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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801 vote 1 2015.01.25 (21:46:04)

  

    아기들은 뒤뚱대며 어렵게 걸음마를 배운다. 사실 걸음마가 쉬운 것은 아니다. 뇌가 두 다리에 체중을 분배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 인류가 아직 자연스럽게 걷는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지 못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기 때 걸음마를 어렵게 배웠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마치 처음부터 잘 걸었던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다 어느 때 돌발상황을 만나 쉽게 걸음을 떼지 못하는 아기처럼 당황하게 된다. 보통은 주변의 도움에 의지한다. 소년은 부모의 도움에 의지하여 그러한 곤란한 상황을 피하고, 성인은 부하를 동원하여 돌발사태를 미연에 방지한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는 관문이 있다. 첫 연애는 누구나 서투를 수 밖에 없다. 이등병 시절에는 누구나 서투르게 걷는 아기가 된다. 첫 세일즈에 나서는 영업사원처럼 실수투성이다. 누구라도 인생에 몇 번은 운명적으로 그러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이 시험에 드는 것이다.


    그렇게 시험에 들어 허우적대는 모습을 우리는 정치인 안철수의 좌절이나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의 실패에서 보았다. 그들은 한 번 잘못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같은 잘못을 저지른다. 역사에는 전쟁에 임하여 열 번을 판단했는데, 열 번 다 잘못된 판단인 경우도 많다. 


    보통사람은 죽음, 상실, 이별, 질병, 실직을 당하여 아기처럼 뒤뚱대는 상황을 경험한다. 혹은 연애, 결혼, 취직, 입대, 창업을 전후로 그런 식의 반복적인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험난한 가시밭길을 거쳐가게 된다. 모름지기 깨달을 일이다. 그거 원래 어려운 거다. 


    거기에는 필연의 이유가 있다. 처음 경험하는 일에서 겪게 되는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관문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이것이 단순히 지식의 부족에 따른 오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원초적인 구조의 문제임을 간파해야 한다. 계몽주의적 사고는 곤란하다. 학습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우리는 전쟁이 일어나면 용감하게 싸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시궁창인 법, 싸우기 전에 먼저 말을 타고 전장에 달려가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 된다. 문제는 타고갈 말이 없다는 거다. 야생마를 잡아서 길들여야 할 판이다. 가는 도중에 먹을 양식도 없다. 


    막상 전장에 도착했으나 자기 소속부대를 찾지 못한다.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보통은 이런 사전정지작업의 문제가 누군가에 의해 미리 해결되어 있다. 귀족으로 자란 안철수나 조현아라면 뒤뚱대는 첫 걸음마의 상황을 경험할 기회가 없다. 물론 노무현은 그 반대다.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으므로 마음의 대비를 하고 있다. 인간은 왜 오판하는가? 관절 때문이다. 구조는 관절이다. 그러므로 오판은 구조의 필연이다. 관절은 힘의 방향을 꺾는다. 관절이 있으면 언제나 의도와 반대로 된다. 무엇인가? 상체가 전진하려면 하체는 후진해야 한다.


    이때 힘의 방향이 반대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으려면 왼발은 뒷땅을 밀어야 한다. 상체를 앞으로 숙이려면 하체는 뒤로 빼야한다. 자연의 모든 운동은 에너지를 쓰며, 에너지는 대칭원리를 쓰고,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대칭을 이룬 둘은 반대로 움직인다. 우주공간에서 1미터라도 앞으로 가려면 반드시 뭔가를 뒤로 보내야 한다. 방귀를 뀌거나 침을 뱉어서 뭔가를 뒤로 보내지 않으면 절대로 앞으로 가지 않는다.


    ◎ 운동의 딜레마 - 앞으로 가려면 먼저 무언가를 뒤로 보내야 한다.


