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인 이야기 이해하기 ]
이길수 밖에 없는 싸움을 이겨서는 영웅이 아니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이기는 것이 영웅이다. 싸움에서 이기는건 간단하다. 더 많은 군대를 투입하면 된다. 그래서 이기는 건 영웅일 수 없다.
로마는 무수히 싸워왔고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한니발 조차도 감히 로마 성곽을 포위하지 못하였다. 왜 로마는 강한가? 또 싸울 때 마다 이기는가? 왜 이길 수밖에 없는가?
요는 같은 로마인끼리 패가 갈려 싸울 때도 많았다는 거. 그런데 로마식 싸움은 항상 명분있는 쪽이 이긴다. 즉 승패가 사전에 정해져 있다. 싸워서 이기는게 아니라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다.
안토니우스가 전력이 약해 패배한 것은 아니다. 브루투스의 잔당들이 병사가 적어서 진 것이 아니다. 로마를 배반하고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로마는 언제나 승리하며 승리한 쪽은 언제나 옳다. 이겼기에 옳은 것이 아니라 옳기에 이기는 것.
카이사르는 무장이지만 탁월한 학자이며 진정한 공화주의자, 정치가이다. 그의 에너지는 전쟁보다도 로마의 개혁에 투입되었다. 전쟁은 그의 작은 부분이며 정신은 큰 부분, 세계국가로서의 로마는 시이저가 구상한 것이며 옥타비안에 의해 이룩되었다.
옥타비안이 간단히 정적을 몰살하는 방법을 쓴데 비해 카이사르의 방법은 져주고 이기는 것. 팍스로마나를 이룬 로마식 전쟁과 로마식 전쟁을 가능케 한 로마식 정치체제를 연구해야 한다.
싸움은 언제나 같은 모양으로 진행된다.
카이사르 혹은 로마가 불리한 위치에 있고 그 틈을 노린 적들이 돌연 모여들어 숫적 우세를 믿고 선전을 포고한다.
카이사르 혹은 로마는 기습을 당하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100프로 질수 밖에 없는 싸움을 시작한다.
카이사르 혹은 로마는 광범한 정보수집과 견고한 조직체계로 긴밀히 움직이는데 비해 적들은 엄벙덤벙 숫자만 많이 모인다.
적들이 몇번 공격해 보지만 섣불리 대항하지 않고 느리지만 치밀하게 한걸음 한걸음 움직여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적들은 초조해 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결국 행운을 하늘에 맞기고 도박을 하게 되며 일정부분 우세를 점하지만 결국은 패퇴하게 된다.
시이저 혹은 로마는 정보와 조직을 무기로 하고 적들은 숫자를 무기로 한다. 전쟁은 장기화되고 시이저는 느리게 한걸음한걸음 움직여 와서 결국 숨통을 끊어 놓는다. 그것은 매우 교과서적인 싸움이다. 카이사르의 군대는 아무리 우세해도 서두르지 않으며 아무리 불리해도 당황하지 않는다.
카이사르의 싸움은 완벽하게 교과서적이기 때문에 카이사르 이후 로마군대는 카이사르를 흉내내기만 하면 이겼다. 역사상 위대한 장수가 많았으나 대부분 행운이 작용하였다. 때문에 영웅이 죽으면 나라는 망한다.
전쟁을 정보와 조직의 대결로 이끈 사람은 카이사르 뿐이다. 카이사르의 위대성은 그의 싸움이 철저하게 교과서적인데 있다.
기발함, 외교술, 합종연횡, 음모, 꾀, 아이디어, 술수, 카리스마 등 잡된 요소를 제거하고 온전히 전쟁의 핵은 정보와 조직이다는 단 두가지로 집약해낼수 있는 자 카이사르 외엔 없다.
전쟁에서 정보와 조직이 있다면 서두르거나 도박할 이유가 없다. 실수가 없으므로 행운도 없다. 사기도 필요없다. 흔히 사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이는 조직이 약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조직이라면 조직 자체의 힘이 곧 사기가 된다.
로마군대는 결코 싸움을 서두르지 않으므로 함정으로 유인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들은 철저하게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여 완벽하게 진영을 구축해놓고 몇 개월이고 끈기있게 기다린다.
손자는 전쟁의 기본이 속임수라고 했다. 이건 적이 정보에 약할 때나 해당되는 말이다. 로마군대를 상대로 해서는 어떠한 계책도 소용없다. 오합지졸이 숫자만 많으면 군량이 부족하므로 공격을 서두르고 여기서 계책과 사기가 승패를 결정한다.
완벽한 군대가 적은 숫자로 진을 튼튼히 치고 있을 때 쳐부술 방법은 없다. 이쪽이 초조해지고 분열되고 자멸하는 것이다. 로마가 항상 이기는 것, 그것도 도덕적으로 명분있는 쪽이 이기는 것은 로마군단은 정보와 조직을 무기로 매우 교과서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만리 밖에서 일어나지만 승패는 로마성벽 안에서 결정된다. 로마시민의 지지를 받는 쪽이 반드시 이긴다.
카이사르 혹은 로마의 반대편 쪽에 선 군대는 정보와 조직에서 일단 뒤지므로 싸움을 계책, 술수, 행운, 병법에 맞기려들고 로마군은 불리해도 서두르지 않고 적이 자멸할때까지 기다린다.
중요한 것은 도덕적으로 명분이 있는 쪽이 언제나 정보와 조직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적들은 모험적인 승부로 행운을 기대하지만 로마군은 절대 응전하지 않고 더 기다린다.
손자 : 병법의 기본은 속임수이다.
카이사르 : 병법은 기본은 정보와 조직이다.
술수가 통하지 않는 교과서적 전쟁에서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쪽이 언제나 정보와 조직에서 유리하다. 부도덕한 자는 민이 협력하지 않으므로 정보를 얻을 수 없고 단결되지 않으므로 조직이 약하다. 고로 선한 쪽이 언제나 악을 이긴다.
지긋지긋하게 미련한 놈들, 아무리 유혹해도 달려들지 않고 아무리 겁주어도 눈 깜짝 않는 독사같은 자들, 그들이 조용하고 치밀하게 대오를 갖추어서 한걸음한걸음 저벅저벅 발소리 맞추어 천천히 전진해 오고 있다. 완벽하게 교과서인 자들, 모든 행동을 규정대로 하는 자들, 적이 천리밖에 있어도 여섯시간 걸려 교범대로 숙영지를 건설해야만 잠을 자는 미련곰탱이들, 도무지 빈틈이 없는 자들, 공포의 대왕 로마군단이다.
[완벽한 정보와 조직이 있다면 언제나 선이 악을 이기는 것이 역사의 법칙, 그것을 믿어야 한다. 선이 악을 이기지 못했을 때 반드시 반성해야 할 내부모순이 있다는 것]
[로마가 남긴 것은 도로와 교범(FM) 뿐이다.]
[로마식 전쟁을 좋아하는 것은 로마교범이 내 이론들과 일정부분 유사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정보와 조직일 때 선이 악을 이기는 원리에 기초한다.]
[정보와 조직은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일방통행한다. 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정보가 이동하고 조직이 기능한다.]
[우리가 완벽한 민주주의를 한다면 언제나 정보와 조직이 우세한 쪽이 이기고 그쪽은 반드시 선한(다수의 편) 쪽이다]
[독재, 불의는 언제나 사기, 계책 음모, 술수들에 의지한다]
[계책, 음모, 술수는 정보가 단절된 곳, 조직이 막힌 곳에서 효과를 낸다]
[크게 보아서 역사는 언제나 선의 승리를 보장해 왔다.]
[역사는 선의 편이다. 그것을 믿는가?]
이토이님을 위한 로마론
몽고제국이 광대하지만 그들은 정복했을 뿐 통치하지 못하였다. 전쟁에 이겼을 뿐 역사에서 승리하지 못하였다. 즉 아무 의미없다. 로마의 위대성은 [로마화]에 있다.
로마의 지배를 받은 모든 나라는 로마가 되었다. 나라들이 로마처럼 원형경기장을 짓고 원로원을 두고 도로를 닦게 된 것이다. 로마는 세계국가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국가형태를 창출해내었다.
로마가 서로마제국에서 동로마제국, 신성로마제국으로 3000년의 명맥을 이어온 것은 [세계국가]라는 새로운 종류의 국가형태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동로마나 신성로마가 로마의 이름을 빌리는건 로마는 국명이 아니라 [세계국가]라는 국가형태명이기 때문이다.
몽고나 오스만 터키나 이런 것들은 그저 봉건국가가 영토확장을 꾀한 것에 다름 아니다. 몽고제국은 여러개의 한국으로 분열되었고 중국에 동화되었으므로 세계국가에 실패했다. 왕만 바뀐것.
세계국가는 알렉산더가 처음 시도했고 카이사르가 완성했으며 나폴레옹이 흉내낸 것이고 마르크스주의 세계혁명론의 모델이 된다. 미국 패권사상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한다.
인터내셔널이라는 UN 비슷한 국제기구가 전 세계를 통치하는 것이다. 로마는 정보의 빠른 유통을 위해 도시와 도로를 건설하였고 최적화된 조직체계를 위해 공화주의와 로마법 로마교범을 만들었다. 이것만이 순수하게 로마의 것이다.
로마문명은 별 보잘것이 없다. 대개 아테네에서 가져온 것이고 가치있는 것은 그들이 [정보와 조직]이 말하는 국가를 발명했다는 것이다. 어떤 국가든 집단이든 완벽한 정보소통과 완벽한 조직체계를 가진다면 가장 선한 국가다.
이 점에서는 동양이든 서양이든 예외가 없다. 아프리카든 인디오든 북한이든 악당국가는 정보가 단절되고 조직이 기능하지 않는다는 본질이 있다.
로마는 패권국가이며 침략국가이지만 (지금의 미국에 비유될수 있다) 정보와 조직에서 완벽하다면 결코 나무랄수 없다. 반대로 북한 쿠바 이라크 등이 아무리 선(우리식대로 산다) (약소민족의 설움)을 강조하더라도 정보와 조직에서 막힌 이상 악당국가다.
우리는 로마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로마는 나폴레옹, 히틀러, 트로츠키, 지금의 미국 등에 의해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의 정복이념이 카이사르의 로마에서 나왔고 히틀러의 제3제국이 로마를 모방하고 있으며 트로츠키의 세계혁명론이 로마에서 본받고 미국의 패권지향이 세계의 로마가 되겠다는데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공계획은 침체된 국제무기거래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미국무기상들과 섹스스캔들에서 벗어나는 쇼를 하려는 클린턴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야비한 태도이다. 섹스스캔들 때문에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로마주의가 있다. 로마주의란 정보와 조직에서 완전하면 무조건 선하며, 선하므로 패권을 휘둘러도 괜찮다는 사상이다. 로마는 무수히 침략하였으나 언제나 침략의 빌미는 상대방이 제공하였다. 로마가 먼저 악을 행한 적은 없는 것이다.
나의 결론 : 정보와 조직에서 100프로 완전한 국가는 없으며 미국의 패권지향은 주제넘은 것이다. 미국이 언제나 선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그 점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이상 여전히 다른 나라에 간섭할 것이며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
로마의 것은 도시와 도로 = 정보의 빠른 유통 내지 공유
로마의 것은 로마 법과 로마교범 = 민주주의의 산물
가장 민주적인 것은 가장 완전한 조직체계이며 가장 완전한 조직이 완벽하게 정보를 소통시킬 때 그것은 절대 선이다. 중요한 것은 완전한 정보소통과 완전한 조직체계는 오직 민주주의에 의해서만 달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오늘의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 완전한 정보소통과 완벽한 조직체계의 구현이다.
만델라와 김대중
19세기의 늘그막에 중남부 아프리카에 [샤카 줄루]라는 위대한 추장이 나타났다. 샤카 줄루의 일대기를 보면 징기스칸과 비슷하다. 부족에서 축출되어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와신상담 칼을 갈다가 성년이 되자 부족을 통일하고 정복을 지속하여 중남부 아프리카를 휩쓸고 북아프리카로 진격하였다.
백인들이 남아프리카에 상륙하자 샤카 줄루는 재빨리 백인들을 포섭하여 자기부하로 만들었다. 중부 아프리카의 토벌전에서 샤카 줄루는 백인의 대포와 소총을 사용하였다.
이 걸출한 흑인 영웅을 그냥 두었다가는 크게 후환이 되겠다 싶었던 영국은 정식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샤카 줄루와 6만명의 흑인군대를 괴멸시켰다. 샤카 줄루의 잔당들이 오늘의 남아프리카 최대종족인 인카타 자유당의 줄루족이 되었다.
줄루족은 영국과의 적대적인 관계로 해서 보어전쟁에서 보어인들과 협력하였고 그러한 역사적 이유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2등국민이 되었다. 나치잔당이 남아프리카로 달아나서 드 클레르크의 국민당을 만들었고 영국과의 적대적인 관계는 미국과의 적대적인 관계로 이어져서 남아프리카의 고립을 낳았다.
1등국민 : 보어인 2등국민 : 줄루족 3등국민 : 기타부족
만델라는 3등국민인 코사족 출신이다. 만델라의 투쟁이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전형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배세력이 적을 분열시켜 각개격파하는 방식의 전형성이다.
이것을 우리나라에 대면
1등국민 : 재벌 상류층 2등국민 : 경상도 3등국민 : 전라도
김대중의 생고생은 만델라의 고난같다. 악은 먼저 우리편을 2등과 3등으로 나누어 회유하고 분열시킨다. 인종분리정책에 상대적으로 이득을 본 줄루족 인카타자유당의 수상한 행보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경상도와 전라도의 분열은 악의 세력이 늘상 써먹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공산당의 전술이 [통일전선전술]이라면 그들의 전술은 [2개의 전선전술]이다. 세계 어느나라 가나 악의 세력은 반드시 이러한 [2개의 전선전술]을 쓴다.
북한은 우선 미국과 남한을 분열시키는 [따로 회담전술]을 고집하고 있으며 후세인 또한 쿠르드족과 시아파 사이에 2개의 전선을 두고 있다. 바로 그것을 꿰뚫어야 한다.
혹자는 경상도가 무슨 이득을 보았느냐 말할 것이다. 부텔레지의 줄루족은 또 무슨 이득을 보았는가? 한나라당의 술책 또한 이와 같다. 자민련과 국민회의 사이에 두 개의 전선을 만들라.
구름이 영양가없는 논쟁을 하려고 하는데 약간의 관점 차이를 지적해야겠다. 한니발은 카르타고이고 카르타고는 로마가 아닌가? 로마는 세계국가이고 카르타고와의 싸움은 내전에 가까운 것이다. 즉 나는 세계국가로서의 로마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내 진의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지만 세계국가로서의 로마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 순수한 로마의 것은 로마식 도시구조와 도로 그리고 로마법 뿐이다. 우리가 로마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에르투리아인의 것이거나 그리스의 것이고 모두 로마에 포함된다.
로마인이야기의 한니발은 로마의 일부이다. 모든 것은 그리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 이후 지중해 연안으로 흩어져서 수많은 식민국가들을 건설하였다.
전쟁은 이탈리아 반도 장화 끝 시칠리아 주변의 그리스 식민국가들과 아프리카계 그리스식민국가들 사이의 제해권 다툼이다. 로마는 용병 비슷하게 슬그머니 끼어들어 그리스의 식민국가들을 먹고 카르타고도 먹었다.
한니발은 이미 로마에 먹힌 카르타고에서 스페인으로 달아난 반란세력일 뿐이다. 즉 그 당시 카르타고는 이미 로마화 되어있었던 것이다. 한니발이 로마인이야기의 핵이 되는 것은 그 역시 로마인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은 대체로 정확하지 않은 것이지만 구름이 말하는 칸네전투는 아마 알프스를 넘어온 한니발이 안개가득한 날 호숫가에서 로마군대를 몰살시킨 예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전투다. 한니발은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졌다.
왜 한니발은 로마성곽을 공격하지 못했는가? 역사에 가정이 없지만 한니발이 로마성을 공격했다면 이겼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졌을 것이다. 로마 주변의 로마 동맹국들로부터 한니발은 고립되는 것이다. 바로 거기서 로마는 승리한 것이다.
왜 로마의 동맹국들은 혈통을 따지면 한니발과 같은 그리스계인데 끝까지 한니발의 선동에 응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로마가 강한 이유이다. 로마의 공화정 때문이다. 로마는 세계국가이므로 혈통이 다르다는 한니발의 선동에 응하지 않은 것이다.
