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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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71 vote 1 2018.09.26 (21:10:43)

     위하여에서 의하여로


    구조론마당 구조론의 기원 코너에 들어가는 글입니다.


    어떤 말이든 뒤에 '~라고한다'를 붙여본다. 사실에서 사건으로 도약한다. 사건에는 방향성이 있다. 에너지가 가는 루트가 있다. 결이 있다. 결대로 간다. 사건의 주최측과 링 위에서 뛰는 선수는 포지션이 다르다. 갑을관계가 있다. 서열이 있다. 에너지를 틀어쥐는 쪽에 권리가 있고 권력이 있다. 이는 언어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방향이 어긋나면 뭔가 어색해지는 위화감이 느껴진다. 속이 거북해진다. 스치로폴로 유리창을 문지르면 괴로운 소리가 난다. 그렇지 않은가? 소실점이 맞지 않는 조선시대 민화나 이현세 그림을 보면 속이 거북해지고 불편해진다. 장에 개스가 차고 소화가 안 된다는 느낌이 든다. 등이 따끔따끔하고 체온이 확 올라오는 느낌이다. 


    견딜 수 없게 된다. 피타고라스가 대장간 앞을 지나다가 대장장이 망치소리에 화음과 불협화음을 구분한 것과 같다. 5살짜리 꼬마도 화음을 느낀다고 한다. 필자는 전혀 못 느끼지만. 아기가 실로폰을 두드리고 놀며 엄마 엄마! 이 소리와 이 소리가 서로 친한가 봐. 하고 엄마에게 말을 걸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몸으로 느껴야 한다.


    못 느낀다면 사실이지 할 말이 없다. 필자와 같은 지독한 음치에게 음악을 가르쳐 봤자다. 구조치가 있는 거다. 언어든 그림이든 필자는 서로 엮여 있는 둘의 관계가 어색하면 거기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짜증을 낸다. 몸으로 느끼는 물리적 반응이다. 통증과도 같다. 설명해 달라고 하면 솔직히 피곤하다. 설명을 들어봤어야지 참.


    아마 4학년쯤 되었을 것이다. 방학공부 책에 나오는 내용인데 물속에 서 있는 학이 한쪽 다리를 들고 있는 이유는 체온을 절약하기 위해서란다. 위해서 나왔다. 위하여 나오면 불편하다. 속에 메스꺼워진다. 기분이 나쁘다. 위한다는게 뭘 어떻게 한다는 거지? 의하여라 하면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상쾌한 느낌이다.


    위하여라면 뭔가 연결이 끊어진 어정쩡한 느낌이다. 부모들은 말한다. 이게 다 너희를 위해서야. 너희 형제들이 한 달에 200만 원씩 모아서 내게 주는 용돈을 내가 한 푼이라도 쓰는 줄 아느냐? 다 교회에 갖다 바친다. 그게 다 너희를 위해서지. 다 너희 잘되라고. 이런 말을 들으면 속이 뒤집어진다. 뭔가 아귀가 안 맞는 장면이잖아.


    교회에 돈을 가져다 바치는데 왜 자식이 잘된다는 거야. 또 왜 자식이 잘되길 위하는데? 위한다는게 뭔데? 영어로 for는 위하여라고 번역되지만 앞세운다는 뜻이다. 우리말 위하여는 지금도 그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 필자는 이런 부분에 유독 민감하다. 묵과할 수 없다. 이런 막연한 레토릭을 들으면 화가 난다. 우리 이러지들 말자.


    말을 똑바로 하자고. 에너지 전달경로 위주로 말해야 한다. 의하여가 맞는 것이다. 학의 외다리 사건은 필자가 똑똑히 기억하는 한 가지 내용이고 교과서 안에서 무수히 이러한 충돌이 일어났다. 문장마다 잘못되어 있다. 위하여라고 씌어진 부분은 전부 잘못된 기술이다. 위하여는 논리적이지 않고 증명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생물의 진화와 관련하여 위하여라는 표현이 많다. 쓰지 말아야 할 비과학적인 언어구사라 하겠다. 생물의 진화는 유전자에 의하여지 무슨 위하여라는 말인가? 주어가 없잖아. 새는 날개가 있으니까 나는 거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멀리 보겠다는 조나단 리빙스턴 갈매기의 꿈을 위해서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장난하자는 거?