    자동차는 전진하지만 바퀴는 땅을 뒤로 밀어낸다. 자연의 모든 운동은 가려는 방향과 반대쪽으로 먼저 움직이는 형태로 일어난다. 우리는 아기때 걸음마를 통해 이를 연습하지만 근육기억에 맡기고 그만 잊어버린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반대쪽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정치판에서 좌회전을 하려면 먼저 오른쪽 깜박이를 넣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모른다. 오른손 훅을 치려면 예비동작으로 먼저 왼손 잽을 날려야 한다는 당연한 성동격서의 원리를 모른다. 정치판 링 위에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가 이를 모르면서도 무난히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부모나 선배의 도움으로, 혹은 사회 시스템의 도움으로 그 문제를 우회했기 때문임을 우리는 잊어버렸다.


    안철수나 조현아처럼 항상 남의 도움으로 그 문제를 회피하다가, 갑자기 대중과 맨얼굴로 만나 당황하게 된다. 구조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의도와 반대로 된다. 역설이자 상대성이다. 그렇다면 청개구리처럼 무조건 반대로만 하면 되는가? 아니다. 그러한 역설과 상대성은 씨름이나 유도와 같이 상대가 있는 게임에만 적용된다.


    기록경기인 마라톤을 그런 식의 상대주의로 하면 실패한다. 마라톤은 자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중요한 승부는 모두 자기와의 싸움이다. 남의 패를 보고 자기 패를 내겠다는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좌회전 앞두고 오른쪽 깜박이 넣다가 매장당한다. 오른손 훅을 치기 전에 왼손 잽 날리다가 어퍼컷 맞는다. 


    예선전에서는 상대의 실수를 추궁하여 승리할 수 있지만 본선에서는 자력으로 이겨야 한다. 그렇다면? 이때는 ‘역설의 역설’이 적용된다. ‘상대성의 상대성’이다. 이중의 역설이다. 이렇게 되면 다시 정설로 돌아온다. 다시 절대성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절대성은 아무 것도 모르는 맨 처음의 절대성과는 다르다.


    부모와 선배의 도움 아래 시키는대로만 하면 되는 소년기의 그 절대성과 다르다.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은 사람의 절대성은 다르다.


    ◎ 소년의 절대성 – 부모나 선배의 도움을 받아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
    ◎ 청년의 상대성 – 도와줄 사람이 없으므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야 한다.
    ◎ 장년의 절대성 – 역이용할 상대가 없으므로 자기와의 싸움이 된다.


    무엇인가? 관절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관절이며, 관절은 두 개의 뼈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소년은 그 중의 한 뼈가 부모이거나 학교이거나 사회의 시스템이다. 입학식이니 환영식이니 오리엔테이션이니 하는 의식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 때는 정직하게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


    절대성을 따라야 한다. 부모를 등 뒤에 두고 부모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청년이 되면 독립해야 한다. 도와주던 방패막이가 사라진다. 이때는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야 하므로 상대성을 공부해야 한다. 의도와 반대로 되는 역설을 연습해야 한다. 상대방을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그러려면 상대를 마주봐야 한다. 절대 상대를 자기 등 뒤에 두면 안 된다. 그러나 장년이 되면 또 달라진다. 이번에는 자신이 부모가 된다. 회사의 CEO가 되거나 부서의 장이 된다. 리더가 되어 사람을 거느리게 된다. 이때 역설을 쓰다가는 망한다. 다시 절대성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그 절대성은 부모의 도움에 의지하던 소년의 절대성과 다르다. 자기 안에 관절을 두어야 한다. 진리를 등 뒤에 두고 진리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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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성과 상대성이 있다. 절대성이 정답이다. 진정한 절대성은 진리를 등지고, 진리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마주보면 안 된다. 진리의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 중간에 관절이 있기 때문이다.



    오류는 반드시 일어난다.


    오류가 무지 때문에 일어난다는 계몽주의 사고방식이 문제다. 오류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배운 사람이라도 낯선 상황에서는 오판한다. 인간은 관측자이며 자연은 관측대상이다. 그 사이에 관절이 있다. 대칭되어 있다. 인간과 자연이 처음 맞닥뜨렸을 때 에너지는 자연에 있다.