로마는 전투에 졌을 뿐 전쟁에 지지 않은 것이다. 전투는 원래 이기고 지는 것이지 안지는 전투가 어디 있겠는가? 로마의 승리는 전투력의 승리가 아니라 공화정의 승리인 것이며 나는 그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니발이 16년 동안이나 이탈리아 반도 곳곳을 배회한 이유는 이탈리아내의 그리스 식민국가들과 한니발이 족보를 따지면 같은 그리스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한니발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리스냐 로마냐?] 그들이 말했다. [그리스나 로마나.] 한니발은 싸워서 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계 식민국가들이 이미 로마에 동화되어 있었기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희미해서 진 것이다. 즉 카르타고는 로마에 패배한 것이 아니라 동화된 것이다.
이후 카르타고는 철저히 파괴되었지만 카르타고 세력은 시칠리아부터 아프리카 연안 스페인까지 도처에 흩어진 그리스계 식민국가를 망라하므로 패배한 것이 아니라 동화, 흡수된 걸로 보아야 한다.
한니발 역시 로마다. 카르타고는 싸워서 진 것이 아니라 카르타고의 영향권 안에 있던 그리스계 식민국가들이 로마화 되어버려서 토대가 없어져 더 싸울수 없었던 것이다.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유는 로마를 세계국가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국가형태의 변경이다. 황제라는 개념은 그 당시에 없었다. 황제가 되려했다는 것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 그 무언가가 되려했다는 것이다. 우선 황제라는 명칭 자체가 곧 카이사르 이름이다.
황제가 카이사르인데 카이사르가 카이사르가 되려하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로마 황제들은 카이사르의 이름을 세습한다. 황제가 된다는 것은 카이사르의 이름을 받아 양자가 된다는 것이다.
예수가 말했다. [가이사(카이사르)의 것은 가이사에게 야훼의 것은 야훼에게] 가이사는 황제가 된 것이 아니라 가이사가 되었다.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이 두려워한 것은 로마시민권의 확대이다. 카이사르가 갈리아인이나 게르만인이나 가리지 않고 로마시민권을 주었기 때문에 암살한 것이다.
당시 로마에는 계급이 서너가지 이상 세분되어 있었다. 로마시민권 소유자와 속주민의 신분은 엄격히 구분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로마시민권을 주는 계급혁명이 카이사르의 혁명이며 암살자들은 그 혁명을 두려워 한 것이다.
구름은 기억력이 뛰어난 것을 무기로 쓰잘데없는 트집을 잡는데 난 구름이 맹사성을 황희라 말해도 암말 안했다. 등자가 11세기에 만들어졌으면 경주박물관의 등자는 무엇일꼬? 등자는 기원전 흉노족이 발명한 것이고 한무제때 중국에 전해지고 한사군 때 우리나라에 전해지며 4세기에 게르만족의 이동을 따라 유럽에 전해진다.
로마는 언제나 정의이며 선이다는 말은 로마의 공화정 곧 민주주의의 장점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이 선인가? 정보의 유통과 공유, 법과 교범에 의한 지배가 선이다. 곧 민주다.
왕정은 담을 쌓아 정보를 차단하고 법을 무시하며 이래서는 일시적으로 전투에 이길수 있으나 결국은 지게 된다. 카르타고를 하나의 도시국가로 보면 로마에 졌지만 스페인에서 시칠리아 아프리카까지 광범위했던 그리스계 식민국가 카르타고세력 전체로 보면 로마에 저절로 동화되어간 것이며 한니발 역시 로마의 일부가 된 것이다. 우월한(선한) 체제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동화 흡수하는 것이다. 그것이 선이 언제나 승리하는 이유이다.
구름을 위한 로마론.
나쁜 기억력은 이럴 때 나를 한숨짓게 한다. 한국식 암기위주의 학습문화에 중독된 독자는 이름과 연도들을 거명해주어야 신난다.
내가 좋아하는 것, 혹은 가치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답이 나오는 문제이다. 제갈량과 손자를 매우 비판한다. 그건 답이 안나오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답이 나온다는 것은 무엇인가? 타인들에 의해 응용되고 역사에 기록되며 두고두고 써먹어지는 것이다. 로마식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모태가 된다. 이건 답이다.
제갈량의 신출귀몰은 그걸로 끝이다. 손자의 얍삽한 재주는 1회용이다. 그런 처세술은 세상을 더 각박하게 할 뿐이다. 모두가 공유할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정보와 조직이다.
속임수나 기발한 아이디어는 공유가 불가능하다. 조직체계는 평범하지만 공유된다. 필요한 것은 철학이다. 나나미에겐 철학이 있다. 나나미의 결론은 로마의 본질은 정보와 조직이며 이것은 독점되는 것이 아니라 공유되는 것이고 그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구름이 좋은 역사소설을 쓰는 것은 좋다. 그러나 독자의 공감을 받으려면 다만 재미있는 데서 끝날것이 아니라 남는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타인에 의해 응용될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플루타크 영웅전을 아무리 읽어도 동양인의 시각은 아니다. 그들이 왜 뛰어난지 알수없다. 영웅은 영웅인데 어쩌란 말인가? 그들이 총명하고 용기있고 지혜롭데서 답은 아니다. 울나라에도 총명하고 용기있고 지혜로운 이 많다.
우리는 그리스 로마문화를 맹목적으로 동경하거나 아니면 괜한 이질감에 거부한다. 나나미식 접근법은 개인들의 용기, 지혜, 호방함이 아닌 사회구조의 [그렇게 되게 되어 있었다]를 파악해 보인다. 그렇다면 환경이 달라서 그렇지 우리도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로마인이야기를 읽고 [아 그들도 특별히 뛰어난 존재가 아니구나 울나라서도 얼마든지 있을수 있는 일이 일어난거구나]하면 성공이다. 구름의 소설은 마땅히 그러한 점을 포착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서구에서 발달한 것은 지중해 덕분이다. 민주주의는 정보의 공유를 통한 조직의 정교함이며 바다를 접하여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아테네로부터 시작하였다.
중국은 달아날 곳이 없다. 황제를 거역하면 죽어야 한다. 그리스인은 지중해 바다로 도망가서 곳곳에 식민도시를 건설하였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이다.
그러한 그리스방식을 충분히 소화하여 마침내 집대성한 곳이 로마이다. 항해가 뛰어난 그리스들은 분열되었지만 항해가 서투른 로마인은 달아나기 보다 조정하기를 즐겨하였다. 일곱언덕으로 이뤄진 로마 도시 구조 자체가 민주적이다.
중국은 너무 집중되었고 그리스는 분열된데 비해 로마는 균형이다. 문명의 중심지였던 오리엔트와 게르만의 경계선, 바다와 내륙의 경계선, 해양문화와 대륙기질의 교차점에서 로마가 이루어졌다.
전쟁에서 상승하는 방법은 불리할때 안싸우는 것이다. 아무리 맹장이라도 성문을 꼭꼭 걸어닫고 응전하지 않으면 격파할수 없다. 로마를 깰 수 없는 것은 로마가 불리할 때는 응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엔 한니발도 대책없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결국 정보와 조직이 뛰어난 쪽이 이긴다. 정보와 조직은 리더의 지혜와 용맹이 아니라 좋은 제도에서 나온다. 체제가 우월한 쪽이 이긴다.
문명은 대륙과 해양의 교차점에서 발달한다. 그곳에서 정보(바다)와 조직(대륙)이 만나기 때문이다. 로마가 망한 것은 그들이 사치 낭비했기 때문이 아니라 문명이 확대되어 문명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유럽대륙으로 옮아갔기 때문이다.
중국문명은 서안(낙양)에서 출발했는데 그 당시 지도를 기준으로 보면 흉노족 오랑캐와 중화민족이 만나는 접점이다. 말을 타고 쉽게 이동하는 흉노족의 문명은 정보의 통로로서 바다역할을 하고 중국의 황토지대는 대륙 역할을 한다.
이동이 쉬운 지역에는 분열되기 쉬워 조직이 발달할수 없다. 이동이 어려운 지역은 고립되어 정보가 차단되므로 발달할수 없다. 중국의 후대 수도인 북경이나 난징은 다 이동이 쉬운 바다 내지 유목민의 초원지역을 가까이 하고 있다.
내륙평야 지역은 이동이 쉬울 것 같아 보이지만 원주민이 장악하고 있으므로 이방인이 접근할수 없다. 정보를 가진 이방인이 접근할수 있는 곳은 바다를 접한 항구이거나 유목민의 이동루트인 초원의 접경이다.
18세기 영국의 발달은 그 당시의 세계전도를 놓고 볼 때 대륙(유럽대륙)과 해양(식민지)의 접점이 영국인 것이다. 또한 16세기 스페인 포르투칼이나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다.
지금 미국의 발달도 지구촌 전체를 놓고 볼 때 대륙(조직)과 해양(정보)이 만나는 접점이 미국이다. 어디가 그 대륙과 해양의 접점인가는 문명의 성격 내지 크기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지금 중국과 인도는 인구만 많지 지구문명 정체를 볼 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뿐 조직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중국이 발달하면 지금 미국에 있는 대륙과 해양의 접점이 한국으로 이동해온다. 고로 한국이 장차 세계문명의 중심지가 된다.
로마가 발달한 것은 그 당시 문명의 중심이었던 알렉산더제국의 그리스를 중심으로 볼 때 가장 진귀한 상품이 되는 신문물(정보)이 오리엔트 지역에서 게르만 지역으로 공급루트를 바꾼 데 있다.
알렉산더 시절만 해도 스페인이나 서아프리카, 영국 프랑스에서 물산은 나지 않았다. 진귀한 물산은 인도를 중심으로 오리엔트에서 서방으로 유입되었다. 이것이 한계에 부닥친 것이다.
더는 나올것이 없자 상인들은 일제히 서쪽으로 눈을 돌렸고 막 개척되고 있던 서부아프리카나 영국 프랑스 스페인에서 물산들이 공급되었다.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스인들이 남프랑스와 스페인 서부 아프리카에 식민국가를 건설하였고 시칠리아섬은 그 교차로이다.
카르타고와 시칠리아가 그 길목을 두고 싸웠으나 작은 도시국가들이 인구부족으로 드넓은 지중해를 관할할만큼 패권을 생산하지 못하였다. 로마는 인구가 많았다. 로마다국적군에 의해 지중해질서는 유지될수 있었고 갈리아, 게르만지역은 급속히 개발되었다.
만약 카르타고가 로마를 격파했다면 역사는 어찌되었을까? 카르타고는 조그만 도시국가다. 위성국가들과 동맹을 맺고 있었으나 동맹은 쉽사리 깨어지는 것, 또 어느나라가 카르타고에 반기를 들 것이고 전쟁은 지속되며 지중해의 평화는 오지 않는다.
역사는 문명의 진보라는 일방향으로 나아가므로 전쟁을 종식시킬 강력한 힘(인구수)를 가진 세력을 필요로 한다. 당시 스페인이나 프랑스는 미개하였고 시칠리아와 카르타고 사이의 좁은 길목에 군대를 파견할 가까운 나라는 로마 밖에 없다.
로마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지중해의 평화를 바라던 상인들이 결국 로마가 아니면 돈을 벌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 식민국가 상인들이 한니발의 간곡한 청을 외면하고 혈통이 다른 로마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강조하는 바 환경결정론이다. 역사의 세세한 부분은 인간이 만들지만 큰 줄기는 환경이 만드는 것이다.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 해적들을 격파했다면 영국의 패권은어디로 갔을까? 당시 물산은 신대륙에서 공급되고 소비는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에서 이루어졌다. 물산이 스페인을 경유해 프랑스나 독일로 가는 것보다 영국을 경유하는 것이 비용이 싸게 먹힌다. 지도를 펴놓고 무역풍이 부는 방향을 따라 선을 그어보면 안다. 시장은 결국 소비자와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신대륙 이전에는 물산(향료 비단 도자기)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공급되었으므로 길목인 스페인과 포르투칼이 차지한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 그들이 길목을 차지하였으므로 강성한 것이다. 조선이 뒤진 것은 정보가 공급되지 않아서이고 대원군의 쇄국정책 때문이 아니라 홍콩 인도에서 미국으로 가는 항로에서 비켜나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 결정한다.
왜 이런 것을 강조하는가? 구름이 로마인이야기를 읽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이다. 철학이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고토회복이니 다물이니 하는 옹졸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로마인들은 남의 것을 빼앗은 적이 없다. 길을 잘 닦아놓으니까 자연히 그리스 상인들이 남프랑스에서 선적한 물산을 해적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잘닦인 아피아가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길을 닦아놓으면 사람이 꼬이고 장이 서고 질서를 잡아주면 번영한다. 그것이 영토확장이다. 한국이 해야할 일은 그런 것이다.
한국의 번영은 빠락의 역사환경결정론상 예정된 것이다. 중국은 너무 커서 효율적인 조직을 만들려면 100년이 걸린다. 장차 가장 큰 소비지는 중국이 되며 한국이 길목이다. 일본은 미국과 동남아 사이의 길목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길목이다.
마이클 잭슨이 인천에 어린이공원을 만들면 장차 수백만 중국관광객을 유치할수 있다. 중국인이 일본을 가기에는 돈없다.
민주주의는 길을 닦아놓는 것과 같다. 민주주의에서 조직이 기능하고 정보가 유통한다. 거기에 장이 선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나라가 된다. 일본은 개혁의 적절한 시기를 놓치고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해야하는 것은 안하면 그들(서구인)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한국인들은 토끼나 호랑이 모양에 댄다. 외국인들은 출항하는 배 모양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돛을 올리고 항구를 뜨려하는 배다.
껄껄~! 다른건 표현과 강조점의 차이이니 글타치고 등자이야기는 엄청난 야그다. 등자를 이해하는 것이 전쟁과 역사의 핵심인데 그걸 착각하고 있다니 이때까지 역사를 헛알았다는 것이다.
한무제의 고조선 침공도 등자 때문이고 한고조의 흉노에 당한 굴욕도 등자 때문이고 게르만족의 대이동도 등자 때문이고 로마의 몰락도 등자 때문인데 등자가 11세기에 만들어졌다면 역사가 뭐되는가?
길가는 사람 아무한테나 물어봐라. 경주 황성공원에 김유신 동상 등자도 잘못만든 것이구먼 그려. 고구려 벽화의 등자도 잘못 그린 거구, 클났다. 신라고분에 여러개 나온 기마인물형토기의 등자도 잘못 붙인 거여~!
도굴맨들이 신라토기를 발굴하다가 등자가 없는 것보구 이상해서 몰래 만들어 붙였구먼, 껄껄 ~!
구름에 대한 가벼운 언급.
등자문제로 구름과 내기해서 좀 벌어야겠다. 끄끄.
등자를 잘못 알고있다는 것은 역사를 전체적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 거다. 역사는 현미경으로 보아서 안된다. 서양인들은 등자가 낮아서 체중을 발에 싣고 속보를 할땐 궁뎅이를 든다. 동양인들은 등자가 높아 무릎사이를 조여 체중을 분산한다. 그림을 잘못 보면 다리를 쭉 펴고 있는 서양의 기사들이 등자없이 말탄 것처럼 보일수 있겠다.
몽고도 중국이고 청나라도 중국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에 동화되었으면 중국인 것이다. 1차 포에니전쟁에서 카르타고가 진 것이고 한니발전쟁은 2차 포에니전쟁이고 카르타고는 3차 포에니 전쟁 때 망했다.
카르타고가 강했다 하나 돈이 많아서 용병이 많았다는 건데 전쟁이 장기화하면 용병은 소용없다. 전쟁에서 돈이 뭔 의미있나? 인구가 적은 카르타고는 소국에 지나지 않는다. 로마인이야기에 뭣하러 카르타고인 한니발을 길게 다루나? 그 역시 로마역사의 일부가 아닌가?
왜 로마는 여러번 전투에 져도 결국 이기고 카르타고는 한번 지면 끝인가? 용병인 한니발의 부하들은 카르타고 출신도 아니고 로마가 이기든 카르타고가 이기든 관심없었다. 그들은 단지 로마병을 죽이면 손가락에 낀 금반지(로마의 도장)를 뺏는데 관심갔을 뿐이다.
카르타고 군 안에 로마를 적대한 것은 한니발 1인 뿐이었다. 그들은 스펀지에 물들 듯 로마에 흡수된 것이다. 카르타고가 멸망한 것은 거듭 로마에 대한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원로원의 결의로 말살된 것이지 싸움에 져서가 아니다. 스키피오는 카르타고를 말살할 생각이 없었다.
구름이 뭐 고울인이 어쩌고 어디가 약탈당하고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한때 잠깐 그랬다는 건데 의미없다. 카이사르 이야기는 구름이 로마인이야기를 좀 더 읽으면 무슨 소린지 알게된다.
등자문제 하나만 따지자. 등자가 참말로 11세기에 발명되었으면 내가 졌다카께.
역사는 해석된다.
구름과 논쟁하면 언제나 손해보는 느낌이다. 난 싸운다거나 이기고 진다는 생각이 없는데 구름은 임의로 룰을 정하고 자기의 승리를 선언한다. 그러면 내가 진게 된다.
