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왜 망했을까?
초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신라말기의 초적은 왜 일어났을까?
신라 말기까지는 무쇠솥이 보급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철기의 생산력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솥이 없으니 토기로 밥을 짓는데 토기가 고열을 견딜 수 있을까?
증기로 떡을 찐다면 물의 온도인 100도 이상 가열되지 않는다.
경주 일대에는 토기로 만든 떡시루 손잡이가 쉽게 발견된다.
필자가 주운 것만 해도 수십 개를 넘으니
뭣 같이 생긴 게 길바닥에 널려 있다.
떡시루 손잡이는 모양이 특이하다.
물론 어릴 때는 그게 뭔지 몰랐다.
신라가 망한 것은 장보고의 해상활동 때문이다.
경주정권의 지방 장악력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이후 회복되지 않았다.
청해진이 있는 호남일대를 되찾기 위해 명장 견훤을 파견했으나
견훤이 순식간에 호남을 평정하고 눌러앉았다.
인구가 백만에 근접했던 경주의 식량은 호남에서 실어 왔는데
장보고 이후 뱃길이 끊겨 식량공급난으로 망한 것이다.
초적이 일어난 이유는 철기의 보급 때문이다.
산라말에 제철기술 발달로 철의 생산력이 증대하자
농민이 철제무기로 무장하고 대항하기 시작한 것이 초적이다.
중앙의 권력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물론 상당부분 필자의 개인적인 추론이다.
생산력의 변화가 역사의 대강을 결정한다는 결론.
장보고 죽고 50여 년 만에 신라는 망했다.
신무왕이 장보고를 죽인 것도 이해가 된다.
시스템이 깨지면 왕조는 이미 끝장난 셈이다.
경주 주변에는 그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만한 토지가 없다.
식량을 외부에 의존한 것이 신라 발전의 원동력이며
그것이 치명적인 급소가 되어 나라가 망한 것이다.
자급자족은 멸망의 확실한 원인이며
핵심자원의 외부의존은 진보의 확실한 동인이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식량과 석유를 동시에 외부에 의존하는 한국은
그 덕에 발전하고 있지만 역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핵심이 차단되고 고립되면 당연히 죽는다.
천 년을 이어온 신라가 순식간에 망해버리고
그 뒤로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은 이유는 먹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밥을 먹어야 저항이라도 해보는 것이다.
당나라는 역대 중국왕조와 다른 특이한 왕조였다.
무역이 번성했고 무역은 지방 토호들을 살찌게 했으며
신라왕실에 원심력으로 작용하여 국가해체를 가속화시켰다.
이는 역으로 고대국가들이 무역을 중시했으며
무역로를 장악하려는 제해권 투쟁이 고구려와 왜 사이에 치열했던 것이다.
고대국가들이 무역에 의존했다는 사실을 알면 삼국사의 흐름은 거의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