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10.03 (17:27:04)


이도다완(대정호다완)에 대하여 질문드립니다.^^..그냥 사진이 보여서... 궁금한 것이 생각나서  입니다.

이도다완은 우리나라 도공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일본에서는 국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다도의 완성을 위해 이도다완과 조선 다완들을 이용하였고, 그것을 가지고 일본다도의 형식을 완성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다도가 다시 우리나라에 역 수입되면서 일본다도와 다완의 미를 찬양하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탐미적인 미로서 다도를 완성한 센노리큐의 다도가 정착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도다완이 민초들이 쓰는 생활용기(밥그릇) 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다도에 이도다완(이 이름도 일본인들이 지은 것이 겠지요)을 접목하게 됩니다.
즉 우리나라에서 추구했던 것과 일본의 막부가 추구한 관점이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어찌보면 쓸모없이 놔둔 것이고, 일본은 남의 것에서 쓸모를 찾아서 자신들의 권력과 일치를 시켰다고 볼 수 있겠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청자나 백자 위주의 도자기가 우세하였다면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이도다완 류를 그들의 이념에 맞게 다도에 접목하게 되었습니다.

<질문1>이도다완은 분청기법이고 보면...그리고 솔직히 밥사발이나 다른 일반 음식 용기로는 분청은 부적당합니다.
단지 말차용으로만 적당한데... 일본에서 자신들의 다도에 접목한 이도다완의 특질에 대하여 일본인들이 이도다완을 재발견 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질문2>그리고 이도다완이 미학적인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우리나라에서 다완과 도공과 기술을 빼앗아 간 것이지만, 일본 자체에서 다완의 미학을 재발견한 것에서 그것은 우리의 빼앗긴 문화와 상관없이 미학적인 측면에서(일본인의 안목)그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할까요.?

<질문3>일제시대도 그렇고, 임진왜란도 그렇고.... 이것은 침략이고 전쟁이고, 약탈인데...약탈하여 훔쳐간 문화를 가지고 자신들의 문화를 완성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리고 그것이 다시 우리나라에 문화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측면은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까요? 부정적으로 보아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질문4>또한, 우리나라는 일제시대에 도자기 및 다완, 다기류에 대한 맥이 끊겨서 거의 그것의 재현이나 창작이 쉽지 않았으나, 일본에서 다시 역으로 배워와서 일본인들이 원하는 작품의 재현과 모방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그 기술력을 보유하게 되었는데요. 예전에는 창작을 할려고 해도 기술이 없어서 창작을 못했는데...이제는 기술력이 보유된 이상 굳이 모방이나 이도다완 등의 재현에 매달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단지 창작력이나 창의력이 아직은 그 개발에 있어서 미진하기는 하지만요.
(1) 문화의 단계, 산업의 단계... 이것은 토대가 없으면 안되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발전 단계도 이렇게 가는 것이 순서가 맞는 것인지요?
.
(2)예전에는 이도다완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기술이나 그런 모방작에 대하여 찬사를 하였다면 지금은 조금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고 봅니다. 그 시대의 작품을 그대로 재현하다고 하여 그 시대가 아닌 지금 시대에 만든 것이 똑 같을 수는 없는 것이기에 그럴 것입니다. 
반면에 모방이나 혹은 재현이 지금의 현대성을 회득한다면 그것은 창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인지요. 모양이나 만드는 기법, 재료가 이도다완 당시와 같은 조건을 충족하여 만들었을때  말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작품을 모방하여 재현했지만, 그 시대의 것이 아니고 지금의 시대에 만든 것인데...그리고, 만드는 사람이 다른데 그것을 가짜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물론 그림에서 위작은 안쳐주지만은요)
 
(3)그리고 기존의 것을 보고 인간은 무엇인가 아이디어를 얻기에, 기존의 것에서 영감을 얻어 지금에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는 현대성을 획득해야 한다고 하는데, 기존의 것에서 현대성을 회득하는 과정에 대하여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현재 자동차나 다양한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다완도 기술은 가지고 있으나 창의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져서 질문을 드립니다. 제 스스로 결론을 내려보고 싶은데 ... 그런 결론이 맞는 방향이고 옳은 결론인지 확신이 안서기에...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10.04 (07:36:09)


이건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물어야지 제게 질문할 내용은 아닐 겁니다. 제가 도자기 전문가도 아니고..

