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필자가 한 때 안티조선의 기수로 떠받들던 진중권 인간을 싫어하게 된 이유는 진중권 인간이 연평총각을 비난했기 때문이다. 연평총각은 꽃게잡이 어부였고(연변총각 아님.) 나 역시 80년대 초 1년 이상을 바다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연평총각의 주장이 일부 사리에 맞지 않는 점도 있었지만 그가 밑바닥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나는 그를 변명하고 두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떤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진중권 인간에게는 그게 없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이 인간들은 느끼지 못하는구나 하고. 그렇다면? 명계남식 표현으로.. 종자가 다른 거다. 그 경우 인간적인 소통이 불가능하다. 잠시 제휴할 수는 있어도 끝까지 함께 갈 수는 없다.

내가 전태일 열사에게 느끼는 감정은 청계천에서 배달 일을 하면서 전태일이 일했던 그 백열등 아래 실밥먼지 자욱한 하꼬방 공장들을 드나들면서 그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그들과 웃음과 눈물을 섞으면서 얻은 추억에 기초하고 있다.

진중권류와는 그러한 체험의 공유가 없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을 그는 느끼지 못한다. 그가 느끼는 것을 나는 느끼지 못한다. 한 인간의 가치의 지향은 체험의 공유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고 있다. 체험이 다르면 가치도 다르다.

나는 왜 김기덕을 변호하는가? 그의 영화에 문제점이 있지만 나는 그 부분은 고의로 외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솔직하지 못하다. 나는 왜 노무현을 변호하고 서태지를 변호하는가?

그들과 체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엘리트 중에서 잘난 엘리트다. 그의 경력으로 보면 우리나라 최상층부 0.1프로를 구성할 것이다. 서태지는 벼락부자다. 그는 밑바닥을 겪어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평총각=노무현=서태지=김기덕=전태일 사이에 어떤 이심전심의 코드가 흐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체험의 공유가 있다고 믿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결함투성이이지만 기성체제에 편입하는 쉬운 길을 마다하고 자기만의 동그라미 혹은 바운더리를 완성시키려고 했다.

‘기성체제라는 조직과 시스템에서 떨어져나와 자기만의 독립적인 세계를 건설하고 거기서 영웅이 되려고 한 뻔뻔하고 간 큰 야심가들. 잘 되면 영웅이 되고 못되어도 신화가 남는 길을 선택한...’

그 동그라미의 가치를 인정하는가이다. 그것은 어떤 일의 전체과정에 참여해 본 경험이며 하나의 독립적인 성공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들, 그리고 그 문제를 우회하려다가 당하게 되는 충둘과 실패사례들, 거기서 얻은 영광의 상처와 눈물에 공감대가 있는 것이다.  

황우석은 정부당국과 싸워가며 소 브루셀라 전파를 막은 공이 있고 또 우량소 수정란을 농가에 보급한 공이 있다. 이것만으로도 몇 조원의 국부창출이 된다. 그 공으로 과를 덮을 수 없겠지만 영웅의 조건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남은 것은 성공한 영웅이 되는가 아니면 실패한 영웅이 되는가이다. 황우석은 비극적 영웅의 코스를 밟아가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의 영웅에서 이제는 농민의 영웅 혹은 아웃사이더의 영웅으로 추락하고 있다.

황우석의 결함은 아웃사이더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결함이다. 왜 서프의 다수는 황빠가 되었을까? 그 이유를 아는 쪽은 알아서 이기고 모르는 쪽은 몰라서 진다. 늘 그렇듯이 아는 자는 이기고 모르는 자는 진다.
 

황란, 어디까지 가는가?

이 정도로 끝냈으면 좋겠다. 문제는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끝나지 않는 이유는 ‘욕망’ 때문이다. 그 욕망은 민중의 권력욕이다.

대중일반이 그들의 머리 꼭지 위에서 군림하려는 상층 지식계급을 향해 대립각을 세우고 전투할 의지를 가지고 황란을 이용하려 든다는 것.

그 욕망을 긍정할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이다. 혁명이든 변혁이든 모든 사회과학적 담론들은 그 욕망을 긍정함으로써 비로소 토대를 얻는 것이다.

