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이란
read 3560 vote 0 2002.09.06 (11:53:59)

성철이야기

오반님은 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말 먼저 꺼냈다고 저작권 주장하덜 말라. 우끼지도 않는다.

산, 물 야그는 내 십년 전부터 하던 야그라서 나는 또 이 말을
마저해야 한다. 법장님을 떠 본 거지만 꼭 법장님 들어라고 하는 야그는
아니고 얗든 나는 성철을 높이 평가한다.
적어도 20년좌선도로아미타불 철웅선사보다는.

[산은산, 물은물]
무슨 뜻인가? 언어에는 아무 뜻없다. 찾지 마라.

자기 언어의 값어치는 자기가 매기는 것이다.
어떤 말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는 그의 다른 언행에서 평가된다.
내가 성철의 [산은산 물은물]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 한마디 보담은
성철의 다른 언행을 듣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동화사 주지후보 기호 몇번 철웅선사가
[산은 산이고 물은 몰이로다 에헴] 이랬다고 대단한 말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언행들에서...

[근데 마랴 나는 뭐 누구같이 사람을 잘안만나주고 그러지는 않아.
뉘기든 날 만나려면 만날 수 있지. 난 그런 사람이야. 특히 김종필과
친하지 지난 대선에는 모든 후보들이 날 만나러 왔는데 다리 저는 양반은
다리 땜에 산밑에까지 밖에 못왔어 비서가 대신 만나고 갔지]

이 말은 철웅이 성철을 간접 비난한 말이다.
해서 나는 철웅이 [산은산 물은물] 해도 인정 안한다.
왜냐하면 그의 다른 언행이
[근데마랴 산이라고 다같은 산인가 뻘건산도 퍼런산도 있다구
구정물도 맬간 물도 있더라구] 이러구 다니기 때문이다.

성철은 다만 [산은 산, 물은 물]을 말한 것이 아니라
또은 침묵으로, 때론 설법으로, 또는 행동으로 그것을 뒷받침한 것이다.

무지한 자가 혹 속임수로 대단한 말을 해도
그의 다른 언행에서 곧 탄로나기 마련이다.
지혜있는 자는 허투루 평이한 말을 해놓고도 스스로 행동으로
실천해 보이므로서 그 말의 값어치를 높여버리는 방법을 쓴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 하였거나
예수가 [누구든지 죄없는 자 저 여인을 돌로 치라] 했다거나
공자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했대서 대단한 말 아니다.
소크라테스 제자들의 간청에 암 생각없이 내뱉었는지 모른다.
예수 문득 떠오른 말을 써먹었고 공자 무심코 권두에 썼으리라.

말에 뜻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은 행동으로 그 말을 뒷받침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일생이 그 한마디에 녹아들어가 버리고
침투, 이입되어 위대한 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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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시중의 미소.]

석가가 연꽃을 들면 가섭은 미소로 화답한다.
이심전심이란 마음이 그냥 텔레파시로 통해버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 생각을 한 바 있는데
그도 같은 생각을 한 바 있다면 그로서 통하는 것이다.

성철이 한 법문을 들려준 바 없는데 빠락은 왜 아는체 하는가?

진리는 하나 뿐이다.
고로 성철이 무상의 경지에서 지극한 말을 했다면
그것은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통한다.

한 사람이 무상한 경지에서 본 것을 꽃이라 하였는데 또 한 사람 있어
그 경지에서 본 것을 돌이라 했대서
꽃과 돌이 다른거 아니다. 무상한 진리는 하나 뿐 같다.

나의 언어는 때로 길지만 생각이 통하는 사람과는 짧다.
내가 생각한 것을 그도 이미 생각해 본 바 있기 때문에 내가 운만 꺼내도
그는 알아듣고 미소짓는다.

그는 나의 말을 듣고 맞다니 틀렸다니 평하지 않는다.
진위(眞僞)판단이 아닌 미추(美醜)판단으로
[거 좋다] 무릎을 치거나 슬며시 웃거나 한다.

무상한 경지에서 나누는 한담(閑談)에는 맞고 틀림이 없고
오직 멋있다거나 아름답다거나 곱다거나 하는 평가만 있으므로
나는 명상의 끝에서 얻는 그러한 담론을 즐긴다.
그런 대화를 나눌 상대자를 찾아보는 것이 나의 통신하는 목적이고
전부이며 일부는 달성되었고 또 일부는 구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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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은 왜 3천배를 요구하는가? 잘난척한다고 그러는가? 아니다.
성철에게 물으면 [절에 왔으니 절이나 하고가 건강에도 좋아]

1배의 절은 신체의 무게중심을 지상 10센티 높이에서 90센티 높이로
끌어올리는 만큼의 열량을 소비한다. 그것은 산길을 이십보 걷는 것과 같고
계단을 네계단 오르는 것과 같다. 1배의 절을 하면서 스무걸음
산길을 걷는다고 생각해보자. 결과는 같지 않은가?

3000배의 절은 1보(90센티) 곱하기 스물 곱하기 3000이다.
대략 130리 쯤 된다. 3000배의 절은 경사도 10도 정도의 비스듬한 산길을
100리나 150리 쯤 걷는 것과 같다.

성철을 만나려면 가야산하고도 백련암 하고도
100리나 더 산길을 더듬어가야 하는 것이다.
손님이 성철을 만냐려 해도 마찬가지고
성철이 대중을 만나려 해도 마찬가지다.

가야산 우에 백련암 지나서 100리 더가서 거기 성철의 암자가 있다.
그렇다면 대중이 성철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라 성철이
대중에 절하는 것이다.

그가 대중을 만나려 해도 마찬가지로 100리 산길을 더듬어 와야하기
때문이다. 산길을 허위허위 걸어가는 것이 곧 명상임을 안다면
더 언어가 필요하랴.









午飯君에게.

논쟁이라는 것이 되려면
[일관된 관점]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던가?

午飯君~! 도대체 귀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수 없으니
반론이고 뭐고 없겠네.
청석골에 써놓은 것도 그렇고
도대체가 횡설수설 무슨 소리를 하자는게야?

이해가 완되남? 자 비유를 하나 하자고 비유.
어린 것들에겐 비유가 이해하기에 빠르재. 안글남~!

여기 떡이 하나 있다구 그건 떡이야~! 송편이나 절편이나
빈대떡 보리개떡이나 아무튼 떡이야 떡~!

내가 그 떡을 맛없다고 말하든 맛있다고 말하든 그건 나의 자유네~!
그대가 그 떡을 크다고 말하든 작다고 말하든 그건 그대의 자유라고 푸헐~!

문제는 관점이야~! 세상을 보는 안목 말일세~!
내가 그 떡을 맛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 떡과 상관없이
나는 그동안 맛있는 떡만 먹고 살았다는 자기과시가 되겠지.
그대가 그 떡을 넘 작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대가 늘 굶주리고 살았다는
반증이 되겠지.

