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어부 “왜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놀고 있는 것입니까?” 한 부자 사업가가 바닷가를 지나던 중 배 옆에 드러누운 채 노래를 흥얼거리며 놀고 있는 어부를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부자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물었습니다. 어부가 대답했습니다. “오늘 몫은 넉넉히 잡아놓았으니까요.” “그러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잡으면 되잖습니까?” “그래서 뭐 하게요?” “그러면 돈을 더 벌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돈으로 지금 당신의 배보다 더 좋은 배도 살 수 있고, 그러면 고기가 많은 깊은 바다까지 나가 그물질을 해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지요. 그 돈으로 더 좋은 그물을 사고 더 많은 배를 거느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당신도 나처럼 커다란 부자가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어부가 되물었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는 무엇을 하죠?” “편안히 당신의 삶을 즐길 수 있는 것이지요.” 어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이야기는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사랑’이라는 동기부여가 빠져 있다. 사람들이 편안히 낚시를 즐기기 원하는 것은 그렇게 하여 잡은 고기를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낚은 물고기를 돼지에게 던져줄 것인가? 좋은 친구를 얻지 못한다면 그 낚시조차도 지루한 일이 된다. 이 유머를 읽고 잠시 동안 행복해 한 많은 독자들이 이 유머의 교훈을 받아들여 어부가 되는 일 따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유머에서 어부의 성공은 작은 것이며, 밀도가 낮은 것이며, 불완전한 것이다. 유머에서의 부자는 그 성공으로 만족해 하겠지만 자기위안에 불과하다. 결정적으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둘 다 실패다. 반면 진정으로 이해하는 친구가 있다면 설사 그 바닷가에 초대하지 못하다 해도 그러한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성공한 것이다. 그대와 내가 그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월척을 낚은 것이다. 의미로 보면 그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