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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411 vote 0 2019.11.25 (18:09:35)

    주체의 언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진실을 반영할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언어를 규정하는 것은 관점이다. 관점의 획득이 깨달음이다. 그러므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깨닫지 않고는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다. 말하기 전에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도 없다.


    저절로 떠오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생각을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박자세’ 박문호 교수에 따르면 저절로 생각나는 것은 꿈과 메커니즘이 같다고 한다. 기억에서 불러낸다. 의도적인 생각은 사건의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계 내부의 메커니즘에 에너지를 태웠을 때의 방향성을 포착해야 생각을 할 수 있다. 그것이 관점이다. 관점은 사건의 관점이다. 존재는 사건이며 사건은 시작과 끝이 있다. 원인과 결과가 있다. 저절로 보이는 것은 결과이고 의식적으로 바라보아야 원인이다.


    눈만 뜨면 보인다. 저절로 보여진다. 생각난다. 뇌가 정보를 자동으로 처리하여 해석한 결과다. 공식에 맞추어 의식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것은 반응에 불과하다. 사유의 영역이 아니라 호르몬의 영역이다. 생각이 아닌 본능이다.


    보통은 저장된 패턴을 불러내는 뇌의 기계적인 반응을 생각으로 착각한다. 자유로운 연상작용도 반응이지 사유가 아니다. 주체의 관점에서 대상에 대한 통제가능성을 휘둘러야 사유다. 대상을 보면 좋다, 싫다, 귀엽다, 예쁘다, 나쁘다 하는 느낌이 든다.


    대상과 관련하여 있었던 과거의 일이 떠오른다. 그것은 생각나는 것이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대상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것이 생각하는 것이다. 말은 타야 하고, 차는 운전해야 하고, 음식은 조리해야 하고, 말은 뜻을 전해야 한다. 대상을 통제할 수 있다.


    그것이 사유다. 사유하려면 관점을 얻어야 한다. 요리사의 칼과 같고, 병사의 총과 같고, 운전사의 핸들과 같고, 작가의 펜과 같은 것이 관점이다. 그것이 없이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다. 의식적으로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내는 바른 사유를 할 수 없다. 


    사건의 시작에 서서 끝을 바라보는 것이 관점이다. 원인에 서서 결과를 바라보는 것이 관점이다. 그럴 때 대상을 통제할 수 있다. 생각은 머리에 힘을 줘서 하는 게 아니라 관점이라는 칼로 도마 위에 올려진 대상을 썰어내는 것이다. 채썰기처럼 썰어낸다.


    보통은 머리에 힘을 주고 있으면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스님이 동안거 기간 동안 용맹정진한다며 밤낮으로 머리에 힘을 주고 절구통처럼 한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지만 그래봤자 두통을 얻을 뿐이다. 쾌감이 없는 생각은 명상이 아니다. 


    생각은 요리사의 칼처럼 경쾌한 것이며, 교향곡을 연주하는 음악가의 지휘처럼 신나는 것이며, 파죽지세로 단숨에 쳐내는 것이다. 관점이라는 칼을 얻었을 때 그것은 가능하다. 의하여와 위하여다. 행위주체냐 관측대상이냐다. 주체의 관점이라야 한다.


    흔히 주체와 타자, 주체와 객체, 주체와 대상이라고 한다. 행위냐 관측이냐다. 행위는 주체가 있고 관측은 대상이 있다. 행위의 언어를 얻어야 한다. 관측의 언어를 버려야 한다. 대상화되고 타자화되면 망하게 된다. 행위주체의 관점을 얻으면 깨달음이다.


    농부는 농사를 짓고, 무사는 전쟁을 한다. 먼저 무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주체의 관점이다. 먼저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정치인도 아니면서 주제에 성장을 논하고, 평등을 말하고, 정의를 외치고, 복지를 주장하고, 박애와 평화를 거론해봤자 의미가 없다.


    정당들은 민주, 진보, 보수, 자유, 평등, 평화, 복지, 정의, 성장, 승리를 주장하고 그것을 당명으로 삼지만 의미 없다. 중요한 건 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다. 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다. 누가 주체인지가 중요하다. 농부냐 무사냐다. 병을 치료하면 의사다.


