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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양을 쫓는 모험
read 10062 vote 0 2010.09.27 (04:16:59)

 

1. 명절의 하이라이트


 

다들 추석은 잘 쇠셨는지 모르겠다. 1년에 한 번이나 두 번정도 그간 못뵈었던 어른께 인사드리고, 형제 자매 여러분을 만나 즐겁게 뛰어노는 그 며칠 안되는 시간. 게다가 각종 과일, 전, 약과 등등... 음식 또한 넉넉한 명절. 어린시절 내가 기억하는 명절의 풍경은 이러했다.


화투02.jpg


 

 

요즘은 디지털 시대라서 예전처럼 윷놀이, 제기차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은 명절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화투판이었다. 물론 모든 가정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또 소수의 문화라고 치부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술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슬슬 시동이 걸리는 그것. 특히 명절이면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렸다.


물론 돈의 액수가 커져서 도박이 되어버리면 안되겠지만, 함께 즐기는 놀이라면 꼭 나쁘게 볼 것도 없지 않은가?


 

 

2. 화투의 유래


 

화투(花鬪)는 말 그대로 "꽃싸움" 이다.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화투는 조선시대 후기(19세기) 일본으로부터 들어왔고, 일설에 따르면 쓰시마섬[對馬島]의 상인들이 장사차 한국에 왕래하면서 퍼뜨린 것이라고 한다. 4장씩 12달을 상징하는 꽃으로 총 48장의 카드로 되어있다.


하지만 예전에 보았던 성인만화인 허영만의 <타짜>에서는 화투가 일본식 판화같은 그림이지만, 사실 카드의 구성과 게임의 룰은 포르투갈의 카드게임으로부터 건너온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을 본거 같기도 하다. 말하자면 그림만 다를 뿐 트럼프와 사촌 벌 된다는 얘기다.

화투01.jpg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익히게 하려면, 고스톱 게임이 꽤나 유용하다. 뭐든 그렇지만, 친숙한 게임을 하다보면, 컴퓨터 그 자체에 점차 익숙해지고, 그러다보면 인터넷을 통한 여러 정보와도 접할 기회가 많아진다. 나 역시도 그런 방법으로 부모님께 컴퓨터와 인터넷을 알려드렸고, 인터넷의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의 검은 그늘에서 탈출하셨다.


 


 

3. 고스톱의 밸런스


 

어머님께서 즐기는 것을 보며 어깨너머로 고스톱의 룰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날 어머니께서 게임중에 중요한 전화가 오는 바람에 얼결에 게임을 내가 이어서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략의 룰은 알고 있고, 컴퓨터 게임에서는 피의 숫자도 이미 계산되어서 나오니까 나같은 초짜가 하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그렇게 처음해본 고스톱 게임에서 어쩌다보니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채팅으로 욕을 먹었던 것이다. 처음엔 그 사람 자체가 성격이 나빠서 그런줄 알았는데, 점차 그런 경우가 계속되니까 뭔가 내가 욕을 먹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만 같았다.


이 사람들이 욕하는 내용이란, "왜 그 상황에서 그걸 먹냐?", "왜 그 상황에서 그걸 내주냐?" 머 이런 정도인데, 처음에 난 내가 뭘 먹든, 뭘 내든 왜 옆에서 욕을 할까? 생각했다.


 

화투05.jpg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상황은 이랬다. 나는 잘 못해서 꼴찌를 달리고 있었고, 늘 욕을 하는 사람은 2위 하는 사람이었다. 1위가 2고, 3고 할 적에, 내가 먹을만한 패를 내주질 않아 도와주지 않는다는 불평이었던 것이다. "언제 도와달라고 했나?" 싶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고스톱이라는 게임 자체가 1위에 대항해서 2위와 3위가 한 패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있었다.


(뭔가 일반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로 고스톱일랑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설명하고 싶지만, 어느정도 한계를 느낀다.)


담요 위의 룰은 이렇다. 어느 한 사람이 독주를 할 때에 2고, 3고까지 가면서 누군가에게 대박이, 또 누군가에게 쪽박이 나오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이 되면 꼴찌가 게임의 축의 역할을 맞게 된다. 2위가 먹은 패를 읽고, 그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슬쩍 내주는 방법으로 1위의 독주를 견제하고, 그렇게 2위가 역전하면 전체적인 밸런스가 맞아서 서로서로 재미를 느끼면서도 큰 손해는 없도록 하는 것이다.


