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수준, 어디까지가 우리인가.
'우리'란 말 이거 인칭대명사의 거시기급이다. 거시기는 티라도 나지 우리는 티도 안난다. 우리당도 있었고, 우리가 남이가도 있었다. 우리 마눌님도 있다.
우리, 대화할 때 나와 듣는 이들을 포함하여 부르는 용도로 쓰는 말이다. 이 우리의 범위가 무리의 수준이다. 열린우리당의 우리는 누구였을까. 우리가 남이가의 우리는 누구인가. 사장님이 말하는 우리는 어디까지인가. 관리자들이 말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이 우리의 범위가 딱 그 무리의 수준이다.
그러니. "사람사는 세상"은 어렵다. 사람사는 세상의 우리는 인류 전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에서는 우리사는 세상이 난무한다. 이명박도 명박동네 우리 중엔 괜찮은 리더일 수 있다. 정동영도 동영동네 우리 중에 좋은 사람일 수 있다. 나름에 우리세상에 폭싸여 일생을 보내는 것이다.
오바바가 우리에게 좋은 정책이다라고 하면 그 우리는 어디까지인가. 부시는 어땠는가. 분명한 건 오바마의 우리가 부시의 우리보다는 넓다. 이명박이 우리에게 도움에 되는 일이라 주장할 때 그 우리는 얼마나 될까.
우리사는 세상에 둘러싸이면 사람사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범위가 "사람", 인류 전체가 아닌 무리에서 리더질이나 팔로우질이나 다 헛짓이다. 울타리치기 놀이일 뿐이다. 얼렁 떠야 한다. 뒤도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목숨이 닳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