    무당이나 주술사가 주제에 나는 평화를, 복지를, 정의를, 평등, 성장을 어쩌겠다고 떠들어봤자 허경영이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민주, 자유, 정의, 평화, 복지, 애국, 민족, 진보, 보수, 평등, 성장, 승리, 전진, 박애, 기타 등등 너무 많잖아.


    많으면 가짜다. 관점은 하나다. 보는 눈은 하나인데 보이는 풍경은 여럿이다. 요리사는 하나인데 메뉴는 여럿이다. 농부는 한 명인데 생산한 과일은 여럿이다. 학생은 한 명인데 공부하는 과목은 여럿이다. 이렇듯 뭔가 주워섬기는 것이 많아지면 안 된다. 


    반드시 하나라야 한다. 그 하나를 얻는 것이 방향성이며, 관점이며, 의하여다. 하나를 얻으면 농부가 되고, 전사가 되고, 의사가 된다. 하나를 얻지 못하면 의사가 아닌 주술사요 돌팔이다. 사건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방향성으로 존재하는 하나가 있다.


    그 하나가 관점이고 그 하나의 획득이 깨달음이다. 그 하나를 말하는 사람은 사유하는 사람이고 그 반대편에 있는 여럿을 이것저것 주워섬기는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떠드는 사람이다. 메뉴가 아무리 많아도 요리사의 칼은 하나다.


    작품이 아무리 많아도 작가의 펜은 하나다. 환자가 아무리 많아도 의사의 메스는 하나다. 적군이 아무리 많아도 병사의 총은 하나다. 승객이 아무리 많아도 운전사의 핸들은 하나다. 반드시 관문이 되는 하나가 있는 것이며 그 하나에 의해 대상은 통제된다.


    진화의 하나는 유전자다. 다윈이 말하는 잡다한 것은 방증일 뿐 증거가 아니다. 저 사람의 얼굴이 딱 봐도 범죄형이니 범죄자일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게 범죄자라는 증거는 아니다. 그럴 개연성이 있을 뿐이다. 개연성은 여럿을 주워섬기게 된다.


    달착륙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은 사항을 낱낱이 열거한다. 지구평면설도 마찬가지다. 수십 가지 근거를 열거하고 있다. 세월호 음모론이나 천안함 음모론도 마찬가지다. 핵심 하나가 아닌 여럿을 주워섬기는 사람과는 대화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과학가의 태도가 아니다. 정치공약과 같다. 백대공약 나온다. 100개나 열거한다. 가짜다.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야 한다. 그 사람이 의사냐 돌팔이냐다. 허경영 돌팔이가 천 가지 공약을 말해봤자 의미 없다. 그 정치의 주체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자유인의 당과 노예인의 당이 있다. 과거라면 귀족당과 부르주아당과 프롤레타리아당이 있었다. 아무리 좋은 공약을 떠들어봤자 그 정치의 주체가 귀족당이라면 일단 틀려먹었다. 아무리 좋은 공약을 떠들어봤자 본질이 친일당이면 애초에 틀려먹은 거다.


    너는 누구인가? 귀족인가 부르주아인가 프롤레타리아인가? 자유인인가 노예인가? 친일파인가 친북파인가? 엘리트인가 대중인가? 특권층인가 서민층인가? 금수저인가 흙수저인가? 여기서 갈린다. 이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주체의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 


    보수는 진보를 순진한 아마추어당으로 몰아가고 자기네를 경륜 있는 프로당으로 포장한다. 이런 것은 확실히 먹힌다. 천 가지 공약 필요 없고 본질을 들추어야 한다. 보통 진보는 소수 엘리트당으로 몰려서 선거에 지는 것이지 공약이 어째서 지는 게 아니다.


    부자당과 빈자당, 강남당과 강북당, 지역당과 전국당, 노예당과 자유인당, 아마당과 프로당, 친일당과 친한당, 엘리트당과 대중당이 있다. 전자는 나쁘고 후자가 옳다. 주체를 꿰뚫어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이러한 밑바닥 본질로부터 논의를 풀어가야 한다. 