    자연이 갑이고 인간은 을이다. 인간에게 통제권이 없다. 그러므로 오판하는 것이다. 마땅히 통제권을 획득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초보자라면 자전거 타기를 연습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 번도 낙마해 본 적이 없다면 그 사람이 기수는 아닌 거다.


    ◎ 실행의 오류
    결정과 실행 사이에 관절이 있어서 의도와 반대로 된다. 보통 현장을 모르는 책상물림들이 이 문제를 간과하였다가 탁상행정으로 잘못된 정책을 낸다. 이 때문에 실행에 맞추어 결정을 조직한다는 실용주의가 득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얕은 속임수일 뿐이다. 개인의 독단적 결정을 피하고, 팀플레이를 통한 대승적 결정으로 실행의 오류를 해결할 수 있다.


    ◎ 개인의 오류
    집단과 개인 사이에 관절이 있어서 의도와 반대로 된다. 개인의 이익이 모여 집단의 이익을 형성한다는 공리주의는 위험하다.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은 종종 충돌한다.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아 의도와 달리 집단에 이익이 되는 엉뚱한 결정을 내리며, 그 과정에 우여곡절이 있다. 개인이 집단의 대표자로 사유하는 대표성 개념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시간의 오류
    공간에서 결정되고 시간에서 집행되는 사이에 관절이 있어서 의도와 반대로 된다. 바둑처럼 공간의 거점을 장악한 다음 시간공격을 해야 한다. 축구라도 공간의 포메이션을 조직한 다음에 기습적인 이선침투로 시간을 써야 한다. 공간의 지배를 무시하고 빠른 패스로 시간만 쓰면 된다는 착각이 패스축구의 실패다. ‘선공간지배 후시간공격’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 인과의 오류
    사건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관절이 있어 인과관계를 거꾸로 판단하는 오류가 있다. 인간이 사건을 인지했다면 사건의 결과측에 선 것이다. 거울처럼 좌우가 바뀌므로 원인과 결과를 반대로 알게 된다. 작은 사건이 크게 확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큰 긴장이 작은 부분에서 발화한다. 표면의 작은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이면의 큰 긴장을 해소해야 한다.


    ◎ 관점의 오류
    관측자와 관측대상 사이에 관절이 있어서 오판하게 된다. 버스 안에서 본 풍경과 버스 밖에서 본 풍경은 다르다. 이 때문에 사건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사건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기소개로 되기 십상이다. 관측자인 자신이 거꾸로 관측대상이 되어버린 오류다. 관측기준이 되는 제 3의 대상을 투입하여 객관화 하는 방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오류들은 모두 관측자와 관측대상 사이의 갑을관계라는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다. 관측은 에너지가 진행하는 경로를 따라야 한다. 그 에너지가 인간에게 없고 자연에 있으므로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새로운 판단은 무조건 오판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이는 사전에 학습된 것이다.


    선생님에게 배운 것은 당연히 정답이지만 그것은 자신의 새로운 판단이 아니므로 논외다. 시행착오를 통해 오류를 시정한 판단은 새로운 판단이 아니므로 역시 논외다. 가려쳐주는 스승이 없고, 배후에 보호할 사회의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사건에 대한 독립적인 자기 판단은 거의 오판이 된다.


    그러므로 훈련하여 오판을 피해야 한다. 그 판단이 자신의 첫 번째 판단이 아니게 해야 한다. 진리를 자신의 첫 번째 판단으로 쓰는 것이 깨달음이다. 진리를 쓴다면 두 번째 판단이므로 오류가 없다.


