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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19 vote 0 2020.03.04 (13:31:53)

    종교는 이단이다


    종교인이 읽을 글은 아니다. 이곳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곳이다. 들을 귀 없는 자는 가라. 모든 종교는 이단이다. 종교는 그 자체로 우상이기 때문이다. 나무를 깎고 돌에 새기고 점토를 붙여야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므로 우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장님이 무엇을 봤다면 그게 이단이다.


    기독교는 탄생부터 유대교의 이단이다. 이단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신학을 배우지 않는 자가 무슨 말을 하면 그게 이단이다. 한국에 이단 종파가 많은 이유는 목사들이 신학을 모르기 때문이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면서 사회에 기성의 권위가 파괴되어 종교의 수요는 넘치는데 신학을 체계적으로 배운 목사가 부족했다.


    목사가 헛소리를 하면 신도들이 항의하여 바로잡아야 하는데 신도들은 당연히 신학을 모르니 이단의 등장은 필연이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무리가 언제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정품이 부족하면 짝퉁이 팔리는 것과 같다. 카톨릭이라는 개념은 이단을 배척하는 과정에 발생했다.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렸다.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교리를 통일해야 했는데 그들이 내린 결론은 '모른다'였다. 왜냐하면 몰랐기 때문이다. 안다고 하면 그게 이단이다. 이것을 부정신학이라고 한다. 초기에는 긍정신학을 했는데 깊이 들어가면 결국 부정신학이 된다. 이는 필연적인 법칙이다. 이 부분이 구조론과 일치한다. 그래서 필자가 논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아닌 구조론을 논한다는 말이다. 신에 대해서는 인간이 알 수 없다. 안다고 말하면 논리가 필요하다. 어떤 논리든 반대논리가 가능하다. 이 게임은 먼저 말을 꺼내는 자가 무조건 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거짓말하기 시합이다. 누가 황소만 한 생쥐를 봤다고 말하면, 난 코끼리만 한 다람쥐를 봤다고 받아치면 된다.


    아리우스가 먼저 아는 척했다. 논파 되었다. 이단으로 몰린 것이다. 네스토리우스도 아는 척 했는데 역시 논파 되었다. 긍정은 플러스고 부정은 마이너스다. 부정신학이 긍정신학을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다. 이것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원리가 그런 거다. 주장하는 자는 지고 언제나 반격하는 자가 이긴다.


    아닌 것을 배제하면 남는 것이 정답이다. 이것이 구조론의 가르침이다. 자의적인 해석을 가하는 이단을 배척하면 남는 것이 정통이다. 이것이 카톨릭이다. 그렇다면 삼위일체는 뭐냐? 부정신학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 삼위일체도 당연히 이단이다. 다만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파를 깨는 논리를 제공했으므로 봐줬다.


    종교회의에는 신도 몰래 참석했을 것이 틀림없으므로 봐주자는 암묵적 합의다. 삼위일체는 신과 예수를 따로 구분하는 논리에 방어하는 형태로 제안되었으므로 비판되지 않았다. 그러나 충분히 논파가 가능하다. 어떤 논리든 말이 나오면 무조건 논파 된다. 이는 구조론의 절대법칙이다. 필자는 어떤 주장도 깰 수 있다.


    물론 구조론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 구조론은 형태를 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에서 형태가 유도된다는 것이 구조론이다. 처음부터 형태가 나오면 무조건 깨진다. 질에서 입자가 나온다. 처음부터 입자가 나오면 당연히 깨진다. 즉 진리는 이렇다고 말할 수 없으며 이게 이러면 저게 저렇다는 조건부 형태로만 제출된다.


    이게 맞다고 하면 틀리고 이게 맞으면 저건 틀리다고 말하면 맞다. 논리학이란 것은 직접 진리를 찾는 학문이 아니며 진리가 아닌 것을 배제하는 학문이다. 논리학의 고수는 모든 삿된 주장을 철저하게 박살 낼 뿐 자기주장을 갖지 않는다. 귀신, 초능력, 텔레파시, 사차원, 무신론, 이신론을 죄다 논파하면 남는 것이 신이다.


    나는 신을 봤다고 말하면 안 된다. 신을 봤다고 말하는 모든 거짓 주장을 논파하다 보니 모두 한 방향으로 수렴되더라. 이렇게 말해야 한다. 카톨릭은 각종 이단을 논파하는 과정에 형성되었다. 삼위일체는 신을 성부와 성자로 나누려는 시도에 대한 반대논리로만 기능해야 한다. 그 자체가 논리가 되면 삼위일체도 이단이다.


