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주의 관점 친일은 옳지 않다. 반박 들어온다. 그럼 친북은 괜찮고? 물타기 전술 먹힌다. 일제 말기에 당시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 다들 그랬잖아. 변명 들어온다. 만주군 소위가 뭐 대단한 친일이냐? 헷갈린다. 옳고 그름으로 따지면 혼란해진다. 통제가능성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 도구주의 관점이다. 친일이든 친북이든 하나의 도구다. 일본과 친할 때는 친일도 필요하다. 북한과 친하려면 친북도 필요하다. 문제는 통제되느냐다. 친일파가 파당을 이루고 군벌이나 재벌처럼 파벌을 이루고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국가통제권을 벗어나 버리는 것이다. 힘을 가지면 폭주한다.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드루킹짓 한다. 김어준도 때로는 위험하다. 정봉주 되고 안희정 되고 진중권 되는거 한순간이다. 주변에 좋은 친구가 있어야 통제된다. 필자가 진중권의 말로를 20여 년 전에 예측한게 그렇다. 딱 보면 안다. 의리라는게 없다. 친일파 반대쪽에 독립파는 없다. 독립파가 파당을 이루고 군대의 요직을 차지했다는 말은 내가 들어본 적이 없다. 북한은 독립파가 평양시를 차지하고 권력을 오로지 한다는데 역시 잘못된 것이다. 특권계급을 만든 것이다. 도구주의가 답이다. 도구가 무디면 날을 세운다. 도구가 말을 듣지 않으면 다듬어 쓴다. 말을 들을 때까지 숫돌에 칼날을 매우 갈아줘야 한다. 개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 문화 상대주의 나온다. 역시 통제가능성의 문제다. 남들이 먹지 말라고 하면 먹지 말아야 한다. 다수가 그리로 가면 따라가 줘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해라마라 결정하느냐? 엘리트가 결정한다. 역사의 큰 흐름이 결정한다. 진보주의가 결정한다. 보수주의는 발언권 없다. 도시에서는 되도록 질서를 지켜야 하고 시골에서는 마음껏 뛰어다녀도 된다. 텍사스에서는 이웃에서 무슨 짓을 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땅이 넓으니까. 민폐만 끼치지 않으면 된다. 화장실에서 혼자 있을 때는 무슨 짓을 하든 참견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는 살인을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는 집단의 상호작용을 높이는 쪽으로 기동한다. 개고기 먹는 것이 상호작용을 높이느냐 아니면 그 반대인가? 애견인 숫자와 관계가 있다. 다수가 개를 키우면 이웃의 눈총 때문에 개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된다. 다수가 고래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일본도 궁지에 몰린다. 다수가 코끼리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아프리카도 코끼리 사냥을 하면 안 된다. 그래야 인류의 상호작용이 높아진다. 말 안 듣고 고집 피우면 왕따 된다. 일본이 혐한하는 이유는 왕따가 되어도 좋다는 거다. 따고 배짱이다. 일본이 잘 나가는데 뭐? 유럽에서는 일본을 알아준다고. 아시아인들과 안 놀아. 그래도 좋다면 그렇게 만들어준다. 일본이 혐한하면 우리는 일본과 중국을 이간질한다. 시진핑 방한한다. 세상을 통제가능성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죄를 저질렀다고 처벌하는게 아니다. 죄가 무슨 죄야? 통제가 문제다. 빵 한 조각을 훔쳐도 중죄가 될 수 있고 살인을 해도 정상참작이 될 수 있다. 아줌마가 이웃 사람에게 욕설하다가 모욕죄로 수갑이 채워졌다고. 자녀가 보는 앞에서 뒤로 수갑을 채웠다며 항의하는데 그 경우는 체포하는게 맞다. 놔두면 밤새도록 그런다. 경찰은 현장을 장악하고 상황을 종료시킬 의무가 있다. 아줌마의 욕설이 중죄는 아니다. 문제는 말을 안 듣고 떼쓰는 거다. 말을 안 들으면 일단 제압하는게 맞다. 신원이 확실하고 남편이 풀어달라고 요구했으므로 풀어줘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보통은 경찰이 물러가면 또 싸움 난다. 밤새도록 싸운다. 경찰이 모욕죄로 걸려고 하면 모욕죄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말한다. 씨박놈아 하다가 수박님아로 바꾼다. 수박님아는 모욕이 아닌 건가? 경찰은 업무방해죄로 간다. 어떻게든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빵 한 조각을 훔쳐도 상습범은 계속 구속하는 수밖에 없다. 죄의 경중이 문제가 아니라 통제가능성이 문제다. 기술적으로 경찰을 애먹이는 자는 매우 조져야 한다. 반대로 욱했다가 고분고분해지면 풀어준다. 검사든 의사든 조중동이든 한경오든 그렇다. 말을 안 듣고 애먹이는 자는 박살 내야 한다. 민중의 실수는 봐주고 강자의 횡포는 억눌러야 한다. 힘 있는 자는 힘으로 처단해야 한다. 세상은 도구다. 도구는 말을 들어야 한다. 환경과의 게임이다. 환경과의 게임에 이겨야 한다. 경찰이 이겨야 한다. 국가는 사설권력을 이겨야 한다. 정부군은 산적을 이겨야 한다. 경찰은 마피아를 이겨야 한다. 도덕군자라도 말 안 듣는 자는 조져야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단,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 일회성 실수인지 싹수가 노란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