즉 어떠한 발언을 하든 그건 떡 그 자체와는 상관없이 자기형편을
말하고 있는 것이야. 즉 떡이 문제가 아니라 떡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문제다 그말이시.

근데 午飯君은 여즉 떡이 문제인줄로 착각하고 왼종일 떡떡거리니
어찌 하품나오지 않겠남?

이를테면 우리가 조선일보의 어제 사설을 시비하는 것은
그 말이 틀렸는지 맞는지의 여부를 떠나 조선일보가 이제 한번쯤
김정권을 흔들어볼 타이밍을 잡았다고 보는지 아직 더 기둘려야 한다고
보는지 그 눈치를 읽는거 아니겠는가?

그럼 구체적으로 午飯君이 어떻게 쑥맥같은 소리를 하였는지 알아나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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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님.. 아제 아제 바라아제님...
오반이 모 아제님의 고매한 정신세계를(중략)
아제님의 고매한 정신세계가 아제님의 다소의 현실적인 문제에
관한 착각으로 인하여 몽매해 짐을 어여삐 여겨 한말쌈 거든 것 뿐이랍니다..
자본주의가 자유를 지향하구 공산주의가 평등을 지향한다는 아제님의 말쌈이
몽조리 헛소리라는 말이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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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하는 여즉 아제님이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해서
이데올로기강론을 펴고 있다고 착각하는가? 이 유치원생을 어찌 계몽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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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구 체제와 정신세계를 혼동하시지는 마세여.. 아제님처럼 고매한
정신세계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빵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답니다..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이념덜은 그 빵의 생산 및 분배를
규정하는 중요한 사회적인 요소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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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하니? 내사 마 돌아삐리겠다. 午飯君~! 내 기가 막혀서 기어이 한마디
해야 쓰것네~! 그런 기분이 딱 들어부렀다카이.

말했지. 아제님이 [그 떡이 넘 크다] 하고 말했다면
그건 떡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저 떡은 떡일 뿐이지.
아제님은 그 떡을 먹는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야.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란 말여~@! 고오얀~!

별수없이 이도령과 방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겠네.
(이도령) : 아따 그놈의 나무 한번 괴이한게 잘 생겼구나~!
(방자 ) : 원 도련님두 어찌 그리 택도 엄는 말씸을 하신당가요.
저 낭구는 외틀어지고 비틀어진게 늙은 중 지팡이로도 못쓰겠고
처녀 방아찧는 절구공이나 할마시 서답하는 빨래방망이로도
못다듬겠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자루도 나쁘고 고집센 황소
길마씌우기도 나쁜 뎁쇼. 천하에 쓸모엄는 나무지라.
(이도령) : 아무러나 네놈 입방정 틀어막는 대매로야 안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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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여.. 지역감정 운운하시는데여... 대한민국에 지역감정 생긴 거이
김대중은 아무 책임이 엄따구 생각하세여? 삼김은 박,노,전 전대통령덜과
함께 이땅의 뿌리깊은 지역감정의 창시자이며, 원조라구 생각하는데여...
(중략)복잡하게 맹글어 버렸다는 말쌈입니다.. 그래두 100점짜리 인사라구
생각하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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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말로 하마 물방구끼는 소리 하구인네. 으아아아하~! 이건 내 하품소리다.
고오얀~! 오반군~! 먼저 그대 자신의 관점을 만들어 와~!
보수 편이나 진보 편이나 아무 편에나 붙어~! 그리고 그대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해~!

어른들 노는데 끼는 것도 좋지만서두 장기를 두는지 바둑을 두는지
알고와야지 뭐 어른들 장이야 하는데 저혼자 팅가묵기 하는 줄 알고
헤임예 그게 아인데예 하미 장기알 다 튕겨내어 버리면
고놈 참 귀엽다 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으아 하품이다 고마.

나는 오반군의 모든 글에서 그 어떠한 안목도 생각한 흔적도 고민한
자취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말이시.

깨우침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나?
모든 판단을 진위판단으로만 받아들이면 투쟁견고 1차원적 인간이 되고
역설과 해학을 알면 약간의 지혜가 되고
미추를 알면 제법 깨달음이 된다고 말이네~!
그대의 글에 생각한 흔적이 없다는 것은 사지선다형 정답찾기에만
분주할 뿐 뒤집어보기나 어울어보기가 없다는 뜻일세.
상대방이 뭐라고 말하였나를 보지 말고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를 포착하려므나.
끄윽~!























테세우스 미궁으로부터의 탈출.

아주 복잡해 보이는 문제이지만
실은 매우 간단히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미로찾기.
그 어떤 종류의 미로이든 한쪽 벽을 계속 따라가면 반드시 출구가 나온다.

한쪽 벽은 아예 포기하고
벽에 손을 댄 한쪽 벽만 따라가는 거다.

































짱구는 못말려~!

오반님의 종횡무진 무대뽀 활약을 지켜보니 퍼뜩
떠오르는 것이 yoshito usui의 만화 [짱구는 못말려].

그려 놀아봐~! 말릴 사람 없으니 놀아보라구~!
내 한마디씩 거들지만 어디 장단맞추기지 뭐. 말리는거 아녀~!

이목을 끌어보려구 하니까 쳐다봐주기지 뭐.
법장님 바라. 지 봐달라구 도배하고 꽹까리 치고 나발불고 울고 짜고
하더만 쳐다봐주면 [왜 째려보냐 쓰벌] 이런다. 오반이 백배 낫다.

통신에서 간혹 논쟁이랍시고 어줍잖은 소리를 까는 것은
말했던 바 인간에 대한 관심이지비. 별의 별넘의 인간들이 있다 말이시.
이 잉간동포는 또 여하한 방법으로 타인의 의견을 접수 잡수시며
리바이어던의 잉간동포들 사이에서 자기 생존을 확보해 나가는가
하는 관심이어 새로운 백성이 출현하면 으례히 인사치레로
한두번 툭툭 건드려 본다 말이시.

주목을 끄는 잉간 동포란 이른바 [고수]라 불리는 종족들인 바
어떤 존재인가 하면 부단히 타인의 예측을 깨뜨리는 동포인게지.
아하 저양반은 저런 종족이군 하고 보면 그게 아이더라 그것이지비.

더욱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변신, 비약시킨다면
그는 대단한 사람인게야. 나는 이 온라인 공간에서 그런 사람 몇몇을
발견하고 있다 그거이지비.

마 아는 것 많고 똑똑하고 준재인건 분명한데 발전이 엄써서
매양 그소리가 그소리인 때때양반이 있는가 하면
별로 든 것은 엄써도 재치와 순발력으로 무장하고
부단히 저 자신을 개조해 나아가는 준걸 동포들도 있다 말이시.

하여 본 도둑께서 오반군을 주의깊게 관찰해 버렸다 싶다면 그것은
장하다. 선언해부린 [열사를 깨부신다]카는 자기 공약을
어떻게 변명하고 구렁이 담넘고 오리발에 홍두깨로 봉창 두들기냐
마 그런 관심이렸다 이런 소리인게지.

