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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보스턴의 대학살』이라고 불리지만 당시 사망자는 5명에 불과하다. 사실은 폭도들과 영국군대 사이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총격사건이었다. 문제는 설사 폭도들이 군대를 공격하더라도 군대는 시민들에게 발포할 수 없다는 원칙에 있다. 이것이 당연한 상식이어야 한다.

『군대가 시민에게 발포할 수 있는가?』 이것은 하나의 철학적 질문이다. 광주민중항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히 발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질문이 거듭되면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처음 보스턴 차 사건은 하나의 작은 소동에 불과하였다. 이것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거듭 이러한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시민의 군대가 그 군대의 주인인 시민들에게 발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미국의 독립이라는 세기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실제 재판에서도 지휘관 프레스톤 대위의 부하 2명은 살인죄가 인정되어 손에 낙인이 찍히고 군대에서 축출되었다.

재판결과를 지켜보면서 시민들은 깨달았다. 설사 시민이 군대를 쏘는 일이 있더라도 군대는 시민을 쏠 수 없다는 사실을. 왜? 시민이 주인이니까. 이에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뀐다.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달라졌다.

1775년 시골 도둑 조지 워싱턴이 처음 봉기했을 때, 미국의 독립을 찬성하는 사람은 1/3 정도에 불과하였다. 조지 워싱턴이 임꺽정이나 홍경래보다 더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왕을 배반한 반역자들의 무리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미국인의 생각이 바뀌었다.

8년간 계속된 게릴라전 동안 워싱턴 군대는 그 몰골이 산도둑과 비슷했다. 그의 부하들은 영국군을 물리치면 당연히 워싱턴이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으로 믿었다. 자신들은 당연히 영지를 나누어 받고 귀족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 꿈 하나로 그 고통스런 세월을 견뎌내었다.  

그때만 해도 대통령이라는 개념은 아예 없었고, 왕과 귀족이 없는 국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였다. 귀족이 되지도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반역을 저지른다는 말인가? 여왕이 홍차에 세금을 비싸게 매겼지만 그까짓 홍차야 안마시면 그만이 아닌가? 실제로 미국인들은 아직도 홍차 대신 커피를 마신다.

결국 워싱턴은 왕이 되지 못했고 워싱턴의 졸개들은 귀족이 되지 못하였다. 제퍼슨 한 사람의 방해 때문이 아니었다. 의회를 존중하기로 한 워싱턴의 단호한 결단 때문도 아니었다. 무엇인가? 무엇이 그 모든 것을 하루 아침에 바꾸어 버렸는가?

미국은 3권분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의회가 행정부의 위에 있다. 의회가 결정하면 행정부가 집행하는 것이다. 중요한건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인가이다. 이 질문이 계속 던져졌기 때문이다. 의회가 주인이고 행정부는 의회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레스톤 대위가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폭도들에게 발포했을 때 - 재판결과 프레스톤 대위의 발포명령은 증거가 없는 것으로 확정이 되었다. 부하들이 우발적으로 총을 쏜 것이다. - 던졌던 질문 때문이다. 『충복인 군대가 주인인 시민을 거역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계속 확대된다. 충복인 행정부가 주인인 의회를 거역할 수 있는가? 종인 의회가 주인인 시민을 거역할 수 있는가? 누가 주이고 누가 종인가? 질문은 거듭되었고, 워싱턴의 부하들은 귀족의 단꿈을 접어야 했고,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대통령을 『전하』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의회에 의해 거부되었다.  

개혁당의 대륙의회는 어디로 갔는가?

처음에는 골방에 모인 몇몇 몽상가들의 수다로 부터 시작되었다. 30년 동안 수다를 떨면 꿈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수다떨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개혁당이 이 달 말께 당헌을 개정한다고 하니 바람직한 인터넷정당의 모습에 관하여 토론해 볼 필요가 있다. 유시민이나 김원웅이 조지 워싱턴과 존 애덤스라면 두 사람이 충성을 바쳐야 할 대륙의회는 어디에 있는가이다.

보스턴의 시민들이 그러하였듯이 우리는 거듭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가 주이고 누가 종인가?』, 『누가 결정하고 누가 실행하는가?』 『개미들의 충복인 집행부가 그들의 주인인 개미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가?』, 『그 모든 권한이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나오는가?』 우리는 끝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개혁당이 발전하는 정도는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회수에 비례할 것이다.