사실의 정확성이 문제가 아니라 질적 깊이가 문제다. 관점의 차이인 것이다. 대개 어느쪽이 옳다고 말할수 없다. 어떤 책을 보고 이야기를 따오는데 어느 것이 정확하냐의 승부가 아니라 어떤 가치관으로 역사를 보느냐의 문제이다.
포에니전쟁은 카르타고와 카르타고의 위성국이었던 시라쿠사와의 싸움으로 시작되었다. 근데 시라쿠사도 원래는 카르타고의 일부이니 카르타고와 카르타고의 싸움이다. (이건 해석이다)
로마가 시라쿠사를 도우러 갔다가 싸움에 개입하는데 시라쿠사가 자진하여 로마의 밑으로 들어갔고 카르타고도 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 졌으니 로마의 속주가 된 것이다. 사실상 카르타고는 끝났다. (이것도 해석이다 관점에 따라 정반대의 주장도 가능하다)
이후 한니발이 스페인에서 쳐들어왔지만 그 군졸들은 카르타고와 아무 관계가 없다. 전쟁의 양상은 한니발 편에 붙은 로마동맹국과 로마편에 붙은 로마동맹국 사이에서 진행되니 로마의 내전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역시 해석이다. 한니발부대를 카르타고군대라 부를수도 있다. 나나미는 아마 한니발 1인의 전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얗든 나는 한니발 1인의 전쟁으로 본다)
그러므로 2차포에니 전쟁은 한니발전쟁이며 엄밀히 말해서 카르타고는 아무런 싸움을 하지 않았다. 한니발전쟁은 한니발 1인의 싸움이며 그 병사들은 다 로마의 동맹군이 이편저편에 붙은 것이다. 이건 지중해의 제해권 싸움이 아니라 로마의 내전이다.
이것은 해석의 문제이다. 나는 여기서 사실의 정확성을 문제삼지 않는다. 전쟁의 성격을 문제삼는다. 그렇다면 왜 나는 전쟁을 그렇게 해석하는가? 그게 중요한 것이다.
구름은 전쟁을 해석하지 않는다. 그냥 기록만 따진다. 나는 해석한다. 근데 이 해석이 구름에게는 불만이다. 내가 말하는 [카르타고로마론]은 중국의 [청나라도중국론]과 같다. 해석된 것이다. 여진족이면 [청나라는청나라론]을 펼수도 있다. 몽고인은 [몽고가 우예 중국이고] 할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중국의 해석을 따른다.
몰론 나나미 이야기와 정반대의 시각에서 정반대로 해석된 로마인이야기가 나올수도 있다. 나나미는 카이사르를 개혁가로 보았고 또 일부 다른 시각에서는 독재자로 본다.
나는 나나미의 시각을 존중한다. 그게 멋있다. 요는 구름이 책을 좀 팔라면 해석하는 습관을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근데 해석할라면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냥 글타고 우길게 아니라 근거를 대야하는데 그 근거는 사후에 마련되는 경우가 많다.
세익스피어가 그의 희곡 클레오파트라에서 안토니우스를 미화하여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의 명연설대결이 선전되는 바람에 카이사르의 죽음은 독재냐 공화정이냐의 다툼으로 해석되었다. 나는 다르게 해석한다. 물론 해석이다.
그런 관점은 다 사후에 세익스피어가 지어낸 픽션이고 당시 문제는 복잡했다. 가장 핵심은 로마시민권 문제였다. 로마인이 아닌 사람이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로마 시내를 활보해도 좋으냐였다. 로마의 장래가 엄정한 계급질서 안의 민족국가로 가는가 무계급의 세계국가로 가는가의 문제로 나는 해석한다.
나는 [역사환경결정론]이라는 역사철학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 틀에 맞게 역사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구름은 그 해석이 불만인 것이다. 구름이 책에서 본 기록과 다르게 말하니까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구름이 책에서 본 그것도 누군가에 의해 해석된 것이다.
종래의 영웅주의 사관을 극복하고 보자는 것이다. 나는 이기고 지는 것이 사전에 정해져 있다고 본다. 부분적으로는 다를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렇다. 문명의 중심이 어디로 이동하는가? 정보와 조직의 통로가 어디인가에 따라 역사는 예정조화를 따라간다. 인종의 우월성이나 영웅의 활약은 그저 흥미거리일 뿐이다.
알렉산더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그 일을 했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아니라도 누군가가 그랬을 것이다. 지리를 알면 역사의 상당부분이 필연이다. 인간의 작은 재주는 다만 어차피 일어날 일을 더 빨리 혹은 늦게 일어나게 할 뿐이다.
스파르타인은 용맹했기 때문에 그랬고 아테네인은 지혜로와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산악국가는 원래 용맹성을 문화적 특성으로 하며 해양국가는 정보가 빠르므로 유연함을 문화적 특성으로 한다는 것이 역사해석이다.
기록이라는 것이 믿을수가 없다. 구름은 편자를 등자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어떤 기록에 보니 편자를 여진족 정벌하던 조선초기의 어느 장수가 얼음 위를 말이 잘 걷게 하기 위해 처음 발명했다는데 나는 좀 믿어지지 않는다.
물론 나는 그 기록의 책 이름이 무엇이며 그 장수의 이름이 무엇이며 그 여진족 정벌이 몇년도의 일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얘기를 내가 임의로 지어낸 것은 아니다. 이 얘기는 과천경마장 마사박물관 어느 벽면에 씌어 있다. 내가 아는 것은 책에서 정확하게 읽은 것이 아니라 대체로 경마장 뭐 이런 이상한데서 줏어들은 거라서 좀 잡탕이다.
네모함장(핵잠수함은 선장이 아니라 함장이다)님 말씀은 요상해서 뭐가 질문인지 알기 어렵다. 세금을 공평하게 내는 것과 또 뭐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식으로 하면 대답하기 어려운 거다.
얗든 북한이나 공산주의가 민주주의가 아닌 것은 명백하다. 공산국가들의 공통점을 체크해 보면
1. 중국 소련 몽고 등 대륙국가. => 인간의 이동이 자유스럽지만 동시에 얼마든지 차단할수 있다. 이런 나라에서는 평등사상이 발달하여 (이동이 자유스러우므로) 민주적이지만 동시에 얼마든지 통제가능하기 때문에 억압적이다.
2. 알바이나, 쿠바, 북한 등 고립국가 => 산악 바다 등으로 고립되어 이동이 불가능고 국가규모가 작으므로 저들끼리 평등하다. 민주적이면서 동시에 통제가능하므로 억압적이다.
네팔, 부탄, 시킴, 쿠르드족 등은 산악에 고립된 국가로 공산주의가 아니라도 저절로 공산주의 비슷하게 평등하게 가난하며 산다. 인구가 적기 때문에 평등하고 고립되어서 통제되므로 억압되는 것이다. 아마존 정글이나 오지의 고립된 종족들은 자생적 공산주의공동체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고립된 섬으로 도망갈 데가 없으므로 통제가능하다. 고로 공산주의 성격의 공동체문화가 발달해 있다. 마쓰리(祭)의 경우 매우 평등하며 공동체적이다. 실제로 일본은 부의 평등부터 시작해서 충분한 평등사회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일본은 철저한 차별국가다. 계급문화가 엄존하고 있다. 평등은 하등계급에서 저들끼리 평등이다. 섬이기 때문에 대륙으로 부터의 잦은 유입이 불평등을 낳는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동가능한(불평등한) 인구는 일부 귀족들이다.
통제가능한 대륙일수록 평등하며 통제불가능한 섬나라일수록 불평등하다. 평등= 공산주의 성격 불평등= 자본주의 성격
이탈리아반도는 아직도 부유한 북부와 가난한 남부가 대립한다. 인도네시아는 부유한 화교와 가난한 원주민이 대립한다. 불평등은 도시와 상업이 발달한 나라 섬나라 반도국가의 특징이다.
일본의 불평등은 섬나라이기 때문이고 평등은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가지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다. 한국도 그렇다. 한국은 16세기까지 인구의 절반이 노비였다. 일본같이 철저한 계급국가였다. 그러나 동시대의 중국을 보면 (최부의 표해록을 참조) 노예가 없었고 매우 평등한 시민사회였다.
예를 들면 이구님은 일본이 불평등한 계급국가이고 한국이 평등국가라지만 한국이 평등해진건 조선후기 고립으로 가난의 평등을 이룬 덕택이다. 고려시대만 해도 한국은 일본과 같은 철저한 계급사회이면서 귀족국가였다. (인구의 7할이 노예) 고려때만 해도 무역이 발달하여 해양국가의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다.
고립되고 막히면 평등해진다. 이동가능하고 트이면 불평등해진다. 중국의 평등은 중국의 고립 덕택이며 조선의 평등은 조선후기 국제적 고립 덕택이다. 평등한 나라들은 공산국가 체질이고 불평등한 나라들은 자본주의 체질이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정보의 공유는 평등을 낳고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은 불평등을 낳는다. 섬나라는 항구를 통해 이동가능하므로 불평등하지만 섬나라가 무역을 그만두면 고립되어 철저하게 평등한 나라가 된다. 일본은 쇄국하다가 개방하다가 했기 때문에 두가지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어떻게 보면 철저히 평등하고 어찌보면 철저히 차별한다.
섬이나 반도로 바깥으로 진출하는 체질이 자본주의 체질이고 불평등 문화이며 계약이나 제도 규범 등 민주적 문화가 발달한다. 한국은 유태인 다음으로 해외교포가 많다. (화교도 많지만 인구비례로 보면 한국이 둘째임) 이는 한국이 해양기질 자본주의기질 불평등한 계약, 규범문화의 기질을 가진 증거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보면 조선후기 농업사회의 고립된 전통은 스스로 고립을 자원하여 폐쇄적이고 억압적이며 평등하다. 한국 또한 동전의 양면이어서 평등성과 차별성을 동시에 가진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1. 정보의 자유로운 생산 소통 (섬 반도 해양국가) - 자본주의
2. 정보의 충분한 공유 (대륙 고립국가) - 공산주의
3. 조직의 충분한 발달 (대륙 고립국가) - 공산주의
4. 조직의 유연성 탄력성 (섬 반도의 해양국가) - 자본주의
이동이 자유로운 유목민이나 필리핀처럼 너무나 섬들로 되어 있으면 인간들이 하나같이 도망가서 조직이 발달하지 않는다. 대륙이나 고립된 나라들은 도망을 못가므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 조직이 발달하지만 동시에 통제가능하므로 조직이 경화되어 공산주의가 된다.
참된 민주주의는 정보가 충분히 소통, 생산되는 해양적 기질과 정보가 공유되는 대륙기질의 교차점, 조직이 발달하는 대륙, 고립국가와 조직을 얼마든지 해체하고 다시 만들 수 있는 해양국가의 교차점에서 발달한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반도의 경우 로마전성기 때 평등한 공산당의 게르만족 갈리아족과 차별적 계급국가인 지중해 도시국가의 교차점에 있었다. 그러나 문명의 중심이 프랑스로 이동하자 섬처럼 되어져서 여러개의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통일되지 않고 섬이 아닌데도 섬처럼 되어버렸다.
한반도도 상업이 발달한 당,송 시대에 신라, 고려는 무역의 중심지로 해양기질이 발달하였으나 몽고족 만주족 등 대륙바람이 불어온 후 대륙기질이 스며들어 가난의 평등을 이룬 공산국가가 되었다. 중국도 당송시대에는 해양기질이 있었으나 몽고 청나라들의 유목민들이 원래 평등한 공산당이기 때문에 영향받아 쇠퇴했다.
민주주의는 유목민 농경민의 공산주의적 평등기질과 섬 반도의 해양기질이 만나는 곳에서 발달하며 또한 상호모순되는 듯이 보이는 두가지 성격 (정보의 자유로운 생산 소통 대 정보의 충분한 공유) (조직의 충분한 발달 대 조직의 충분한 유연성)의 적절한 균형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모순되는 듯이 보이는 이 두가지 가치를 동시에 발달시켜야 한다.
[정보의 자유로운 생산과 소통=자본주의] [정보공유=사회주의]
[조직의 발달=사회주의] [조직의 유연성=자본주의]
민주주의는 둘 중 하나를 살리기가 아니라 균형맞추기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들은 항상 그런 두가지 가치의 교차점에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 바닷바람과 대륙바람의 교차점에 있다.
민주주의가 발달하려면 우선 조직과 조직의 문화가 발달해야 한다. 그것은 법과 제도, 규범이다. 또 정보가 공유, 유통되어야 하고 이동이 가능해서 언제든지 이합집산 할수 있어야 한다.
탱탱자를 위한 말이야기
탱자님은 거 느물거리는 야그 좀 하지마쇼.
타인의 인생사에 대한 이야기는 안하는게 보약이라니까.
농사일이 생겨서 출입이 드물어질 모양인데 이바구 쪼매만.
마발에 편자가 없으면
겨울에 얼음길을 달리다가 말이 쫄딱 미끄러져서
다리를 뎅강뎅강 분질러먹으니 마다리 보호 차원에서
편자를 박아놓은 거 아이요? 엥이?
편자 없으면 경마장 말도 다리 다 분질러지요
언땅 아니라도 마찬가지. 그건 탱자님이 더 잘 알텐데.
글고 말이 왜 전쟁에 소용되는지 좀 가르켜 줄테니 들어보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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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기본적으로 먼저 포위하는 쪽이 이긴다.
10명과 9명이 싸우면 9명과 9명이 맞서고 남은 한명이 등뒤로 돌아가 혼자서 적군 아홉명 다죽인다. 숫자가 단 한명이 많아도 절대유리한게 전쟁이다.
전쟁에서 실제 싸우는 이는 맨 앞줄에 선 병사고 뒤에 있는 사람은 할 일이 없다. 그렇다고 놀랴? 옆으로 벌려서 적을 에워싼다.
아군도 벌리면 적군도 벌려서 벌리기 시합을 하는데 존나이 뛰어야 한다. 바둑과 비슷하다. 서로 적을 에워 싸는데 단 한명이 많아도 대마는 전멸.
벌리다가 너무 얇아지면 중앙을 돌파당한다. 돌파되면 진이 둘로 쪼개지고 각개격파된다. 바둑을 생각하면 된다. 대마도 끊기면 죽는다.
전투에서 병은 한데 모이면 포위되어 전멸이고 흩어지면 쪼개져서 전멸이다. 그러니 병은 흩어져도 안되고 모여도 안되는데 그래서 기병이 필요하다.
기병의 역할은 중앙을 돌파하는 역할과 적이 좌군과 우군을 벌릴 때 재빨리 막아서서 길목을 차단하는 역할이다. 기병 뒤에는 보병이 쫓아온다. 기병이 돌파하면 보병이 살육하고 길목을 막으면 보병이 에워싼다. 죽음이다.
전쟁터에서 병은 끊임없이 달리기 때문에 둘격하여 달려가다가 기병이 중앙을 돌파하면 그냥 둘로 쪼개진다. 죽음이다.
병은 혼자가 되면 죽기 때문에 반드시 모여있다. 때문에 기병이 에워싸면 보병은 꼼짝못하고 가만있다. 기병을 공격하려면 대오를 뛰어나와 혼전을 벌여야 하는데 대오에서 나오는 순간 죽는다. 고로 기병이 차단하면 보병은 제자리에 가만 있을 수밖에 없고 이때 보병이 따라와서 에워싸고 다죽인다.
기병을 막기 위해 활을 쏘고 창병을 투입하는 수도 있지만 길목을 차단당하면 그걸로 죽음이다. 전쟁에서 포위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10분 빠르면 대승이고 10분 늦으면 전멸이다. 기병이 재빨리 달려가서 길목을 막으면 진군하던 병사들이 활을 쏘고 창을 던진들 적어도 10분을 허비하고 그 10분 사이에 군은 이미 포위되고 전멸이다.
돌파와 포위 안되려면 기병을 막아야 한다. 고로 적의 기병에 대항하기 위해 아군도 기병을 두는 방법 밖에 없다. 고로 기병은 기병끼리 싸운다. 기병은 돌격해도 섣불리 혼전하지 않는다. 기병이 돌파하여 적진을 흐뜨리면 보병이 따라다니며 살육한다.
옛날의 전투는 달리기 시합이다. 병사는 들판에 가만이 서있는 것이 아니라 깃발을 따라 죽을둥 살둥 뛰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진열을 갖추어야 한다. 거기 기병이 뛰어들면 흩어진다.
달리던 병사는 멈추게 되고 그 속도에서 적보다 느리면 포위되고 전의 상실이다. 승부는 거기서 끝이고 혼전이 벌어지면 대개 포위당한 쪽이 일방적으로 몰살되는 살육전이지 대등하게 밀고 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구름을 위한 역사이야기
구름은 틀렸다니 맞다니 하는데 맞는 것은 무엇이고 틀린 것은 무엇인가?
