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u5aBfcsyfD8
대부분 문제견은 주인과 개의 관계가 틀어져 탄생합니다. 즉 개가 주인이 되는 겁니다. 사람도 비슷한데, 오냐오냐 키운 애들은 부모보다 자기가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부모의 통제에 따르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엄격한 가부장제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란 말이 아닙니다.
즉 부모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자식은 이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명박근혜를 거부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청소년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부담할 수 없는 반쪽짜리 존재입니다. 그러니 책임을 질 수 있는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명박근혜를 감금한 것은 우리가 그것에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형욱의 방송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지만, 현대 사회는 개의 유전자에 새겨진 정보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개의 유전자는 마구 뛰고 싶지만 도심의 아파트라는 환경에서는 그럴 수 없는 겁니다. 어눌한 주인이 개가 불쌍하다 하여 개가 원하는 데로 해주다 보면 어느 순간 개가 주인의 머리 끝에 올라갑니다. 문제는 개가 주인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개가 주인의 잘못에 책임지려고 타인을 무는 순간 그 개는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개는 환경에 대한 통제권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주인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누군가의 지시를 따른다는 말이 거북하다면 주인이 인지한 룰을 복제한다고 이해해도 좋습니다. 이때의 복제는 구조론의 복제와 정확하게 같습니다. 개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 개는 사회에서 배척받고 종국에는 살처분 받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스승의 지식은 제자에 전달되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스승의 권위의 의미입니다. 스승이 뭐 얻겠다고 권위로 제자를 누르려는 게 아닙니다. 지식은 저 혼자 굴러다니는 공과 다릅니다. 지식은 패스되어야 의미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지식에 대하여 스승과 제자의 의견이 다르다면 어떨까요? 스승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제자는 스승이 맞고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며, 이에 자신의 지식을 수정합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제자는 스승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순이 발생합니다. 틀린 사람의 지식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자 이제 당초의 전제가 무너집니다. 이제 학교를 떠나야 하는 겁니다.
제자가 스승을 흔드는 순간 비극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면 누가 가장 큰 손해일까요? 당연히 제자입니다. 공부하려고 학교에 갔는데, 학습이 되질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교육은 시스템으로 스승과 제자를 통제하므로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스승이 권위가 있는 것으로 합의했고 이에 다양한 방편으로 제자를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맘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학교를 떠나세요.
한국의 많은 선생님들은 수준이 지나치게 낮습니다. 솔직히 많은 경우 배워야 할 이유를 느끼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학생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무조건 선생님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납득할 만한 선생님의 말이라면 들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멍청하게 듣기만 해서도 학습이 안 됩니다.
개야 주인보다 빨리 죽으므로 그냥 따르면 되지만, 보통 인간은 스승보다 나이가 어리므로 제자라면 언젠가 스승을 뛰어넘을 야심을 가져야 합니다. 스승이 영원하지 않지만 지식은 영원하므로 내가 그 스승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겁니다. 반대로 개신교도가 성경 암송하듯 팔로우하면 망하는 겁니다. 그러니깐 개신교가 저 모양이죠.
개신교가 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신이라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으므로 그의 제자들은 영원히 제자 노릇만 하려고 합니다.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유아의 상태로 머무르려고 하는 겁니다. 잘못해도 그냥 회계하면 다 해결되므로 전빤쓰가 저 지랄을 하는 겁니다.
맞습니다. 좋은 제자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근데 사실은 스승이 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니깐 강형욱과 같은 전문가가 개주인을 교육시키고 다니는 거죠. 정리하자면, 제자가 스승을 따라야 하는 것은 스승이 위대해서가 아닙니다. 따르지 않으면 제자가 아니고, 지식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따르는 겁니다. 스승은 신과 다릅니다. 영원한 것은 맥락뿐이며 사람은 다만 그것을 전달할 뿐입니다.
먼저 의심하고, 의심이 확신이 되면 믿되, 그곳에서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이에 내가 스승이 될 것이라는 또 다른 믿음을 가질 때, 학습은 가능하고 지식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