 

<질문1>이도다완은 분청기법이고 보면...그리고 솔직히 밥사발이나 다른 일반 음식 용기로는 분청은 부적당합니다.
단지 말차용으로만 적당한데... 일본에서 자신들의 다도에 접목한 이도다완의 특질에 대하여 일본인들이 이도다완을 재발견 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 잘못 알려진게 많은데 한국에서 개밥그릇 어쩌구 한건 모르는 사람이 농담한 거고, 이건 처음부터 말차용으로 제작되어 말차용으로 쓰이다가 일본으로 넘어간 겁니다. 한국에서는 불교가 탄압받아서 차를 안 마시게 된 거구요.


<질문2>그리고 이도다완이 미학적인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우리나라에서 다완과 도공과 기술을 빼앗아 간 것이지만, 일본 자체에서 다완의 미학을 재발견한 것에서 그것은 우리의 빼앗긴 문화와 상관없이 미학적인 측면에서(일본인의 안목)그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할까요.?


--- 일본에서 재발견된 것이 아니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겁니다. 그리고 이건 선종불교의 미학인데 한국은 유교미학으로 대체된 거구요. 종교가 다른 거죠.


<질문3>일제시대도 그렇고, 임진왜란도 그렇고.... 이것은 침략이고 전쟁이고, 약탈인데...약탈하여 훔쳐간 문화를 가지고 자신들의 문화를 완성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리고 그것이 다시 우리나라에 문화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측면은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까요? 부정적으로 보아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 --약탈해서 완성한 것이 아니라 그냥 들여간 거구요. 우리가 잊었다가 되찾은 거지요. 그리고 선종불교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승려들이 정치에 관여하지요. 한국도 고려시대에는 그랬고. 그 차이죠. 결국 다완에는 고도의 정치적 노림수가 있습니다. 일본 승려들이 다완을 이용하여 정치를 했다 이거죠. 그런 본질을 모르고 껍데기를 따라하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미학의 정치화를 파악해야 합니다. 일부러 고가의 가격을 매겨서 센세이션을 일으켜 정치적 지배를 달성하려는 야심이 숨어 있는 거죠. 이걸 단순히 미학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아닌 거죠.


<질문4>또한, 우리나라는 일제시대에 도자기 및 다완, 다기류에 대한 맥이 끊겨서 거의 그것의 재현이나 창작이 쉽지 않았으나, 일본에서 다시 역으로 배워와서 일본인들이 원하는 작품의 재현과 모방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그 기술력을 보유하게 되었는데요. 예전에는 창작을 할려고 해도 기술이 없어서 창작을 못했는데...이제는 기술력이 보유된 이상 굳이 모방이나 이도다완 등의 재현에 매달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단지 창작력이나 창의력이 아직은 그 개발에 있어서 미진하기는 하지만요.


---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흙의 문제겠지요. 기술은 금방 되는데 흙이 안 됩니다. 아마 진주 사천지방 흙일 텐데 이미 바닥났는지도.

(1) 문화의 단계, 산업의 단계... 이것은 토대가 없으면 안되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발전 단계도 이렇게 가는 것이 순서가 맞는 것인지요?
.


- --하여간 이건 기술문제가 아닙니다. 전혀요. 선종불교의 문제고 정치의 문제고 흙의 문제이죠. 기술을 배웠다는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건 장사죠. 미학이나 예술과 무관한 거고. 전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서 요즘 일본이 원하는 도자기를 만든다는건 그냥 도자기산업에 불과한 거에요. 일본산업에 종속된 하부구조고 한국과 관계없어요. OEM과 비슷한 거죠. 한 동안 한국에서 나이키 신발 만들었지만 나이키 한국것 아니거든요. 요즘은 나이키에서 공장을 태국으로 옮겼다는 말도 있던데.


(2)예전에는 이도다완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기술이나 그런 모방작에 대하여 찬사를 하였다면 지금은 조금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고 봅니다. 그 시대의 작품을 그대로 재현하다고 하여 그 시대가 아닌 지금 시대에 만든 것이 똑 같을 수는 없는 것이기에 그럴 것입니다.
반면에 모방이나 혹은 재현이 지금의 현대성을 회득한다면 그것은 창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인지요. 모양이나 만드는 기법, 재료가 이도다완 당시와 같은 조건을 충족하여 만들었을때  말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작품을 모방하여 재현했지만, 그 시대의 것이 아니고 지금의 시대에 만든 것인데...그리고, 만드는 사람이 다른데 그것을 가짜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물론 그림에서 위작은 안쳐주지만은요)