나나미의 말대로 등자는 중세의 마구(馬具)이다. 근데 중세는 언제부터인가? 역사라는 것이 딱 잘라서 여기서부터 중세다 하고 정할수 없다. 중세적 특징이 나타나면 중세다.
우리나라는 부자세습이 정착된 고구려 태조왕, 백제 근초고왕, 신라 내물왕 때를 경계로 삼지만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를 몇 년도 하는 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없다.
고대의 특징은 청동기문화가 발달하고 도시중심이었으며 노예제를 기반으로 시민사회를 이루었다.
중세는 농촌 중심이며 철기문화가 발달하고 계급이 세분되었고 기사계급을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점을 따지면 중국에서는 진시황이 노예해방을 하여 백정(白丁)계급이 등장하면서부터 중세문화가 시작되며 유럽에서는 서로마 멸망 이후 농노계급이 등장하면서 중세문화가 시작된다.
중세라는 것은 딱부러지는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적 특성을 합하여 일컫는 것이다. 유럽에선 서로마의 멸망을 기준으로 딱 부러지게 표시가 나지만 유럽 사정이고 중국에선 딱 경계를 그을수 없다.
즉 구름식으로 말하면 나나미의 말은 틀린 것이 되지만 그건 뭐든 까탈스럽게 따지는 구름의 입맛이고 내 기준으로 보면 등자는 중세의 마구이다. 등자가 중세문화의 특징인 기사계급의 발달을 낳았기 때문이다. 등자가 없을 때 기사계급이 없었고 따라서 농노도 없었다.
노예와 농노, 백정은 무엇이 다른가? 등자가 없었을 때 노예들이 달아나면 잡아올수 없다. 고로 노예는 대농장이나 도시에 모여살고 있었다. 노예는 성 안에 살며 주인이 족쇄를 채워 성 밖 농장으로 끌고가서 일시키고 다시 족쇄를 채워 성안으로 끌고온다. 고로 농사를 지으려면 시골에다 소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문명은 자연히 도시 중심으로 발전한다.
우리나라도 2세기경까지는 작은 부족국가 중심이었고 이는 노예노동으로 농사를 지으려면 노예를 감시하기 위해 도시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기록을 보면 귀족들은 1~2만명의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다. 노예들을 집단생활 시킨 것이다. 이집트에 끌려간 유태인들처럼 한데 모여살았다.
조선시대는 외거노비라 해서 노예들이 시골에 집짓고 살았다. 등자가 보급되자 노예들이 달아나면 추적해서 잡아올수 있기 때문이다.
등자의 보급은 도시를 불필요 하게 하고 따라서 문명은 산골로 숲으로 이동하였다. 봉건시대란 왕이 토지를 나누어주는 것인데 고대엔 노예를 시골로 보낼수 없기 때문에 토지를 나눠줄수 없었다.
노예를 시골에 보내면 몽땅 달아난다. 영화에 묘사되듯이 로마의 노예들은 성밖으로 나가면 족쇄를 차고 엄한 감시를 받는다. 중세 농노들은 그런거 없다. 도망가도 잡아올수 있으니까.
서구에 등자가 10세기경에 등장하는 것은 당시 암흑시대라 역사자체가 희미했기 때문이다. 기념할만한 전쟁도 사건도 없었던 거다. 실제 유럽역사에는 4세기부터 9세기까지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또 [전혀없다는 말인가 요렇게 있다] 하고 트집하겠지만 억지고 학교에서 배운게 별로 없자나)
등자를 발명하는건 무지하게 쉽다. 그런데 말잔등에 고정시키는건 어렵다. 그냥 등자를 만들어 말등에 묶어두면 사람의 체중을 감당하는가? 등자의 발명은 등자의 발명이 아니라 재갈부터 시작해서 등자를 고정시키는 안장과 드리개 등 마구일습을 전부 발명한 것이다. 그것이 왜 중세냐?
[중세란 무엇인가? 무엇이 중세의 본질인가? ]
철(鐵)이다. 철기는 진작 사용되었지만 고대의 전쟁에는 철기보다 청동기가 사용되었다. 철은 겨우 농업용으로나 사용되었다.
왜 철이 전쟁무기로 사용되지 않는가? 야금의 곤란함 때문이다. 쇠라는 것은 물러 못쓰기 때문에 단련을 해야하는데 구리는 주석과 아연을 섞어 합금을 만드는 방법으로 되는데 쇠는 합금이 안되므로 야금이 어려운 것이다.
형가가 진시황을 찌르려한 어장검도 구리칼이다. 낙랑고분에서 출토되는 쇠뇌도 구리로 만들어져 있다. 구리는 쇠보다 훨씬 귀한데 무기로 단단한 쇠를 아니쓰고 무른 구리를 쓰는 것이다.
손기정옹의 투구도 쇠가 아니고 구리로 되어있다. 그렇다고 그시대가 청동기시대는 아니다. 전쟁무기는 구리로 하고 쇠는 농경에 이용했다. 선철은 물러서 못쓴다. 담금질을 하면 쉽게 깨어진다. 좋은 쇠를 만드는 기술은 선비족만 가지고 있었다.
북방 유목민인 선비족의 야금기술이 진나라로 전해지고 이에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며 철이 전쟁무기에 사용되고 이때부터 전쟁이 100만대군 단위로 시작되는 것이다.
고대의 전술은 전차와 중갑병의 밀집대형에 의한 방진인데 특징은 병사 수가 적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귀한 구리칼을 쓰므로 구리가 부족해서 충분히 많은 전쟁무기를 갖출수 없고 따라서 백만대군은 조직되지 않는 것이다.
진나라는 일찌기 유목민으로부터 야금기술을 받아들여 흔한 철로 무기를 대량생산하고 이를 토대로 중국을 통일하였다. 구름이 만약 유심히 텔레비젼을 보았다면 중국에서 만든 TV드라마에서 유방과 항우의 싸움 때 청동칼을 휘두르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철제무기는 졸병들이 쓰고 장수들은 그때도 구리칼을 썼다.
철은 대량생산 되기 때문에 철제무기의 보급은 군대수를 엄청 늘려서 유목민들의 고대도시에 대한 무차별공격을 낳는다. 정확히 중국이 흉노족에게 시달리게 되는 시점과 철제무기의 보급시점이 일치한다. 게르만족의 이동도 마찬가지다.
어느날 갑자기 북방 유목민이 대거 남하하여 농경민을 공격하게 되는데 그 시점이 야금기술의 보급시점이다. 등자는 그 야금기술을 따라 전해진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구름은 내가 없는 얘기를 지어낸다고 말한다. 그러나 철기시대인 낙랑고분에 왜 청동제 무기가 나오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면 역사가 보일 것이다.
김알지나 석탈해가 왜 신라를 지배하는가? 역사학자들의 가설은 대개 철(鐵)을 가지고 도래한 흉노족이란다. 대구중심으로 지방방송에 이런 프로가 잘 나온다. 실제 중국문헌에 만리장성을 쌓는데 끌려간 흉노들이 도망가서 신라를 건국했다는 기록도 있다.
등자를 비롯한 마구일습은 출토되는 바 대개 쇠로 되어있다. 즉 등자는 철제무기의 보급로를 따라 이동한 것이다. 철제무기는 무기의 대량공급으로 소규모 중갑병에 의한 밀집대형을 인해전술로 바꾸어놓고 그 전쟁형태의 변화가 고대와 중세를 가름한다.
고대의 도시중심사회는 청동제 무기를 든 소규모의 중갑병이 충분히 방어할수 있었지만 철제무기를 들고 떼거지로 밀려드는 이민족의 인해전술은 도시를 지켜내지 못한다.
철제무기의 공급은 곧 농기구가 전쟁무기로 돌변할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청동제무기시대에 철제농기구는 쇠가 물러서 농민들이 농기구를 전쟁무기로 바꿀수 없었다. 그러나 선비족이 보급한 야금기술은 무른 쇠를 단단하게 별러 놓는다. 농기구가 언제든지 전쟁무기로 돌변한다. 고대의 노예제와 도시는 해체될수 밖에 없다. 철을 소유한 농노들이 말을 안들으니까.
그리하여 고대의 노예 대신에 새로이 생겨난 계급이 농노계급이고 중국에서는 백정계급이다. 농노나 백정은 노예보다 신분이 상승하였다.
문명은 도시에서 생겨났으나 야금기술은 유목민이 가져왔고 전쟁이 춘추전국시대의 도시들간의 소규모 전쟁에서 유목민 대 중국전체의 대규모전쟁으로 바뀌고 전쟁이 대규모화되자 농민이 전쟁에 참여하고 (고대 노예는 전쟁에 참여안함) 그것이 중국의 중세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대개 역사책에 안나온다. 그렇다고 임의로 지어낸 것은 아니다. 당시의 역사기록자들이 야금기술의 이동로 따위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출토되는 고분과 기록에 묘사된 전쟁형태, 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계급제도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여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들의 이름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봉건과 중세 근대와 현대의 연속성과 차별성을 안다는 것이다.
야만과 고대를 가름하는 것은 청동제 무기의 보급에 의한 노예제도와 노예를 지배하기 유리하게 만들어진 도시문화다.
고대와 중세를 가름하는 것은 청동대신의 철제, 도시 대신의 농촌, 노예 대신의 농노다.
등자는 발명가의 지혜에 의해 어느날 발명된 것이기보다는 야금기술의 이동로를 따라 점진적으로 보급된 것이며 북방유목민에서 중국으로(0~2세기) 게르만족으로(4세기이후) 이동한 것이다. 등자는 고대와 중세의 경계선에 있다.
그저께 써둔게 옛날 얘기가 되었군 .....김해 농부~!
봄은 왔는가?
빠뜨린 말이야기...
중세 기사들의 마상결투는 말의 눈을 가리고 한다. 말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도 잘달린다.
말에 갑옷 입히고 중무장한 기사가 타면 무게 100키로가 넘을 텐데 말이 어찌 감당하는가 하는 것은 경마장 말과 유럽말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이야기다.
유럽말은 쟁기 달아 밭 가는 말로 매우 뚱뚱하다. 힘좋다. 유럽에서는 소보다 말을 주로 농경에 이용한다.
말이 당나귀나 소와 달리 사람을 태우는 것은 독특한 보법 때문이다. 말의 걸음걸이는 개나 소와 다르다.
소는 대각선방향의 두 발을 동시에 움직인다. 왼쪽 앞발과 오른쪽 뒷발, 또 그 반대쪽 발을 교대로 움직인다. 달릴 때는 앞 두발과 뒤 두발을 동시에 움직인다.
달리는 소등은 로데오 경기가 된다. 말이 소처럼 달린다면 말을 탈수 없다. 말은 달릴 때 네 발 중 하나만 땅에 닿고 세발은 뜬다. 걸을 때는 네 발 중 하나만 뜨고 세발은 닿는다.
말의 독특한 걸음걸이는 빨리 달려도 잔등이 평행하게 한다. 소는 달릴 때 모듬발을 하므로 앞뒤로 기울어져 곤두박질된다. 소의 구보는 껑충껑충 뛰는 것이다.
말이 평보에서 속보, 구보로 단계적으로 속도를 올려갈수 있는 것은 특이한 걸음걸이 때문이다. 말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이 속보를 할 수 없는 것은 두다리를 동시에 움직이는 습관 때문에 네다리를 가지고 걷거나 뛰는 것 외에 중간걸음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인들이 타기엔 소처럼 걷는 것이 더 편하다. 말에게 소의 걸음걸이를 가르쳐 억지로 소처럼 걷게 한 경우도 유럽 상류사회에 있었다.
[상투적인 너무나 상투적인]
류시화나 석용산의
자칭 [깊은 깨달음의 경지]는 사이비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글을 참 매끄럽게 잘도 쓴다.
그러나 구절구절에서 상투적인 표현 한 두 구절을 발견하고
속이 메스꺼워 진다.
진정으로 혐오스런 것은 그 [상투적인 너무나 상투적인 ~!]
나의 까탈스런 귀족취미는, 심미취향은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 걸리듯
잘 넘어가는 문장이다가 돌연 한마디에 탁 걸려서
[이기 머 이런기 다 인노, 고얀, 쾌씸한, 사이비가튼 ....]
싫어하는 표현 중에
이를테면 스포츠 신문에 제목을
[최용수 그대 있음에...] 이기 뭐꼬? 유치찬란이다.
지딴엔 멋을 부린다고 써둔 모양인데
어이엄따 어이엄써 차말로.
중학교 1학년 문장이다.
여고생들을 노리고 쓴 엉터리 시집 제목처럼
속이 빤히 보이는 그런 상투적 문장.
그러면 나는 책을 집어던지고 마는 것이다.
이발소 그림을 보면 매우 잘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30분 만에 그릴수 있는 그림이다.
혁필쟁이 처럼 넓적한 붓으로 두가지 물감을
한번에 찍어 그린다. 보아허면 그런 얍삽한 기법으로
그려낼수 없는 부분은 완벽히 배제되어 있다.
늘 그리는 정체불명의 침엽수
바위, 폭포, 초가집, 오솔길 그리는 것만 그린다.
시간은 늘 해저무는 일몰시점 (선명하게 그리기 싫으니까)
문장도 마찬가지다.
잘못입은 옷처럼 인내하며 보아주기 어렵다.
맛없는 음식을 먹기 어렵고
상투적으로 그린 그림 보아주기 어렵고
엉터리 음악 들어주기 어렵고
상투적인 문장은 메스꺼워서 못 읽는다.
[이름모를 풀꽃이 미소짓고...] 이런 상투적 표현...
고약하다. 꽃이름을 모르면 식물도감이라도 찾아보지
모르는게 자랑이라고.. 두금 뿐.
특히 여류문인들이 쓴 글 끝마무리를
[...정답기만 하다] 하는 식으로 /..만 하다/
만 하기는 뭘 만해...이게 뭐냐면 뜻없는 글을 써놓고
끚맺음을 모해서 들어가는 상투적 표현.
나는 양서를 가려읽지 않는다.
다만 상투적인 글귀가 나오면 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책을 던져버린다.
상투성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히 운동권쟁이들의 상투적 표현...
구국의 강철대오 어쩌고 빌어먹을....피양방송 상투적 표현.
야소쟁이 상투적표현 ..하나님 어린양 우에 구버 살피주심 암만.
여류문인 상투적 표현..../고맙기만 하다/ /반갑기만 하다/
조선일보 상투적 양비론 ..이당저당몬뗀당아무당나라당한나라당
한겨레신문 상투적 욕질 ..
각설하고
봄은 온다는데 살구꽃 망울이 맺힌다는데....
불면의 밤
시조나 한수 때리자
/해는 정동진에서 떠오른다. /
신새벽 어스름
안개 철길을 달려
무쇠 거친 숨 고르고
조용히 눈 감으면
간이역
태양 바다 소나무
정동진에서 만나자.
아직 정동진에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정동진엘 가야겠다.
언젠가 정동진이 고요해지면 아무도 없을 때
몰래 정동진에 가야겠다.
정동진에 시장이 서고 정동진에 인파가 몰리고
모래시계 후 정동진 바람이 불었을 때
과연 이바람이 얼마나 갈것인가?
운좋게 TV를 타고 덩달이로 유명세를 치르는 반짝 히트인가?
그러나 정동진에 뒷심이 있다.
다만 모래시계의 후광일까?
간이역, 바다, 일출 소나무 두어그루
그것은 마치 동양화이기도 하고 추억이기도 하고
[왜 지금 정동진인가?]
7, 80년대만 해도 우리는
누가 하면 모두 따라해야 한다고 믿었다. 남이 하는 것은 다해 야 한다고 믿었다. 모두들 일제히 장발을 하고(김대중도 장발을)
[정동진은 90년대 정신의 표상이다]
단순히 집단무의식에 의한 군중심리로 한때의 유행이다고
보아선 편협시각. 요즘엔 관광도 이벤트성이다. 즉 뭔가 대단한 볼거리를 보러가는게 아니라 주제가 있는 여행이다.
정동진은 그 상징이다.
볼거리가 있어 보러가는게 아니라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기념하기 위해 주제를 정해가지고 떠나는 것이다.
거기에 꼭맞는 것이 정동진이다.
관광지가 주고 인간이 들러리 서는게 아니라
인간, 인간의 만남이 주고 정동진은 여백이다.
고로 크게 비어있어야 한다.
내년 닫으면 이천년대
한 세기 가고 한 세기가 온다.
정동진에 서면 다음 세기가 보일까?
언젠가 정동진엘 가야한다. 가서 시인으로 앓아야 한다.
모래시계의 그들처럼
90년대의 마지막 밤을 스쳐가야 한다.