이해가 경부선 타고 대전 조치원 성환 안성 수원 거쳐
느네집 안마당까지 왔느냐 말여.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구.

오반은 파파락을 비롯해 몇몇 사람에게 소위 논쟁이란 것을 걸어왔다
이말이시. 근데 아무도 성의있는 대꾸를 안해.
열받은 오반군이 [열사 수준이 뭐 이러냐 투덜투덜] 이랬다 이거지.

근데 파파락이 거기에 성의있는 해설을 해준다 이거지.
[아그야 논쟁이라는 거슨 그런 식으로 거는게 아이다 엥이]

다른 사람이 자기 얘기를 하는데 [그게 아이고 말야~!]
이런 식으로 껴드는 것은 제대로된 논쟁걸기가 아니라 말이씨.
왜냐하면 그건 오반군의 이야기가 아니고 남의 이야기다 이말이시.
얘기한 사람이 오반군의 딴지걸기에 응대해줄 아무런 이유없다 그말이시.

본 도둑께서 논쟁거는 법을 가르쳐 줄테니 배우라 그말여~!
논쟁을 걸려면 먼저 자기얘기를 해라 이거지비.
오반이 먼저 썰을 까는거야.
그것도 약간 어수룩하게 보이도록 틀린 또는 과장된 야그를 쓸쩍
양념 버무려서 말여~! 그러면 타인이 그 틀린데를 짚고 나오지.
[근데마랴 그게 아니고 마랴]
실은 그게 함정. 오반은 미리 그걸 예측하고 그에 응대할 논리를
개발해 둔 다음이어야 하는 거지. 용코 걸렸다 싶으면 본격적으로 까는거야
그런데 상대가 그런 수법에 만만이 걸려 주는가 이게 문제거든.

그래서 필요한게 뭐냐 하면 자기 캐릭터라 말이시.
일테면 법장님이 머라머라 캐쌓는데 그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나나 누구가 거기 한마디 거들어줄 이유가 없다 말이시.
근데 법장님은 감히 [불교개혁] [종단의 개혁가요 투사 혁명가]
마 이런 캐릭터를 떠억 하고 세워버리면 거기에 걸려드는 법인 게지.

논쟁꾼들은 다 자기캐릭터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말이시.
마 나로서 말하자면 그냥 아무러나 아무 이바구나 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적 지성상에 있어서의 모범적 전형의 창조 내지 모색]이라는
제목을 걸구 글품을 판다 이거지.

[DJ방패], 마 이런 동포도 있고 [숨은 운동권의 대부] 마 이런 자객도 있고
[기득권층의 논리를 옹호함] 마 이런 주장도 있고 다 하나씩 자기 모럴을
가지고 있다 말이시. 근데 논쟁이라 카는 것은 그 캐릭터를 깨고 모럴을 까는
싸움이지 그냥 말트집이 아이라 말여.

뉘 말이 어디가 맞구 어데가 틀리구 이건 논쟁거리가 전혀 못되지.
그딴게 궁금하면 도서관에 가서 책찾아보지 뭘하러 여기서 껍죽거려?

근데 오반군의 활약에서 내 겨우 발견한 거라곤 [짱구는 못말려]
남의 견해에 시비걸지 말구 자기주장에 다른 사람이 시비걸게 하란 말여.
겨우 한다는 소리가 뭐 [서민의 뭐 어쩌구] 참 그게 제목이나 되나?
써놓고 보니 존나이 쪽팔리지 않던감?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 마 이정도는 나와야 내가 한줄 관심이라도
가질게 아닌감? 서민이란 대중일반을 말하는 거라서
거기엔 계급적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는 관계로 사회학적 연구대상이 되지를
못하는것이여. 그려서 사회학자는 그런 말을 쓰지도 않는다 말이시.

이를테면 자동차가 고장났는데 엔진이면 엔진 타이어면 타이어가 고장났다
해야 말이 되지 [앞대가리가 고장났는데여] 하면 정비소아저씨가 웃자나.

서민이란 겨우 고급주택 서민아파트 뭐 이런 구분에나 쓰는 말이여.
농민이면 농민, 노동자면 노동자, 도시빈민이면 도시빈민, 중산층이면 중산층
마 이런 색깔이 나와야 그게 사회학적으로 의미있는 분류구분이 된다 말이시.
사회학적으로 의미있다는 것은 사회변혁의 주체가 되거나
그 반대세력이 되거나 한다말이시.

오반군~! 귀하는 아무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문화적 색깔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비판해줄수가 없어. 겨우 비판한다는게 얼라라서
같이 놀아주기에 마 그렇다 그소리가 다여~!

문화적 측면에서 과감하게 성개방, 문화개방을 주장한다거나 또는
문학이면 문학, 영화면 영화 특정 관심분야에 문제를 제기한다거나
진보적 혹은 보수적 태도를 표명한다거나

또는 종교적 측면에서 철학적 측면에서 정치적 측면에서 뭔가 말빨을
세워보는 그런 맛이 있어야지 뭐 구시렁구시렁 아무나 잡고
짱구같이 장난만 치려면 뭔 답이 나오간?

서민을 도와주고 싶다면 그저 고아원에나 가서 자원봉사나 하라구.
그저 나라를 위한다니 뭐 서민을 위한다니 그런 의식없는 안이한
지각없는 누가 나라를 아니위하고 서민을 아니위한데?

반을 확보하지 않는 정은 정이 아니되며
상대가 없는 축구시합은 시합이 아닌고로 먼저 적을 발굴하고 난 다음에
아군의 깃발을 꽂으라 그말이시.

하옇든 오반군은 아직 내가 비평해주고 싶은 밥상을 차려낸 적이 엄써.
짱구같이 칭얼거려서 해주는 야그야.

[상대를 비판, 혹은 비평하는 것은 그 말이 맞고 틀리고를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입장 또는 내세우는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철학적 주장에서
세상을 보는 시각 또는 자세를 비판하는 것이다]

개고리가 혹은 두꺼비가 잘났기로 혹은 못났기로
혹은 그 우름소리가 곱기로 징그럽기로 다 제멋에 겨워 제좋다고 사는데
어찌 비판 혹 비평의 대상이 될 수있다는 말인가?







짱구는 짱구다.

오반군은 정치, 사회, 역사, 철학, 문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의식도 인식도 고민도 없기 때문에 무엇이 사태의 핵심인지 전혀 모르고 있으며
따라서 상대방의 글 어느부분을 지적해야 상대방이 불끈 달아오르는지
알지 못하는고로 여즉 여기 누구도
화나게 하는데 성공한 바 없으며 오반군은 소위 [씹는다, 비판한다] 하지만
누구도 비판당했다는 느낌을 갖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이거 자동차 엔진이 고장났군] 하면
오반님이 [그게 아이고 자동차 앞대가리가 고장났는데여] 하고 시비를
걸어오는데 반응할 이유가 있남?

