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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207 vote 0 2011.10.17 (00:20:29)

 



깨달음 - 완전성의 이해

 

‘완전한 것은 코디의 세계에 존재하고 욕망의 세계에 없다.’

 

깨달음이라는 개념이 유의미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기본적으로 완전히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과는 대화할 필요없다.

 

◎ 보통사람의 상식적인 생각은 당연히 틀린다. 특별히 훈련받은 사람이 감당할 전문적인 영역이 분명히 존대한다.

 

상대성이론만 해도 그렇다. 줄곧 관점의 문제가 제기된다. 상대성은 관측에 대해서 상대성인 것이다. 이건 천동설과 지동설의 문제와 같다. 눈으로 보기에는 천동설이 맞다. 역시 관측의 문제다. 적어도 잘못본건 아니다.

 

◎ 겉보기로는 천동설이 맞다. 분명 하늘이 도는 것처럼 보인다. 잘못보지 않았다. 지구의 회전을 보는 사람은 없다. 그건 해석의 영역이다.

 

천동설이냐 지동설이냐에 대해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인간이 뭘 모르고 잘못 본게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보기는 정확하게 봤다. 분명히 해가 동산에서 뜨고 서산에 지는 걸로 보인다.

 

지구의 회전은 인간이 볼 수 없다. 잘못봐서 틀린게 아니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보고해도 틀릴 수 있다. 이것이 관측의 딜렘마다. 엄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맞게 여겨지는 생각도 틀릴 수 있다.

 

코디의 세계를 인정하라.

 

완전성이라는 개념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여서 ‘그러는 너는 완전하냐?’라든가 ‘구조론은 완전하냐?’라든가 하는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다. 이런 질문 흔하다. 그동안 무수히 들어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질문이다.

 

이런 질문에는 전제가 숨어 있다. 구조론이 말하는 ‘코디의 완전성’과 상관없이 자기류의 완전성 개념을 전제하고 있다. 그것은 욕구에 대한 개념이다.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그 무엇에 대고 완전성을 적용한다.

 

그들의 욕망은 무한하고 그들의 욕망은 원래 완전히 충족될 수 없는 것이므로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완전한 것은 세상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피할 수 없다. 그 기준 하에서 완전한 것은 없는 거다.

 

왜? 어차피 죽을 운명인 자기가 그 어떤 것에도 완전히 만족하지 않으므로. 인간은 어차피 죽는 법인데 어차피 해결이 안 되는 근본적인 불만이 있는데, 만족할게 있을 리 없는 거다.

 

형집행 날자 잡아놓은 사형수가 만족할 것이 있겠는가 말이다. 그 어떤 음악도, 음식도, 그림도, 영화도, 금전도, 대박도, 그 무엇도 형집행 직전의 사형수가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건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고 이는 유치한 수준의 논의다. 완전성의 의미를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상식적인 판단은 당연히 틀렸을 수 있다. 상식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심오하게 접근하라는 말이다.

 

◎ 상식 수준에서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사람과는 대화할 필요없다.

 

상식 수준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다. 이 사이트는 특별하다. 지구에서 유일하다. 이곳에서는 심오한 이야기를 한다. 이 사이트에서는 눈 똑바로 뜨고 똑봐로 봐도 당연히 틀리는 레벨의 이야기를 한다.

 

그런 레벨의 심오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라. 그래야 진도를 나갈 수 있다. 양자역학의 세계처럼 상식을 완전히 파괴하는 별세계도 있다. 대부분 관측자의 이동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긴다.

 

심오한 세계, 관측자가 이동하는 세계, 상대성이 상시 작동하는 세계, 상대성의 상대성이 작동하는 세계는 짝짓기의 세계다. 짝이면 둘이다. 이미 관측자가 둘이다. 벌써 헷갈리기 시작한다.

 

◎ 짝짓기의 세계는 관측자가 둘이므로 헷갈리게 된다. 거꾸로 비친다.