    성경을 자의로 해석하면 안 되는데, 자의적인 해석을 논파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어진 논리에는 신의 뜻이 반영되었을 것이 분명하므로 용인된다는 식의 아전인수 논리가 만들어졌으니 편리한 꼼수다. 엄밀히 말하면 모두 이단이고 모른다가 정답이다. 모르기 때문에 믿는다. 종교는 믿음이고 추론은 종교가 아니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구조론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자들의 공통점은 일원론이 왜소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답이 하나밖에 없다고 하면 왠지 불안하다. 내게는 주어지는 역할이 없는겨? 이렇게 되는 것이다. 다양성을 주장해야 내게도 떨어질 국물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감각적인 대응이며 진지한 태도가 아니다.


    이런 자들은 구조론을 배울 자격이 없다. 사실은 일원론이 다원론보다 풍부하다. 일원이면 방향이 있고 방향을 얻으면 공간이 생기고 공간이 생겨야 풍부해진다. 다원은 순식간에 획일화된다. 방향이 없으면 서로 침범하여 다치게 된다. 점차 안으로 쪼그라든다. 똘똘 말려버린다. 그러므로 다원주의는 언제나 궁핍하다. 


    그리스는 다양한 신들 때문에 왜소해지고 로마는 일원론을 받아들이고 팽창했다. 뭐든 하나가 되어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성부는 신이고 성자는 인간이 본 신이며 성령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신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어떤 하나가 있으면 반드시 둘로 나타나며 움직이면 셋이고 멈추면 다섯이 된다.


    성부가 있는 것은 하나이기 때문이고 성자가 있는 것은 그 하나를 당신이 봤기 때문이고 성령이 있는 것은 그 하나를 당신이 전달하기 때문이다. 존재가 보이면 무조건 둘이고 움직이면 무조건 셋이다. 삼위일체가 더 직관적이라는 말이다. 현실에서 경험해서 알잖아. 논리로 싸우면 밀리는데 직관으로는 삼위일체가 이긴다.


    삼위일체의 의미는 화신을 부정하는 데 있다. 예수는 신의 화신이 아니라 신 그 자체다. 힌두교나 불교의 아바타가 아니다. 손오공이 머리털을 뽑아 분신을 만들어 요괴와 싸우도록 하는게 화신이다. 사실 삼위일체는 복잡한 논리다. 논리가 있으면 논리가 권력을 쥔다. 율법이 있으면 율법사가 권력을 쥐니 이미 타락했다.


    보혜사는 유대인을 탄압한 그리스의 서기관이다. 원래 재판은 그리스 문화다. 유대교는 족장이 결정한다. 보혜사와 증거가 등장하면 반 유대교다. 유대인을 광야로 쫓아 보내고 디아스포라를 일으킨 유대인의 주적 그리스의 문화가 기독교에 끼어든 것이다. 증거가 어떻고 보혜사가 어떻고 떠드는 자들이 기독교의 적이다. 


    바리새인과 율법사들도 마찬가지다. 믿음 위에 논리나 율법이 있으면 그게 우상이다. 모든 논리는 반대논리가 가능하다. 논리는 삿된 주장을 논파하는 도구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형태가 있는 것은 모두 가짜다. 어떤 것을 주장하면 안 된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틀린 것이며 이것이 맞으면 저것이 틀렸다는 판정이 진짜다. 


    왜 언제나 부정이 긍정을 이기는가? 긍정은 플러스고 플러스는 붙이는 것이며 붙이려면 접착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상부구조가 필요하다. 긍정신학을 하려면 신 위의 신을 만들어야 한다. 성부 밑에 성자를 두려면 성부 위에도 뭔가 하나를 올려야 한다. 이런 것은 아마추어가 봐도 직관적으로 논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긍정할 수도 있다. 우리가 긍정하는 것은 한국 위에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얕은 부분에서는 긍정신학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 문제로 가면 부정신학만 가능하다. 꼼수로 긍정신학을 하는 방법이 있기는 있는데 그것은 모세의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구해오는 것이다. 이것은 모르몬교가 쓰는 수법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귀타귀

2020.03.04 (13:59:35)

破邪顯正(파사현정)

[레벨:1]dksnow

2020.03.04 (22:43:11)

하나님 은혜따위로 기독교가 번성한게 아니라,

식민과 전쟁, 급속한 도시화로 기성권위가 파괴된 자리에,


유교+ 이스라엘 + 교회당: 삼위일체로 기독교가 번창함. 



아랍의 대몽골 침탈 이후의 급진신앙
미 청교도의 급변 이민 이후의 급진신앙
[레벨:10]다원이

2020.03.05 (08:58:01)

"긍정신학을 신려면 신 위의 신을 만들어야 한다."
이 부분 바로잡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0.03.05 (09:47:35)

고쳤습니다.

[레벨:2]미호

2020.03.05 (11:54:22)

구조론 싸이트가 제가 알고 있는 유일한 청정구역입니다. 종교사회에서 무종교자가 마음편하게 살수 있는 그런날이 올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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