    산에서 호랑이를 만났다면 어떨까? 호랑이에게 달려들면? 죽는다. 호랑이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호랑이로부터 도망치면? 역시 죽는다. 호랑이보다 빠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사이족 사냥꾼처럼 태연하게 다가가서 사자의 먹이를 빼앗아 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경험한 적 없는 상황에서 태연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깨달은 사람이다. 그는 진리라는 호랑이와 싸워본 적이 있는 거다. 진리에서 에너지를 뺏어오지 않는 한 생소한 사건에서 바른 판단은 불가능하다. 진리의 구조를 복제하여 덧씌우는 방법으로만 바른 판단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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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은 도구입니다. 지식과 그 지식을 쓰는 주체인 사람 사이에 관절이 있어서 그 지식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오판은 필연입니다. 안철수나 조현아처럼 남의 도움을 받으면 그 오판의 위험이 있는 위기상황과 맞닥들일 확률을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장경험이 없어서 정작 진짜 위기에는 아무런 판단도 못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오판을 피하려면 역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진리의 팀에 들어야 합니다. 남의 도움은 믿을게 못되고, 진리의 도움만이 믿을 수 있습니다.  

    진리를 쓴다는 것은 '의사결정의 갑'이 되는 것입니다. 부분에서 포지셔닝의 우위를 달성하여 일단 승산을 보여준 다음 이를 전면화 하는 것입니다. 시간적으로는 장기전으로 끌고 가고, 공간으로는 전면전으로 확대하되, 부분에서 승리한 패턴을 대량으로 복제하여 널리 보급하면 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5.01.25 (23:41:57)

전 아직 진리라는 호랑이와 싸워본 적이 없는 거 같네요.

도움 받던 옷들을 일단 홀라당 벗어야 하는데,

겁먹은 청소년 마냥 빼앗기지 않으려는 제가 보였습니다.

아무튼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레벨:5]yhy

2015.01.26 (00:41:04)

.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5.01.26 (00:56:19)

억지입니다.

실제로 바뀌는건 없죠.

인간의 착각일 뿐.

인간의 착각으로 보면 좌우가 바뀌는게 맞습니다. 

[레벨:8]상동

2015.01.26 (08:48:30)

오류가 무지 때문에 일어난다는 계몽주의 사고방식이...

위의 문장이 틀렸다기보다

단어의 정의를 바꿔야 할 문제아닐까요?


지식이란 살을 아는 것이 아니잖아요.

뼈(구조)를 아는 것이 지식인데


그렇다면 무지는 뼈를 모른다는 소리고

뼈가 잘못되서 오류가 일어나니까


그나저나 고민스러운 것은 그 뼈가

언어로 전달이 가능한가? 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5.01.26 (09:07:05)

그래서 지식을 넘어서는 깨달음이 필요한 거죠.

뼈는 학습으로 알 수 있는게 아니고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총을 만져보지 않고 책에서 총 쏘는 법을 배우는건 다른 거죠. 

연애를 책으로 배웠어요. <- 이런 분도 있더라만


연애가 뜻대로 안 되는건 무지 때문이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호르몬을 조절하지 않는 이상 책으로 배운 연애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훈련하지 않고는 뼈를 알아도 안 것이 아니므로 뼈를 아는 것은 그냥 지식이 아닙니다.

죽음을 극복하는 문제를 학습으로는 절대 알 수 없죠.


책을 백권 읽는다고 해서 죽음의 공포가 사라질까요?

뼈를 알아도 죽음을 극복하기 전까지는 아직 아는게 아닙니다.

[레벨:30]스마일

2015.01.26 (09:15:45)

20대의 이유도 모르고 아무곳으로 내달리고 싶은 마음이 지나가면 알게된다.

화려한 테크닉을 설명해주는 지식,

자식이 간절하게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막내동생이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형제의 마음,

힘들때마다 던져주는 선배의 충고가

사실은 나의 일이 잘 되어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힘든 그 순간의 마음을 달래주어도

긴 시간을 놓고 보면

정작 중요한 순간은 혼자이게 마련이고

결정도 혼자 내려야 하며

그 결정은 부모나 형제의 근심어린 마음이나

선배의 충고가 아니라

오롯이 나의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을

20대의 비바람이 지나가고 나서야 알았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무득

2015.01.26 (17:15:20)

결국 동렬님은 물가 까지만 안내할 뿐 물을 마시고 안마시고는 각자의 영역이네요.