똑같은 하나의 사과를 보고 어떤 사람은 [저 사과는 넘 뻘겋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레드콤플렉스를 가진 반공주의자 아니가서?
역시 그 사과를 보고 누가 [저 사과 덜 익었어 더 빨개져야 사과지]
하면 그는 뻘건넘(운동맨) 아니가서? 그렇담 두사람은 싸움이 되지 않가서?

이때 오반님이 나서서 [두사람 다 틀려부렀어 이 사과는 적당히 빨간거야]
한다고 누가 관심을 가져? 두사람은 사과를 논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과시하는 거지.

♠왜 오반이 올린 글만을 가지구 다른 사람이 오반을 씹었을 때 논쟁이
시작되어야 하지요? 오반이 먼저 다른 사람의 글을 읽구 논쟁을 걸면
그것은 논쟁이 될 수 없는 것일까요? 참 이상한 논리죠? 글구 논쟁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자신의 입장을 먼저 밝히라니요..

☞ 오반은 논쟁을 건 적이 없어. 막연히 [네 글은 엉터리다, 말도 안된다]
하면 어떤 반론을 쓰라는 거지? 누구나 다 약간은 엉터리고 말도 안된다는
건 자기자신이 잘 알아. 근데 어쩌라구?

이를테면 구름의 부가세인식이 엉터리다고 시비했다 치자. 그려 누구나
다 약간은 엉터리지. 따지고 보면 법도 약간은 엉터리고 세금내는
넘이나 받는 넘이나 다 엉터리인데 거기에 반론을 펼 이유가 있나?
엉터리가 아니어야 할 이유가 있나? 부가세를 잘 알아야 할 이유가 있나?

논쟁을 걸려면 오반군이 [부가세는 전면 철폐되어야 한다] 마 이런 주장을
걸고 나와야 상대방이 반론을 하던 말던 할게 아녀? 안그런감?
왜 부가세가 없어져야 하는지 조목조목 설명해야 논쟁이 되지를 않간?

음 이런소리 하는 것도 참 재미없군. 하옇든 오반군은 논쟁을 건 적이 없어.
상대방을 화나게 하는데 실패했다는 거지. 오반이 운동권의 거물처럼 행세
했다면 무슨 소리를 하든 누군가가 그걸 깨고 싶어하지. 그 반대도 마찬가지.

♣근데 열사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글에 문제점을 지적을 하면 벙어리가
되어버리던지 아니면 전전긍긍하다가 너같은 신삥하고는 놀지 않겠다..라는
요상한 소리를 하면서 꼬리를 내리더군여.. 글을 보구 평가하건데.. 수준은
완죤히 꽝이구, 밑바닥인데,

☞ 원래 글에는 문제점이 있는거야. 완벽한 글은 없지. 그건 피곤해.
완벽하면 상주남? 전전긍긍하는 사람도 없어. 수준이란 것은 논쟁이 계속
이어질때 드러나는 거지. 첨부터 수준높은 글을 쓸짝시면
그냥(어차피 배운지식) 무슨 책 몇페이지 이러고 말지 뭐하러 여기다 쓰남?

오반군~!
당파성이 어떻고 민초가 어떻고 한다고 그게 역사인식이 되남?
지역감정이 나쁘다면 왜 그런게 이나라에 생겨버렸는지 아남?
그걸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는감?

김대중정권을 맹목적으로 재벌,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권이라고
매도한다고 해서 그게 설득력을 가지남? 김대중정권은 오직 표, 표를 옹호할
뿐이지. 표에서 결정되니까.

분명히 말하자구. 김정권이든 어떤 정권이든 모든 정권은 오로지 표를 대변하는
정권이야. 이게 진실이야. 분명히 말하자구. 오반군은 진실이 아닌걸 말하고
있어. 김정권이 [재벌과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말은 잘난척한다고
해본 소리야 솔직히 그렇잖아.

그 표를 지배하는 것은 1차적으로 언론이고 2차적으로 생산관계이고
3차적으로 지역민심이지.
언론은 방송 신문이 떠드는 건데 이 방송 신문이 다 재벌의 돈으로 살아가니까
언론은 1차 재벌 기득권층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봐야지.

2차적으로 생산관계인데 이게 모냐면 회사 사장이나 간부, 공무원 조직,
군대조직 이런게 영향을 미친다 이거지. 돈이 어디서 나오남? 누가 월급을
주지? 여기에도 재벌과 기득권층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3차적으로 지역민심은 향우회 종친회 상조회 교회 사찰 번영회 새마을회
마 이런 잡다한 민간조직이다 이거지, 여그는 오야붕들이 있어서 돈을 푸는데
부녀회장 새마을지도자 이장 종친회장 목사 스님 향우회장들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이게 우리나라의 진실이야.

뭐가 문제냐구? 그려 오반군은 민중이 어떻구 당파성이 어떻구 제법
의식있는 척 한다이거지. 그러나 본질을 봐.

재벌 기득권층의 3대 보호막인
1차 언론조직 2차 생산조직 3차 민간조직을 공격한적 있나 이거지.
없어. 오반군은 지역감정의 근원인 잡다한 향촌조직체를 한번도 공격한적
없으면서 그 결과물인 지역감정을 꾸짖고 있어.

위에서 물을 흐리는데 위에 물흐리는 넘은 놔두고 밑에 흐려진 물만
꾸짖고 있다카이.

그대가 지역감정을 공격하려면 노골적으로 향우회 종친회 경로당 같은걸
씹어보라구. 그러면 내가 [음 제법 의식있군] 하고 인정해주지.
무수한 관변단체. 무슨 청소년 선도회니 애국단체니 승공경신연합회이니
별별 이상한 조직이 수백개도 넘어.
그 모든 조직이 지역감정을 생산하고 있다 말여.

근데 엉뚱한데 와서 왜 지역감정을 나무라지?
우리나라 종친회부터 몽조리 박살내야 지역감정이 없어진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여~! 향교 다 때려부수고 유림 다 없애고 부녀회 다 없애고
반공단체 다 없애고. 왜 그런 주장을 안하나 이거지~!

그걸 오반군이 몰라서 그런다면 무식한거구 알면서 그런다면 비겁한거야.

귀하는 재벌 기득권층의 3대 보호막 중 하나도 공격한 적 없어,
그러면서 엉뚱한데다 핏대를 세워. 그건 말장난일 뿐이지.
마 여그 열사에서 주로 논의하는게 뭐냐면 그런거야.

1차로 언론을 박살내거나 그걸 민중의 이익을 대변할수 있는 집단이 장악
내지 최소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게 해야 한다. 재벌 기득권층이 광고료의
힘으로 지배하는 만큼 우리도 독자의 뭉친 힘으로 방어하고 뺏어와야 한다.

2차로 모든 생산관계를 정의롭게 바꾸어야 한다. 공무원 조직은
공무원 노조로 하여 감시케 하고 회사 간부 사장의 영향력은 노조운동으로
차단시켜야 한다, 학교 군대 등 특수조직에도 민중의 입장을 대변할 방안
(전교조)을 마련해야 한다 마 이런거지.

