓸 수 있는 사람.. 멋쟁이야.

장진사단-박정우 작가-최동훈 감독.. 이분들 실제 연세가 몇인지는 모르겠으나 신세대의 느낌이 팍팍.. 노무현 대통령도 연배는 우리와 크게 차이가 나지만 배짱이 맞기로 하면 우리 세대 같아요. 그런 느낌 안듭니까?

백윤식은 환갑이 되어도 정신연령은 딱 신세대야! 그렇지 않습니까?

옛날 배창호, 이장호, 안성기의 전성시대.. 그때 그시절과는 다르다는 느낌. 배창호나 이장호나 임권택이나 뭐 다 훌륭한 감독들입니다. 안성기도 훌륭한 배우고.. 그러나 이분들은 킬러들의 수다.. 주유소 습격.. 타짜.. 이 분위기가 아네요.

안성기의 라디오스타도 훌륭한 영화라지만.. 이 아저씨는 뭔가 흘러간 노래만 부르고 있다는 느낌.. 조용필 이 분도 그래. 뭐가 그리 겁이 나는지 국민배우, 국민가수, 국민타자.. 그 국민이라는 말이 아까워서.. 모범생체질..

안성기라면.. 이승복 아가리 찢어지고 어쩌고 이런 대사 절대로 안할거 같어. 국민배우가 어떻게 그런 상스런 대사를.. 국민가수가 어떻게.. 이러고 점잔떨고 계시면 세대차이 팍팍 나는 거죠.

사고는 치더라도 조용필 보다는 차라리 전인권이 뭔가 통한다는 느낌.. 그런거 있소.. 배짱이 맞다는거. 세대차나는 저쪽 사람들과 다른 느낌..

안성기가 출연한 영화는 내용이 좋아도 대략 망하는 느낌.. 그 이유는 안성기에게 “이승복처럼 아가리가 찢어지고 싶니?” 이런 대사를 하라고 명령할 간 큰 감독이 우리나라에 없기 때문. 백윤식은 해도 안성기는 못해. 안성기보다 더 샌님인 유인촌이라면 때려죽인다 해도 안하겠지. (유인촌 이 분은 원래 해당사항 없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인간 수준이 딱 그렇다는 말씀).. 그러니까 안성기 영화는 내용이 좋아도 젊은 세대와 코드가 안맞아서 흥행이 안되는거.

‘누벨바그’라는 말이 있는 것도 60년대 서구에 그러한 세대간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소. 그러니 한국에서도 누벨바그가 나타날 때가 된거지. 의사소통의 장벽.. 기호의 차이.. 문화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본질은 세대차인데 그걸 이념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려다 보니.. 진보인척 하는 보수도 있고 보수인척 하는 진보도 있는데 이를테면 최장집 같은 분.. 이론은 진보이고 사상은 진보인데 386 세대를 대단히 못미더워 하고 그들 세대의 약진을 불안해 하며 노심초사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문제가 있소.

그분들이 꾸지람을 내리실 때는 이념이라는 연장을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못믿는 겁니다. 하긴 노무현과 그 사람들 하는거 지켜보자면 사실 불안감이 들고도 남지요.. 그러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불안감은 스스로 극복할 수 있어야 진짜 스승이라는거.

이념으로 가장하고 있지만 본질은 불신.. 그 불신의 배경은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부족과 역사인식의 얇음 때문. 이건 철학의 문제, 인격의 문제가 아닌가. 인간이 바탕에 철학이 받쳐주고 인격이 받쳐주고 역사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다 이해하고 포용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

의사소통의 장벽.. 신구세대 사이에 그 장벽을 누가 앞장서서 허물어야 할까요? 젊은 세대가 구세대에 맞춰줘야 하나 아니면 생각있는 구세대가 젊은 세대 분위기에 맞춰줘야 하나? 서로 맞춰주는게 좋지만 역사에 그런 일은 없지요.

역사는 결국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거고 뉴웨이브가 구세대를 밀어내고 젊은 세대가 낡은 세대를 밀어내는 식으로 해결될 수 있을 뿐이며 아주 드물게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스승이 있어서 젊은 세대에 맞춰주곤 하지요.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진보, 보수의 이념을 떠나 뭔가 기존의 판도를 흔들어 버리려는 사람, 일단 뒤집어 엎어놓고 보자는 사람들 사이에 이해관계의 일치가 있고 그들 사이에 배짱이 맞다는 점이 큽니다.  

과연 그러한가? 타짜의 성공이 최동훈 감독 개인의 재능이 일회성으로 반짝 빛을 발한 사건이냐 아니면.. 시대의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는 즉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 한 번 크게 용틀임을 하며 여울을 이루고 폭포를 이룬거냐?  

영화를 만들건 소설을 쓰건 음악을 연주하건 시대정신과의 대화입니다. 그래야만 맥놀이가 이어지고 울림과 떨림이 전파되고 오르가즘이 느껴지는 겁니다. 최동훈 혼자 최동훈이 아니고 박정우와 장진사단과 더 많은 신세대와 만나 붐을 이루고 트렌드를 만들고 스타일을 만들고 유행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익스피어의 성공은 세익스피어 한 사람의 천재성이 빛을 발한 것이 아니라 엘리자베스 시대의 위대함이 반영된 것이오. 그 시대에 후진 유럽에 선진 아랍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세계로 눈을 돌리고 시야가 더 넓어졌기에 3막5장이라는 고전극의 형식을 깬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르네상스는 다빈치라는 한 천재의 우연한 출현이 아니라 교황의 권위가 추락하면서 기독교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가 허용된 결과라는 거. 도시의 공기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 결과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쏟아져 나왔다는 거.

시대의 배경을 결코 무시할 수 없소. 안성기, 배창호, 이장호.. 이 사람들과 박정우, 최동훈, 장진사단은 완전히 다른 눈높이를 가진다는 것.

울보 최민식의 시선은 낮은 곳에서 위를 바라보며 투덜대는 찌질이 시선.. 교장 안성기의 시선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보며 염려하는 마초 가부장 시선.. 그러나 누벨바그의 시선은 정상에서 또다른 지평을 바라보는 것.

위에서 아래를 보고 걱정하거나 아래에서 위를 보고 투덜대거나 둘 다 돌아가는 판 안에서 자기네끼리 복작대는 좁은 시선이라오. 그 돌아가는 판 바깥에서 새로운 지평을 보자는 것이오.

대한민국은 강하다.. 이런 결론.. 이제는 한국도 변두리 하수가 아니라 중앙의 고수가 되었으므로 고수의 눈높이를 가져야 한다는 거.. 최민식처럼 늘 줘터지고 얻어맞고 울고짜는 찌질이 캐릭터.. 안성기처럼 늘 근심하고 염려하고.. 식구들 챙겨야 하는 근엄한 가부장 캐릭터.. 뭐 그딴 것이 아니라.. 타짜의 조승우처럼 영리하게 치고 빠질줄 아는 신세대 캐릭터.. 식민지도 모르고 전쟁도 모르고 구김살 없이 자라온 세대의 등장..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도 자부심을 가지고 체면도 좀 차리고.. 일본식 경제동물이 아니라 문화강국을 지향하면서.. 우리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보기를 주저하지 말자는 그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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