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1 (09:11:18)
거대한 산을 작은 플라스틱 모형에 잡아가두면 곤란합니다.
물음에 답하려는 무의식을 보라는 관점은 하나의 단서에 불과합니다.
그게 작은 힌트 하나는 되겠지요.
복제는 깨달음이 아니라 모방이고 표절입니다.
복제를 할 수 있는 복제의 자궁을 건설해야 깨달음입니다.
셰익스피어 소설을 읽고 그것을 복제하여 적과 흑을 쓰면 깨달음이지만
셰익스피어 햄릿을 읽고 햄릿 2부나 속편을 쓰면 그냥 표절입니다.
산이 '야 나는 얼마나 높냐?' 하고 물으면
에베레스트 형님은 높이가 8848미터인데요? <- 이렇게 받으면 오백방을 맞아야 합니다.
질문에 답을 했으니까 질문의 관점을 획득하지 못한 거지요.
바다가 '야 나는 얼마나 깊냐?' 하고 받아야 좀 아는 거지요.
산과 바다는 대칭을 이루어 호응이 됩니다.
질문에 답하지 않고 대칭을 이루어 호응시키는 방법으로 완성해야 합니다.
그런게 없이 그냥 따라하는건 호응이 아니지요.
시인이 댓구를 쳐도 운을 띄우면 라임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림의 반을 그리면 나머지 반을 채워서 완성시키는 것이 호응입니다.
그냥 똑같이 따라하는건 어린이 행동입니다.
2018.08.21 (15:15:09)
거대한 산을 작은 플라스틱 모형에 잡아가두면 곤란합니다.
물음에 답하려는 무의식을 보라는 관점은 하나의 단서에 불과합니다.
그게 작은 힌트 하나는 되겠지요.
복제는 깨달음이 아니라 모방이고 표절입니다.
복제를 할 수 있는 복제의 자궁을 건설해야 깨달음입니다.
셰익스피어 소설을 읽고 그것을 복제하여 적과 흑을 쓰면 깨달음이지만
셰익스피어 햄릿을 읽고 햄릿 2부나 속편을 쓰면 그냥 표절입니다.
산이 '야 나는 얼마나 높냐?' 하고 물으면
에베레스트 형님은 높이가 8848미터인데요? <- 이렇게 받으면 오백방을 맞아야 합니다.
질문에 답을 했으니까 질문의 관점을 획득하지 못한 거지요.
바다가 '야 나는 얼마나 깊냐?' 하고 받아야 좀 아는 거지요.
산과 바다는 대칭을 이루어 호응이 됩니다.
질문에 답하지 않고 대칭을 이루어 호응시키는 방법으로 완성해야 합니다.
그런게 없이 그냥 따라하는건 호응이 아니지요.
시인이 댓구를 쳐도 운을 띄우면 라임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림의 반을 그리면 나머지 반을 채워서 완성시키는 것이 호응입니다.
그냥 똑같이 따라하는건 어린이 행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