 

세상은 짝짓기에 의해 이루어졌다. 구조론은 짝짓기다. 구(構)는 얽음이요 조(造)는 지음인데 얽어서 짓는 것이 바로 짝짓기다. 짝짓기로 얻는 것은 소통이다. 소통의 과학은 미학이다. 미학의 출발점은 완전성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있는 것은 오직 짝짓기에 의해 얻어진다. 결혼도 취업도 로또도 모두 짝짓기로 얻어진다. 완전하게 짝지으라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실패는 짝짓기의 실패로 일어난다. 그것이 불완전이다.

 

완전성의 세계는 코디의 세계다. 코디의 세계는 ‘A면 B다’의 세계다. 상의를 A로 선택했을 때 하의는 B여야 한다. 핸드백을 A로 선택했을 때 구두는 B여야 한다. 이때 A와 B의 사이에서 완전성은 작동한다.

 

완전성은 코디네이션을 필요로 하는 짝짓기의 무대에서만 작동한다. 코디와 상관없이 엉뚱한 데서 완전성을 찾는 사람과의 대화는 필요없다. 먼저 이 우주가 코디로, 조율로, 짝짓기로 되어 있다는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우주는 코디다. 만유는 조율이다. 세계는 짝짓기다. 세상은 소통이다. 구조의 조합으로 모든 것은 이루어져 있다. 완전성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이러한 관점이 없는 사람과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대화 역시 소통을 목적으로 하고, 그 소통은 역시 짝짓기고, 조율이고, 코디네이션이기 때문이다. 코디를 부정하는 자와의 대화는 제대로 된 코디가 아니기 때문이다.

 

코디를 부정한다면 잘못된 조율이고, 잘못된 짝짓기고, 잘못된 조합이므로 폐기하고 배척함이 마땅하다. 그건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고, 어울리지 않고, 마땅하지 않고, 궁합이 맞지 않은 거다. 삐꺽거리는 불협화음이다. 최악이다.

 

기본적인 세계관의 문제다. ‘변사또는 나쁘고 성춘향은 착하다’는 수준의 저차원에 머물러 있는 사람과는 대화할 이유가 없다. 변사또는 깜방이 어울리고, 성춘향은 이몽룡이 어울린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과는 대화가 가능하다.

 

좋은 감독이라면 어떤 배우라도 그 사람에게 맞는 배역을 던져줄 수 있다. 그냥 ‘니가 연기를 못하니까’ 하고 배우탓을 하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배우탓, 선수탓 하지 말고 감독이 코디를 제대로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명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좋다 나쁘다는 식의 단세포와는 대화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와도 짝짓기가 되고 이명박은 누구라도 안 된다. 최고의 팀이 만들어지는가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사람이 수상쩍어도 팀이 결성되면 좋고, 사람이 좋아보여도 팀이 꾸려지지 않으면 좋지 않다. 그냥 좋고 착하고 청렴한 사람은 매우 많다. 특히 무뇌좌파 중에서. 단지 그들은 팀을 꾸릴 수 없을 뿐이다. 그게 나쁜 거다.

 

코디의 관점에서 완전하게 짝짓기는 쉽다. 방해자를 제거하면 된다. 그러므로 세상은 마이너스다. 먼저 마이너스 관점을 얻어야 한다. 마이너스로 사유하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세계관을 바꾸고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플러스적 사고에 중독되어 있다. 환골탈태하듯이 완전히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깨달음이어야 한다. 관점을 바꾸고 사유를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 다 바꿔야 한다. 발상의 전환, 세계관의 전환, 관점의 전환이라는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 관문을 넘지 않은 사람, 고개를 넘지 않은 사람, 사막을 건너오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 상대성을 모르는 사람과는 대화할 수 없다.

 

김태희와 결혼하고 싶은가? 지구상의 모든 남자를 없애버리면 된다. 안드로메다의 울랄라 외계인을 만나고 싶은가? 안드로메다와 지구 사이의 공간을 없애버리면 된다. 마이너스가 답을 제시한다.

 

물론 현실성은 없다. 당장 실현은 불가능해도 방향이 맞으면 계속 가면 언젠가는 된다. 그러나 플러스는 기본적으로 답을 제시할 수 없다. 좌표를 찍어줄 수 없다. 방향을 알 수 없다.