--- 글쎄요. 이런건 그냥 도자기 신비주의라고 봅니다. 괜히 도자기가 뭐 되는것처럼 포장할라고 신비의 색 운운하며, 별거 아니죠. 이도다완의 재현이나 모방에 대한 찬사는 없었다고 봅니다. 그게 있었다면 아마 엉터리 기자가 5초 생각하고 휘갈겨 쓴거겠죠. 이야기 만들어내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뻘짓이죠. 하여간 이도다완의 본질은 선종불교입니다. 그거 모르는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안 쳐주는 거죠. 종교가 본질입니다. 하여간 선종의 미학을 모르는 사람이 뭐를 해도 전혀 안쳐줍니다. 가능성 0입니다.
 
 
(3)그리고 기존의 것을 보고 인간은 무엇인가 아이디어를 얻기에, 기존의 것에서 영감을 얻어 지금에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는 현대성을 획득해야 한다고 하는데, 기존의 것에서 현대성을 회득하는 과정에 대하여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음. 기존의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다니요? 그런 일 없을텐데. 아마 구조주의 철학의 관점을 말씀하시는듯 한데, 구조주의 철학이 문화적 다원주의를 지향하므로 아프리카나 인도나 히말라야나 남미나 어디 오지 다녀와서 아는 체 하는 문화가 있죠. 그런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민화 얻어가면 헬렐레 하죠. 그건 우표수집과 비슷해서 골고루 구색을 맞춰야 의미가 있지요. 그런 쓰레기들이 한국 와서 한국민화 찬양하는 것은 한국인이 투발루 우표 구했다고 신나서 방방 뜨는 것과 같죠. 그래서 한때 아프리카 가봉 우표와 세네갈 우표가 경쟁하니 북한도 우표장사 나섰지요. 황당한 마이너리그 현상.


현재 자동차나 다양한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다완도 기술은 가지고 있으나 창의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져서 질문을 드립니다. 제 스스로 결론을 내려보고 싶은데 ... 그런 결론이 맞는 방향이고 옳은 결론인지 확신이 안서기에...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핵심인 이데올로기를 모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와 정치의 관계를 모르면 역시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정치에요. 일본은 다완정치를 한 겁니다. 뒤늦게 한국에서 다완정치를 하자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성철스님이 3000배를 하지 않으면 만나지 않겠다는 데는 고도의 정치성이 있습니다. 이건 신도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전두환을 겨냥한 겁니다. 그런걸 알아야지요.

다완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흙의 문제이고, 이데올로기 문제입니다. 질문요지가 이해되지 않아 동문서답이 되었습니다. 하여간 현대자동차에 창의성이 없다면 역시 이데올로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데올로기에서 창의성이 나오는 겁니다. 이데올로기는 세상과 맞서서 각을 세우는 거지요. 독일차라면 기술의 한계에 도전하겠다는 그런거 있지요. 다완의 가치는 승려들이 무사들의 칼에 저항하기 위하여 복잡성을 우겨넣은 단순함을 만들어 낸 거지요. 하여간 사무라이 칼에 목덜미 두어번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다도 어쩌구 한다면 웃긴 거죠.

사무라이들이 동경시내를 행차하다가 다른 사무라이 일행을 만나면 교통정리를 하게 되는데 앞장서는 길잡이가 잘못 인도해서 서열이 높은 사무라이가 길을 비키게 되면 길잡이가 할복을 해야 합니다. 이때 일본 특유의 고도의 갈구기 초식이 등장하는데, 이지메 문화의 원조는 그때부터 시작.. 다도의 명인들이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합니다. 이도다완을 삼년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최고의 길잡이가 되어 목숨을 보존합니다.

지금은 야꾸자들이 이러고 있습니다. 야꾸자들 사이에 칼부림 나면 원로들이 중재를 하게 되는데 역시 다도명인의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결국 다도라는 것은 목숨을 살리는 기술이지요.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다도명인을 종자처럼 데리고 다녔는데 다도명인이 미소를 띠고 관찰하다가 눈치 사인 보내면 사무라이가 죽일 놈을 찍어냅니다. 결국 살인자 집단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 물론 제 표현이 과장되었을수도.

하여간 이런 이야기가 많아요. 어떤 귀족이 다도명인과 어쩌구 했는데 누굴 죽이고 어쩌고 맨날 이런 겁니다. 다도는 차 보다는 일종의 예법이죠. 일본인들은 사무라이가 같은 건물에 여럿 둘러앉아 회의하는 관습이 있는데 서열에 따라 자리가 지정되어 있어 잘못 앉거나 무례한 짓을 하면 목이 달아나기 때문에 다도명인이 중재를 해야 하지요.

