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아카데미를 뒤집다 일주일 전에 영국 아카데미가 각본상과 외국어영화상밖에 주지 않았기 때문에 보란듯이 상을 줄 거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필자는 설마 했다.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아카데미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로컬영화제다. 봉준호가 자기 입으로 한 말이다. 한 번 상을 주면 계속 줘야 한다. 전 세계에 생중계 되는데 한국인들이 시상식 무대에 줄줄이 서 있으면 미국 시청자는? 전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달랐다. 그렇다. 아카데미는 진작부터 변신을 노리고 있었다. 정치적 올바름이 이슈가 되는 시대에 적응하려 마음먹고 있었다. 기회를 노리다가 기생충을 보고 ‘이거다’ 하고 변신을 한 것이다.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바꿔놓았다. 바꾸려고 작심해도 찬스잡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일본은 아직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도 오른 적이 없다. 와호장룡이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미국 자본이 들어간 영화다. 헐리우드가 고립주의를 추구하는 트럼프에게 한 방을 먹인 셈이다. ‘우린 닫힌 미국이 아닌 열린 미국을 원한다구.’ 사실이지 기생충은 한국에서 오히려 손해본 영화다. 블랙유머를 유머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해서 내 이야기로 착각하고 고통을 느끼는 관객 많다. 가난을 묘사한 절절한 장면을 보고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것 같았다는 사람도 있더라. 영화는 의도적으로 쿨한 자세로 봐야 한다.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에서 말하는 소격효과 기법이다. 내가 감독이라면 이 스토리를 어떻게 요리해낼 것인가다. 영화의 결말을 내는 방법 중의 하나는 이상한 놈과 나쁜 놈을 교착시켜 놓고 주인공인 좋은 놈은 유유히 빠져나가는 박정우작가 방식인데 '주유소 습격사건'이 그렇다. 2000년대 초에 일어난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주도한 사람이 박정우 작가다. 광복절 특사, 신라의 달밤이 있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다. 어글리와 배드가 교착된 상황에서 주인공은 유유히 사라진다. 철가방과 조폭을 대결시켜 놓고 주유소 패거리는 튄다. 타란티노의 펄프픽션도 이 수법을 쓰는데 부치가 흑인조폭과 지하실의 게이깡패를 교착시켜놓고 튄다. 시간순서를 바꿔놓았기 때문에 이 점을 놓치는데 순서대로 보면 이게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이다. 보통은 선이 악을 이기는데 문제는 선은 지루한 캐릭터가 되고 악은 활력있는 캐릭터가 된다는 점이다. 악당이 혀를 내두르는 재치와 신기술로 무장하고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악당이면 되잖아. 그게 스파게티 웨스턴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악당이면 악이 선을 이기잖아? 주인공을 죽여야 한다. 사실주의를 빙자하며 주인공을 죽이는 영화는 흥행이 망한다. 주인공이 살고 해피엔딩이면서도 활력있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려면? 어글리와 배드를 교착시키고 튀면 된다. 기생충은 지상족과 지하족의 공생관계에 이질적인 주인공이 끼어들어 삼각구도를 이룬다. 선이 악을 치는 초딩영화도 아니고 악이 선을 치는 괴기영화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마무리를 잘 지었다. 건물구조를 강조한 점에서 구조론과 통한다. |
영화 하녀(1960)의 확장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봉준호는 하녀에서 영감을 많이 받은듯.
실제로 복원 DVD에 봉준호 감독이 해설을 맡기도 했고.
보통 작품성과 완성도가 동시에 나오기 어려운데,
이게 가능한 경우는 대개 올드보이 공식과 비슷한 경우.
원작을 디테일이 뛰어난 감독이 작가를 데리고 재해석
마치 일본의 우키요에를 유럽의 인상파가 재해석하여 대박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