이길수 밖에 없는 싸움을 이겨서는 영웅이 아니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이기는 것이 영웅이다. 싸움에서 이기는건 간단하다. 더 많은 군대를 투입하면 된다. 그래서 이기는 건 영웅일 수 없다.
로마는 무수히 싸워왔고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한니발 조차도 감히 로마 성곽을 포위하지 못하였다. 왜 로마는 강한가? 또 싸울 때 마다 이기는가? 왜 이길 수밖에 없는가?
요는 같은 로마인끼리 패가 갈려 싸울 때도 많았다는 거. 그런데 로마식 싸움은 항상 명분있는 쪽이 이긴다. 즉 승패가 사전에 정해져 있다. 싸워서 이기는게 아니라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다.
안토니우스가 전력이 약해 패배한 것은 아니다. 브루투스의 잔당들이 병사가 적어서 진 것이 아니다. 로마를 배반하고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로마는 언제나 승리하며 승리한 쪽은 언제나 옳다. 이겼기에 옳은 것이 아니라 옳기에 이기는 것.
카이사르는 무장이지만 탁월한 학자이며 진정한 공화주의자, 정치가이다. 그의 에너지는 전쟁보다도 로마의 개혁에 투입되었다. 전쟁은 그의 작은 부분이며 정신은 큰 부분, 세계국가로서의 로마는 시이저가 구상한 것이며 옥타비안에 의해 이룩되었다.
옥타비안이 간단히 정적을 몰살하는 방법을 쓴데 비해 카이사르의 방법은 져주고 이기는 것. 팍스로마나를 이룬 로마식 전쟁과 로마식 전쟁을 가능케 한 로마식 정치체제를 연구해야 한다.
싸움은 언제나 같은 모양으로 진행된다.
카이사르 혹은 로마가 불리한 위치에 있고 그 틈을 노린 적들이 돌연 모여들어 숫적 우세를 믿고 선전을 포고한다.
카이사르 혹은 로마는 기습을 당하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100프로 질수 밖에 없는 싸움을 시작한다.
카이사르 혹은 로마는 광범한 정보수집과 견고한 조직체계로 긴밀히 움직이는데 비해 적들은 엄벙덤벙 숫자만 많이 모인다.
적들이 몇번 공격해 보지만 섣불리 대항하지 않고 느리지만 치밀하게 한걸음 한걸음 움직여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적들은 초조해 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결국 행운을 하늘에 맞기고 도박을 하게 되며 일정부분 우세를 점하지만 결국은 패퇴하게 된다.
시이저 혹은 로마는 정보와 조직을 무기로 하고 적들은 숫자를 무기로 한다. 전쟁은 장기화되고 시이저는 느리게 한걸음한걸음 움직여 와서 결국 숨통을 끊어 놓는다. 그것은 매우 교과서적인 싸움이다. 카이사르의 군대는 아무리 우세해도 서두르지 않으며 아무리 불리해도 당황하지 않는다.
카이사르의 싸움은 완벽하게 교과서적이기 때문에 카이사르 이후 로마군대는 카이사르를 흉내내기만 하면 이겼다. 역사상 위대한 장수가 많았으나 대부분 행운이 작용하였다. 때문에 영웅이 죽으면 나라는 망한다.
전쟁을 정보와 조직의 대결로 이끈 사람은 카이사르 뿐이다. 카이사르의 위대성은 그의 싸움이 철저하게 교과서적인데 있다.
기발함, 외교술, 합종연횡, 음모, 꾀, 아이디어, 술수, 카리스마 등 잡된 요소를 제거하고 온전히 전쟁의 핵은 정보와 조직이다는 단 두가지로 집약해낼수 있는 자 카이사르 외엔 없다.
전쟁에서 정보와 조직이 있다면 서두르거나 도박할 이유가 없다. 실수가 없으므로 행운도 없다. 사기도 필요없다. 흔히 사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이는 조직이 약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조직이라면 조직 자체의 힘이 곧 사기가 된다.
로마군대는 결코 싸움을 서두르지 않으므로 함정으로 유인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들은 철저하게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여 완벽하게 진영을 구축해놓고 몇 개월이고 끈기있게 기다린다.
손자는 전쟁의 기본이 속임수라고 했다. 이건 적이 정보에 약할 때나 해당되는 말이다. 로마군대를 상대로 해서는 어떠한 계책도 소용없다. 오합지졸이 숫자만 많으면 군량이 부족하므로 공격을 서두르고 여기서 계책과 사기가 승패를 결정한다.
완벽한 군대가 적은 숫자로 진을 튼튼히 치고 있을 때 쳐부술 방법은 없다. 이쪽이 초조해지고 분열되고 자멸하는 것이다. 로마가 항상 이기는 것, 그것도 도덕적으로 명분있는 쪽이 이기는 것은 로마군단은 정보와 조직을 무기로 매우 교과서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만리 밖에서 일어나지만 승패는 로마성벽 안에서 결정된다. 로마시민의 지지를 받는 쪽이 반드시 이긴다.
카이사르 혹은 로마의 반대편 쪽에 선 군대는 정보와 조직에서 일단 뒤지므로 싸움을 계책, 술수, 행운, 병법에 맞기려들고 로마군은 불리해도 서두르지 않고 적이 자멸할때까지 기다린다.
중요한 것은 도덕적으로 명분이 있는 쪽이 언제나 정보와 조직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적들은 모험적인 승부로 행운을 기대하지만 로마군은 절대 응전하지 않고 더 기다린다.
손자 : 병법의 기본은 속임수이다.
카이사르 : 병법은 기본은 정보와 조직이다.
술수가 통하지 않는 교과서적 전쟁에서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쪽이 언제나 정보와 조직에서 유리하다. 부도덕한 자는 민이 협력하지 않으므로 정보를 얻을 수 없고 단결되지 않으므로 조직이 약하다. 고로 선한 쪽이 언제나 악을 이긴다.
지긋지긋하게 미련한 놈들, 아무리 유혹해도 달려들지 않고 아무리 겁주어도 눈 깜짝 않는 독사같은 자들, 그들이 조용하고 치밀하게 대오를 갖추어서 한걸음한걸음 저벅저벅 발소리 맞추어 천천히 전진해 오고 있다. 완벽하게 교과서인 자들, 모든 행동을 규정대로 하는 자들, 적이 천리밖에 있어도 여섯시간 걸려 교범대로 숙영지를 건설해야만 잠을 자는 미련곰탱이들, 도무지 빈틈이 없는 자들, 공포의 대왕 로마군단이다.
[완벽한 정보와 조직이 있다면 언제나 선이 악을 이기는 것이 역사의 법칙, 그것을 믿어야 한다. 선이 악을 이기지 못했을 때 반드시 반성해야 할 내부모순이 있다는 것]
[로마가 남긴 것은 도로와 교범(FM) 뿐이다.]
[로마식 전쟁을 좋아하는 것은 로마교범이 내 이론들과 일정부분 유사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정보와 조직일 때 선이 악을 이기는 원리에 기초한다.]
[정보와 조직은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일방통행한다. 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정보가 이동하고 조직이 기능한다.]
[우리가 완벽한 민주주의를 한다면 언제나 정보와 조직이 우세한 쪽이 이기고 그쪽은 반드시 선한(다수의 편) 쪽이다]
[독재, 불의는 언제나 사기, 계책 음모, 술수들에 의지한다]
[계책, 음모, 술수는 정보가 단절된 곳, 조직이 막힌 곳에서 효과를 낸다]
[크게 보아서 역사는 언제나 선의 승리를 보장해 왔다.]
[역사는 선의 편이다. 그것을 믿는가?]
이토이님을 위한 로마론
몽고제국이 광대하지만 그들은 정복했을 뿐 통치하지 못하였다. 전쟁에 이겼을 뿐 역사에서 승리하지 못하였다. 즉 아무 의미없다. 로마의 위대성은 [로마화]에 있다.
로마의 지배를 받은 모든 나라는 로마가 되었다. 나라들이 로마처럼 원형경기장을 짓고 원로원을 두고 도로를 닦게 된 것이다. 로마는 세계국가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국가형태를 창출해내었다.
로마가 서로마제국에서 동로마제국, 신성로마제국으로 3000년의 명맥을 이어온 것은 [세계국가]라는 새로운 종류의 국가형태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동로마나 신성로마가 로마의 이름을 빌리는건 로마는 국명이 아니라 [세계국가]라는 국가형태명이기 때문이다.
몽고나 오스만 터키나 이런 것들은 그저 봉건국가가 영토확장을 꾀한 것에 다름 아니다. 몽고제국은 여러개의 한국으로 분열되었고 중국에 동화되었으므로 세계국가에 실패했다. 왕만 바뀐것.
세계국가는 알렉산더가 처음 시도했고 카이사르가 완성했으며 나폴레옹이 흉내낸 것이고 마르크스주의 세계혁명론의 모델이 된다. 미국 패권사상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한다.
인터내셔널이라는 UN 비슷한 국제기구가 전 세계를 통치하는 것이다. 로마는 정보의 빠른 유통을 위해 도시와 도로를 건설하였고 최적화된 조직체계를 위해 공화주의와 로마법 로마교범을 만들었다. 이것만이 순수하게 로마의 것이다.
로마문명은 별 보잘것이 없다. 대개 아테네에서 가져온 것이고 가치있는 것은 그들이 [정보와 조직]이 말하는 국가를 발명했다는 것이다. 어떤 국가든 집단이든 완벽한 정보소통과 완벽한 조직체계를 가진다면 가장 선한 국가다.
이 점에서는 동양이든 서양이든 예외가 없다. 아프리카든 인디오든 북한이든 악당국가는 정보가 단절되고 조직이 기능하지 않는다는 본질이 있다.
로마는 패권국가이며 침략국가이지만 (지금의 미국에 비유될수 있다) 정보와 조직에서 완벽하다면 결코 나무랄수 없다. 반대로 북한 쿠바 이라크 등이 아무리 선(우리식대로 산다) (약소민족의 설움)을 강조하더라도 정보와 조직에서 막힌 이상 악당국가다.
우리는 로마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로마는 나폴레옹, 히틀러, 트로츠키, 지금의 미국 등에 의해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의 정복이념이 카이사르의 로마에서 나왔고 히틀러의 제3제국이 로마를 모방하고 있으며 트로츠키의 세계혁명론이 로마에서 본받고 미국의 패권지향이 세계의 로마가 되겠다는데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공계획은 침체된 국제무기거래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미국무기상들과 섹스스캔들에서 벗어나는 쇼를 하려는 클린턴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야비한 태도이다. 섹스스캔들 때문에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로마주의가 있다. 로마주의란 정보와 조직에서 완전하면 무조건 선하며, 선하므로 패권을 휘둘러도 괜찮다는 사상이다. 로마는 무수히 침략하였으나 언제나 침략의 빌미는 상대방이 제공하였다. 로마가 먼저 악을 행한 적은 없는 것이다.
나의 결론 : 정보와 조직에서 100프로 완전한 국가는 없으며 미국의 패권지향은 주제넘은 것이다. 미국이 언제나 선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그 점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이상 여전히 다른 나라에 간섭할 것이며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
로마의 것은 도시와 도로 = 정보의 빠른 유통 내지 공유
로마의 것은 로마 법과 로마교범 = 민주주의의 산물
가장 민주적인 것은 가장 완전한 조직체계이며 가장 완전한 조직이 완벽하게 정보를 소통시킬 때 그것은 절대 선이다. 중요한 것은 완전한 정보소통과 완전한 조직체계는 오직 민주주의에 의해서만 달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오늘의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 완전한 정보소통과 완벽한 조직체계의 구현이다.
만델라와 김대중
19세기의 늘그막에 중남부 아프리카에 [샤카 줄루]라는 위대한 추장이 나타났다. 샤카 줄루의 일대기를 보면 징기스칸과 비슷하다. 부족에서 축출되어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와신상담 칼을 갈다가 성년이 되자 부족을 통일하고 정복을 지속하여 중남부 아프리카를 휩쓸고 북아프리카로 진격하였다.
백인들이 남아프리카에 상륙하자 샤카 줄루는 재빨리 백인들을 포섭하여 자기부하로 만들었다. 중부 아프리카의 토벌전에서 샤카 줄루는 백인의 대포와 소총을 사용하였다.
이 걸출한 흑인 영웅을 그냥 두었다가는 크게 후환이 되겠다 싶었던 영국은 정식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샤카 줄루와 6만명의 흑인군대를 괴멸시켰다. 샤카 줄루의 잔당들이 오늘의 남아프리카 최대종족인 인카타 자유당의 줄루족이 되었다.
줄루족은 영국과의 적대적인 관계로 해서 보어전쟁에서 보어인들과 협력하였고 그러한 역사적 이유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2등국민이 되었다. 나치잔당이 남아프리카로 달아나서 드 클레르크의 국민당을 만들었고 영국과의 적대적인 관계는 미국과의 적대적인 관계로 이어져서 남아프리카의 고립을 낳았다.
1등국민 : 보어인 2등국민 : 줄루족 3등국민 : 기타부족
만델라는 3등국민인 코사족 출신이다. 만델라의 투쟁이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전형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배세력이 적을 분열시켜 각개격파하는 방식의 전형성이다.
이것을 우리나라에 대면
1등국민 : 재벌 상류층 2등국민 : 경상도 3등국민 : 전라도
김대중의 생고생은 만델라의 고난같다. 악은 먼저 우리편을 2등과 3등으로 나누어 회유하고 분열시킨다. 인종분리정책에 상대적으로 이득을 본 줄루족 인카타자유당의 수상한 행보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경상도와 전라도의 분열은 악의 세력이 늘상 써먹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공산당의 전술이 [통일전선전술]이라면 그들의 전술은 [2개의 전선전술]이다. 세계 어느나라 가나 악의 세력은 반드시 이러한 [2개의 전선전술]을 쓴다.
북한은 우선 미국과 남한을 분열시키는 [따로 회담전술]을 고집하고 있으며 후세인 또한 쿠르드족과 시아파 사이에 2개의 전선을 두고 있다. 바로 그것을 꿰뚫어야 한다.
혹자는 경상도가 무슨 이득을 보았느냐 말할 것이다. 부텔레지의 줄루족은 또 무슨 이득을 보았는가? 한나라당의 술책 또한 이와 같다. 자민련과 국민회의 사이에 두 개의 전선을 만들라.
구름이 영양가없는 논쟁을 하려고 하는데 약간의 관점 차이를 지적해야겠다. 한니발은 카르타고이고 카르타고는 로마가 아닌가? 로마는 세계국가이고 카르타고와의 싸움은 내전에 가까운 것이다. 즉 나는 세계국가로서의 로마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내 진의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지만 세계국가로서의 로마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 순수한 로마의 것은 로마식 도시구조와 도로 그리고 로마법 뿐이다. 우리가 로마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에르투리아인의 것이거나 그리스의 것이고 모두 로마에 포함된다.
로마인이야기의 한니발은 로마의 일부이다. 모든 것은 그리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 이후 지중해 연안으로 흩어져서 수많은 식민국가들을 건설하였다.
전쟁은 이탈리아 반도 장화 끝 시칠리아 주변의 그리스 식민국가들과 아프리카계 그리스식민국가들 사이의 제해권 다툼이다. 로마는 용병 비슷하게 슬그머니 끼어들어 그리스의 식민국가들을 먹고 카르타고도 먹었다.
한니발은 이미 로마에 먹힌 카르타고에서 스페인으로 달아난 반란세력일 뿐이다. 즉 그 당시 카르타고는 이미 로마화 되어있었던 것이다. 한니발이 로마인이야기의 핵이 되는 것은 그 역시 로마인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은 대체로 정확하지 않은 것이지만 구름이 말하는 칸네전투는 아마 알프스를 넘어온 한니발이 안개가득한 날 호숫가에서 로마군대를 몰살시킨 예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전투다. 한니발은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졌다.
왜 한니발은 로마성곽을 공격하지 못했는가? 역사에 가정이 없지만 한니발이 로마성을 공격했다면 이겼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졌을 것이다. 로마 주변의 로마 동맹국들로부터 한니발은 고립되는 것이다. 바로 거기서 로마는 승리한 것이다.
왜 로마의 동맹국들은 혈통을 따지면 한니발과 같은 그리스계인데 끝까지 한니발의 선동에 응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로마가 강한 이유이다. 로마의 공화정 때문이다. 로마는 세계국가이므로 혈통이 다르다는 한니발의 선동에 응하지 않은 것이다.
