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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73 vote 0 2020.03.17 (18:04:30)


    계의 마이너스 통제원리


    SOC 투자는 비용 대비 편익이 1을 넘어야 사업을 허가한다. ‘B/C=1’은 양의 되먹임이냐 음의 되먹임이냐를 가르는 기준선이다. 경사면에서 눈덩이를 굴리면 힘을 들이지 않고 큰 눈사람을 만들 수 있다. 눈덩이 효과다. 경사면의 기울기가 음이냐, 양이냐에 따라 피드백 방향이 결정된다.


    바이럴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입소문이 어떤 기준을 넘겨야 마케팅에 성공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한 명이 평균 2.2명을 감염시켜 팬데믹을 일으킨다. 질본의 검사속도가 신천지의 전파속도를 이기면 바이러스는 통제된다. 가성비라는 말도 있다.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황금률과 같은 기준선이 있다. 어떤 대칭된 둘의 상대적인 관계에서 계의 진행하는 방향성이 얻어진다. 비례식 형태로 존재하는 그 기준선을 중심으로 사유해야 한다. 그것이 계의 통제가능성다. 구조론은 어떤 특정한 사실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패러다임 전반을 논하는 것이다.


    인식 중심의 언어에서 존재 중심의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 인식론은 대상이 있다. 사과를 생각한다면 사과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유해야 하는 것은 관측자에게 지목되는 어떤 대상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가르는 그 기준선이다. 그것이야말로 자연에 실재하는 실존이기 때문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했다. 내가 사과를 봤는지 사과가 내게 보여주었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사과를 이겼을 때 사과는 그곳에 있다. 자연의 에너지 방향성을 중심으로 언어를 바꾸고 사유를 바꾸고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고 그것은 갈 수 있는 곳으로 간다는 것이다. 


    사회도 문명도 인간도 문화도 마찬가지다. 결따라 간다. 인간은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과연 할 수 있나? 이겨야 할 수 있다. 보통은 옳다, 그르다의 논리를 사용한다. 옳으면 하고 그르면 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애초에 할 수 없는 일로 옳고 그름을 논하니 허무하다. 


    자연의 실질을 중심으로 사유해야 한다. 닫힌계 안에서 기준선을 찾아내야 한다. 황금률은 반드시 있다. 비례식이 하나씩 숨어 있다. 에너지의 방향성은 균일한 계를 이루고 내부에 대칭을 조직한다. 대칭은 1 대 1로 교착된다. 에너지의 효율성이 1을 넘으면 메커니즘은 작동을 시작한다. 


    닫힌계 내부에 비용과 편익의 대칭을 갖추면 메커니즘이고 비용 대비 편익이 1을 넘겨서 양의 되먹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스템이다. 편익이 비용을 이긴다. 그냥 옳다, 그르다 판단은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메타판단을 요구한다. 그것은 은폐되어 있다. 숨은 전제가 있는 것이다.


    막연한 정의감이나 평등 주장은 얼마든지 왜곡된다. 에너지가 진실하다. 계의 통제가능성이 판단기준이다. 옳다/그르다 외에도 맞다/틀리다, 같다/다르다, 있다/없다, 이다/아니다 판단이 있다. 소도 누을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했다. 옳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계는 하나의 사건 안에서 다섯 번에 걸쳐 비용 대비 편익을 판정한다. 다섯 번 게임을 치러서 승자와 패자를 판정한다. 이겨야 이긴다. 내부적으로 ‘B/C=1’을 넘기는 방향으로 사건은 진행한다. 미통당이 ‘B/C=1’을 넘기는 방법은 지역주의 조장이다. 친박을 끌어안고 남북대결 조장한다. 


    그럴수록 대한민국 전체로는 1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미통당 내부를 통제하다가 대한민국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내부를 이기고 외부에 진다. 선거전략은 어떻게 내부통제에 성공하면서도 대한민국 전체에서 ‘B/C=1’을 넘길 수 있는가의 관점으로 사유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이겨야 한다.


    잘할 필요 없고 이기는 선의 확보가 중요하다. 한곳에서의 압승보다 전반적인 판관리를 통해 도처에서 고르게 1을 넘겨야 한다. 총선에서는 과반수가 중요하고 대선에서는 51퍼센트가 중요하다. 압승하면 긴장이 풀려서 내분이 일어나므로 오히려 좋지 않다. 51 대 49의 관점이 필요하다.


    세상 모든 것을 이 관점으로 바라보는 눈을 획득해야 한다. 민주주의든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마찬가지다. 국민을 동원하는데 있어서 국민을 각성시켜 가는 속도로 반대측이 반발하는 강도를 이기는 것이 민주주의다. 전체주의는 국민이 정부를 믿고 긴장하지 않으니 위기대처에 약하다.


    방법은 희생양 찾기다. 누군가를 희생시키면 깜짝 놀라서 다들 긴장하므로 국민을 동원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우한시민을 희생시켰다. 희생은 비용이다. 전체주의는 희생양을 찾다가 국민동원에 편익보다 비용이 커진다. 민주주의는 전 국민이 선거를 지켜보고 있으니 동원에 유리하다.


    대신 반대세력의 저항으로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은 권력을 분점한 지지세력이 부담한다. 무리한 사회주의 정책은 비용을 고려하지 않으므로 현실성이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세상이 마이너스인 이유는 ‘‘B/C=1’을 넘기는데 언제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고 한다.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사기꾼은 시간차를 이용한다. 미실현 이익은 빠르게 반영하고 지출된 항목을 뒤늦게 기재하는 방법으로 회계장부를 조작한다. 그러다가 뒤늦게 청구서를 받는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 방법이 먹히느냐 먹히지 않느냐가 우선이다. 옳고 그름은 그다음이다.


    민주주의든 자본주의든 전체주의든 사회주의든 비용 대 편익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바이럴 마케팅을 쓰니 비용 대비 편익이 높다. 전체주의는 누군가를 희생시켜 비용을 부담시키고 장부에서 누락하는 회계부정이다.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키고 그 부분을 기록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역시 시행착오와 불합리로 비용을 유발시킨다. 환경오염에 따른 비용을 산정하지 않거나 원전폐기에 드는 비용을 장부에 적지 않는 수법을 쓴다. 사회주의 정책 역시 비용개념 없이 접근하는 수가 많다. B/C가 1을 넘기는 방향으로 사회를 정밀하게 디자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kilian

2020.03.18 (06:46:22)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 방법이 먹히느냐 먹히지 않느냐가 우선이다. 옳고 그름은 그 다음이다. 민주주의든 자본주의든 전체주의든 사회주의든 비용 대 편익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http://gujoron.com/xe/1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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