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 조장하면 대한민국은 손해를 봐도, 딴나라와 조중동은 이득을 본다. 갈등이 계속되는 이유는 어딘가에 이득을 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이 싸움 오래 간다. 생명공학이 완전히 말살되거나 아니면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이득을 본 집단이 커다란 세력을 형성할 때 까지.
밝혔듯이 이건 100프로 정치적 동기에 의해 촉발된 사건이다. 정치게임으로 가면 50 대 50으로 팽팽해진다. 일반의 여론은 일방적으로 황우석 편을 들고 있지만 ‘논쟁의 장’ 안에서는 여전히 팽팽하다. 누구도 승복하지 않는다. 왜인가? 저쪽은 이미 이번 건으로 상당한 수익을 잡았기 때문이다.
MBC만 자폭조로 희생되었고 프레시안은 확실히 재미를 봤다. 당분간 그들의 재미는 계속될 것이다. 이 와중에 누구는 스타가 될 것이고, 누구는 유명세를 얻을 것이며, 누구는 그쪽 세계의 리더로 부상할 것이다. 이렇게 재미를 보는 세력이 있으면 게임은 계속가기 마련이다. 왜? 짭짤하니까.
그쪽 입장에서는 황박사의 연구를 지연시킨 것만으로도 성과를 올렸다고 볼 수 있다. 좌파진영 전체로는 비극적 재앙이지만 그 내부에서 이득을 본 세력이 있기 때문에 이 싸움은 당분간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대중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댄 자들
문제는 좌파들이 대중 일반에 적대행동을 했다는 점이다. 이건 우리 사회가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급변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계급갈등이 노출된 사건이다. 극소수의 지식계급이 자기네의 배타적인 계급적 이익을 위해 타 계급을 향하여 공격을 개시한 사건이다.
사회를 부자와 빈자의 단순대결 구도로 나눈 것은 점차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계급간 이해대립은 날로 복잡하고 첨예해지고 있다. 정보화사회에서 계급간 이해대립은 전혀 다른 구도로도 나타날 수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황박사의 연구에 일부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예전에는 문제가 이런 식으로 터져나오지 않았다. 필자는 이 사건이 우리 사회가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면서 반드시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필연적인 통과의례로 본다.
정보권력을 쥔 자의 폭거다. 그러나 이에 맞서 대중에 의해 또다른 형태의 정보권력이 탄생하고 있다. 힘을 가진 자가 제멋대로 힘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 힘에 맞서 저변에서 새로운 힘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황박사가 고백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생명공학이 존재하는 한, 그들의 짭짤한 전리품이 존재하는한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똥이 있으면 파리떼가 꼬이기 마련이다. 그들은 이 싸움으로 이득을 본 이상 이 싸움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황박사가 충분히 해명한다 해도 제 2, 제 3의 딴지걸기는 계속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쪽에서 싸움걸기로 이득을 꾀하듯이 이쪽에서도 성실히 대응함으로서 정치적 이익을 얻는다. 그들이 이 일로 좌파 내부에서 전선을 통일하고, 조직을 견고히 하며, 리더십을 생산하듯이 이쪽 또한 대중과 함께 하는 이심전심의 대오를 갖추는데 도움이 된다.
좌파와 우리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모두들 분명하게 알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소득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싸움을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다. 황박사는 빌미를 잡힌 것 뿐이며, 본질에서 볼때 이 싸움은 역사의 필연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새로운 물결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세력이 틈을 엿보다가 황박사의 약점을 찔러서 일제히 공세를 취한 것이며, 이는 정보화라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 자체가 그들에게 헤게모니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정보화라는 역사의 흐름 자체가 좌파 입장에서는 설날 앞두고 대목장이 선 격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거저 지나칠 리 없듯이, 좌파들이 정보화라는 대목장을 놓칠 바보가 아니므로 이 싸움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서태지-노무현-황우석
딴지 거는 세력은 언제나 존재한다. 필자는 10여년전 서태지의 등장을 환영했다. 이를 새로운 문명의 등장을 알리는 전조로 해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음악인들은 반대했다. 서태지의 등장을 재앙으로 보고 저주를 퍼부었다.