로마는 전투에 졌을 뿐 전쟁에 지지 않은 것이다. 전투는 원래 이기고 지는 것이지 안지는 전투가 어디 있겠는가? 로마의 승리는 전투력의 승리가 아니라 공화정의 승리인 것이며 나는 그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니발이 16년 동안이나 이탈리아 반도 곳곳을 배회한 이유는 이탈리아내의 그리스 식민국가들과 한니발이 족보를 따지면 같은 그리스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한니발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리스냐 로마냐?] 그들이 말했다. [그리스나 로마나.] 한니발은 싸워서 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계 식민국가들이 이미 로마에 동화되어 있었기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희미해서 진 것이다. 즉 카르타고는 로마에 패배한 것이 아니라 동화된 것이다.
이후 카르타고는 철저히 파괴되었지만 카르타고 세력은 시칠리아부터 아프리카 연안 스페인까지 도처에 흩어진 그리스계 식민국가를 망라하므로 패배한 것이 아니라 동화, 흡수된 걸로 보아야 한다.
한니발 역시 로마다. 카르타고는 싸워서 진 것이 아니라 카르타고의 영향권 안에 있던 그리스계 식민국가들이 로마화 되어버려서 토대가 없어져 더 싸울수 없었던 것이다.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유는 로마를 세계국가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국가형태의 변경이다. 황제라는 개념은 그 당시에 없었다. 황제가 되려했다는 것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 그 무언가가 되려했다는 것이다. 우선 황제라는 명칭 자체가 곧 카이사르 이름이다.
황제가 카이사르인데 카이사르가 카이사르가 되려하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로마 황제들은 카이사르의 이름을 세습한다. 황제가 된다는 것은 카이사르의 이름을 받아 양자가 된다는 것이다.
예수가 말했다. [가이사(카이사르)의 것은 가이사에게 야훼의 것은 야훼에게] 가이사는 황제가 된 것이 아니라 가이사가 되었다.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이 두려워한 것은 로마시민권의 확대이다. 카이사르가 갈리아인이나 게르만인이나 가리지 않고 로마시민권을 주었기 때문에 암살한 것이다.
당시 로마에는 계급이 서너가지 이상 세분되어 있었다. 로마시민권 소유자와 속주민의 신분은 엄격히 구분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로마시민권을 주는 계급혁명이 카이사르의 혁명이며 암살자들은 그 혁명을 두려워 한 것이다.
구름은 기억력이 뛰어난 것을 무기로 쓰잘데없는 트집을 잡는데 난 구름이 맹사성을 황희라 말해도 암말 안했다. 등자가 11세기에 만들어졌으면 경주박물관의 등자는 무엇일꼬? 등자는 기원전 흉노족이 발명한 것이고 한무제때 중국에 전해지고 한사군 때 우리나라에 전해지며 4세기에 게르만족의 이동을 따라 유럽에 전해진다.
로마는 언제나 정의이며 선이다는 말은 로마의 공화정 곧 민주주의의 장점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이 선인가? 정보의 유통과 공유, 법과 교범에 의한 지배가 선이다. 곧 민주다.
왕정은 담을 쌓아 정보를 차단하고 법을 무시하며 이래서는 일시적으로 전투에 이길수 있으나 결국은 지게 된다. 카르타고를 하나의 도시국가로 보면 로마에 졌지만 스페인에서 시칠리아 아프리카까지 광범위했던 그리스계 식민국가 카르타고세력 전체로 보면 로마에 저절로 동화되어간 것이며 한니발 역시 로마의 일부가 된 것이다. 우월한(선한) 체제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동화 흡수하는 것이다. 그것이 선이 언제나 승리하는 이유이다.
구름을 위한 로마론.
나쁜 기억력은 이럴 때 나를 한숨짓게 한다. 한국식 암기위주의 학습문화에 중독된 독자는 이름과 연도들을 거명해주어야 신난다.
내가 좋아하는 것, 혹은 가치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답이 나오는 문제이다. 제갈량과 손자를 매우 비판한다. 그건 답이 안나오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답이 나온다는 것은 무엇인가? 타인들에 의해 응용되고 역사에 기록되며 두고두고 써먹어지는 것이다. 로마식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모태가 된다. 이건 답이다.
제갈량의 신출귀몰은 그걸로 끝이다. 손자의 얍삽한 재주는 1회용이다. 그런 처세술은 세상을 더 각박하게 할 뿐이다. 모두가 공유할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정보와 조직이다.
속임수나 기발한 아이디어는 공유가 불가능하다. 조직체계는 평범하지만 공유된다. 필요한 것은 철학이다. 나나미에겐 철학이 있다. 나나미의 결론은 로마의 본질은 정보와 조직이며 이것은 독점되는 것이 아니라 공유되는 것이고 그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구름이 좋은 역사소설을 쓰는 것은 좋다. 그러나 독자의 공감을 받으려면 다만 재미있는 데서 끝날것이 아니라 남는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타인에 의해 응용될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플루타크 영웅전을 아무리 읽어도 동양인의 시각은 아니다. 그들이 왜 뛰어난지 알수없다. 영웅은 영웅인데 어쩌란 말인가? 그들이 총명하고 용기있고 지혜롭데서 답은 아니다. 울나라에도 총명하고 용기있고 지혜로운 이 많다.
우리는 그리스 로마문화를 맹목적으로 동경하거나 아니면 괜한 이질감에 거부한다. 나나미식 접근법은 개인들의 용기, 지혜, 호방함이 아닌 사회구조의 [그렇게 되게 되어 있었다]를 파악해 보인다. 그렇다면 환경이 달라서 그렇지 우리도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로마인이야기를 읽고 [아 그들도 특별히 뛰어난 존재가 아니구나 울나라서도 얼마든지 있을수 있는 일이 일어난거구나]하면 성공이다. 구름의 소설은 마땅히 그러한 점을 포착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서구에서 발달한 것은 지중해 덕분이다. 민주주의는 정보의 공유를 통한 조직의 정교함이며 바다를 접하여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아테네로부터 시작하였다.
중국은 달아날 곳이 없다. 황제를 거역하면 죽어야 한다. 그리스인은 지중해 바다로 도망가서 곳곳에 식민도시를 건설하였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이다.
그러한 그리스방식을 충분히 소화하여 마침내 집대성한 곳이 로마이다. 항해가 뛰어난 그리스들은 분열되었지만 항해가 서투른 로마인은 달아나기 보다 조정하기를 즐겨하였다. 일곱언덕으로 이뤄진 로마 도시 구조 자체가 민주적이다.
중국은 너무 집중되었고 그리스는 분열된데 비해 로마는 균형이다. 문명의 중심지였던 오리엔트와 게르만의 경계선, 바다와 내륙의 경계선, 해양문화와 대륙기질의 교차점에서 로마가 이루어졌다.
전쟁에서 상승하는 방법은 불리할때 안싸우는 것이다. 아무리 맹장이라도 성문을 꼭꼭 걸어닫고 응전하지 않으면 격파할수 없다. 로마를 깰 수 없는 것은 로마가 불리할 때는 응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엔 한니발도 대책없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결국 정보와 조직이 뛰어난 쪽이 이긴다. 정보와 조직은 리더의 지혜와 용맹이 아니라 좋은 제도에서 나온다. 체제가 우월한 쪽이 이긴다.
문명은 대륙과 해양의 교차점에서 발달한다. 그곳에서 정보(바다)와 조직(대륙)이 만나기 때문이다. 로마가 망한 것은 그들이 사치 낭비했기 때문이 아니라 문명이 확대되어 문명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유럽대륙으로 옮아갔기 때문이다.
중국문명은 서안(낙양)에서 출발했는데 그 당시 지도를 기준으로 보면 흉노족 오랑캐와 중화민족이 만나는 접점이다. 말을 타고 쉽게 이동하는 흉노족의 문명은 정보의 통로로서 바다역할을 하고 중국의 황토지대는 대륙 역할을 한다.
이동이 쉬운 지역에는 분열되기 쉬워 조직이 발달할수 없다. 이동이 어려운 지역은 고립되어 정보가 차단되므로 발달할수 없다. 중국의 후대 수도인 북경이나 난징은 다 이동이 쉬운 바다 내지 유목민의 초원지역을 가까이 하고 있다.
내륙평야 지역은 이동이 쉬울 것 같아 보이지만 원주민이 장악하고 있으므로 이방인이 접근할수 없다. 정보를 가진 이방인이 접근할수 있는 곳은 바다를 접한 항구이거나 유목민의 이동루트인 초원의 접경이다.
18세기 영국의 발달은 그 당시의 세계전도를 놓고 볼 때 대륙(유럽대륙)과 해양(식민지)의 접점이 영국인 것이다. 또한 16세기 스페인 포르투칼이나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다.
지금 미국의 발달도 지구촌 전체를 놓고 볼 때 대륙(조직)과 해양(정보)이 만나는 접점이 미국이다. 어디가 그 대륙과 해양의 접점인가는 문명의 성격 내지 크기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지금 중국과 인도는 인구만 많지 지구문명 정체를 볼 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뿐 조직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중국이 발달하면 지금 미국에 있는 대륙과 해양의 접점이 한국으로 이동해온다. 고로 한국이 장차 세계문명의 중심지가 된다.
로마가 발달한 것은 그 당시 문명의 중심이었던 알렉산더제국의 그리스를 중심으로 볼 때 가장 진귀한 상품이 되는 신문물(정보)이 오리엔트 지역에서 게르만 지역으로 공급루트를 바꾼 데 있다.
알렉산더 시절만 해도 스페인이나 서아프리카, 영국 프랑스에서 물산은 나지 않았다. 진귀한 물산은 인도를 중심으로 오리엔트에서 서방으로 유입되었다. 이것이 한계에 부닥친 것이다.
더는 나올것이 없자 상인들은 일제히 서쪽으로 눈을 돌렸고 막 개척되고 있던 서부아프리카나 영국 프랑스 스페인에서 물산들이 공급되었다.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스인들이 남프랑스와 스페인 서부 아프리카에 식민국가를 건설하였고 시칠리아섬은 그 교차로이다.
카르타고와 시칠리아가 그 길목을 두고 싸웠으나 작은 도시국가들이 인구부족으로 드넓은 지중해를 관할할만큼 패권을 생산하지 못하였다. 로마는 인구가 많았다. 로마다국적군에 의해 지중해질서는 유지될수 있었고 갈리아, 게르만지역은 급속히 개발되었다.
만약 카르타고가 로마를 격파했다면 역사는 어찌되었을까? 카르타고는 조그만 도시국가다. 위성국가들과 동맹을 맺고 있었으나 동맹은 쉽사리 깨어지는 것, 또 어느나라가 카르타고에 반기를 들 것이고 전쟁은 지속되며 지중해의 평화는 오지 않는다.
역사는 문명의 진보라는 일방향으로 나아가므로 전쟁을 종식시킬 강력한 힘(인구수)를 가진 세력을 필요로 한다. 당시 스페인이나 프랑스는 미개하였고 시칠리아와 카르타고 사이의 좁은 길목에 군대를 파견할 가까운 나라는 로마 밖에 없다.
로마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지중해의 평화를 바라던 상인들이 결국 로마가 아니면 돈을 벌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 식민국가 상인들이 한니발의 간곡한 청을 외면하고 혈통이 다른 로마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강조하는 바 환경결정론이다. 역사의 세세한 부분은 인간이 만들지만 큰 줄기는 환경이 만드는 것이다.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 해적들을 격파했다면 영국의 패권은어디로 갔을까? 당시 물산은 신대륙에서 공급되고 소비는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에서 이루어졌다. 물산이 스페인을 경유해 프랑스나 독일로 가는 것보다 영국을 경유하는 것이 비용이 싸게 먹힌다. 지도를 펴놓고 무역풍이 부는 방향을 따라 선을 그어보면 안다. 시장은 결국 소비자와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신대륙 이전에는 물산(향료 비단 도자기)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공급되었으므로 길목인 스페인과 포르투칼이 차지한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 그들이 길목을 차지하였으므로 강성한 것이다. 조선이 뒤진 것은 정보가 공급되지 않아서이고 대원군의 쇄국정책 때문이 아니라 홍콩 인도에서 미국으로 가는 항로에서 비켜나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 결정한다.
왜 이런 것을 강조하는가? 구름이 로마인이야기를 읽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이다. 철학이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고토회복이니 다물이니 하는 옹졸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로마인들은 남의 것을 빼앗은 적이 없다. 길을 잘 닦아놓으니까 자연히 그리스 상인들이 남프랑스에서 선적한 물산을 해적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잘닦인 아피아가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길을 닦아놓으면 사람이 꼬이고 장이 서고 질서를 잡아주면 번영한다. 그것이 영토확장이다. 한국이 해야할 일은 그런 것이다.
한국의 번영은 빠락의 역사환경결정론상 예정된 것이다. 중국은 너무 커서 효율적인 조직을 만들려면 100년이 걸린다. 장차 가장 큰 소비지는 중국이 되며 한국이 길목이다. 일본은 미국과 동남아 사이의 길목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길목이다.
마이클 잭슨이 인천에 어린이공원을 만들면 장차 수백만 중국관광객을 유치할수 있다. 중국인이 일본을 가기에는 돈없다.
민주주의는 길을 닦아놓는 것과 같다. 민주주의에서 조직이 기능하고 정보가 유통한다. 거기에 장이 선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나라가 된다. 일본은 개혁의 적절한 시기를 놓치고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해야하는 것은 안하면 그들(서구인)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한국인들은 토끼나 호랑이 모양에 댄다. 외국인들은 출항하는 배 모양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돛을 올리고 항구를 뜨려하는 배다.
껄껄~! 다른건 표현과 강조점의 차이이니 글타치고 등자이야기는 엄청난 야그다. 등자를 이해하는 것이 전쟁과 역사의 핵심인데 그걸 착각하고 있다니 이때까지 역사를 헛알았다는 것이다.
한무제의 고조선 침공도 등자 때문이고 한고조의 흉노에 당한 굴욕도 등자 때문이고 게르만족의 대이동도 등자 때문이고 로마의 몰락도 등자 때문인데 등자가 11세기에 만들어졌다면 역사가 뭐되는가?
길가는 사람 아무한테나 물어봐라. 경주 황성공원에 김유신 동상 등자도 잘못만든 것이구먼 그려. 고구려 벽화의 등자도 잘못 그린 거구, 클났다. 신라고분에 여러개 나온 기마인물형토기의 등자도 잘못 붙인 거여~!
도굴맨들이 신라토기를 발굴하다가 등자가 없는 것보구 이상해서 몰래 만들어 붙였구먼, 껄껄 ~!
구름에 대한 가벼운 언급.
등자문제로 구름과 내기해서 좀 벌어야겠다. 끄끄.
등자를 잘못 알고있다는 것은 역사를 전체적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 거다. 역사는 현미경으로 보아서 안된다. 서양인들은 등자가 낮아서 체중을 발에 싣고 속보를 할땐 궁뎅이를 든다. 동양인들은 등자가 높아 무릎사이를 조여 체중을 분산한다. 그림을 잘못 보면 다리를 쭉 펴고 있는 서양의 기사들이 등자없이 말탄 것처럼 보일수 있겠다.
몽고도 중국이고 청나라도 중국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에 동화되었으면 중국인 것이다. 1차 포에니전쟁에서 카르타고가 진 것이고 한니발전쟁은 2차 포에니전쟁이고 카르타고는 3차 포에니 전쟁 때 망했다.
카르타고가 강했다 하나 돈이 많아서 용병이 많았다는 건데 전쟁이 장기화하면 용병은 소용없다. 전쟁에서 돈이 뭔 의미있나? 인구가 적은 카르타고는 소국에 지나지 않는다. 로마인이야기에 뭣하러 카르타고인 한니발을 길게 다루나? 그 역시 로마역사의 일부가 아닌가?
왜 로마는 여러번 전투에 져도 결국 이기고 카르타고는 한번 지면 끝인가? 용병인 한니발의 부하들은 카르타고 출신도 아니고 로마가 이기든 카르타고가 이기든 관심없었다. 그들은 단지 로마병을 죽이면 손가락에 낀 금반지(로마의 도장)를 뺏는데 관심갔을 뿐이다.
카르타고 군 안에 로마를 적대한 것은 한니발 1인 뿐이었다. 그들은 스펀지에 물들 듯 로마에 흡수된 것이다. 카르타고가 멸망한 것은 거듭 로마에 대한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원로원의 결의로 말살된 것이지 싸움에 져서가 아니다. 스키피오는 카르타고를 말살할 생각이 없었다.
구름이 뭐 고울인이 어쩌고 어디가 약탈당하고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한때 잠깐 그랬다는 건데 의미없다. 카이사르 이야기는 구름이 로마인이야기를 좀 더 읽으면 무슨 소린지 알게된다.
등자문제 하나만 따지자. 등자가 참말로 11세기에 발명되었으면 내가 졌다카께.
역사는 해석된다.
구름과 논쟁하면 언제나 손해보는 느낌이다. 난 싸운다거나 이기고 진다는 생각이 없는데 구름은 임의로 룰을 정하고 자기의 승리를 선언한다. 그러면 내가 진게 된다.