 

매우 튼튼하고 긴 지렛대와 고정된 받침점이 있으면 지구를 들어올릴 수도 있다. 현실성은 없지만 답이 있으면 적어도 문제를 풀어가는 방향을 알게 된다. 질로 안 되면 입자로, 입자로 안 되면 힘으로, 힘으로 안 되면 운동으로, 운동이 안 되면 양으로 응수하면 된다. 적어도 길은 있는 것이다.

 

완전성은 마이너스의 세계에만 적용된다. 플러스의 세계에서 완전한 수는 가장 큰 수다. 그런데 가장 큰 숫자는 없다. 마이너스의 세계에서 완전한 수는 0이다. 0에서 끝나고 그 이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이 완전한가 불완전한가의 문제가 아니다. 플러스적 사고냐 마이너스적 사고냐의 문제다. 플러스 사고에 빠진 사람들은 무엇이든 불완전하다고 말한다. 내막을 알아보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경험이고 직관이고 습관이다.

 

그들이 ‘완전하지 않아’ 하고 말하는 것은 그 말해지는 대상과 상관없이 자기 관점의 문제다. 그들은 보는 방향이 틀렸으므로 영원히 완전한 것을 보지 못한다. 애초에 번짓수를 잘못 짚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완벽한 미인을 보고서도 ‘완전하지 않아. 왜냐하면 내가 미인을 좋아해도 미인이 나를 좋아할 리 없으니까’라고 말한다. 완벽한 미인은 있다. 비교해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완벽한 미인인 것은 아니다.

 

비교한다는 자체로 이미 실패다. 자기를 개입시키면 당연히 실패다. 완전성은 내부의 결을 따라간다. 외부와는 상관없다. 소와 말을 비교해서 어느 쪽이 완전하냐는 식이면 곤란하다.

 

이마가 이 넓이일 때 뺨과 턱은 어떠해야 한다는 내부의 결을 따른다. 예컨대 키가 작아도 비례가 맞으면 완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흑인이라도 미인일 수 있고 백인이라고 자동으로 미인이 되지는 않는다.

 

‘A면 B다’가 적용된다. 메커니즘이다. 코미디영화는 웃겨야 만점이고, 멜로영화는 울려야 만점이고, 스릴러 영화는 떨려야 만점이고, 액션영화는 창의적인 액션을 보여줘야 만점이고, 반전영화는 관객의 뒷통수를 쳐야 만점이다. 각자 자기 내부의 결이 있으며 그 결을 충족시켰을 때 완전한 것이다.

 

마이너스적 사고를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완전성을 포착할 수 있다. 세상은 구조의 짝짓기에 의해 만들어진다. 짝짓기를 하려면 방해자가 제거되어야 한다. 완전성은 불필요한 것이 제거되고 짝짓기가 가능해진 상태다.

 

세상은 마이너스로 간다. 이러한 이치를 알았던 사람은 성공했고 몰랐던 사람은 실패했다. 장사꾼은 미리 비싼 가격표를 붙여놓고 흥정을 하면서 가격을 깎아주는 마이너스법을 사용한다.

 

어부는 그물을 넓게 펼쳐놓고 점점 조여가는 마이너스 법을 사용한다. 무사는 상대의 공간과 타이밍을 빼앗는 마이너스법을 사용한다. 권투선수가 상대를 코너로 몰아 공간을 빼앗음으로써 행동반경을 좁혀서 제압하듯이 말이다.

 

농부는 많은 씨앗을 파종했다가 좋지 않은 것을 솎아내는 마이너스법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동식물은 필요한 것 이상의 자손을 생산하며 그 중의 하나를 취하고 일부는 중간에 버리는 방법을 사용한다.

 

정치인은 자기편을 포섭하는 플러스 방법보다 자신과 반대되는 자를 치는 마이너스 법으로 성공한다. 플러스 방법을 쓰면 한 명의 지지자를 얻을 때마다 한 명의 지지자가 떨어져 나가지만 마이너스 방법을 쓰면 가만히 앉아서 세상의 반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다.

 

필요한 것을 찾아내는 플러스 방법보다 불필요한 것을 솎아내는 마이너스법이 효율적이다. 금을 찾는 광부는 돌을 물에 떠내려보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비중이 가벼운 돌이 떠내려가면 남는 것이 금이다. 마이너스법이 먹힌다.

