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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223 vote 0 2013.11.08 (15:22:12)

 

    아래는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본 글입니다. 반론하거나 논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구조를 꿰뚫어보는 것에 흥미가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호랑이를 봤다'고 주장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본 것이 과연 호랑이인지, 혹은 고양이인지를 두고 논증하려고 합니다. 구조론은 그런걸 논하지 않습니다. 호랑이 호랑이 아닌 무엇과 목격자가 같은 시공간의 지점에서 대칭성을 형성했다는데 의미를 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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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톨이 반자연주의자


    저는 형이상학자입니다. 저는 메타-피직스가 쓸모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타-피직스란 무엇일까요? 피직스는 자연에 대한 탐구입니다. 여기서 "자연"은 단순히 "인공"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자연산이 아니다", "부자연스럽다" 등이라고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도처에 자연적이지 않은 것이 있다고 믿곤 합니다. 특히 종교인과 예술가들은 너무 쉽게 자연 아닌 것이 존재한다고 믿어 버립니다.


    자연과학은 자연에 대한 엄청난 지식을 수천 년동안 구축해왔습니다. 저는 과학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오직 과학에만 진실이 담겨 있다는 과학주의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진실이 결국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그래서 오직 욕망만이 진정한 인식이라는 포스트모던 인식론에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과학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힉스 입자 예견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저는 입자물리학을 단순한 신화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입자물리학은 자연세계의 근본 재료에 대해 탐구합니다. 렙톤들 6가지, 쿼크들 6가지, 게이지 보존들 4가지, 그리고 힉스 입자들이 자연세계를 구성합니다. 그 이외에 무엇이 있을까요? 이런 입자들이 복잡하게 조합되면 거기서 물질 아닌 것이 툭 튀어 나올까요? 그런 것이 툭 튀어 나온다는 견해를 창발론이라 합니다. 우리는 창발론을 어느 정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비록 우리가 최신 입자물리학을 모른다 하더라도, 자연세계가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원자 속에 물질 아닌 것이 존재하지 않겠지요. 원자가 영혼을 갖고 있지는 않겠지요? 그렇다면 원자와 원자 사이에 물질 아닌 것이 스며 들어 있을까요? 여기서 "자연주의"라는 견해가 생깁니다. "자연주의"라는 말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유물론" 또는 "물리주의"를 사용하면 됩니다. "자연적natural"과 "물리적physical"은 본디 같은 뜻입니다. 하나는 라틴어에서 왔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어에서 왔다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화학, 생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등 모든 자연과학 담론은 물질에 관한 것입니다. 자연주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세계 속에는 물리적인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세계는 물질세계이며 자연세계가 세계의 모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 주변 세계를 돌아 봅시다. 거의 모든 것들이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물리주의를 받아들이시나요? 아니면 이런 이야기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나요? 이런 물음을 진지하게 묻고 답하는 사람은 피직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메타피직스를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메타피직스를 싫어한다 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자연 아닌 것, 물질 아닌 것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아니 그냥 물리주의를 거부하면 되지 않나, 라고 반문하실지 모르겠네요. 맞습니다. 그냥 반대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거부는 제가 선호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저는 물리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형이상학 체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든, 언어에 대해 이야기하든,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든, 인식에 대해 이야기하든,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든, 저는 언제나 물리주의에 반대하는 기조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저 자신을 외톨이로 만들고 있습니다. 철학계에서도 과학계에서도 물리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반대 논증을 펼치는 것은 점차 인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학자들 간 학술 토론을 할 때 제 견해는 너무 고집스러워 보입니다. 저의 이 고집은 학자로서 제 양심에 근거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그 고집이 저의 종교에 근거하고 있다고 쉽게 단정해 버립니다. 저의 철저한 반자연주의는 종교가 아니면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제 견해는 종교 교리가 아니라 지성에 근거하고 있다고 강변하곤 하는데 결국 이런 강변은 저를 더욱 외톨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외톨이라서 싫다는 것이 아니라, 대화에서 자신감을 잃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종류의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지성적 즐거움을 줄 능력이 저에게 없습니다. 제가 좀 더 부드럽고 재미 있는 사람이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저는 너무 서툴고 거칠고 딱딱합니다.


