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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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220 vote 0 2018.02.20 (20:00:30)

     

    인, 지, 의, 신, 예


    구조론은 항상 에너지 통제를 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에너지는 객관적이다. 선악이 없다. 그러므로 인은 불인이며, 지는 무지이며, 의는 불의며, 신은 불신이며, 예는 무례다. 인, 지, 의, 신, 예는 긍정적 표현이며 과학에는 원래 긍정적도 부정적도 없다. 그냥 에너지를 쥐어짜는 것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질은 결합, 입자는 독립, 힘은 교섭, 운동은 변화, 량은 침투로 설명하고 있지만 편의적인 설명이고 본질은 쥐어짜는 것이다. 쥐어짜려면 일단 쥐어야 한다. 그것이 질의 결합이다. 그런데 질이 균일하지 않으면 결합이 안 된다. 쥐어지지 않는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손가락 사이로 샌다. 이질적인 것이 섞이면 질이 나쁘다.


    피부색과 언어와 성별이 다르면 결합이 쉽지 않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소수자 배제다. 흑인 빼고, 여성 빼고, 장애인 빼고, 유태인 빼면 결합이 쉽다. 중남미 국가들은 백인인구 비율과 국민소득이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아르헨티나>칠레>브라질>볼리비아 순으로 백인인구 비율이 높고 국민소득이 높다. 물론 예외도 있다.


    인종적으로 균일해야 의사결정이 쉬워진다. 히틀러가 이 방법을 썼다. 문제는 상대방이 맞대응을 한다는 거다. 독일이 유태인을 빼고 가겠다면 인류는 독일을 빼고 가는 거다. 히틀러의 실패는 상부구조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부구조가 개입할 수 없는 지리적으로 격리되고 고립된 지역에서는 히틀러의 방법이 먹힌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외국인 노동자를 거의 받지 않는 것이 그렇다. 섬은 태생적으로 외부인에게 배타적이다. 문제는 도시에도 섬이 있다는 점이다. 심리적으로 격리된 지역에서도 섬지역의 노예노동과 같은 비극이 일어난다. 문학동네나 연극동네, 음악동네, 기레기동네, 사이비종교동네가 그러하다. 문화적으로 고립된 지역이다.


    두 번째 방법은 그야말로 인仁을 쓰는 것이니 인忍이다. 질이 불균일할 때는 강자의 것을 빼앗아 약자에게 줘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부모는 강하고 자식은 어리다. 부모가 자신의 노동으로 일군 소득으로 자식을 먹이는 것이 인이다. 인은 상부구조여야 한다. 실력이 안 되는 데도 인仁을 구사하여 정유라 입학시켜주면 곤란하다.


    인지의신예의 한자어에 현혹되면 곤란하고 건조하게 에너지 흐름을 봐야 한다. 어떤 것을 한곳에 모아놓는 것이 인이다. 외부에서 자극하면 저절로 축이 생긴다. 계는 균일해야 하지만 특이점의 불균일이 있어야 한다. 이때 강한 것이 가운데 와야 한다. 균일해도 외부에서 조이면 원심력과 구심력이 교차하며 가운데가 강해진다.


    축은 다른 곳보다 강해야 하므로 지智다. 우월한 자가 리더가 되어야 한다. 의는 축의 이동이다. 공간적 방향전환이다. 리더가 방향을 결정하지만 현장에서는 실무자가 책임져야 한다. 이때 결정권이 리더에서 실무자로 넘어가는 것이 의다. 축이 가운데 있어야 하는데 가운데 있지 않다면 축이 이동해야 한다. 의는 축의 이동이다.


    신은 그러한 상태를 시간적으로 반복하고 지속하는 것이다. 예는 최종적으로 사건을 종결시키고 손을 떼는 것이다. 질척대고 있는 안철수나 고은이나 이윤택이나 다 손을 떼야 할 타이밍에 손을 떼지 않아서 욕을 먹고 있는 것이다. 왜 남의 몸에 손을 대는가다.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시를 쓰든 연극을 하든 에너지 전달이다.