사실이었다. 그들 입장에서 서태지는 재앙일 수 있다. 노무현의 등장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축복이고 누구에게는 재앙이다. 그것은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알리는 빵빠레였던 것이다.
10여년 전 필자는 한국영화의 급성장을 예견하고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화평론가들은 반대했다. 그들은 한국영화의 성장을 환상 혹은 상업주의적인 타락이라고 우겨댔다. 흥행영화를 조폭영화니 하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필자는 2002년 월드컵의 성공을 크게 환영했다. 그러나 다수의 알만한 사람들은 거기에도 같잖은 시비를 걸었다. 그들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길거리 응원을 두고 광기니 파시즘이니 하며 저주와 경멸을 퍼부었다.
필자는 DJ정권의 등장과 함께 촉발된 인터넷 벤처붐을 크게 환영하고 직접 참여했다. 그러나 다수의 알만한 식자들은 벤처의 환상을 경계하고 거품을 우려했다. 그들은 IT경제의 등장을 DJ정부의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우겨댔다.
필자는 인터넷 시대의 개막을 환영했다. 그러나 다수의 식자들은 인터넷이 정보격차를 만든다며 비판했다. 심지어는 도올 김용옥 조차도 인터넷 환상을 경계하고 비난한 적이 있다.
필자는 한류붐의 등장을 크게 환영했다. 그러나 다수의 알만한 사람들은 한류는 일본 방송국 PD 몇 넘이 밀실에서 쑥덕쑥덕 해서 만든 상업주의의 허상에 불과하므로 몇 년 못간다며 예언하고 저주를 퍼부었다.
필자는 중국경제의 급부상을 환영하고 이것이 한국경제의 발전에 큰 보탬이 될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다수의 알만한 사람들은 중국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충고해 마지 않았다.
필자는 서태지-한국영화-한류붐-월드컵-벤처붐-인터넷붐-생명공학-서해안시대-노무현의 등장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대중이 역사의 주체로 전면에 등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관련이 있다.
기억을 되돌려 보라. 지금 생명공학을 반대하는 당신, 그때 그 시절에 서태지를 저주하고 월드컵을 비웃고, 벤처붐을 향해 “꿈 깨.” 이렇게 충고하고 인터넷에 냉소하며, 심지어 중국시장 개척에 대해서도 ‘환상을 버려’ 하고 힐난하기를 서슴지 않았었고 한국영화의 성장, 한류붐까지 비아냥 댄 그 사람들이 아닌가?
아니라고 말할 자 누구인가?
당신들은 사회의 밑바닥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 그 자체를 반대했지 않았던가? 대중이 변화의 주체가 된다는 사실 자체를 못마땅해 하지 않았던가? 당신들은 오직 지식인 집단의 계몽과 훈화에 의해서만 사회가 진보하며 대중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은 무조건 사악한 파시즘의 광기로 몰아붙이지 않았던가?
필자가 MBC들의 만행에 분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필자는 지금까지 서태지-한국영화-한류붐-월드컵-벤처붐-인터넷붐-생명공학-서해안시대-노무현의 등장을 모두 일관되게 옹호해 왔다. 골수좌파들은 이 모두를 반대했다.
좌파들은 정보에 강한 지식인 집단이다. 그러므로 인터넷의 등장은 좌파들 입장에서 엄청난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가장 잘 이용하지 못하는 집단이 바로 좌파들이다. 그들이 인터넷으로 제대로 성공한 것 있나?
좌파들과 수구들의 공통점은 인터넷을 거의 활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닌가? 인터넷 뿐 아니라 뭐든 새로운 것에는 반드시 낙오하고 마는 것이 좌파들의 습성이 아닌가?
정리하자. 돈이 지배하는 산업사회에서 지식이 지배하는 정보화사회로 넘어가면서 패러다임의 변화로 하여 지식인 집단의 거대한 헤게모니가 발견되었다. 그 헤게모니는 인터넷에 그대로 반영되었으며 이러한 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한 집단은 전통적인 의미의 좌파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자유주의-진보세력이었다.