    자연주의자와 논쟁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그들은 자연주의에 대한 반대 논증을 먼저 저에게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자연주의자들은 자신의 자연주의를 거의 명백한 진실로 받아들입니다. 자연주의를 가정한 채 펼치는 거의 모든 담론에 대해 저는 뿌리로 내려가 자연주의를 의심하지만 친구들에게 저의 이런 의심은 제가 이성을 존중하지 않는 증거로 비추어집니다.


    결국 모든 형이상학 대화는 아주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한없이 길게 이야기할 수 없다면 형이상학 논쟁은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요즘 생각하곤 합니다. 제 자신은 더욱 무르익어야 하고, 더욱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과 한없이 길게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아끼는 친구들 앞에서 더 이상 제가 무례한 논쟁자로 비추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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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게 써놨지만 나는 이 분이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있다/없다, 부분/모든. 이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영역입니다. 과연 철학자들은 좋은 '사유의 모형'을 갖고 있느냐입니다. 


    갈릴레이가 '나는 토성의 귀를 봤다'는 주장은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다만 '나는 망원경이 있다'는 주장이 관심을 끈다는 거죠.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토성의 귀를 봤다면 나는 그 망원경을 빌려서 목성의 위성 이오를 보겠다는 거죠.


    즉 갈릴레이의 발견에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갈릴레이의 발견에 연동되는 나의 발견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갈릴레이가 토성의 귀를 봤든 말든 아 누가 물어봤냐고요? 귀가 있든 말든 그건 토성 사정이지.

    

    이 철학자의 망원경은 무엇일까? 그가 본 것이 토성의 귀든 아니면 토끼의 똥꾸멍이든 중요한건 아니죠. 그가 가진 망원경이 중요한 거죠. 이 분은 왜 자신의 망원경을 자랑하지 않을까에 저는 흥미를 두는 것입니다. 


    자연주의/반자연주의 대칭성이라는 망원경이 있습니다. 둘은 대칭적이므로 이 논쟁은 무의미합니다. 사과가 있는데 그 사과를 직접 보든 거울에 비춰 보든 같다는 거죠. 즉 자연주의와 반자연주의는 같은 대칭쌍입니다.


    자연주의로 반자연주의를 전부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관측자의 포지션입니다. 관측자는 자연주의라는 관측대상을 보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 관측대상의 바깥엔 누가 있죠? 관측자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측자 역시도 하나의 관측대상인 것입니다. 즉 자연주의라는 대상의 내재적 질서는 그 반대쪽 반자연주의라는 또다른 관측대상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양수의 반대 음수를 발견한 것과 같고, 물질의 반대 반물질을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 관측대상이 관측대상이듯 관측자 그 자체도 관측대상이라는 거울에 비추어보는 관측대상입니다. 


    관측자는 어떤 대상을 관측하면서 동시에 그 대상이라는 거울에 비쳐 보이는 자신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관측자는 관측결과 고추는 맵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동시에 인간은 매운맛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고추는 맵다와 인간은 매운맛을 느낀다는 동시에 포착됩니다. 짜장면을 관측한 결과 나는 짜장면이 싫어 하고 보고를 올리면, 그 보고는 짜장면 보고서임과 동시에 관측자 자신의 성격-짜장면을 싫어하는- 보고서입니다.


    결론적으로 자연주의/반자연주의든 혹은 민주주의/전체주의든 자본주의/사회주의든 무슨 주의든 대칭쌍이 있으면 그 둘을 아우르는 또다른 포지션이 상부구조로 있고 그 상부구조의 맞은편에 하부구조가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가 흥미있는 망원경이라는 거죠. 


    결론

    * 자연의 내재적 질서가 있다.

    * 자연 바깥에도 내재한 질서가 있다.

    * 둘은 동일한 것이며 하나는 소거된다.

    * 자연은 자연보다 크다. 

    *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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