    에너지를 전달했으면 손을 떼야 하는데 계속 손을 대고 있으니 안철수 꼴 난다. 공자는 예를 아는 사람으로 유명해졌는데 남의 집 제사를 주관하면서 계속 물어봤다. 예를 안다는 사람이 왜 묻느냐고 따지자 공자는 그것이 예라고 말했다. 남의 집 제사이기 때문에 그 집 주인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자신의 개입권한을 축소한 거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지의신예가 하나의 에너지 흐름이라는 거다. 인과 지와 의와 신과 예가 따로 있는게 아니고 하나의 에너지 컨트롤이 처음 시작은 인이고 본격화되면 지고 결정적이면 의고 여세로 계속 가면 신이고 마무리 지으면 예다. 그러므로 인은 일베충에게 불인하며 지는 바보에게 냉정하다. 예만 강조한다면 가짜다.


    예는 인지의신 뒤에 와야 하는데 예를 앞세우는 자는 예를 무기로 삼아 누군가를 해치려는 거다. 인이 있으면 다 해결된다. 고은이나 이윤택이나 이런 사람들은 사설권력을 만들어 부족주의 행동을 했다. 밀양연극촌 같은게 만들어질 때 비극은 잉태된 것이다. 이외수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누가 이외수의 행동을 모방한다면?


    이내수라는 자가 화천 옆동네 홍천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상한 짓을 한다면? 리스크는 높아진다. 이외수도 술에 취해서 군수 욕을 하는 바람에 팔자가 꼬였다. 이내수 역시 술을 먹고 사고를 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고은도 술 먹다가 그랬던 거다. 친한 사람들이 우리끼리니까 괜찮겠지 하고 이상한 짓을 하다가 폭주한 거다.


    그래서 결론은? 상황을 적극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내버려 두면 저절로 된다는 노자생각 위험하다. 고은도 내버려 두었다가 이렇게 되었다. 시장자율에 맡겨놓으면 다된다는 무책임한 생각이 위험하다. 무작정 통제하려는 시도 역시 위험하다. 처음에는 인을 베풀어 자유를 줘야 한다. 상황에 맞게 조여가며 에너지를 유도해야 한다.


    축을 만들고 그 축을 공간과 시간에서 이동시켜야 한다. 그리고 적절히 손을 떼야 한다. 예는 손을 떼는 것이다. 악수를 하는 이유는 손에 무기를 들지 않았다는 확인이다. 무기에서 손을 떼야 예다. 들이대지 말고 뒤로 빼는게 예다. 그러나 다들 뒤로 빼고 있으면 사업이 안 된다. 들이댈 때는 들이대야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으로 타자를 만나고, 지로 팀을 이루고, 의로 리더를 바꾸고, 신으로 그것을 지속하며, 예로 그것을 마무리한다. 인으로는 유관장이 만나고 지로는 유비를 대표로 세운다. 의는 유비가 자리를 비웠을 때 관우가 대신하는 것이다. 유비가 없다고 관우가 조조에게 가버리면 그것은 의가 아니다. 신은 그것으로 끝까지 가주는 것이다. 


    예는 적절히 놓아주는 것이다. 혼자 다 하려 들지 말고 적절히 빠져줘야 한다. 어떤 만화가처럼 결말을 내지 않고 몇 년이나 연재를 질질 끄는 것은 독자에 대한 예가 아니다. 인지의신예는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말아야 하지만 그렇게 조절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수양을 해야 한다? 아니다. 수양 따위는 필요 없다. 점수는 필요 없다. 


    답은 돈오다. 퇴계는 평생을 수양했고 율곡은 평생을 투쟁했다. 퇴계가 틀렸고 율곡이 옳았다. 수양 말고 투쟁하라. 투쟁이 수양이다. 필자가 기레기와의 싸움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도 같다. 싸움을 멈추는 순간 타락은 시작된다. 최근 페미니즘이 뜨는 것은 투쟁의 전선이 그쪽으로 옮겨붙은 것이다. 역사의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 


    퇴계는 안동 시골에 있었다. 이윤택도 밀양이라는 시골에 연극촌이라며 아지트 틀었으니 사고가 난 것이다. 반면 율곡은 서울에 있었다. 서울에 있으면 감시자가 많아서 사고칠래야 사고칠 수가 없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언제라도 일의 수순이 중요하다. 초반 세팅을 잘 해놓으면 신경쓸 일이 없다. 자신이 축이 되어야 한다.