 하여간 차는 예고 다도는 차 마시는 법이 아니라 예법입니다. 누가 상석에 앉고 누가 말석에 앉느냐 이런 거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10.04 (16:52:32)


(1)번 질문은 떠돌기만 한 것이 아니라 줄기차게 나오는 얘기여서... 그 근원에 대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알려진게 없어서 여쭤본 것입니다.
절에서 차를 마시고 그 명맥을 유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절에서 말차를 마셨다는 기록이나 다완이 선종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증명해놓은 자료도 없구요. 그래서 한국의 일부 차인들은 일본의 다도를 떠 받들기도 하는데... 그런 행태를 비판한다 하여도, 정작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근거를 제대로 대지 못하니  비판이 그저 비난으로 끝나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엔 그런 노력들이 조금씩 있어서 일본인 학자가 다도라는 말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다도라는 말은 원래는 중국이 원류라고 하네요.중국 당나라때의 교연이 차노래에 사용한 말이라고 합니다.
"다도만이 온전한 진리임을 알아라.." <교연 차노래에서>
일본에서는 400년전 부터 사용하였는데..그것을 우리는 다도라 하면 일본식 다도를 지칭한다라고 생각하여 왔다고 합니다.
일본 차노유의 대가인 쿠라사와 선생이 다도는 중국말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있어서, 다도라는 말은 일본 것이다.라고 하여 기피하는 현상도 있지만, 그 이유는 다도라는 것이 워낙 일본색이 강하게 입혀져 있기에 다도= 일본 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 것이겠지요.

1번 질문의 답변을 보고 생각이 든 것은, 그 이전까지 가지 않더라도 고려시대의 차 문화를 생각해보면 그 이후도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는데...단지 그 맥이 조선시대에 인위적인 개입으로 인하여 많이 끊겼으나 (송나라 때 말차의 형태가 등장하였고, 명나라 때 주원장인 너무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에 말차 형태의 차 보다는 잎차 형태의 차를 만들기를 장려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고려시대는 단차와 말차의 형태가 유행 하였을 것이고, 조선 시대는 잎차의 형태와 덩이 형태가 있었습니다.) 차는 계속 유지되고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들어와서 왜곡되고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조작되고, 기록이나 맥이 거의 끊겼고, 그것을 해방후에 다시 맥을 이어가는 노력을 하였지만...다완에 있어서 만큼은 일본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도공들이 가마를 유지할 자본이 거의 일본에서 유입되었고 그 이유는 이도 다완, 즉 조선시대의 다완의 재현을 위한 하청으로 도공들이 생계를 유지했고 지금처럼 성장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그리고 도공들에게 명예도 일본에서 부여해준 것과 같고, 그것이 다시 한국 차인들에게 퍼져서 다완의 인기가 올라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선차의 맥을 밝히고, 그것을 이어가려는 분들이 있는데...지금 생각해보니...우리나라는 선차와 현재의 차문화가 서로 연관 관계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의 상황만을 보고 판단하려는 우를 범하여서 근시안적인 판단을 하려 하기에 헤매는 우를 범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다완의 문화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는 것에서도 많은 오해의 소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도 되구요.

그리고 우리는 보통 선의 계보를 마조도일이 남악회향의 제자로 알고 있지만, 마조도일은 무상선사의 제자로 현재에는 다시 발견되고 있으며, 선종차는 무상에서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선종차의 비조로서 무상대사(신라사람.왕자라고 함)를 역사로 끌어내어 편입하려는 진행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그리고 무상이 구산선문의 시조라고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한중일 불교학자들과 중국불교 유적에 발굴에 참여하는 중국 지방정부와 중국스님들이 관여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선차와 일부 학자들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현재 어떻게 평가를 받는가도 중요하지만... 뭔가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면 ... 보통은 지금에서부터 과거를 추적해 들어가는 방법을 쓰지만 ,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처음시작에서부터 현재로 거슬러 내려오는 큰 흐름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되어서 입니다.
다완에 대해서, 일본의 다도에 대해서도, 현재와 최근의 시점에서만 매몰되어 있어서 전체를 보고 판단하지 못하는 우를 범한 것 같아서 입니다.