놀이로 고스톱을 하면 밸런스가 맞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고, 놀음으로 고스톱을 하면 밸런스를 깨서 누구 하나가 2고!, 3고!... 5고! 까지 가서 대박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놀이와 놀음은 그 목적 자체가 다른 것이다. 밸런스가 맞으면 함께 즐겁고, 밸런스가 깨지면 한 놈만 즐겁다. 고스톱은 밸런스 감각의 게임이다.



 

 

4.  도박의 꽃, 정마담

 


담요 위의 룰은 밸런스를 어떻게 맞추느냐가 주가 된다. 하지만 노름에서 타짜의 밑장빼기에 전 재산이 거덜났다면?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까? 머... 노름판에서 돈 잃으면 하소연 할 곳도 없는게 사실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담요 위의 게임 이전에 그 게임 자체가 존재하느냐의 문제. 게임이 존재한다면 주최자가 있을 것이고, 게임의 여부를 떠나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주최자 라는 것이다.


War_of_flower_04.jpg

 

 

영화 <타짜>에서 정마담의 역할 처럼 말이다. 무엇이 '맞다/틀리다' 의 문제가 아니라 그 상부구조에는 게임판이 '있다/없다' 의 문제가 존재한다. 정마담은 게임을 만드는 여자고, 또한 이대 나온 여자다.


 

정마담 > 바람잡이 > 타짜 > 돈 딴 사람 > 호구

 


하우스에서 판이 벌어지면 하우스 주인이 주최자고, 초상집에서 판이 벌어지면, 초상집이 주최자고, 피망 고스톱이면 피망이 주최자다. 주최자는 누가 이기든, 누가 인생을 말아먹든 어쨌거나 돈을 번다. 주최자가 판을 열면, 바람잡이가 호구를 앉히고, 타짜가 기술을 부리고, 누군가가 돈을 따고, 호구는 거덜난다.


 

 

5. 호구가 호구인 이유

 


노름판에서 그런 얘기가 있다지. "시작하고 10분 안에 호구가 누구인지 모르면 자신이 호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10분의 시간이 무엇을 생각하는 시간이냐 하는 것이다.


호구가 호구인 이유는 담요위에 화투장에 눈이 쏠려, 담요 밖의 사람들과 스스로의 포지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을 따는가? 게임에서 이겼나? 의 문제가 아니라 마주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그 공간과 시간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고수는 이기는 게임만 하고, 하수는 지는 게임만 한다. 구조를 알면 지는 게임엔 끼질 않는다.

 






 


 


[레벨:15]lpet

2010.09.27 (10:15:18)

하우스장 - 바람잡이 - 타짜 - 돈따는 사람 - 호구 보다는,
하우스장 - 총책 - 타짜 - 바람잡이 - 호구 가 맞소.

질 : 하우스장과 큰손. 장소를 제공해서 사용료를 뜯는 하우스장이나 밑전을 대는 큰손이 제일 큰돈을 가져가오. 무조건 딴다.
입자 : 총책. 회사 ceo에 해당되는 책임자로 한 프로젝트에 사용할 기술선정, 작전구상, 타짜와 호구수배를 전담하오. 두번째로 큰 몫 챙김.
힘 : 타짜. 실제로 기술을 사용하는 타짜는 밑전과 바람잡이를 이용해서 직접 호구를 울궈먹는 실무기술자요.
운동 : 바람잡이. 짜여진 각본대로 게임에서 이기기도 하고 쪽박을 차기도 하면서 호구를 수렁에 밀어넣는 단역배우 역할이오.
량 : 호구. 이기나 지나 결국은 다 털리고, 호구가 다 털려야 판이 끝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양을 쫓는 모험

2010.09.27 (10:54:59)

오... 옳소. 수정하오.

[레벨:15]오세

2010.09.27 (12:16:42)

르페님의 전직이 의심되는구려...ㅋ
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10.09.27 (13:19:27)

호구가 안 보이면 내가 호구.
호구가 다 털려야 판은 끝나.
도박이 털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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