이건 모순이다. 당연히 좌파가 주도권을 잡아야 할 시장에 자유주의 세력이 밥숟가락 들고 달려든 것이다. 좌파들은 당연히 분노하고 있고 그들이 이번 건을 기회로 이심전심 소통하여 총반격을 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이번 싸움은 결코 일과성의 해프닝이 아니다. 황우석 박사의 검증이 어떻게 결론나던 상관없이 전투는 계속된다. 좌파들 입장에서는 간만에 기다리던 대목장이 선 것이고 그들은 이 황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전투의 가장 큰 피해자는 딴나라와 조중동이 된다. 왜인가?
필자는 지율스님-부안싸움을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까놓고 이야기하면 지율의 천성산 도롱뇽 주장은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 부안 핵도 마찬가지다. 말도 안되는 비과학적인 주장이다.
좌파들은 100프로 종교적 신비주의가 확실한 ‘도롱뇽-반핵’의 편을 들었다. 눈꼽만큼이라도 근거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애초에 이 사건은 진실-허위의 게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천성산 도롱뇽에 눈꼽만큼이라도 위해가 있어서 좌파들이 지율스님을 편든 것이 아니듯이 이번 사건도 원초적으로 황박사의 진실성 여부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헤게모니다.
필자는 지율-부안의 의미를 개발시대의 종막을 알리고 환경시대의 등장을 알리는 거대한 전조로 보았다. 무엇인가? 행정수도 이전이 오히려 공주, 연기지역 주민의 반대라는 복병을 만나는데서 보듯이 이제는 개발만능주의가 통하지 않게 된 역사의 흐름이 문제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좌파들이 애초에 진실이 아닌 ‘핵-도롱뇽’ 편을 들었듯이 개발에서 환경으로 가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헤게모니의 이동을 촉발한 것이며, 그들은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뿐이다. 이것이 본질이며 이 본질이 중요했던 것이다.
결론은 우리사회가 개발시대에서 환경시대로 넘어감에 따라, 자연히 좌파들이 득세하게 되듯이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넘어감에 따라 논쟁의 지점, 충돌의 지점, 대립의 지점이 그 만큼 왼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들과 자유주의 세력이 싸우는 동안 산업화 시대의 헤게모니를 구가해 왔던 딴나라와 조중동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된다. 지금 조중동은 좌파들과 우리 사이를 이간질 하며 재미를 보는듯 하지만, 그들은 어느 새 선수에서 관객으로 밀려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회의 주요한 갈등을 생산하는 전선(戰線)의 지점이 ‘산업-인권’의 구도에서 정보권력의 쟁탈로 옮겨가 버렸기 때문에 수구의 그들은 이 싸움판에서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흐른다. 변화는 일어난다. 어떤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가?
● 수구세력에 유리한 흐름 : 세계화, 부시의 전쟁망동, 거대재벌의 성공
● 자유주의-진보세력에 유리한 흐름 - 서태지, 한국영화, 한류붐, 월드컵, 벤처붐, 인터넷붐, 생명공학, 서해안시대, 노무현의 등장 등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가는 일련의 패러다임의 변화.
● 골수좌파 세력에 유리한 흐름 - 개발시대에서 환경시대로의
변화.
역사는 세계화, 정보화, 환경화로 간다. 이들은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면서도 세부적으로는 각각 다른 물줄기들을 이루고 있다.
수구세력에 유리한 세계화의 흐름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이미 주가에 다 반영된 것이다. 새로운 흐름이 대두하고 있으며 이 밑바닥의 에네르기들은 일정부분 좌파가 먹을 것이고 일정부분 자유주의세력이 먹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종 승자는 누구인가? 유연하게 움직이는 자가 승리한다. 역사의 흐름에 편승하는 자가 승리한다.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자가 승리한다.
누가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 누가 유연하게 사고하는가? 누가 패러다임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가?
결론적으로 이 싸움은 계속될 것이며, 언제나 그렇듯이 싸움은 권력을 낳고 역사의 편에 선 자가 그 권력을 얻을 것이며 우리 사회의 주요한 갈등과 대립의 지점이 왼쪽으로 옮겨가고 있으므로 조중동과 딴나라는 구경꾼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조용히 잊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