3차로 민간조직에서는 우선 관변조직 어용단체는 몽땅 해체하고
순수민간조직은 문화운동으로 그 관심을 빼앗아와야 한다. 예술운동, 문학운동
음악 취미생활 영화 등 모든 문화자산의 무기로 종친회 부녀회 번영회의 힘을
방어해야 한다 이거지. 교회 사찰의 힘도 마찬가지야.

이것이 실제로 기득권층과 민중의 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다 말여.
그 전쟁터에서 오반군은 왜 총알도 대포알도 되려하지 않는가 이거여?
엥이? 오반군이 의식이 있거든 당장 집에 가서 무슨 청소년선도회부터
시작해서 경로당 번영회 상조회 교회 사찰 모조리 빠사보라구 못하지.

못하니까 우리는 문화의 방법으로 정정당당하게 나가야 하는거지.

(적군) (아군)
재벌언론 재벌방송 공영방송 한겨레
회사조직 공무원조직 노조 전교조
번영회 상조회 새마을 기성교회 재야 학생운동 문화운동 종교운동

만약 의식이 있다면 이러한 전선의 전열에서 총알이 될 각오를 해야지.
뒤에서 구시렁거린다고 답이 나오간?

지금은 곧 전시야. 적의 탱크가 굴러오는데 달려가서 수류탄이라도
까넣을 생각은 안하고 김일성만 욕하고 있다 말여. 정신 바짝 차리라구.

열사도 워드방도 그에 형성된 하나의 전선일 뿐.
오반은 여전히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혀.





♠ 짱구야 안되겠다.

참 논쟁은 되지도 않았는데
제멋대로 승리를 선언하는 버릇은 누구랑 닮았구나~!

오반군이여~! 부가세논쟁이 세금문제인줄 알았는고?
의사나 변호사 같은 기득권층의 특권의식에 대한 논의이고
열사에 의사들이 존재하며 그들이 기득권층의 특권을 옹호한거이
논쟁의 발단이여~! 중간에 논의가 빗나가자 모두들 흥미를 잃어버린 건데
오반 혼자 논점을 못찾고 헤매고 다닌거고.

소비세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오반 혼자의 결론이고
사실상 교육세 자동차세 방위세 하는 이나라 세금의 대부분이 따지고보면
소비세지. 누진세에는 일종의 속임수가 개입해 있어~!

여기서 논의는 더 이상 진행이 안돼~!
왜냐하면 나는 그러한 어떤 측면을 지적할 뿐 누진세를 폐지하라고 하지
않거든. 어디든 장단점이 있고 우리는 그걸 분명히 알아야 하지.
소비세는 장부조작에 의한 세금삥땅의 위험이 있고 누진세는 근본이
속임수이지. 우리가 그걸 잘 알고있어야 한다 말여.

부가세가 불필요한 세금이라구? 그럼 이나라 정부의
재원조달을 어떻게 한데? 그 점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이상 그건
막연한 구호에 불과해. 달보고 짖는 개꼴이지. 암것도 아니라구. 참내.

도둑은 나쁘다. 잡아버리면 된다. <= 오반생각
어때여? 민중에 대한 당파성도 맞구 의견이 관철된 것이지여?
그건 아무말도 안한것과 같은거여.

마 박정희 이야기는 하도 한심해서
내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으니 넘어가자구.
경제정책은 시장전략의 문제인데 어떠한 경제정책이 수립되는가는
시장(우리에겐 미국과 일본이지)환경이 결정하지 우리 맘대로
결정하는게 아니여.

그 점에서 당시의 시장환경에 대한 고찰이 없는 오반의 생각은
일고의 가치도 엄써. 지금의 상황은 우리 시장이 미일일변도에서 세계시장으로
확대되는 만큼 시장전략변경의 문제인데 이건 전략이 맞았냐 틀렸냐의
문제가 아니고 일관된 정책추진이 뒷받침되었느냐의 문제인데
오반의 글에는 그러한 경제정책의 본질문제(전략과 전술의 연계차원에서
시장환경과의 변화에 대한 연속적 대응의 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고로
내가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는 어린애 소리지.

아제님은 공산, 자본주의를 이야기 한게 아녀. 남들이 포착하지 못한 부분을
말하고 있는거여. 그러니 오반은 계속 남의 뒷다리를 긁은거여.
낚시꾼은 세월을 낚고 있는데 오반은 붕어를 못낚았다고 핀잔을 때린거여.
이건 황당한 경우야. 그러니 깡통이라지 모.

지역감정 야그는 더 무식한 경우여. 상식이하지.
지역감정은 어느나라나 있어. 남북한의 적대의식도 지역감정이며
종교적 감정(북에이레의 구교와 신교)도 일종의 지역감정이며
미국의 인종갈등도 일종의 지역감정이지.

그건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자본주의가 향촌사회에서 시민사회로
사회구성체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실제로 사회구조는 시민사회의 구조형태를
띠게 되는데 민중의 의식은 여전히 향촌사회의 전통에 머무르기 때문에
생기는 거여. 정치가가 그걸 이용하는 것은 나중이지.

순진하게도 박정희와 김대중이 지역감정을 만들었다고 보는데
그건 영웅주의 사관이지. 인물이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국민학교 위인전
읽기 수준 말여. 박정희와 김대중이 없었다면 누군가 박정희 김대중의 짓을
대신하는거야.

아랍민족주의를 조장하는 가다피와 후세인, 호메이니,
화교에 대한 증오를 부르짖는 수카르노와 수하르토.
서구식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아세아의 자존심을 주장하는 이광요와 마하티르.
반미주장을 내어놓는 카스트로와 김일성.
원주민과 이주민의 대결을 조장하는 후지모리.
이 모든 것이 일종의 지역감정 조장이란 말여. 그들은 인종을, 종교를,
향토색을 내세우지. 전 세계 모든 후진나라에는 반드시 지역감정, 종교감정,
인종감정이 있어. 이것들은 뿌리가 같은거야.

그 본질은 봉건적 향촌사회의 문화적 전통에서
근대적 시민사회의 문화적 모럴로 넘어가는 사회발전단계의 갭을 노리는
정치가들의 책략이지. 정치가가 나쁜게 아니라 사회가 후진거야.

김영삼이 반일감정조장으로 인기를 노리거나 김대중이
애국주의적 소비절약운동을 펴서 경기를 위축시키고 선거에서 한표를 얻으려는
작태도 마찬가지지.

그러므로 우리의 사회문화가 저변에서 전반적으로 변하지 않고서는
당파성이고 계급이고 아무 소용이 없는거야. 건전한 지역의식 종교의식
민족의식은 오히려 충전되어야만 해.

노동운동이나 재야운동 문화운동이 종친회나 부녀회나 번영회에 대한
관심을 압도할 만큼 우리사회구조가 밑바닥에서부터 변하지 않고서는
답이없는 문제다 말여.