지금 개혁당은 많은 것이 잘못되어 있다. 우선 당에 『대표』라는 우스꽝스런 직책이 존재한다. 개혁을 표방하면서 가장 반개혁적인 대표가 존재한다. 그것은 마치 미국이 독립혁명을 한다면서 조지 워싱턴을 황제로 모시겠다는 발상과 같다.

개혁을 표방하면서 『집행위』라는 어처구니 없는 것이 존재한다. 이는 마치 워싱턴의 졸개들이 훈장을 하나씩 나눠가지고 영지를 하사받아 귀족이 되겠다는 발상과 같은 것이다. 황제를 타도하고 귀족을 말살하는 것이 개혁의 목적일진대, 황제와 귀족이 군림해서 어찌 그것이 개혁일 수 있다는 말인가?

누군가가 이러한 잘못된 구조에 이의를 제기할라치면 전국위와 지역위, 또는 부문위라는 세가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령들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전국위가 모야? 지역위는 또 뭐야? 부문위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지?

도대체 왜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왜 그들에게 귀족과, 영지와, 훈장과, 작호 씩이나 필요한 거지? 왜 시민과 시민의 충복인 민회 사이에 끼어드는 거간꾼이 필요하지. 왜 당원과 최고의결관인 전당대회 사이에 이상한 중간집단이 존재하지? 왜 시민위에 남작있고, 남작위에 백작있고, 백작위에 공작이 있는 거지? 도무지 이런 것들이 왜 있어야만 하는 거지? 말도 안되는 수작이다.

더 멋진, 더 많은, 더 신나는 많은 일들을 할 수가 있는데

개혁당의 잘못을 일일이 적시하자면 한이 없다. 그렇지만 그러한 고민은 개혁당 사람들이 할 일이고 우리 서프당은 개혁당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바람직한 정당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학습하는 것으로 족하다.

더 많은 토론과 대화가 있어야 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시민의 군대가 그 군대의 주인인 시민들에게 발포할 수 있는가?』이 질문이 끝없이 던져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두가지 길이 존재한다. 하나는 차기 총선에서 몇 석을 더 건지고 원내에 의석을 확보하는 일이다. 좋은 계획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다수 개미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건 정치를 해서 입신출세해 보겠다는 정치자영업자들의 꿈일 뿐이다.

대다수 개미들의 꿈은 집권도 아니고 의석확보도 아니다. 위에 대가리들만 안다는 고급정보의 공유가 첫째이고, 하의를 상달하는 의사소통구조를 획득하는 것이 둘째이고,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서로 친구가 되고 공동체의 문화를 가꾸어가는 것이 셋째이다.

중요한건 삶이다. 당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하루하루의 일상적 삶이다. 이보다 더 우선되는 가치는 없다. 그 일상적 삶은 정보의 공유와, 의사소통과, 공동체 문화를 통해 얻어진다. 이 모든 소중한 가치들은 황제와 귀족을 타도하므로서 얻어진다.

우리는 더 많은, 더 멋진, 더 신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하지 못한다. 왜? 무엇 때문에? 왜 우리는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여러 가지 일들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계속 하지 못해야만 하는거지?

인터넷은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인터넷당을 표방한 만큼 더 많은 일들이 인터넷으로 가능해야 한다. 정보의 공유도, 의사의 소통도, 인터넷으로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왜 하지 못하지? 왜 게시판은 꽁꽁 숨어있어야 하지? 왜 게시판에 진실한 토론은 없고 일방적인 배설만 난무하는 거지?

왜 주인인 네티즌들은 소외되고, 시민단체 활동경력이 삐까번쩍한 외부인의 족보장사가 판쳐야만 하는 거지? 그런 족보 알아주지 않는다고 명분을 내건 것이 개혁일진대 왜 그런 반개혁적인 모습이 이곳에서 보여져야 하는 거지.

왜 군림하는 그들은 당원들의 검증절차를 조금도 거치지 않는 거지? 왜 그들은 게시판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거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정답을 말하면 그들이 인터넷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 그들 중에 인터넷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거지? 질문은 계속되어야 한다.

덧글..
이상의 토로는 개혁당에 대한 이의제기가 아닙니다. 저 혼자의 생각이고, 그 생각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기를 희망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때로 성공보다 실패로부터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곤 합니다. 개혁당 실험에서 많은 꿈들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 무엇인지 분명히 기록하므로 해서, 언젠가 그 꿈을 이룰 기회가 오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단지 그 이루어지지 않은 꿈들을 기록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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