도덕이니 윤리니 하며 설익은 언설을 앞세워 민중의 탐욕(그 위험한)을 배척하고서는 그 어떤 희망도 가능하지 않다. 자유도, 민주주의도, 혁명도, 문명도 본질에서는.. 민중의 욕망과 열정으로 하여 성립한 것이다.

그것은 에너지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슬기로움을 발휘하여 그 날뛰는 야생마에 고삐를 채워서 긍정적인 변혁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일단은 그 에너지의 존재를 긍정해야 한다.

욕망이 죄인가? 천만에! 욕망은 죄가 아니다. 에너지는 죄가 아니다. 그 에너지를 잘못 이용하는 것이 죄일 뿐이다.

우리는 그 에너지를 잘못 이용하고 있는가?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에 일정부분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각오하고 나선 걸음이다. 엎어지고 넘어지더라도 그 상처조차도 영광이 된다. 끝까지 가 보기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어쨌든 ‘민중의 권력적 동기’라는 욕망에 불은 질러졌고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불은 그 자원이 완전히 소진되지 않는 한 꺼지지 않는다.

어제 발표된 서울대 조사위의 논문은 과연 네이처가 탐낼 만한 것이었다. 처녀생식에 관한 새로운 이론 말이다. 서울대는 그 논문의 저자 이름에서 황우석을 빼고 정명희의 이름을 넣기만 하면, 황우석팀이 3년 걸려 이루지 못한 것을 열흘만에 이루는 개가를 올린 셈으로 된다. 얄밉지만 이런건 박수 쳐줘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돈이다. 개인 돈으로 벤처를 했으면 탈이 없다. 국가 돈으로 과학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황박이 돈을 조달할 능력이 있다면 어떻게든 그는 일어설 것이고 그러한 능력이 없다면 서울대에서 축출되는 걸로 끝날 것이다.

역사이래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가 되어 본 일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금속활자, 한글창제,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총체적 전술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그 외에 더 있겠지만 과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정도라 하겠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선비 수십만명이 이룬 업적 전부를 합친 것과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를 비교한다면 당신은 어느 쪽에 배팅하겠는가?

● 세종의 한글창제가 더 가치있다.
● 수십만 선비가 이룬 가치의 총합이 더 가치있다.

어쨌든 우장춘의 세계 최초 씨없는 수박이 이승만의 사기극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금 황우석과 그 팀의 성과가 금속활자, 한글, 이순신의 전술 다음의 네 번째 성과임은 확실하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했을 때 대부분 선비들의 의견은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거였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500년 걸렸다.

어제 서울대의 발표는 총장 직선제의 폐해를 드러낸 것 뿐이다. 그들의 발표에 대해서는 예수가 빌라도에게 던진 이 말을 되돌려 줄 뿐이다.

“you say..!"

당신들의 권력, 당신들의 입장, 당신들의 방식은 그만하면 잘 알겠다는 거다. 서울대의 입장은 입장대로 존중한다.

세종은 민중의 이익에 봉사했다. 그것은 그가 왕이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세종이 학자였다면, 선비였다면, 수의대 교수였다면 절대로 낼 수 없는 업적이었다. 그래서 민중들은 언제라도 영웅을 만들고 싶어한다.

왜? 그것이 민중의 이익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 바로 이것이 황까들이 성 내는 이유.

황우석은 실패한 영웅이거나, 실패했지만 신화가 된 영웅이거나, 성공했지만 잊혀진 영웅이거나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목표와 실익이 있느냐는 거다. 나의 결론은 있다는 거다.

그들이 황우석을 버리면 나는 그들이 버린 것을 줍는다. 그들이 99프로의 돌에 섞인 1프로의 금을 ‘대체로 돌이군’ 하고 버리면 나는 그 99프로의 돌에서 1프로의 순금을 취한다. 그들에겐 하찮은 것이라도 내겐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의견이 나의 의견과 다르다면 그것은 당신과 나 사이에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신의 이익은 나의 손실, 나의 이익은 당신의 손실 그러므로 무리하게 의견을 일치시키려 할 필요는 없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똘레랑스로 밥 먹는 홍세화가 황박에 대해서는 똘레랑스의 폐기를 선언한 지금, 홍선생 말도 맞는 것 같으니 똘레랑스는 엿바꿔 먹고 조낸 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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