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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12 vote 0 2022.10.21 (12:53:56)

신유물론(neo-materialism)은 21세기 철학 최전선을 밀고 나가는 새로운 철학 이론이다. 멀게는 스피노자, 가깝게는 들뢰즈의 철학에 뿌리를 댄 이 최신 이론은 브뤼노 라투르, 도나 해러웨이를 거쳐 1990년대 중반 이후 신유물론을 주창하고 나온 일군의 철학자들을 몸통으로 삼아 뻗어나가고 있다. 문규민 중앙대 인문한국(HK)연구교수가 쓴 <신유물론 입문>은 신유물론의 구도와 개념을 해설한 뒤, 신유물론 전선에 선 마누엘 데란다, 제인 베넷, 로지 브라이도티, 캐런 바라드의 이론을 소개한다. 이 철학자들의 신유물론 철학은 존재론의 혁신을 꾀하는 차원을 넘어 페미니즘과 생태주의의 실천적 사유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신유물론의 ‘새로움’을 명확히 보려면 종래의 유물론과 대비해보는 것이 좋다. 고대 이래 유물론은 물질이 자기 내부의 힘과 역량 없이 외부의 영향을 받아 작용하고 변화한다는 가정을 공통 토대로 한다. 이 유물론의 눈에 비친 물질은 수동적이고 무력하며 비창조적이다. 신유물론은 과거 유물론의 이런 가정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물질의 작용과 변화는 외부에서 오는 영향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물질이 자신의 역량을 능동적으로 발휘함으로써 작용과 변화를 일으킨다고 보는 것이다. 능동성과 창조성이야말로 신유물론이 주시하는 물질의 새로운 특성이다.
이런 물질의 특성을 지은이는 물 분자(H₂O)를 사례로 들어 설명한다. 물 분자들은 기체 상태와 액체 상태에서는 병진운동과 회전운동을 하며 고체 상태에서는 진동운동을 한다. 이런 운동은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분자들 사이의 인력과 척력을 통해 일어나며, 인력과 척력은 분자 내부 이온들 사이에서 생성되는 전자기력에서 생긴다. 내부에서 만들어진 힘이 물 분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이 물 분자들은 온도가 어는점 아래로 내려가면 스스로 힘을 조절해 고체 상태가 되고 끓는점 이상으로 올라가면 기체 상태로 변한다. 이런 변화는 물의 상태와 상관없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물 분자들은 말 그대로 자강불식, 쉬지 않고 스스로 힘써 행하고 있다.”
이런 자기운동은 생명의 최소 단위인 세포에서도 발견된다. 세포의 대사 활동은 세포를 구성하는 분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무수한 화학반응으로 격렬하게 들끓는 세계가 세포의 세계다. 이런 활동은 마치 자동화한 공장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의 운동과 같다. 세포 내 분자는 ‘분자 기계’다. 그러므로 “세포의 사례는 언뜻 비물질적인 것으로 보이는 신비로운 생명 현상도 알고 보면 물질이 스스로 힘써 행한 결과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물 분자든 단백질 분자든 스스로 알아서 활동하고 창조한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렇게 분자들의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특성에 주목하면 물질을 ‘행위자’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다. 나아가 분자들이 행위자라면 분자보다 작은 원자들도 행위자일 것이고 눈에 보이는 사물도 행위자일 것이다. 물론 이런 행위자를 인간과 동일한 행위자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사물과 달리 의도와 욕망 같은 뚜렷한 지향적 특성을 지녔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지은이는 인간을 ‘두꺼운 행위자’, 사물을 ‘얇은 행위자’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스마트폰은 설정된 알람으로 정해진 시간에 사람을 깨워준다는 점에서 ‘얇은 행위자’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개념을 확장하면 행위자는 인간을 넘어 모든 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도구나 자원의 저장고가 아니라 얇은 행위자들이 우글거리는 사물들의 서식지”가 된다. 인간과 사물이 동종의 행위자로서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더 눈여겨볼 것은 신유물론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횡단성’ 개념이다. 신유물론은 사물의 물질성을 사유의 거점으로 삼고 있지만, 인간이 사물에 부여하는 ‘의미’의 차원을 동시에 주목한다. 이 책이 사례로 드는 것이 물로 가득 찬 호수다. 호수는 호수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는 식수원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낚시터가 된다. 같은 사물이 의미에 따라 다른 사물로 나타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물질은 단순히 물질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품은 기호로도 있다’는 사실이다. 물질이 변하면 의미가 변하고 의미가 변하면 물질도 변한다. 호수가 얼면 그 빙판은 놀이터가 된다. 그러나 물을 길으려는 사람은 그 빙판을 깨뜨려야 한다. 물질과 의미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질과 의미의 이 넘나듦과 가로지름이 바로 ‘횡단성’이라는 말이 뜻하는 것이다. 물질과 의미, 자연과 문화는 이런 횡단성 속에서 서로를 함께 규정하고 구성한다. 물질은 자연에만 속하는 것도 아니고 문화에만 속하는 것도 아니다. 물질은 ‘자연문화’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신체다. 어떤 문화 속에서 특정한 신체가 정상으로 규정될 경우, 그런 신체가 아닌 신체는 비정상이 된다. 반대로 문화가 바뀌어 비정상이 정상이 되면 이제껏 정상이었던 신체가 비정상으로 떨어진다. 신체는 그저 자연적인 것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물도 인간도 자연과 문화, 물질과 의미의 ‘교차점’에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신유물론의 이런 사유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사유로도 이어진다. 포스트휴머니즘은 단일한 보편적 인간이라는 동일성을 해체하고, 다원적이고 다중심적인 인간을 ‘인간 이후의 인간’으로 제시한다. 신체와 의미, 자연과 문화를 어떻게 횡단하느냐에 따라 인간은 수없이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다. 동시에 포스트휴머니즘은 ‘탈인류중심주의’를 뜻하기도 한다. 인간을 특권적인 지위에 놓은 근대 존재론을 해체하여 사물과 인간의 지위를 평등화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동물과 똑같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는 분명히 역량의 차이가 있다. 탈인류중심주의가 강조하려는 것은 인간과 비인간을 존재론적으로 동일 차원에 놓음으로써,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근대의 인간중심주의 존재론을 넘어서자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신유물론은 급진적인 생태학적 상상력을 품은 새로운 윤리학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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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에서 강조하는 완전성 자발성 창발성과 비슷한 개념이네요. 구조론에서 비판하는 원자론은 내부를 쪼갤 수 없다. 즉 인과는 외부에서 일어난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는데 구조론은 인과는 닫힌계 내부에서 일어난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원인이 내부에 있다면 능동성, 자발성, 적극성이 있는 거지요. 그러나 백퍼센트 내부는 없고 사실은 각운동량 보존에 따른 착시입니다. 닫힌계는 공간적 내부일 뿐 시간적으로는 외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닫힌계는 공간을 닫으므로 시간적으로는 외부와 연결되어 외부원인이 내부격발 하는 겁니다.

총을 쏜다면 방아쇠를 당기는 힘은 외부작용이고 뇌관의 폭발은 내부요인입니다. 구조론은 내부구조이며 내부요인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통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7]오리

2022.10.21 (22:09:12)

구조론과 비슷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신유물론이 21세기 철학 최전선에 있는 새로운 철학 이론이라고 하니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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