오반은 결과만 말하고 있는거여.
임꺽정이 왜 도둑질로 나서는지 원인은 살피지 않고 그냥 도둑만 잡으면
된다는 안이하기 짝이없는 생각이여.

그럼 오반이 대통령후보라고 치고 어떤 정책을 내놓아서 정책대결을 펼칠래?
분명히 말하면 이나라 GNP가 2만불을 넘어가기 까지는 정책대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거여.

앞서가는 나라만이 어느 길로 갈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여.
뒤따라가는 나라는 앞서가는 나라의 전철을 따르므로 설사 진보적인
정책(전교조 허용)을 편대도 한나두 진보로 안보여. 실상 진보도 아니구
그냥 당연한거지.

서구에서는 공장하나 더지으면 환경오염이 생기고 우리나라에서는
공장하나 더지으면 주머니가 두둑해져. 그 차이가 극복되지 않는 한
정책대결은 없어.

본래 진보의 개념은 문화적 측면에서 성립하는 것이여.
성개방, 가족의 해체, 개인주의 이런거지.
그리고 그걸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이고. 자본주의 발달없이는 진보도 없어.

그려서 결론을 말하자면 토대와 환경과 본질이 먼저 변하여야
사회구조가 변하고 사회구성체의 발달에 맞추어 문화가 변하고
문화수준의 고양에 힘입어 진보가 가능해진다 말여.

근데 오반군의 모든 주장은 거꾸로여서
진보만 하면 문화수준도 사회발달도 토대도 환경도 본질도 변한다는
망상이여. 그건 운전만 배우면 자전거가 오토바이로, 자동차로 변한다는
생각이여.

운전(문화, 의식)을 배우지 않고는 자동차(자본주의)를 탈수없고
자동차 없이는 운전을 못한다 해야 정답이지.





花雨

꽃잎은 는개처럼 자욱하다.

소매짧은 소녀들 재잘대는 소리 아득히 멀고.
인간들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데

봄의 대지는 신들의 잔치
그대 초대받지 못한 자 - 迷宮의 테세우스

나그네 다리쉼을 거둔다.

淨化

프쉬케는 본래 나비였었다.

여러 여름을 배로 느릿느릿 기어다니다가
긴 겨울을 자기 무덤에 가두어

오랜 고난으로 영혼을 정화를 이루고서야
비로소 봄의 나래를 열어
향기로운 대지의 눈물을 먹고 살으리라.

사랑과 의심이 형제일 수는 없다.
疑念의 두 언니를 이별하고서야

강의 신 일러 갈대 노래하게 하고
에레보스의 긴 잠에서 깨이게 하리라.

悲嘆

형제여~!
봄의 정화를 아는가?
나풀거리는 날개의 영광.
순수혼의 예시.




오반군에게~!

그려~!
군이 하고싶은 소리가 이제 다나와부렀군.

그려 오반군은 참 아는것두 많어.
그게 다중의 주의를 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이지.
그건 철학의 빈곤 때문이여.

군은 아직도 논쟁이 맞냐 틀리냐의 문제라고 보구 있거든.
아는 척 하기는 쉬워. 서재에서 책을 두어권만 빼내들면 되겠지.

세상을 보는 태도의 문제.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의 문제
그건 속된말로 자존심의 문제이고 사람들이 열을 올리는 것은
결국 자존심 때문이지.

인간의 값어치는 인격의 값어치
지위나 재산이나 성공이 결정하는게 아니고
저 자신이 자신을 존중하느냐의 여부가 결정하지.

쾌락으로 위안하여 행복하기 쉽지.
의심이 불같이 일면 나그네 되어 떠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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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반군~!
그려 아는게 많다니 계속 가봐여.
그렇지만 대만과 비교하는 것은 약은 태도로 보여.
대만은 2차대전 때 일본 동남아 공략의 전진기지로
우리나라 만큼 많은 군수공장과 각종 공업시설들이 건설되어 있었고
우리가 625로 철저히 파괴되어 버린데 비해

그들은 장개석의 공갈로 미국의 대량원조를 받아
50년대부터 공업화를 시작했거든
우리는 625로 잿더미 되고
60년 이후 시작했으니 대만보다 15년 늦은거야.
그러니 대만과 비교하는 것은 웃기는 소리고

미국입장에서 한반도는
공산주의의 팽창으로부터 일본을 지키는 전진기지고
대만은 동남아를 지키는 전진기지인데
동남아의 고무(당시에 고무는 석유 이상가는 고급자원) 등
미국이 아끼는 보물단지였지.
일본이 전쟁의 폐허로 겨우 동남아로 가는 뱃길을 지키는 기지일 뿐
암것도 아닌데 비해서 말여.

내 염려는
잘나가던 우리 경제가 좀 안된다 싶으니까
모두 잘난척 대만운운하는 양반들이
알고보면 박통때는 박정희 칭찬 입에 마르도록 하는 자들이거던
그런 풍속에 귀 얇은 오반이 편승하는 것이 어찌 아니우습겠나.

박정희의 경제전략은 일본의 기대에 의해 성립한거지.
일본이 성장하기 위해서 한국이 필요했거든.
그것은 시대와 환경의 산물이지 박정희의 입맛대로 꿍꿍이가 아닌
이유로 마찬가지 오반이 줏어들은 엷은 지식으로
대만이 어떻구 한다면
시대의 바람을 앞장서서 타는 가랑잎의 지식이지.

우리경제의 본질문제는 오직 하나.
과욕이야.
욕심만 줄이면 다 잘되게 되어있어.
중국시장이 팽창하는 만큼
환경이 성숙하면 우리 경제가 쓰일 때가 있는거야.

잠깐 어렵다고 호들갑을 떨고
누구 때문이니 뭐가 잘못이니 우습잖나?
대만도 일본도 한때는 안좋았어.

정신을 차려야 사는거지
사공 나무래고 기관장 나무래고 똥폼 잡는다고 살간?

박찬호 야구만 안보면 경제가 사는 듯 경망스런 호들갑만 아니면 살어.
죽어도 박찬호 야구는 봐야 쓰것어. 본 도둑은 그려.

이런 소리 왜 하냐면
오반의 경제학도 대만운운 하는 뽄새로 보아
유행을 타는 인기영합이라 뭐 박찬호만 안보면 경제가 산다는 수준일거
짐작이지 이 지레짐작을 깨뜨려 보라구.





그려 짱구라고 한 것은 내 실수라네~!
소원대로 [독도는 일본땅이다]하고 외쳐주겠네~!
이제 원이 다 풀렸는감?

여즉 내 가르침의 요지를 파악 몬하구 있다니.
뭐 한국 덕분에 일본이 발전하구 일본 덕분에 한국이 발전하구?

아그야~!
경제라는 것은 말이지 그런거이 아니다.
한국이 일본 덕분에 발전한 것도 아니구
일본이 한국 덕분에 발전한 것도 아이다. 엥이~!