사실의 정확성이 문제가 아니라 질적 깊이가 문제다. 관점의 차이인 것이다. 대개 어느쪽이 옳다고 말할수 없다. 어떤 책을 보고 이야기를 따오는데 어느 것이 정확하냐의 승부가 아니라 어떤 가치관으로 역사를 보느냐의 문제이다.
포에니전쟁은 카르타고와 카르타고의 위성국이었던 시라쿠사와의 싸움으로 시작되었다. 근데 시라쿠사도 원래는 카르타고의 일부이니 카르타고와 카르타고의 싸움이다. (이건 해석이다)
로마가 시라쿠사를 도우러 갔다가 싸움에 개입하는데 시라쿠사가 자진하여 로마의 밑으로 들어갔고 카르타고도 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 졌으니 로마의 속주가 된 것이다. 사실상 카르타고는 끝났다. (이것도 해석이다 관점에 따라 정반대의 주장도 가능하다)
이후 한니발이 스페인에서 쳐들어왔지만 그 군졸들은 카르타고와 아무 관계가 없다. 전쟁의 양상은 한니발 편에 붙은 로마동맹국과 로마편에 붙은 로마동맹국 사이에서 진행되니 로마의 내전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역시 해석이다. 한니발부대를 카르타고군대라 부를수도 있다. 나나미는 아마 한니발 1인의 전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얗든 나는 한니발 1인의 전쟁으로 본다)
그러므로 2차포에니 전쟁은 한니발전쟁이며 엄밀히 말해서 카르타고는 아무런 싸움을 하지 않았다. 한니발전쟁은 한니발 1인의 싸움이며 그 병사들은 다 로마의 동맹군이 이편저편에 붙은 것이다. 이건 지중해의 제해권 싸움이 아니라 로마의 내전이다.
이것은 해석의 문제이다. 나는 여기서 사실의 정확성을 문제삼지 않는다. 전쟁의 성격을 문제삼는다. 그렇다면 왜 나는 전쟁을 그렇게 해석하는가? 그게 중요한 것이다.
구름은 전쟁을 해석하지 않는다. 그냥 기록만 따진다. 나는 해석한다. 근데 이 해석이 구름에게는 불만이다. 내가 말하는 [카르타고로마론]은 중국의 [청나라도중국론]과 같다. 해석된 것이다. 여진족이면 [청나라는청나라론]을 펼수도 있다. 몽고인은 [몽고가 우예 중국이고] 할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중국의 해석을 따른다.
몰론 나나미 이야기와 정반대의 시각에서 정반대로 해석된 로마인이야기가 나올수도 있다. 나나미는 카이사르를 개혁가로 보았고 또 일부 다른 시각에서는 독재자로 본다.
나는 나나미의 시각을 존중한다. 그게 멋있다. 요는 구름이 책을 좀 팔라면 해석하는 습관을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근데 해석할라면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냥 글타고 우길게 아니라 근거를 대야하는데 그 근거는 사후에 마련되는 경우가 많다.
세익스피어가 그의 희곡 클레오파트라에서 안토니우스를 미화하여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의 명연설대결이 선전되는 바람에 카이사르의 죽음은 독재냐 공화정이냐의 다툼으로 해석되었다. 나는 다르게 해석한다. 물론 해석이다.
그런 관점은 다 사후에 세익스피어가 지어낸 픽션이고 당시 문제는 복잡했다. 가장 핵심은 로마시민권 문제였다. 로마인이 아닌 사람이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로마 시내를 활보해도 좋으냐였다. 로마의 장래가 엄정한 계급질서 안의 민족국가로 가는가 무계급의 세계국가로 가는가의 문제로 나는 해석한다.
나는 [역사환경결정론]이라는 역사철학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 틀에 맞게 역사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구름은 그 해석이 불만인 것이다. 구름이 책에서 본 기록과 다르게 말하니까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구름이 책에서 본 그것도 누군가에 의해 해석된 것이다.
종래의 영웅주의 사관을 극복하고 보자는 것이다. 나는 이기고 지는 것이 사전에 정해져 있다고 본다. 부분적으로는 다를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렇다. 문명의 중심이 어디로 이동하는가? 정보와 조직의 통로가 어디인가에 따라 역사는 예정조화를 따라간다. 인종의 우월성이나 영웅의 활약은 그저 흥미거리일 뿐이다.
알렉산더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그 일을 했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아니라도 누군가가 그랬을 것이다. 지리를 알면 역사의 상당부분이 필연이다. 인간의 작은 재주는 다만 어차피 일어날 일을 더 빨리 혹은 늦게 일어나게 할 뿐이다.
스파르타인은 용맹했기 때문에 그랬고 아테네인은 지혜로와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산악국가는 원래 용맹성을 문화적 특성으로 하며 해양국가는 정보가 빠르므로 유연함을 문화적 특성으로 한다는 것이 역사해석이다.
기록이라는 것이 믿을수가 없다. 구름은 편자를 등자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어떤 기록에 보니 편자를 여진족 정벌하던 조선초기의 어느 장수가 얼음 위를 말이 잘 걷게 하기 위해 처음 발명했다는데 나는 좀 믿어지지 않는다.
물론 나는 그 기록의 책 이름이 무엇이며 그 장수의 이름이 무엇이며 그 여진족 정벌이 몇년도의 일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얘기를 내가 임의로 지어낸 것은 아니다. 이 얘기는 과천경마장 마사박물관 어느 벽면에 씌어 있다. 내가 아는 것은 책에서 정확하게 읽은 것이 아니라 대체로 경마장 뭐 이런 이상한데서 줏어들은 거라서 좀 잡탕이다.
네모함장(핵잠수함은 선장이 아니라 함장이다)님 말씀은 요상해서 뭐가 질문인지 알기 어렵다. 세금을 공평하게 내는 것과 또 뭐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식으로 하면 대답하기 어려운 거다.
얗든 북한이나 공산주의가 민주주의가 아닌 것은 명백하다. 공산국가들의 공통점을 체크해 보면
1. 중국 소련 몽고 등 대륙국가. => 인간의 이동이 자유스럽지만 동시에 얼마든지 차단할수 있다. 이런 나라에서는 평등사상이 발달하여 (이동이 자유스러우므로) 민주적이지만 동시에 얼마든지 통제가능하기 때문에 억압적이다.
2. 알바이나, 쿠바, 북한 등 고립국가 => 산악 바다 등으로 고립되어 이동이 불가능고 국가규모가 작으므로 저들끼리 평등하다. 민주적이면서 동시에 통제가능하므로 억압적이다.
네팔, 부탄, 시킴, 쿠르드족 등은 산악에 고립된 국가로 공산주의가 아니라도 저절로 공산주의 비슷하게 평등하게 가난하며 산다. 인구가 적기 때문에 평등하고 고립되어서 통제되므로 억압되는 것이다. 아마존 정글이나 오지의 고립된 종족들은 자생적 공산주의공동체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고립된 섬으로 도망갈 데가 없으므로 통제가능하다. 고로 공산주의 성격의 공동체문화가 발달해 있다. 마쓰리(祭)의 경우 매우 평등하며 공동체적이다. 실제로 일본은 부의 평등부터 시작해서 충분한 평등사회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일본은 철저한 차별국가다. 계급문화가 엄존하고 있다. 평등은 하등계급에서 저들끼리 평등이다. 섬이기 때문에 대륙으로 부터의 잦은 유입이 불평등을 낳는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동가능한(불평등한) 인구는 일부 귀족들이다.
통제가능한 대륙일수록 평등하며 통제불가능한 섬나라일수록 불평등하다. 평등= 공산주의 성격 불평등= 자본주의 성격
이탈리아반도는 아직도 부유한 북부와 가난한 남부가 대립한다. 인도네시아는 부유한 화교와 가난한 원주민이 대립한다. 불평등은 도시와 상업이 발달한 나라 섬나라 반도국가의 특징이다.
일본의 불평등은 섬나라이기 때문이고 평등은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가지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다. 한국도 그렇다. 한국은 16세기까지 인구의 절반이 노비였다. 일본같이 철저한 계급국가였다. 그러나 동시대의 중국을 보면 (최부의 표해록을 참조) 노예가 없었고 매우 평등한 시민사회였다.
예를 들면 이구님은 일본이 불평등한 계급국가이고 한국이 평등국가라지만 한국이 평등해진건 조선후기 고립으로 가난의 평등을 이룬 덕택이다. 고려시대만 해도 한국은 일본과 같은 철저한 계급사회이면서 귀족국가였다. (인구의 7할이 노예) 고려때만 해도 무역이 발달하여 해양국가의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다.
고립되고 막히면 평등해진다. 이동가능하고 트이면 불평등해진다. 중국의 평등은 중국의 고립 덕택이며 조선의 평등은 조선후기 국제적 고립 덕택이다. 평등한 나라들은 공산국가 체질이고 불평등한 나라들은 자본주의 체질이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정보의 공유는 평등을 낳고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은 불평등을 낳는다. 섬나라는 항구를 통해 이동가능하므로 불평등하지만 섬나라가 무역을 그만두면 고립되어 철저하게 평등한 나라가 된다. 일본은 쇄국하다가 개방하다가 했기 때문에 두가지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어떻게 보면 철저히 평등하고 어찌보면 철저히 차별한다.
섬이나 반도로 바깥으로 진출하는 체질이 자본주의 체질이고 불평등 문화이며 계약이나 제도 규범 등 민주적 문화가 발달한다. 한국은 유태인 다음으로 해외교포가 많다. (화교도 많지만 인구비례로 보면 한국이 둘째임) 이는 한국이 해양기질 자본주의기질 불평등한 계약, 규범문화의 기질을 가진 증거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보면 조선후기 농업사회의 고립된 전통은 스스로 고립을 자원하여 폐쇄적이고 억압적이며 평등하다. 한국 또한 동전의 양면이어서 평등성과 차별성을 동시에 가진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1. 정보의 자유로운 생산 소통 (섬 반도 해양국가) - 자본주의
2. 정보의 충분한 공유 (대륙 고립국가) - 공산주의
3. 조직의 충분한 발달 (대륙 고립국가) - 공산주의
4. 조직의 유연성 탄력성 (섬 반도의 해양국가) - 자본주의
이동이 자유로운 유목민이나 필리핀처럼 너무나 섬들로 되어 있으면 인간들이 하나같이 도망가서 조직이 발달하지 않는다. 대륙이나 고립된 나라들은 도망을 못가므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 조직이 발달하지만 동시에 통제가능하므로 조직이 경화되어 공산주의가 된다.
참된 민주주의는 정보가 충분히 소통, 생산되는 해양적 기질과 정보가 공유되는 대륙기질의 교차점, 조직이 발달하는 대륙, 고립국가와 조직을 얼마든지 해체하고 다시 만들 수 있는 해양국가의 교차점에서 발달한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반도의 경우 로마전성기 때 평등한 공산당의 게르만족 갈리아족과 차별적 계급국가인 지중해 도시국가의 교차점에 있었다. 그러나 문명의 중심이 프랑스로 이동하자 섬처럼 되어져서 여러개의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통일되지 않고 섬이 아닌데도 섬처럼 되어버렸다.
한반도도 상업이 발달한 당,송 시대에 신라, 고려는 무역의 중심지로 해양기질이 발달하였으나 몽고족 만주족 등 대륙바람이 불어온 후 대륙기질이 스며들어 가난의 평등을 이룬 공산국가가 되었다. 중국도 당송시대에는 해양기질이 있었으나 몽고 청나라들의 유목민들이 원래 평등한 공산당이기 때문에 영향받아 쇠퇴했다.
민주주의는 유목민 농경민의 공산주의적 평등기질과 섬 반도의 해양기질이 만나는 곳에서 발달하며 또한 상호모순되는 듯이 보이는 두가지 성격 (정보의 자유로운 생산 소통 대 정보의 충분한 공유) (조직의 충분한 발달 대 조직의 충분한 유연성)의 적절한 균형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모순되는 듯이 보이는 이 두가지 가치를 동시에 발달시켜야 한다.
[정보의 자유로운 생산과 소통=자본주의] [정보공유=사회주의]
[조직의 발달=사회주의] [조직의 유연성=자본주의]
민주주의는 둘 중 하나를 살리기가 아니라 균형맞추기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들은 항상 그런 두가지 가치의 교차점에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 바닷바람과 대륙바람의 교차점에 있다.
민주주의가 발달하려면 우선 조직과 조직의 문화가 발달해야 한다. 그것은 법과 제도, 규범이다. 또 정보가 공유, 유통되어야 하고 이동이 가능해서 언제든지 이합집산 할수 있어야 한다.
탱탱자를 위한 말이야기
탱자님은 거 느물거리는 야그 좀 하지마쇼.
타인의 인생사에 대한 이야기는 안하는게 보약이라니까.
농사일이 생겨서 출입이 드물어질 모양인데 이바구 쪼매만.
마발에 편자가 없으면
겨울에 얼음길을 달리다가 말이 쫄딱 미끄러져서
다리를 뎅강뎅강 분질러먹으니 마다리 보호 차원에서
편자를 박아놓은 거 아이요? 엥이?
편자 없으면 경마장 말도 다리 다 분질러지요
언땅 아니라도 마찬가지. 그건 탱자님이 더 잘 알텐데.
글고 말이 왜 전쟁에 소용되는지 좀 가르켜 줄테니 들어보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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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기본적으로 먼저 포위하는 쪽이 이긴다.
10명과 9명이 싸우면 9명과 9명이 맞서고 남은 한명이 등뒤로 돌아가 혼자서 적군 아홉명 다죽인다. 숫자가 단 한명이 많아도 절대유리한게 전쟁이다.
전쟁에서 실제 싸우는 이는 맨 앞줄에 선 병사고 뒤에 있는 사람은 할 일이 없다. 그렇다고 놀랴? 옆으로 벌려서 적을 에워싼다.
아군도 벌리면 적군도 벌려서 벌리기 시합을 하는데 존나이 뛰어야 한다. 바둑과 비슷하다. 서로 적을 에워 싸는데 단 한명이 많아도 대마는 전멸.
벌리다가 너무 얇아지면 중앙을 돌파당한다. 돌파되면 진이 둘로 쪼개지고 각개격파된다. 바둑을 생각하면 된다. 대마도 끊기면 죽는다.
전투에서 병은 한데 모이면 포위되어 전멸이고 흩어지면 쪼개져서 전멸이다. 그러니 병은 흩어져도 안되고 모여도 안되는데 그래서 기병이 필요하다.
기병의 역할은 중앙을 돌파하는 역할과 적이 좌군과 우군을 벌릴 때 재빨리 막아서서 길목을 차단하는 역할이다. 기병 뒤에는 보병이 쫓아온다. 기병이 돌파하면 보병이 살육하고 길목을 막으면 보병이 에워싼다. 죽음이다.
전쟁터에서 병은 끊임없이 달리기 때문에 둘격하여 달려가다가 기병이 중앙을 돌파하면 그냥 둘로 쪼개진다. 죽음이다.
병은 혼자가 되면 죽기 때문에 반드시 모여있다. 때문에 기병이 에워싸면 보병은 꼼짝못하고 가만있다. 기병을 공격하려면 대오를 뛰어나와 혼전을 벌여야 하는데 대오에서 나오는 순간 죽는다. 고로 기병이 차단하면 보병은 제자리에 가만 있을 수밖에 없고 이때 보병이 따라와서 에워싸고 다죽인다.
기병을 막기 위해 활을 쏘고 창병을 투입하는 수도 있지만 길목을 차단당하면 그걸로 죽음이다. 전쟁에서 포위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10분 빠르면 대승이고 10분 늦으면 전멸이다. 기병이 재빨리 달려가서 길목을 막으면 진군하던 병사들이 활을 쏘고 창을 던진들 적어도 10분을 허비하고 그 10분 사이에 군은 이미 포위되고 전멸이다.
돌파와 포위 안되려면 기병을 막아야 한다. 고로 적의 기병에 대항하기 위해 아군도 기병을 두는 방법 밖에 없다. 고로 기병은 기병끼리 싸운다. 기병은 돌격해도 섣불리 혼전하지 않는다. 기병이 돌파하여 적진을 흐뜨리면 보병이 따라다니며 살육한다.
옛날의 전투는 달리기 시합이다. 병사는 들판에 가만이 서있는 것이 아니라 깃발을 따라 죽을둥 살둥 뛰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진열을 갖추어야 한다. 거기 기병이 뛰어들면 흩어진다.
달리던 병사는 멈추게 되고 그 속도에서 적보다 느리면 포위되고 전의 상실이다. 승부는 거기서 끝이고 혼전이 벌어지면 대개 포위당한 쪽이 일방적으로 몰살되는 살육전이지 대등하게 밀고 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구름을 위한 역사이야기
구름은 틀렸다니 맞다니 하는데 맞는 것은 무엇이고 틀린 것은 무엇인가?