우리나라에 선차가 있지만, 또한 선차는 어떤 면에서는 정신으로 이어져 오는 것이기에...실제 우리 눈으로는 보이는 것이 아니고, 그저 어떤 의례적인 형식만이 눈에 보이기에 그런 부분은 단절시키거나 연게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역시 그런 것 같구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선차가 있지만 그것이 실제 기물인 다완과 만나서는 그것이 잘 연결이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간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증명이 제대로 안되고 있으니까요.

1번의 질문에 대한 의문이 풀리니 나머지는 저절로 풀린 것 같습니다.

차는 예고 다도는 차 마시는 법이 아니라 예법입니다. 누가 상석에 앉고 누가 말석에 앉느냐 이런 거죠.
결국 일본의 다도는 정치하는 것에 그 본질이 있는 것이군요. 줄 세우기...
그러나 우리는 보통 기존의 우리나라 차인들이 그렇게 하였므로...다도는 일본식 말차 마시는 방법이다.라고 설명하게 됩니다.
어찌보면 의도적으로 일본의 정치와 결탁된 다도의 본 모습을 빼버리고, 차마시는 법으로 보이게 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차인들에게 전수할 때 그렇게 했겠지요. 그래야 배우므로...아니면 일본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도다완을 보면 저 다완이 그냥 밥그릇이었다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어떤 멋이 있기에... 한국의 멋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물은 보통은 자연 경관이 아름답다. 얼굴이 예쁘다.라고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지만,
어떤 전체적으로 풍기는 것은 인간의 감성과 연계되고 그것은 정신에서 느껴지는 것이기에 '멋'이라고 표현해야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어떤 정신적인 느낌을 갖고 그것과 교감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도다완을 그저 밥그릇, 일상의 식기였다고(식기는 자주 사용하기에 재질이 튼튼해야함) 보기에는 우리의 안목이 너무나 낮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도다완 류의 다완들은 조심히 다뤄야 하며, 쉽게 부서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소리도 둔탁합니다. 입자가 백자나 청자처럼 고운 입자로 꽉 엉켜 있는  것이 아니라 입자가 성글다는 것이겠지요.
보통은 도자기에서 입자가 성근 흙은 좋은 것으로 치지 않지만, 이도다완은 그런 흙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 흙의 특성을 훌륭하게  표현하여 놓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10.04 (18:33:24)


  제가 차나 도자기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들은 풍월로 말한다면, 이도다완은 처음부터 말차용 다기로 제작되었고, 우리나라에도 고려때나 조선초에는 말차를 마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다기로 제작된 것이고 원래 우리나라에서도 명품이었습니다. 일본이 남의 개밥그릇 가져가서 명품으로 떠받드는게 아니고 한국에서도 몇 안 되는 귀한 명품을 일본이 약탈해 간 겁니다. 그 흙이 특별해서 재현이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다도라는 것은 일본 사무라이들을 글을 모르기 때문에 글을 아는 스님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이 스님들이 다도명인이라서 한 눈에 척 보고 분위기를 간파하고 그런게 있습니다. 상대방의 인격을 그냥 척 보고 아는 거지요. 일본 귀족들은 후원 정원에다가 초가집 지어놓고 손님을 청해서 차를 대접하는데 선종불교의 가르침을 좇아 격식이 없이 자연스러움을 최고로 치는 거지요. 그러나 그 안에 고도의 격식이 있습니다.

  차를 마시는 격식이 아니고 손님을 청해서 담소를 나누는 품격입니다. 일종의 사교지요. 상대방을 편안하게 배려하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초가집을 예쁘게 잘 지어놓고 낡아보이는 때묻은 다기를 들고 와서 좋은 물로 조용하게 차를 달여서 잘 대접해도 빵점을 줍니다. 왜냐하면 손님을 청할 때는 먼저 상대방의 기호를 알아서, 상대방이 좋아하는 가을국화 한 송이를 탁자 옆에 가져다 놓는 것을 빼먹었고, (그 국화는 일부러 꺾어놓은 것이 아니라 마치 주인이 감상하다가 툭 흘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45도 각도로 놓여있어야 함.) 또 지금이 10월이니 찻잔 밑에 고운 단풍잎 하나 깔아주는 센스를 잊었고 등등 아주 골치아파요. 다도명인이 되려면 머리가 터져 죽습니다. 걍 차나 한잔 들고 가는게 낫소이다.