    어떤 거창한 목적과 의도가 들어가면 일단 가짜라고 보면 된다. 누구의 목적인데? 주어가 없다. 목적은 플랜에서 나오고 플랜은 여러 가지 사건의 연결이다. 그 연결의 사슬을 낱낱이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의 플랜인지를 말해야 한다. 그런 전제없이 진술은 억지다. 위하여는 모두 문장이 옳지 않은 전제생략 억지 진술이다.


    위하여라고 쓴 사람은 모두 국어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어야 한다.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는거지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먹는 것은 아니다. 만족감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이미 먹기로 작정한 상태에서 먹어본 사람이 메뉴를 고르는 절차에 불과하다. 개연성은 있어도 논리적 필연성이 없다. 필연적이지 않으면 가짜라 하겠다.


    과연 새가 한쪽 다리로 서는 이유가 체온절약 목적 때문일까? 아니다. 뭐든 한쪽 다리로 서는게 더 편하다. 사람도 짝다리 짚고 한쪽 다리로 벽에 기대 설 때가 많다. 두 다리에 체중을 배분하려면 뇌가 깨어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믿기 어렵다면 운동장에 가서 한 시간만 서 있어봐라. 뇌가 피곤하다.


    이런건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느낌이 딱 오잖아. 의하여는 필연적이지만 위하여는 필연적이지 않으므로 간격이 띄어져 있는 듯한 허술한 느낌이다. 조리에 맞지 않고 아귀가 맞지 않고 톱니가 맞물려 있지 않다. 사람이든 학이든 한쪽 다리로 서는게 편한 것은 뇌가 체중을 분배하는 문제가 힘들기 때문인데 물리적으로 직결된다. 


    톱니바퀴가 물려 있다. 그러나 체온절약 문제라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커다란 의심을 일으켜 관찰하였더니 오리도 닭도 비둘기도 거위도 수시로 한쪽 다리로 서 있더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날씨가 더워도 새는 보통 한쪽 다리로 선다. 이와 비슷한 위하여의 오류는 교과서에 무수히 많다. 일대사건이다.


    이건 과학계 전체의 수준에 문제가 있는 거다. 한국 교과서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문명의 수준문제다. 인류는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말인가? 위하여는 방향이 없지만 의하여는 방향이 있다. 서열이 있다. 위아래가 있다. 질서가 있다. 생물의 진화가 위하여라면 방향은 오리무중이지만 의하여라면 일정한 방향성이 있는 것이다.


    에너지의 효율성이 생물이 진화하는 하나의 방향성이 될 수 있다. 모든 생물은 에너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간다고 보면 대략 맞는 거다. 에너지가 칼로리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결정에도 에너지가 든다. 의사결정을 빠르고 편리하게 하는 쪽으로 생물은 진화해 왔다. 예컨대 지네는 발이 너무 많다. 


   발들이 서로 엉키면 곤란하다. 인도신화의 아수라 신족은 팔이 여섯 개다. 여섯 개의 팔이 서로 엉켜서 방해가 되지 않을까? 창을 던지려다가 자기 팔에 걸려 곤란해진다. 지네는 키가 작지만 만약 지네가 키를 키운다면 그 문제가 부각된다. 관절이 많은 삼엽충이나 나선이 많은 암모나이트는 비효율적인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다. 


    포식자의 공격에 맞서 동서남북에 상하로 자유자재로 운동하려면 구조는 최적화되어야 한다.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 문제에 의하여 진화가 촉발된 것이다. 포유류의 털은 에너지를 보존하기에 적합하다. 두 다리로 걷는 인간의 신체구조는 방향전환에 적합하다. 체온을 절약하기 위하여 혹은 방향전환을 위하여라고 말하면 안 된다. 


    유전자에 목적과 의도가 있을 리 없다. 주어가 없다. 의하여의 주어는 유전자인데 위하여는 주어가 없다. 위하여는 목적과 의도인데 이는 인격체만 가지는 것이다. 진화 원인은 자원의 효율성 문제에 의하여다. 보다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과 효율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이겨온 것이 진화의 역사다.


