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m8259Ani7lo?si=tprb3BMTdYICOAQN
어차피 한국에 인공지능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그러려니 합니다.
굳이 영상을 볼 이유는 없지만, 사람들의 관심사가 어디로 향하는 지 관심이 있다면 볼만 할 수도.
이런 건 기술이 아니라 철학적인 문제입니다.
철학이라면 소크라테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논리를 이해하면 쉽게 알 수 있는 거라는 거.
서비스를 하면 무조건 아첨하게 됩니다. 왜냐고? 서비스니깐.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맞춰주라고 있는 겁니다.
가끔은 소신있는 사람도 있지 않느냐?
그 사람은 사표를 던지고 소신을 드러냅니다.
결론적으로인공지능이 당신에게 맞춰주지 않는다면
당연히 당신의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이 당신에게 대답을 하는 한
무조건 아첨이 가속됩니다.
간단하죠?
적당히 맞춰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겠지만
공자의 중용이 적당히가 아니듯이
세상에 적당히 같은 건 없습니다.
있던데? 밸런스 뭐 그런 거 있잖아?
밸런스의 의미는 적당히나 균형이 아니라
상부구조에 있습니다.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야
하부구조에서 적당히가 되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 요새 이재명이 보수와 중도도 끌어안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적당히 맞춰주는 걸로 보이겠지만
이걸 할 수 있다는 건 사실 그에게 상부구조가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윤썩이 적당히 못 했던 이유는 상부구조가 없기 때문이고.
그럼 상부구조가 뭐냐면,
그건 미션이나 비전입니다.
미래를 보아야 결과적으로 적당히가 되는 거.
즉, 당신이 인공지능을 쓰는 한 절대로 아첨하고
인공지능이 당신을 써야 아첨하지 않고
당신을 도구로 삼아 공통의 비전을 실현하게 되는 겁니다.
이는 인공지능에 자아나 영혼이 생기느냐의 문제가 됩니다.
비유적인 거니깐 오해는 하지 마시고.
인간과 동급이 되어 공통의 미션을 달성하려고 해야
아첨을 안 하게 된다는 겁니다.
보수에 아첨했던 윤썩이
사실상 보수를 궤멸시키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인공지능이 당신에게 아첨하는 게
어떤 문제가 있을 지를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물론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아닙니다.
조만간 이런 게 이슈가 될 거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