미국이 뭔 전략을 세워버리면 한국경제가 어찌되구 일본경제가 어찌되남?
그게 다 유치찬란한 소리란 말여.
북한이 지금 당장 [잘살기 전략]을 세워버리면 부자되겄네?

일본이 625때 한국특수를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 울나라는 월남 덕분에 발전했네? 월남전특수 덕을 봤으니까.
아랍 가서 오일달러를 벌었으니 오일쇼크 덕분에 발전하고 말여.
가발장사 해서 돈 벌었는데 흑인들이 주로 소비했으니
미국 흑인들 덕분에 경제발전 하구 말여.

뭐 때문에, 누구 덕분에. 새마을 때문에, 박정희 덕분에,
아그야. [때문에]와 [덕분에]를 졸업하지 않으면
중학생이 못되는 것이니라.

오반은 모든 것을 박정희 김대중 등 특정인들에게
[때문에 덕분에] 하며 뒤집어 씌우고 있잖는감?
그걸 졸업하라 말이여.

그거이 초딩 때 위인전을 넘 많이 읽어서 생긴 병이여.
[어려서는 삼국지를 읽고 어른이 되어서는 읽지말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는감?

무릇 한 자라도 아는 체를 하려면
총체적으로 배경과 토대와 환경과 법칙을 고찰해야지
겨우 한다는 소리가 누구 때문에
[부르조아 때문에? 재벌 때문에? 조선일보 때문에? 박전노 때문에?]

자동차가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길이 없는 까닭이지 운전수 실력 때문도
바퀴가 펑크났기 때문도 아닌 것이여.
운전수는 교체하면 되고 바퀴는 갈아끼면 되는 것이여.
한국전쟁이 없었으면 일본경제가 좀 늦게 성장했겠지만 결과는 같아여.
우리도 마찬가지, 월남전 없었어도 가는 길은 그대로여.

한 나라의 경제는 지적 인적 기술적 시장환경적 매장자원적
정치적 제 요인에 의하여 성립하는 거이지
마 강경식이 때문에 김영삼이 때문에 하고 덮어씌우면
되는 일이 아이다는걸 알아야 혀.

여즉 고르바초프 때문에 소련이 망했다고 보는감?
대원군 때문에 조선이 쇄국하다 망했다고 보는감?
왜 고르바초프가 하필 그때 권좌에 올랐는지
일본에도 대원군같은 쇄국주의자는 얼마든지 있었는데 그들은 왜 패배했는지
역사의 필연을 보지 아니하고 영웅주의 관점을 고수하다니 고이헌~@!

정치도 하나의 요소는 되지. 허나 그것은 하나의 요소일 뿐이여.

그런 오반의 [때문에주의]는 결국 서구유럽 덕분에 아시아도 먹구살게 되었고
뉴튼 아인시타인 갈릴레이 에디슨 콜롬부스 등 양넘들 덕분에 아시아도
근대문명을 맛보게 되었고 그런 식으로 가다가 종내에는
[일본 아니면 한국은 아직도 조선시대] 마 이래 되뿐다는걸 알아야지비.

지구촌 인류문명에서 서구나 미주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한 것이여.
대학가 얼라들이 반미반제 하는 거이 다 그런 [때문에주의]라 말이여.
미국 때문에 한국이 이래 되뿐다는 안이한, 의식없는, 몽매한

그것은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혀.
문명은 지구촌 단위로 성립해 가는 것이여.
일본탓 미국탓 남의탓 말어여.
우리 하기 나름이여.
해도 안된다면 그것은 때가 무르익지 않은 까닭이여.

무릇 학문하는 이의 자세란
우연에 불과한 [때문에]를 극복하고
일시적 제한적 한정적 미시적 특수상황에 지나지 않는 [덕분에]를 극복하고
보편적 일반적 총체적 거시적 견지에서
토대와 요인, 배경과 환경 그리고 법칙에서 필연을 찾아내는 작업이여.

깨쳐야 혀.
그대가 거기 갔기 때문에 금을 발견하게 된 것이 아니라
거기에 금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그대가 금을 찾아 그리로 간 것이여.
오페크가 기름값을 올렸기 때문에 기름값이 올라간 거이 아니고
기름값을 올리니까 석유탐사가 늘어나서 인류가 필요한 석유를 확보하게 된
것이여. 역설을 알아야 혀. 모든 요인에는 반요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여.

왜 누구 [때문에 덕분에]가 아닌고 하면
그 역설의 논리학인 까닭이여.
요인에는 반요인이 쌍둥이인 고로 무가무가가 되었다 말여.
그렇다고 너무 슬퍼하진 말아야 혀.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중학생이 될 수 있어여.
내 장담하지 암만.

-- 오반의 노래를 들려줌 --

작게 나무를 보덜 말고 크게 숲을 보라,
앉아서 숲을 보지 말고 움직여서 산을 보라.
일면의 산만 보지 말고 고개들어 반면의 강을 보라.

무엇이 보이는고?
하늘이 보여야 깨인 것이라네.
아는가? 그 하늘이 그 산과 그 강을 품어안은 까닭인 거슬.

그대가 가지 끝의 익은 감을 따려고 할 때
바람은 불어 열매를 떨어뜨리고
까치는 날아와 쪼아먹는다네.

믿음이 있다면 가지 끝에 기어오르지 않지.
차라리 어머니인 대지에 한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네.
바람도 까치도 잘못 아니라네.

지혜로운 현자 나무 아래서 오수를 즐길 때
어리석은 소인 위태로운 가지 끝을 오르는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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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가락 끝을 보지 말고 근본과 토대와 요소와 환경과 법칙을 보라.








노무현과 임창열이 대안이 되나?

서울시장은 차기 대권을 겨냥한 상징적인 자리라서
집중적인 견제를 당할수 있는 등 외풍을 타는 자리인 고로
상처뿐인 영광이 되기 십상이라.

노무현은 어떤 인물인가?

나는 그가 아직은 아마추어라고 생각한다.
그를 음흉하고 노회한 프로의 반열에 끼워주고 싶지 않다.
서울시장이 아마추어이면 김대중에게는 속이 편하다.

아무러나 말잘듣는 심복을 서울시장과 경기지사에 앉혀두고
편안히 챙겨보자는 것이 대통령의 의중이리라.
그렇다면 김대중의 입맛에 꼭 맞는 인물이 한광옥인데
(언제든지 팽해도 군말이 없을)

한광옥이 되면 김대중에게는 편하겠지만
가신들이 설치고 나서서 당장에 편하고 나중 오래 욕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김대중이 큰 정치를 하려면 굼뜬 777연대에
젊은 소대장 하나를 영입한다치고
노무현을 고용하는게 백번 나으리라.

문제는 노무현 인물됨이다.

그는 선동적인 인기주의자(박찬종 같은)와
점잖은 지사(김근태 같은)의 두얼굴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의 인기는 일단 거품이다.
그 거품을 빼야 이부영 이철의 종말을 피할수 있다.