  하여간 다도의 정석은 상대방에 대해서 사전조사를 하고, 상대방과 자연스럽게 말을 걸 수 있는 여러가지 소품을 준비해놓고, 분위기를 어색하지 않게 하고, 그 날의 날씨나 계절이나 그 시대의 이슈와 상관있는 환경을 조성해놓고, 그 지역의 특산물이나 이런 것도 좋고.. 뭐 이런 것인데 서양에도 비슷한게 있습니다. 손님을 맞이할 서재는 인디언풍이나 인도풍이나 일본풍이나 중국풍이나 어떤 주제를 선택해서 꾸며야 하며 또 책상 위에는 너무 책이 가지런하게 정리되면 안 되고, 책을 읽다가 만 것처럼 책장을 접어서 비스듬한 각도로 툭 던져놓은 듯이 올려놓아야 하며 커텐은 어떻고 창문은 어떻고 시시콜콜 아주 많습니다. 요는 손님이 자연스럽게 주인에게 말을 붙일 수 있도록 여러가지 소품을 준비해놓고 편안하게 다녀가게 공작을 잘 하는데 있습니다. 주인의 기호라든가 이런 것을 손님이 알 수 있게 하고.  다 쓸데없는 짓이지요. 하여간 프랑스 사람이 이런걸 열심히 챙기고 독일인은 전혀 안 챙긴다는데 이것도 옛날에 들은 풍월이라 요즘 프랑스인은 어쩌는지 몰겠소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10.04 (19:39:59)


저도 차를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어떤 것을 판단하고 생각해야 할 때 무엇에 기준을 잡고 판단하고 생각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알고자 질문을 드린 것이니, 차를 알고 모르고는 이 부분에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와서 우리가 일본식 다도에 발목을 잡혀야 할 일도 없을테구요^^

단지,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은 어떠해야 하는가가 중요해지는 것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그 것에 묻혀 있는 경우보다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해 볼 수 있는 시선을 얻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지고,
판단이란 것은 어떤 일을 반드시 잘알고 있다고 하여서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일이 흘러가는 방향성을 볼줄 알아야 해결이 되는 것이기에
그런 안목의 도움과 조언을 받고 싶은 것이겠지요.

위에서 말씀하여 놓으신 다도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본다면...
그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어색해 하지 않을 분위기 조성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런 효과를 내는 것은 인테리어...즉 실내장식이 가장 큰 효과를 준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주가 되어야 할 자리에는 다른 것들(사물)이 사람을 압도하지 않아야 좋은 것 같구요.
단지, 그러한 것이 어느정도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이 좋지만..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그것이 더 신경 쓰이게 되어 죄불안석이 되는 것이니...
자연스럽되,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보면....그것이 중정이라는 것이고 보면....
이래도 어렵고 저래도 어렵고....
그저 차나한잔 하고 가는게 좋겠습니다. 하하^^()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10.04 (20:32:00)

  다도의 명인이라면 겉으로 보이게 격식을 차리는게 아니라 손님이 의식하지 못하였지만 뭔가 편안하고 한번 더 방문하고 싶고 끌리는 것이 있었다는 느낌을 주는게 포인트라고 봅니다. 주인의 서재 방문은 약간 열려 있어서 밖에서 슬그머니 안을 볼 수 있도록 해야하고, 바깥의 기척이 안에서 살짝 느껴져야 하고, 서재로 가기 전에는 주인의 취향을 알 수 있게 조그만 갤러리도 있어야 하고 이런게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세상의그 어떤 돈 많은 부자도 따라올 수 없게 하는 미묘한 센스가 있다는 거죠. 계속 부자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만드는 거죠. 결국 부자들은 문화인들에게 돈으로 후원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다가 부자나 귀족이 예술가나 모험가, 발명가, 혁명가를 후원하는 문화가 만들어진 거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10.04 (20:37:47)

동렬님 글 중에서..
사람을 놀래키지 않고 다가가야 한다는 대목이 있는데...그와 맥이 통한다고 생각되네요.

어떤 곳들은 꼭 그럴 의도는 아니겠지만...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사람을 놀래키려는 의도를 갖고 인테리어와 장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즉 자기를 혹은 그곳에 대하여 과시하는 것을 어떤 물건이나 상품, 혹은 장식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죠.
그럴 때 저는 뭔지모를 반감이 느껴지곤 합니다.
보통 상업화된 곳이나, 장사하는 곳이 이런 특성들이 강하지만...그곳은 그런 특성들을 부각하는 곳이기에 그런다 쳐도...
어쨌든 사람이 주가 되는 곳에서는 혹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곳에는 조금 부적당하다고 생각되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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