    서로 대칭되어 팽팽하게 교착된 난맥상에서 에너지를 투입했을 때 얻어지는 수렴방향으로 가는 하나의 사건의 방향성을 판단하여 일원론에 도달해야 한다. 확산방향이면 틀렸다. 요리사는 한 명이니 에너지의 수렴방향이고 메뉴는 여럿이니 확산방향이다. 


    본능적으로 눈이 메뉴판으로 가면 곤란하고 자연스럽게 요리사를 향해야 한다. 메뉴판을 신뢰하지 말고 요리사를 신뢰하라. 어느 분야든 핵심이 되고 본질이 되는 하나가 있다. 암도 고치고, 중풍도 고치고, 폐병도 고쳐주고, 고혈압도 낫게 한다고 떠든다.


    필요 없다. 의사냐 돌팔이냐? 이것을 캐물어야 한다. 프로냐 아마냐? 직장인이냐 백수냐? 여기서 결판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주체가 아닌 대상을 보고 타자를 바라보고 객체를 바라본다.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것이다. 보이면 안 되고 봐야 한다.


    뇌에 끌려가면 안 된다. 호르몬에 지배되면 안 된다. 뇌는 그저 저장된 기억을 불러낼 뿐이다. 뇌는 단순반복작업을 한다. 그것은 전혀 사유가 아니다. 이런 것은 단박에 판명된다. 당신이 의사라면 대화의 상대방이 돌팔이인지 아닌지 3분 안에 알아낸다.


    두어 마디만 대화해보면 상대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때로 진짜와 가짜는 3초 안에 가려진다. 눈이 보는 위치를 봐야 한다. 눈이 미래를 바라보면 정치인이고 시청자를 향하면 안철수다. 유권자에게 아부하는 눈빛을 가진 자는 가짜다. 시선이 산만해져 있다.


    상대방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얼굴은 피해야 한다. 그런 자가 이철희다. 눈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상대의 관점을 봐야 한다. 상대가 구사하는 언어를 봐야 한다. 언어를 얻지 못한 자는 가짜다. 남의 언어를 인용하여 쓰는 자는 일단 가짜다. 


    관점을 얻지 못한 자는 가짜다. 방향성을 판단하지 못하는 자는 가짜다. 통제가능성을 획득하지 못한 자는 가짜다. 일원론이 아닌 자는 보나마나 가짜다. 메뉴를 이것저것 열거하는 자는 요리사가 아니다. 칼을 차야 요리사다. 그것이 언어에 반영되어 있다.


    상대가 어떻게 해서 내가 이렇게 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자는 무조건 가짜다. 프로는, 의사는, 요리사는, 작가는, 운전기사는, 리더는, 진짜는 상대가 어떻게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인다. 도구가 있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자가 상대의 행동을 빌미 삼는다.


    전두환이 독재를 했기 때문에 내가 투쟁을 한다는 식으로 이유를 대어 말하면 가짜다. 내가 투쟁을 하려고 했는데 마침 전두환이 내 레이다에 들어왔으니 딱 걸린 셈이라고 말하는 자가 진짜다. 일본이 과거 어쨌기 때문에 한국이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3만 불 대열에 접어들면서 일본추월이라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에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가는 것이다. 위안부든 징용공이든 미루어둔 숙제를 하는 것이다. 원인은 내게 있다. 내 안에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사랑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해야 진짜다.


    네가 예뻐서 사랑한다고 말하면 가짜다. 화장을 지우고 성형을 들키면 변심할 건가? 작가는 펜을 얻어야 쓰고 병사는 총을 겨눠야 쏘고 인간은 관점을 얻어야 말한다. 사건 전체를 한 줄에 꿰어내는 자기 언어를 얻는다. 세상 앞에서의 발언권을 얻는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11.26 (07:12:37)

"프로는, 의사는, 요리사는, 작가는, 운전기사는, 리더는, 진짜는 상대가 어떻게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인다. 도구가 있다."

http://gujoron.com/xe/114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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