    축은 사방의 에너지 압박에 시달리므로 일탈이 불가능하다. 연극동네 중심, 문학동네 중심, 기레기동네 중심, 시골동네 중심이 되어 완장질 하려고 말고 천하의 중심에 머물러야 한다. 그것이 필자가 신과의 대화 곧 기도를 강조하는 의미다. 뭘 해달라고 떼를 쓰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변희재와 같은 자가 서울대 붙으면 안 된다.


    변희재 엄마가 우리아들 서울대 붙게 해주십사 기도하면 곤란하다. 서울대 망하라는 기도가 아닌가? 박근혜가 대통령 당선 기도해버리면 그건 대한민국 망하라는 저주다. 종교인들이 노상 기도를 하지만 사실은 저주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기도는 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며 그것은 인지의신예에서 예까지 가지 않는 것이다.


    고은과 이윤택이 예를 잃은 것은 예까지 갔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씨만 뿌리고 떠났으므로 예를 잃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천하의 일을 벌이면 반드시 인에 서게 된다. 적과 대결하면 반드시 지에 서게 된다. 적을 제압하면 반드시 의에 서게 된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 신과 예로 가지 말아야 한다. 씨만 뿌리고 그곳을 떠나야 한다.


    인으로 일 벌이고 지로 대결하고 의로 제압하고 여기서 끝내야지 신으로 성과를 인정받아 금뺏지나 단체장 한자리 해먹고 예로 만인의 칭찬을 듣고 우쭐대려는 자는 망한다. 양정철과 전해철이 거기서 더 욕심을 낸다면 그건 예까지 가려는 것이며 예까지 가면 필연 예를 잃는다. 안철수 꼴 나고 마는 것이다. 노추를 보이게 된다.


    1) 인지의신예는 하나의 에너지 압축과정이다.

    2)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한 인지의신예는 힘들다.

    3) 퇴계는 점오점수의 수양으로 밸런스에 도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4) 율곡은 돈오돈수의 멈춤 없는 투쟁으로 저절로 밸런스에 도달하였다.

    5) 시골에 숨어서 아지트 만들면 거의 타락하여 예를 잃게 된다.

    6) 서울에서 부단히 적과 투쟁하면 예를 잃을 찬스가 없다.

    7) 일을 벌이고 떠나는 것이 예를 잃지 않는 방법이다.

    8) 일을 마무리 지어 성과를 인정받으려 하므로 예를 잃는다.

    9) 인지의 상부구조에 힘쓰고 하부구조는 남에게 양보하는게 바른 방법이다.

    10) 현명한 사람은 본인이 직접 일을 마무리 지어 남에게 성과를 인정받으려 하지 않으니 자유인으로 멋지게 살아도 예를 잃지 않는다.

    

    낮퇴계 밤퇴계 하는 말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살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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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김미욱

2018.02.20 (23:01:24)

10연에 주인한테 물어본다는 것이 제사절차인가요? 의미 파악이 잘 안됩니다. 공자의 인은 개인적 인이 아닌 팀플레이를 주도하는 리더의 인으로 봐야 에너지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사건을 일으키는 세력전략의 원인을 제공할 뿐 그 실천에 있어서는 팀자체의 실력에 맡길 수 밖에 없는 리더의 비장함 혹은 비애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개념입니다. 에너지를 쥐어짜야하다니... 헉!

( 10연: 자세 → 제사
17연: 적절이→ 적절히 )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8.02.20 (23:44:00)

공자는 직업이 남의 집 제사에 사회자 역할 하는 사람인데

원래 가문마다 제사지내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공자가 식순을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예의로 물어봐주는 거지요.

사실은 미리 다음 순서를 귀띔해주는 건데 사람들이 오해한 거겠죠.


결혼식이라면 청중에게 말하기 전에 미리 주인장에게 귀엣말로

"다음은 신랑입장입니다. 알고나 있으세요."

"이 자슥이 날 무시하는 거야? 그 정도는 나도 안다고."

주인장이 식순을 잘 알아야 하니까 미리 귀띔해주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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