나나미의 말대로 등자는 중세의 마구(馬具)이다. 근데 중세는 언제부터인가? 역사라는 것이 딱 잘라서 여기서부터 중세다 하고 정할수 없다. 중세적 특징이 나타나면 중세다.
우리나라는 부자세습이 정착된 고구려 태조왕, 백제 근초고왕, 신라 내물왕 때를 경계로 삼지만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를 몇 년도 하는 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없다.
고대의 특징은 청동기문화가 발달하고 도시중심이었으며 노예제를 기반으로 시민사회를 이루었다.
중세는 농촌 중심이며 철기문화가 발달하고 계급이 세분되었고 기사계급을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점을 따지면 중국에서는 진시황이 노예해방을 하여 백정(白丁)계급이 등장하면서부터 중세문화가 시작되며 유럽에서는 서로마 멸망 이후 농노계급이 등장하면서 중세문화가 시작된다.
중세라는 것은 딱부러지는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적 특성을 합하여 일컫는 것이다. 유럽에선 서로마의 멸망을 기준으로 딱 부러지게 표시가 나지만 유럽 사정이고 중국에선 딱 경계를 그을수 없다.
즉 구름식으로 말하면 나나미의 말은 틀린 것이 되지만 그건 뭐든 까탈스럽게 따지는 구름의 입맛이고 내 기준으로 보면 등자는 중세의 마구이다. 등자가 중세문화의 특징인 기사계급의 발달을 낳았기 때문이다. 등자가 없을 때 기사계급이 없었고 따라서 농노도 없었다.
노예와 농노, 백정은 무엇이 다른가? 등자가 없었을 때 노예들이 달아나면 잡아올수 없다. 고로 노예는 대농장이나 도시에 모여살고 있었다. 노예는 성 안에 살며 주인이 족쇄를 채워 성 밖 농장으로 끌고가서 일시키고 다시 족쇄를 채워 성안으로 끌고온다. 고로 농사를 지으려면 시골에다 소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문명은 자연히 도시 중심으로 발전한다.
우리나라도 2세기경까지는 작은 부족국가 중심이었고 이는 노예노동으로 농사를 지으려면 노예를 감시하기 위해 도시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기록을 보면 귀족들은 1~2만명의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다. 노예들을 집단생활 시킨 것이다. 이집트에 끌려간 유태인들처럼 한데 모여살았다.
조선시대는 외거노비라 해서 노예들이 시골에 집짓고 살았다. 등자가 보급되자 노예들이 달아나면 추적해서 잡아올수 있기 때문이다.
등자의 보급은 도시를 불필요 하게 하고 따라서 문명은 산골로 숲으로 이동하였다. 봉건시대란 왕이 토지를 나누어주는 것인데 고대엔 노예를 시골로 보낼수 없기 때문에 토지를 나눠줄수 없었다.
노예를 시골에 보내면 몽땅 달아난다. 영화에 묘사되듯이 로마의 노예들은 성밖으로 나가면 족쇄를 차고 엄한 감시를 받는다. 중세 농노들은 그런거 없다. 도망가도 잡아올수 있으니까.
서구에 등자가 10세기경에 등장하는 것은 당시 암흑시대라 역사자체가 희미했기 때문이다. 기념할만한 전쟁도 사건도 없었던 거다. 실제 유럽역사에는 4세기부터 9세기까지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또 [전혀없다는 말인가 요렇게 있다] 하고 트집하겠지만 억지고 학교에서 배운게 별로 없자나)
등자를 발명하는건 무지하게 쉽다. 그런데 말잔등에 고정시키는건 어렵다. 그냥 등자를 만들어 말등에 묶어두면 사람의 체중을 감당하는가? 등자의 발명은 등자의 발명이 아니라 재갈부터 시작해서 등자를 고정시키는 안장과 드리개 등 마구일습을 전부 발명한 것이다. 그것이 왜 중세냐?
[중세란 무엇인가? 무엇이 중세의 본질인가? ]
철(鐵)이다. 철기는 진작 사용되었지만 고대의 전쟁에는 철기보다 청동기가 사용되었다. 철은 겨우 농업용으로나 사용되었다.
왜 철이 전쟁무기로 사용되지 않는가? 야금의 곤란함 때문이다. 쇠라는 것은 물러 못쓰기 때문에 단련을 해야하는데 구리는 주석과 아연을 섞어 합금을 만드는 방법으로 되는데 쇠는 합금이 안되므로 야금이 어려운 것이다.
형가가 진시황을 찌르려한 어장검도 구리칼이다. 낙랑고분에서 출토되는 쇠뇌도 구리로 만들어져 있다. 구리는 쇠보다 훨씬 귀한데 무기로 단단한 쇠를 아니쓰고 무른 구리를 쓰는 것이다.
손기정옹의 투구도 쇠가 아니고 구리로 되어있다. 그렇다고 그시대가 청동기시대는 아니다. 전쟁무기는 구리로 하고 쇠는 농경에 이용했다. 선철은 물러서 못쓴다. 담금질을 하면 쉽게 깨어진다. 좋은 쇠를 만드는 기술은 선비족만 가지고 있었다.
북방 유목민인 선비족의 야금기술이 진나라로 전해지고 이에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며 철이 전쟁무기에 사용되고 이때부터 전쟁이 100만대군 단위로 시작되는 것이다.
고대의 전술은 전차와 중갑병의 밀집대형에 의한 방진인데 특징은 병사 수가 적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귀한 구리칼을 쓰므로 구리가 부족해서 충분히 많은 전쟁무기를 갖출수 없고 따라서 백만대군은 조직되지 않는 것이다.
진나라는 일찌기 유목민으로부터 야금기술을 받아들여 흔한 철로 무기를 대량생산하고 이를 토대로 중국을 통일하였다. 구름이 만약 유심히 텔레비젼을 보았다면 중국에서 만든 TV드라마에서 유방과 항우의 싸움 때 청동칼을 휘두르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철제무기는 졸병들이 쓰고 장수들은 그때도 구리칼을 썼다.
철은 대량생산 되기 때문에 철제무기의 보급은 군대수를 엄청 늘려서 유목민들의 고대도시에 대한 무차별공격을 낳는다. 정확히 중국이 흉노족에게 시달리게 되는 시점과 철제무기의 보급시점이 일치한다. 게르만족의 이동도 마찬가지다.
어느날 갑자기 북방 유목민이 대거 남하하여 농경민을 공격하게 되는데 그 시점이 야금기술의 보급시점이다. 등자는 그 야금기술을 따라 전해진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구름은 내가 없는 얘기를 지어낸다고 말한다. 그러나 철기시대인 낙랑고분에 왜 청동제 무기가 나오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면 역사가 보일 것이다.
김알지나 석탈해가 왜 신라를 지배하는가? 역사학자들의 가설은 대개 철(鐵)을 가지고 도래한 흉노족이란다. 대구중심으로 지방방송에 이런 프로가 잘 나온다. 실제 중국문헌에 만리장성을 쌓는데 끌려간 흉노들이 도망가서 신라를 건국했다는 기록도 있다.
등자를 비롯한 마구일습은 출토되는 바 대개 쇠로 되어있다. 즉 등자는 철제무기의 보급로를 따라 이동한 것이다. 철제무기는 무기의 대량공급으로 소규모 중갑병에 의한 밀집대형을 인해전술로 바꾸어놓고 그 전쟁형태의 변화가 고대와 중세를 가름한다.
고대의 도시중심사회는 청동제 무기를 든 소규모의 중갑병이 충분히 방어할수 있었지만 철제무기를 들고 떼거지로 밀려드는 이민족의 인해전술은 도시를 지켜내지 못한다.
철제무기의 공급은 곧 농기구가 전쟁무기로 돌변할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청동제무기시대에 철제농기구는 쇠가 물러서 농민들이 농기구를 전쟁무기로 바꿀수 없었다. 그러나 선비족이 보급한 야금기술은 무른 쇠를 단단하게 별러 놓는다. 농기구가 언제든지 전쟁무기로 돌변한다. 고대의 노예제와 도시는 해체될수 밖에 없다. 철을 소유한 농노들이 말을 안들으니까.
그리하여 고대의 노예 대신에 새로이 생겨난 계급이 농노계급이고 중국에서는 백정계급이다. 농노나 백정은 노예보다 신분이 상승하였다.
문명은 도시에서 생겨났으나 야금기술은 유목민이 가져왔고 전쟁이 춘추전국시대의 도시들간의 소규모 전쟁에서 유목민 대 중국전체의 대규모전쟁으로 바뀌고 전쟁이 대규모화되자 농민이 전쟁에 참여하고 (고대 노예는 전쟁에 참여안함) 그것이 중국의 중세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대개 역사책에 안나온다. 그렇다고 임의로 지어낸 것은 아니다. 당시의 역사기록자들이 야금기술의 이동로 따위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출토되는 고분과 기록에 묘사된 전쟁형태, 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계급제도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여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들의 이름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봉건과 중세 근대와 현대의 연속성과 차별성을 안다는 것이다.
야만과 고대를 가름하는 것은 청동제 무기의 보급에 의한 노예제도와 노예를 지배하기 유리하게 만들어진 도시문화다.
고대와 중세를 가름하는 것은 청동대신의 철제, 도시 대신의 농촌, 노예 대신의 농노다.
등자는 발명가의 지혜에 의해 어느날 발명된 것이기보다는 야금기술의 이동로를 따라 점진적으로 보급된 것이며 북방유목민에서 중국으로(0~2세기) 게르만족으로(4세기이후) 이동한 것이다. 등자는 고대와 중세의 경계선에 있다.
그저께 써둔게 옛날 얘기가 되었군 .....김해 농부~!
봄은 왔는가?
빠뜨린 말이야기...
중세 기사들의 마상결투는 말의 눈을 가리고 한다. 말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도 잘달린다.
말에 갑옷 입히고 중무장한 기사가 타면 무게 100키로가 넘을 텐데 말이 어찌 감당하는가 하는 것은 경마장 말과 유럽말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이야기다.
유럽말은 쟁기 달아 밭 가는 말로 매우 뚱뚱하다. 힘좋다. 유럽에서는 소보다 말을 주로 농경에 이용한다.
말이 당나귀나 소와 달리 사람을 태우는 것은 독특한 보법 때문이다. 말의 걸음걸이는 개나 소와 다르다.
소는 대각선방향의 두 발을 동시에 움직인다. 왼쪽 앞발과 오른쪽 뒷발, 또 그 반대쪽 발을 교대로 움직인다. 달릴 때는 앞 두발과 뒤 두발을 동시에 움직인다.
달리는 소등은 로데오 경기가 된다. 말이 소처럼 달린다면 말을 탈수 없다. 말은 달릴 때 네 발 중 하나만 땅에 닿고 세발은 뜬다. 걸을 때는 네 발 중 하나만 뜨고 세발은 닿는다.
말의 독특한 걸음걸이는 빨리 달려도 잔등이 평행하게 한다. 소는 달릴 때 모듬발을 하므로 앞뒤로 기울어져 곤두박질된다. 소의 구보는 껑충껑충 뛰는 것이다.
말이 평보에서 속보, 구보로 단계적으로 속도를 올려갈수 있는 것은 특이한 걸음걸이 때문이다. 말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이 속보를 할 수 없는 것은 두다리를 동시에 움직이는 습관 때문에 네다리를 가지고 걷거나 뛰는 것 외에 중간걸음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인들이 타기엔 소처럼 걷는 것이 더 편하다. 말에게 소의 걸음걸이를 가르쳐 억지로 소처럼 걷게 한 경우도 유럽 상류사회에 있었다.
[상투적인 너무나 상투적인]
류시화나 석용산의
자칭 [깊은 깨달음의 경지]는 사이비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글을 참 매끄럽게 잘도 쓴다.
그러나 구절구절에서 상투적인 표현 한 두 구절을 발견하고
속이 메스꺼워 진다.
진정으로 혐오스런 것은 그 [상투적인 너무나 상투적인 ~!]
나의 까탈스런 귀족취미는, 심미취향은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 걸리듯
잘 넘어가는 문장이다가 돌연 한마디에 탁 걸려서
[이기 머 이런기 다 인노, 고얀, 쾌씸한, 사이비가튼 ....]
싫어하는 표현 중에
이를테면 스포츠 신문에 제목을
[최용수 그대 있음에...] 이기 뭐꼬? 유치찬란이다.
지딴엔 멋을 부린다고 써둔 모양인데
어이엄따 어이엄써 차말로.
중학교 1학년 문장이다.
여고생들을 노리고 쓴 엉터리 시집 제목처럼
속이 빤히 보이는 그런 상투적 문장.
그러면 나는 책을 집어던지고 마는 것이다.
이발소 그림을 보면 매우 잘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30분 만에 그릴수 있는 그림이다.
혁필쟁이 처럼 넓적한 붓으로 두가지 물감을
한번에 찍어 그린다. 보아허면 그런 얍삽한 기법으로
그려낼수 없는 부분은 완벽히 배제되어 있다.
늘 그리는 정체불명의 침엽수
바위, 폭포, 초가집, 오솔길 그리는 것만 그린다.
시간은 늘 해저무는 일몰시점 (선명하게 그리기 싫으니까)
문장도 마찬가지다.
잘못입은 옷처럼 인내하며 보아주기 어렵다.
맛없는 음식을 먹기 어렵고
상투적으로 그린 그림 보아주기 어렵고
엉터리 음악 들어주기 어렵고
상투적인 문장은 메스꺼워서 못 읽는다.
[이름모를 풀꽃이 미소짓고...] 이런 상투적 표현...
고약하다. 꽃이름을 모르면 식물도감이라도 찾아보지
모르는게 자랑이라고.. 두금 뿐.
특히 여류문인들이 쓴 글 끝마무리를
[...정답기만 하다] 하는 식으로 /..만 하다/
만 하기는 뭘 만해...이게 뭐냐면 뜻없는 글을 써놓고
끚맺음을 모해서 들어가는 상투적 표현.
나는 양서를 가려읽지 않는다.
다만 상투적인 글귀가 나오면 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책을 던져버린다.
상투성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히 운동권쟁이들의 상투적 표현...
구국의 강철대오 어쩌고 빌어먹을....피양방송 상투적 표현.
야소쟁이 상투적표현 ..하나님 어린양 우에 구버 살피주심 암만.
여류문인 상투적 표현..../고맙기만 하다/ /반갑기만 하다/
조선일보 상투적 양비론 ..이당저당몬뗀당아무당나라당한나라당
한겨레신문 상투적 욕질 ..
각설하고
봄은 온다는데 살구꽃 망울이 맺힌다는데....
불면의 밤
시조나 한수 때리자
/해는 정동진에서 떠오른다. /
신새벽 어스름
안개 철길을 달려
무쇠 거친 숨 고르고
조용히 눈 감으면
간이역
태양 바다 소나무
정동진에서 만나자.
아직 정동진에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정동진엘 가야겠다.
언젠가 정동진이 고요해지면 아무도 없을 때
몰래 정동진에 가야겠다.
정동진에 시장이 서고 정동진에 인파가 몰리고
모래시계 후 정동진 바람이 불었을 때
과연 이바람이 얼마나 갈것인가?
운좋게 TV를 타고 덩달이로 유명세를 치르는 반짝 히트인가?
그러나 정동진에 뒷심이 있다.
다만 모래시계의 후광일까?
간이역, 바다, 일출 소나무 두어그루
그것은 마치 동양화이기도 하고 추억이기도 하고
[왜 지금 정동진인가?]
7, 80년대만 해도 우리는
누가 하면 모두 따라해야 한다고 믿었다. 남이 하는 것은 다해 야 한다고 믿었다. 모두들 일제히 장발을 하고(김대중도 장발을)
[정동진은 90년대 정신의 표상이다]
단순히 집단무의식에 의한 군중심리로 한때의 유행이다고
보아선 편협시각. 요즘엔 관광도 이벤트성이다. 즉 뭔가 대단한 볼거리를 보러가는게 아니라 주제가 있는 여행이다.
정동진은 그 상징이다.
볼거리가 있어 보러가는게 아니라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기념하기 위해 주제를 정해가지고 떠나는 것이다.
거기에 꼭맞는 것이 정동진이다.
관광지가 주고 인간이 들러리 서는게 아니라
인간, 인간의 만남이 주고 정동진은 여백이다.
고로 크게 비어있어야 한다.
내년 닫으면 이천년대
한 세기 가고 한 세기가 온다.
정동진에 서면 다음 세기가 보일까?
언젠가 정동진엘 가야한다. 가서 시인으로 앓아야 한다.
모래시계의 그들처럼
90년대의 마지막 밤을 스쳐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