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수학에 '좋은 조건'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실수 공간은 다른 공간에 비해 훨씬 '좋은 조건'을 가졌다는 것이다. 위상수학으로 다양한 공간을 만들 수 있지만 그중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진 '표준'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 성질도 없는 공간에서 좋은 조건인 실수 공간을 생각해내는 흐름은 인간이 보기에 당연해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표준'적인 우주 공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조건이 매우 좋다. 그러므로 역시 조건이 좋은 공간을 인간은 자연스레 떠올리는 것(창발)이다. 그래서 인간은 무에서 수학을 발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착각한다. 이 생각이 발전하여 인간은 과학으로 세상을 전부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역주행이다. 조건이 매우 좋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폭발 원리'는 논리학의 개념으로, 어떤 논리체계 하에서 모순이 하나라도 인정되면 그 논리체계 모든 논리는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즉 폭발해버리는 것이다. 폭발 원리는 체계 간에 층위를 구별하는 근거가 된다. 즉 상위 체계는 하위 체계의 폭발 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언어학과 논리학을 예로 들자면 언어학은 동일률 폭발 원리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동일률이란 A는 A와 동일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법칙이다. 동일률에 폭발 원리를 적용하면 동일률을 가지지 않는 것이 하나라도 존재하면 모든 것이 부정된다는 것이다. 논리학은 언어학의 동일률 폭발 원리를 부정한다. 즉 논리학에서는 A는 A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대신 그것이 거짓이라는 논리를 덧붙여야 한다. 이처럼 언어학에서 출발하여 논리학, 수학, 물리학 등으로 학문을 쌓을 수 있다는 생각이 환원주의다. 왜냐하면 언어학에서 논리학을 도출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언어학에서 논리학으로, 하부체계에서 상부체계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학문의 성과, 결과물만 놓고 보면 마치 외부의 도움 없이 하부에서 상부로 학문을 쌓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