 

한자는 플러스 방법을 적용하고 있고 한글은 마이너스 방법에 의해 창제되었다. 세상에는 많은 지식과 개념들이 있다. 한자는 강희자전에 5만자나 수록되어 있지만 부족하다. 더 많은 새로운 생각들이 나왔으므로 더 많은 글자가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한글은 24자로 완전하다. 그 스물네자도 실은 원형의 다섯자에서 왔으므로 다섯자만 익히면 나머지 19자는 저절로 알게 된다. 그러므로 26자를 익혀야 하는 알파벳보다 훨씬 쉽다.

 

한글은 혀를 쓰는 ㄱ, ㅋ, ㄴ, ㄷ, ㅌ, ㄹ, 입술을 쓰는 ㅁ, ㅂ, ㅍ 이를 쓰는 ㅅ, ㅈ, ㅊ, 목구멍을 쓰는 ㅇ, ㅎ 성대를 쓰는 ㅡ, ㅑ, 아래아가 있을 뿐이다. 한글은 최소 5개로 끝낸다. 완전한 것이다.

 

ㄱ, ㅋ, ㄴ, ㄷ, ㅌ, ㄹ은 획을 하나씩 추가하거나 위치를 뒤집어놓은 것 뿐이다. 실제로 혀의 위치를 그려서 나타낸 것이므로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 틀린 생각 – 많은 것이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이 완전하다.
◎ 바른 생각 – 짝짓기가 되는 것이 완전하고 그것은 최소화된 것이다.

 

사람들이 플러스를 지향하는 것은 많은 것이 좋더라는 경험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많은 것은 전부 타인이 이룬 것이고 자기가 행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행하려면 힘이 든다. 그러므로 실제로 자신이 행하려면 적을수록 좋다.

 

돈은 많을수록 좋다. 돈은 남이 주는 것이니까. 자기가 돈을 찍어내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누군가의 손을 거쳐서 온다. 반면 일은 적을수록 좋다. 왜냐하면 내가 그 일을 하니까. 일이 많으면 힘만 든다. 어떻게든 일을 줄여서 단축시켜야 한다. 삽질 백번 할 것을 포크레인 한번으로 끝내야 한다. 일은 줄일수록 좋은 것이다. 세상에 많아서 좋은 것도 있고 적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중요한건 자기가 결정하는 것만 가지고 논해야 한다는 거다. 남이 결정하는건 논외다. 자신이 결정하는 것으로 말하면 적을수록 좋다.

 

한글은 스물네자로 완전하고, 숫자는 0에서 9로 완전하다. 엄밀히 말하면 한글은 다섯 자로 완전하고 숫자는 0과 1로 완전하다. 그 다음은 짝짓기다. 플러스적 사고는 떠먹여주기를 바라므로 바로 사용할 수 있지만 대신 불완전하다.

 

◎ 플러스적 사고-많을수록 좋다. 완전한건 없다.
◎ 마이너스 사고- 최소화 한 후 짝짓기를 한다. 완전한건 있다.

 

마이너스적 사고는 원천소스를 제공하므로 바로먹을 수 없고 요리과정을 거쳐야 한다. 플러스 옷은 풀세트로 제공되므로 그냥 입으면 되고, 마이너스 옷은 상의와 하의가 별도로 제공되므로 반드시 코디를 거쳐야 한다.

 

마이너스는 최소화 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짝을 지어야 하고 짝을 지으려면 잘 어울리는지 봐야 한다. 그게 코디다. 반드시 조율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러므로 마이너스는 미학이다.

 

악기와 같다. 소리를 내는 지점이 있다. 타이밍이 있다. 모든 시와 음악과 그림과 연극과 영화와 패션과 예술은 인간을 긴장시킨다는 절대적인 기준점이 있다.그 구체적인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하나로 통하는 점은 분명히 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은 만남의 형식을 가지고, 그 만남의 순간, 만남의 현장에서 최소화 되어야 한다. 데이트를 하는데 친구나 가족을 데리고 나오면 곤란하다. 데이트 장소에는 반드시 혼자 와야만 한다.

 

구조론은 수학이다. 수학이 완벽하다고 해서 바로 전자계산기가 모든 사람의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학과 전자계산기는 다른 거다. 방정식과 함수와 미적분의 넘어야 할 고개가 있다.

