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쓰임새를 깨달음
‘자유는 사랑할 자유다.’ 이것은 나의 말이다. 자유와 사랑이라는 두 단어를 연결지어 보이고 있다. 자유라는 단어의 쓰임새를 구축하여 보이는 것이다. 춘향의 사랑은 춘향의 자유에 연동되어 있다. 춘향은 기생이고 기생은 천민이다. 그러므로 춘향에게는 자유가 없다. 자유가 없으므로 사랑할 수 없다. 춘향이 자유를 쟁취한 즉 사랑을 쟁취한 것이다. 자유의 크기는 사랑의 크기에 비례한다. 사랑이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뗄레야 뗄 수 없다. 선과 악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듯 비참과 구원이 동전의 양면이 되듯 자유와 사랑은 한묶음이다. 자유와 사랑과 함께 선다. 자유가 서면 사랑이 서고 자유가 쓰러지면 사랑도 쓰러진다. 깨달음은 대자유에 서는 것이고 그것은 큰 사랑을 세우는 것이다. 사랑없는 자유가 무의미라면 자유 없는 사랑은 불가능이다. 자유가 약했던 왕조시대에 사랑도 약했다. 그때는 정략결혼이 다반사였다. 인류의 자유가 신장되어 온 만큼 사랑도 심화되어 왔다. 인류문명의 진보는 자유의 폭을 신장하는 것이며 그 결실은 사랑의 질을 심화하는 것이다. 이렇듯 나는 자유와 사랑이라는 얼핏 보기에 관련이 없어보이는 두 단어를 짝지어 보임으로써 자유와 사랑이라는 단어의 쓰임새를 확장해 보인다. 이렇듯 나는 미학을 이야기하고 소통을 이야기한다. 영성을 이야기하고 관(觀)을 이야기하고 심(心)을 이야기하고 날을 이야기한다. 언어를 깨달음은 그렇게 언어의 쓰임새를 구축하고 확장해 보이기다. 그럴 때 세상의 모든 논쟁이 해소되고 모든 분란이 가라앉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