어떠한 글을 쓰더라도 그 글은 참 뜻은 아니며,

진실은 본인 스스로 훈련을 통해 깨달아야 하며,

언어란 깨달음을 바탕으로 보편성을 나타 낼뿐 그 자체가 진실은 아니며,

깨달음으로 구조화 시키지 않으면 항상 오판할 여지가 있고,

깨달음이란 삶으로 증명해야 함으로 대충 몇가지 지식으로 때우려는 아니한 생각은 버려야 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5.01.26 (17:17:36)

그건 삐딱한 사람들한테 해당되는 이야기고, 

원래부터 물 마실줄 아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뿐.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들은 말 안 해도 그냥 아는 것을 

그걸 못 가진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거 뿐.  

에베레스트 산도 셰르파만 있으면 잘 갑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도 못 가는 길을 나중에는 모두가 가게 됩니다.

남들 따라 가니까 잘 가는 거지요.  

[레벨:6]홍가레

2015.01.26 (22:36:37)

5:5 인터넷게임을 자주하는데
지는팀에 있으면 온갖 하지말라는 짓은 다해서 무참히 깨지고
이기는팀에 있으면 굉장히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게 됩니다.
불안한 쪽이 먼저 덤비게 되있고 (물론 내가 더 강하면 그래도 상관없지만)
꼭 뭐에 홀린듯 죽을자리를 알아서 찾아가게 되더군요.
 
예전에 스타크래프트게임을 하는데 초절정고수를 만난적이있습니다.
보통 3:3 이나 4:4를 하는데.  그 고수는 직접 상대진영에 공격을 해서 이기는게 아니고
상대방이 어떤 수를 못쓰게 철저히 게임을 자기가 설계하더군요.  
그래서 상대가 포기하고 나가는데.   공격한번 안하고   이겼던기억이..
 
연애가 호르몬 문제라는 것도 맞죠.
끌리지 않는 이성에겐 내가 마음대로 주도 할 수 있고 끌려다니지 않지만
끌리는 이성에겐 뭐에 홀린듯 상대방손바닥에 알아서 들어가는 행동을 하게 되죠.ㅋ
지금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맞춰주지 않으면 상대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드니까요.
미남미녀를 만나면 뇌가 멍청해 진다 이런 기사를 읽은적이 있는데
차라리  연애를 글로 배우는게 훨 좋죠.ㅎ  호르몬 조절을 못한다면
이성을 외모나 재력으로 꼬시는건 중하수나 하는거고 고수는 판을 설계해서 꼬십니다.
 
여자를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는 남자도 픽업아티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함께 실전에 투입시키면
잘합니다.ㅎㅎ   여기서 픽업아티스트는  뭐 뭐 하세요가 아니고 이러이러한거 하지마세요. 이런식으로
남자를 컨트롤 해줍니다.    
게임을 할때도  같은편에 고수가 하수에게   너무 나대지 말라고 주의를 주죠.
이사람들은 게임전체를 볼 줄 압니다.  두시간후에 상황이 어떻게 될 지 꽤뚫고 있죠.
이런 말을 하면 여자가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이런행동은 남자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행동이다.
이런식으로 가면 처음에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던 여자가 두시간후엔 완전 호감으로 돌아선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건 이게 하수를 상대하거나 중수를 상대할때 어느정도 먹히는데 
고수를 만나면  이중의 역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싸움고수들이 붙으면 싸우지않고 눈싸움만 하다 끝난다는 얘기도 있지만.
 
축구를 해도 동네축구시합이랑 학교대항전 이랑 국가대표경기는 다르죠.
한일전은 청년의 상대성으로 이길 수 있지만 
월드컵우승은 철저하게 장년의 절대성이 있어야만 이길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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