 

원천소스는 완전하지만 짝짓기를 해야 한다. 세팅과정을 거쳐야 한다. 별도로 코디를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코디를 해야한다는게 얼마나 멋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걸 귀찮게 생각하는 사람과는 대화할 수 없다.

 

깨달음이란, 미학이란 역시 코디의 문제다. 햄버거처럼 세트메뉴가 나오는게 아니다. 햄버거는 그냥 먹으면 된다. 그러나 좋은 요리는 자신이 재료를 선택하고 자신이 간장과 겨자를 얹어서 먹어야 한다. 요리사는 그저 재료의 신선도만 보장할 뿐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

 

진정한 세계에서는 요리사가 많이 개입할수록 좋지 않은 요리다. 떠먹여주는 세계는 좋지 않은 거다. 원본 소스만 제공하고 각자가 코디를 해서 각자가 자기 입맛에 맞추어서 먹는게 진짜다.

 

◎ 플러스적 관점 – 코디를 해야 한다면 귀찮아. 완전하지 않아.
◎ 마이너스 관점 – 코디를 해야 좋아. 내가 주인이 될 수 있으니까.

 

이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코디를 왜 해? 난 햄버거 먹겠어.’ 이런 사람과 대화할 이유 없다. 코디를 해야하므로 인간이 주인이 되고, 그 세계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디는 좋은 것이며, 되도록 코디를 해야하며,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되도록 유니폼은 거부해야 하며, 획일화는 저지해야 하며, 떠먹여주는 밥은 먹지 말아야 한다.

 

피자나 햄버거처럼 조리된 음식은 감각을 떨어뜨린다. 한국 요리는 대부분 손님이 직접 비비거나(비빔밥) 쌈싸거나(보쌈) 굽거나(삼겹살) 등으로 요리에 참여한다. 고객이 참여하는 요리가 좋은 요리다.

 

한정식이라도 수십가지 반찬 중에서 매번 선택을 해야 한다. 서양요리는 그냥 먹으면 되지만 한국요리는 밥과 반찬을 짝짓는 것이다. 수십가지의 반찬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이게 좋은 거다.

 

구조론은 수학이다. 불완전한 것은 수학이 아니고, 그 수학을 배울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전자계산기만 손에 쥐어지기를 기다리는 거다. 현대는 수학이 만들었지만 지구인 70억 중에 수학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구인의 99.99프로는 수학을 모르면서 그 수학의 결과물인 전자계산기 덕을 보고 있다. 유클리드와 피타고라스가 수학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그 덕을 본 것은 그로부터 2천년이 지난 후였다.

 

그리스 사람들이 당장 피타고라스 덕을 못봤다고 해서 수학은 불완전하다고 말하면 곤란한 거다. 수학이라는 소스는 완전하지만 별도로 코디를 거쳐야 사용할 수 있다. 그 코디과정을 즐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수학 그 자체는 완전하지만 발달단계가 있다. 수학은 지금도 발달하고 있다. 지금도 수학이 발달하고 있다고 해서 수학이 불완전하다고 말하면 안 된다. 어린이는 완전하다. 어린이가 성장한다고 해서 불완전한 존재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거다. 그런 식이라면 완전성의 개념을 이해못한 것이다.

 

어린이는 외부환경과 소통이 가능 하므로 완전한 것이며 어린이가 국어책을 읽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완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완전한 자동차는 없다. 아무리 좋은 차를 만들어도 더 좋은 차가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무조건 '구조론은 완전하지 않아' 하면 거의 맞는 거다. 플러스적 사고에 갇힌 그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그 관점을 버리지 않은 자와 대화할 필요없다. 인상주의가 왜 나왔겠는가? 그런 플러스 사고가 필요없다는 거다.

 

인상주의는 짝짓기다. ‘A면 B다’의 내재하는 결이 그림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서로 다른 둘을 충돌시켜서 거기서 강한 인상을 얻는 것이다. 자동차는 발동만 걸리면 완전한 것이다. 최소화된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마이너스 사고다.