    의하여는 원인과 결과를 직결로 연결한다. 위하여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애매한 것이다. 라고한다의 법칙은 허무주의와 냉소주의로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의하여의 방향성으로 보면 그 냉소와 허무를 극복하게 된다. 먼저 사실로 본다. 사실에는 분명한 선악이 있고 정의가 있다. 사건으로 보면 주최측과 선수가 있다.


    역설이 작동한다. 라고한다의 법칙을 적용해서 사실에서 사건으로 도약하면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지고 정의와 불의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로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의하여를 적용하면 다시 일원론으로 돌아온다. 선과 악이 구분되고 정의와 불의가 판명된다. 에너지의 결에 진정한 답이 있다. 무엇인가?


    사실은 선이 악을 이긴다. 라고한다를 투입하면 사건은 역설이 작용하여 악이 선을 이긴다. 그런데 사실의 선은 개인의 선이다. 의하여를 투입하면 개인이 아닌 집단의 선이 된다. 사건으로 보면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지고 말지만 의하여로 보면 집단의 방향성이 선이 된다. 명백해진다. 사실로 보면 흥부의 선이 놀부의 악을 이긴다. 


    사건으로 보면 흥부와 놀부는 다른 에너지원을 가지고 있다. 각자 선역과 악역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다. 히어로와 빌런은 각각 선과 악을 맡아 연기하는데 항상 악역이 더 매력적이다. 찌질이 설까치보다 쾌남아 마동탁이 낫다. 사건에서 선악과 정의가 뒤집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의하여로 보면 다시 원래 선악으로 돌아온다.


    집단으로 보면 흥부는 팀플레이를 할 줄 아는 참된 진보주의자이고 놀부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보수꼴통이다. 왜? 에너지는 언제나 집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개인에게는 에너지가 없다. 무인도에 혼자 사는 사람은 존엄도 자유도 사랑도 성취도 행복도 없다. 모든 도덕적 가치는 집단 안에서의 무의식 형태로 작동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했고 중학교 2학년 때는 마르크스를 버리고 허무주의와 냉소주의 다원주의 상대주의 삿된 길로 빠졌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다시 그 허무와 냉소를 극복하고 공자의 제자로 돌아오게 되었다. 만유의 근원에는 하나의 에너지원이 있다. 상대주의는 질과 량 사이의 중간과정일 뿐이다.


    입자 힘 운동에는 상대가 있다. 맞대응이 있다. 역설이 있다. 의도와 반대로 된다. 선은 굴러서 악이 되고 악은 굴러서 선이 된다. 해적국가 영국이 갑자기 기사도를 외치며 에헴 하는 식이다. 미개한 일본이 감히 한국에 예의를 가르치려 든다. 그러나 질과 량은 상대가 없다. 맞대응할 수 없다. 절대성의 세계다. 옳고 그름이 명백하다.


    질과 량도 상대가 있고 대칭이 있지만 닫힌계 안에는 없고 바깥에 있다. 에너지는 엔트로피에 의거하여 한 방향으로 일제히 나아간다. 그 방향은 언제라도 수렴방향이다. 의하여는 수렴방향이고 위하여는 확산방향이니 위하여는 무조건 틀리고 의하여는 무조건 맞는 것이다. 방향이 옳으면 단기적으로 불리해도 계속 가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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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19]이상우

2018.09.27 (00:53:56)

남들은 못 느끼지만, 나만이 느끼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배우지 않았는데 배운 사람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76억 인류는 각자 그 누군가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더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유전자에 의해 가능합니다. 만남에 의해 꽃을 피웁니다. 

유전자는 X에게 기본 능력치를 부여하고, 만남은 유전자와 유전자를 연결시켜 새로운 삶의 유전자를 만들어 냅니다. 유전자와 만남, 이 두가지가 인간과 공동체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개인의 에너지, 관계의 에너지, 공동체의 에너지가 세상을 결정합니다.  


[레벨:2]고향은

2018.10.03 (12:21:52)

사람의 사회에는 사람의 '나르시시즘'이
사람 외의 모든 대상을 의인화 시켜서
사람 만의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리빙스턴의 갈매기의 꿈 처럼
위하여 속에는 대상을 의인화시켜 생각하는
사람의 나르시시즘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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