 

구조론은 마이너스 사고이므로 일본의 하이쿠처럼
"옛 우물에 개구리 뛰어드는 소리"
이것만으로 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술어가 앞에 왔다는게 중요하다.
"개구리가 옛 우물에 뛰어드는구나."
이건 불완전하다. 방향을 바꾸면 바로 완전해진다. 이 차이를 아는게 중요하다. 그 차이가 보이지 않는 사람과는 백날 대화해도 실패다. 전자는 내부의 결을 따라가므로 완전하고, 후자는 관측자가 밖에 있으므로 불완전하다.

 

◎ 시 - "옛 우물에 개구리 뛰어드는 소리"
◎ 헛소리 - "(내가 봤는데) 개구리가 옛 우물에 뛰어드는구나."

 

전자는 A면 B다의 내재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후자는 바깥에서 발동을 걸어주는 구조다. 전자는 스마트키와 같아서 내부에서 작동하지만 후자는 옛날 자동차처럼 조수가 스타팅을 들고 손으로 돌려서 우당탕탕 발동을 걸어야 한다.

 

내용은 동일하지만 관측자의 포지션에 따라 시가 되기도 하고 헛소리가 되기도 한다. 시는 기승전결 원리에 따라 내부적으로 닫혀야 한다. 시를 끌고가는 엔진이 시 안에 있어야 한다. 그게 바깥에 있는 열린구조면 불완전하다.

 

캔버스는 비어 있고 물감은 준비되어 있고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면 완전한 것이며 그것을 용이하게 캔버스로 옮겼는가는 논외다. 여전히 인상주의가 등장하기 전의 낡은 관점에서 사로잡혀 있으므로 완전성을 포착하지 못하는게 문제다.

 

◎ 플러스 사고 – 풀세트로 갖추어져 있지만 각자 입맛이 다르므로 충분히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불완전하다.

 

◎ 마이너스 사고 – 원천 소스만 제공하고 코디는 각자가 알아서 해야하며 그 변주는 무궁하다. 그러므로 완전하다.

 

양념은 각자가 입맛대로 알아서 치는 거다. 햄버거는 더하고 뺄 수 없게 되어 있으므로 불완전하지만 보쌈은 각자가 입맛대로 더할거 더하고 뺄거 빼면 된다. 그러므로 완전하다.

 

플러스 사고로 보면 세상에 완전한건 없다. 정해진 식단에 따라 세트메뉴만 제공되고 각자에게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사고로 보면 세상은 이미 완전하다.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든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세상을 어떻게 코디할 것인가? 마이너스 관점에 답이 있다. 두 관점이 있다. 하나는 자기를 개입시킨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 이 악기는 완전하지 않아. 왜냐하면 어떤 연주를 하더라도 내가 만족하지 못하니까. 나는 지금 화가 나 있으니까. 내 맘에 드는 연주는 지구상에 없으니까.

 

다른 하나는 자신의 개입을 차단한다. 자신을 배제하고 객관화 시킨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 이 악기는 완전해. 어떤 곡이든 연주할 수 있고 어떤 악기와도 협연할 수 있으니까.

 

이 관점은 자기를 개입시키지 않고 있다. 악기 자신의 결을 따르고 있다. 완전성은 그 세계에 있다. 자신을 개입시켜 헛소리 하는 사람과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 음악을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연주할 필요없고, 그림을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전시할 필요가 없듯이, 소통이 막힌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는게 맞다.

 

 


http://gujoron.com




[레벨:15]오세

2011.10.17 (01:08:00)

전송됨 : 트위터

 마이너스 사고로 보면 세상은 이미 완전하다.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든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마이너스 사고로 보면 구조론은 이미 완전하다.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든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레벨:4]카르마

2011.10.18 (09:35:19)

음 구조론을 보고  자꾸 기존의 이론으로만 접근하려니   이해도 안되고  

완전하니 뭐니 하는 말들을 한는 거였군요..


이글을 보니 이론이 아니고 연장이라는 뜻이 좀 이해가 가는거 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10.18 (10:05:08)

연장이란 도구라는 의미- 도구를 갖게 되었다는 것- 곧 틀이 생겼다는 것-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라는 것- 인간의 삶은 도구가 바뀜으로서 진보를 이루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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