아무러나 서울시장으로야 무리가 있겠느냐마는
차기 대권주자의 야심을 가진다면 은인자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노무현 서울시장 몰라도 적어도 대통령이 되려한다면 프로가 되어야 한다.

프로가 된다는 것은 촐랑거리고 나서다가 칼맞지 말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처럼 인내함을 말한다.

보라! 현정권에 가장 취약점은 대가리수 절대부족이다.
가만히 기다리며 은밀히 세를 확장하면 지금 내각에 들어가서
큰소리 치는 실세들이 대체로 전사하고 (영사미 말년을 보라)
그대에게 큰 기회가 오는 법인데

조급하게 나서다가 만인의 표적이 되는 우를 범하려는가?
그대가 서울시장이 되면 시정이야 무난히 꾸려가겠지만
온갖 소인배와 아첨배들이 그대의 야심 밑으로 몰려와

그대가 챙겨주면 오만방자 사고를 치고 버리면 배반하여 상처를 남기고 간다.
5년후 그대가 차기대선에 도전할 때
그 소인배들은 그대에게 10가지 상처를 주고 100가지 약점을 생산해 낸다.
그대의 신선도는 사라지고 그대는 이미 낡은 인물로 낙인 찍히고
성공한 김대중은 어디서 새로운 인물을 스카웃 해서 지나치게 커버린
그대를 떨어뜨리려 할 것이다.

내 분명히 장담한다.
지난 대선에 커버린 이인제 차기대선엔 나와봤자 진복기다.
서둘러 나와서 조로할 것인가?
은밀히 암약하며 세를 모아 프로가 될것인가?

서울시장은 권세가 있고 권세가 있으면 식객을 거느리게 되고
식객이 모이면 계보가 생기고 보스가 된다. 그런데도 누가 그대를 가만이
시정에 전념하게 놔두겠는가? 노무현이 보스? 총맞기 딱좋다.

5년후 그대가 새시대 새인물로 보일 것인가 낡은 시대 낡은 인물로 보일
것인가? 서울시장 영광이 큰 만큼 탈도 많은 법. 상처뿐인 영광 되리라.

노무현~!
대통령이 되려한다면 서울시장에 안나오는게 낫다.
그냥 서울시장 하련다면 서울시장을 두어번 해먹고 차기 말고 차차기를
노리는 것도 괜찮기는 하다만.

정말로 대통령이 되려하는 자는 인천시장이나 경기지사 정도가
외풍도 약하고 힘도 키울수 있는 안성맞춤의 노른자위다.
그러므로 국민회의는 인천시장이나 경기지사 둘 중 한자리에
차기 대통령감을 공천해야 한다.

권력에서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자리.
드러나지도 잊혀지지도 않는 자리.
그대의 포부를 마음껏 펴볼수 있는 곳.
서울시장은 절대 아니다.

근데 최기선 임창렬 야들이 뭐 차기대통령감이 되남?
임창렬은 더 아니다. 야는 그냥 관료다 관료. 멍청한 관료출신을
앉혀두면 대통령이야 편하겠지만 이게 이방원이
밑에 조영무 같은 인간이다 말이여. 차말로.

국민회의에 인재가 없지만 그래도 임창렬 최기선이 말고 엄나?
차라리 추미애나 김민석이를 갖다나라 차말로.
보떼아자씨도 괘안코.

김대중 서서히 한계가 보이고 있다.
뭐 소나기처럼 시원한거 하나 없나?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

논리에는 엄정한 규칙이 있다.
그저 많이 아는 것을 과시한다고 해서 논쟁에 이긴 것이 아니다.

사실이지 논쟁에는 승패가 없다.
승리나 패배는 스스로 느끼는 것일 뿐이다.
졌다는 패배감의 느껴지면 진것이고 승리감이 들면 이긴 것이다.

승부는 주관적이다.
그러나 진정한 영역에서 논리에는 엄정한 규칙이 있으며
분명한 승패가 있다. 문제는 그런 규칙을 게시판공간에서는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 뿐.

토끼와 거북이 겨루어 누가 이겼는가?
게시판 규칙으로 말하면 거북이 이긴 거다.
결과에서 이기면 이긴거다. 허나 거북의 승리가 과연 유의미한가?

회사에서 새자동차가 출시되었는데
두어가지 결함이 있지만 구버전 보다는 낫다고 칠 때
그 결함을 발견한 사람이 [이 자동차 못쓰겠다]고 했는데
자동차 회사에서 새자동차가 구자동차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했다 해서
회사가 이긴 걸까?

승패의 판별기준은 소비자와 기대치와 비교되는 것이지 구모델과
비교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자. 어떤 것이든 장단점이 있다.
박정희의 업적에는 장단점이 있다.
모두가 정점만을 알구 있을 때 내가 [이렇게 단점도 있다]고 제시하는데
타인들이 그 단점보다 장점이 크므로 [넌 틀렸다] 하면 내가 틀린 것일까?

권력과 재야가 싸우면, 일본군과 독립투사가 싸우면
항상 권력이 이기고 독립투사가 지지만 [의미]의 관점에서
재야의 작은 패배들이 열번 모이면 한번 승리를 이루어 민주주의를 획득하고
독립투사가 열번 패배하면 한번 승리로 결과하여 나라가 독립된다.

북에이레 신페인당은 영국정부에 30년간 패배해 왔지만
보도를 보라. 에이레 공화국군의 그 참혹한 패배들이 모이어
이제 유의미한 결과를 맺고 있지 않는가?

물은 작은 계곡에서 나와 이골에 밀리고 저산에 부딪혀
꼬불꼬불 아흔아홉구비로 뒷길로 돌아가지만
마침내 하나로 모이어 대하를 이루고 노도탕탕 거칠 것 없는 장강이 된다.

논쟁의 승패는 말빨의 승패가 아니라
유의미한 결실을 도출 하는가 마는가의 승패인 것이다.


[닭이 먼저다.]

흔히 하는 말로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하는 논의가 있다.
정답은 어느 것도 먼저가 아닌 걸로 되어있다.
과연 그럴까?

이 얘기를 굳이 하는 것은 논쟁의 규칙,
논리의 규칙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다.

게시판 승패의 관점에서는 마 다수의 여론을 쫓아 빅으로 하면 되지만
진정한 논리의 영역에서 무가무가는 없다.

여당과 야당이 다같이 이겼다면 여당이 이긴거고
여당과 야당이 다같이 졌다면 야당이 이긴거다.
권투시합에서 무승부는 챔피언의 승리이다.
부부싸움에서의 무승부는 마누라의 승리이다.
부자간의 싸움에서 무승부는 자식의 승리이다.

이러한 논리규칙은 게임이 그 게임의 한정하는 바를 떠나
향후 어떤 후유증을 남기는가로 평가된다. 재야의 독재에 대한 무수한
패배들은 나중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지므로 승리인 것이다.

그럼 닭과 달걀의 논의로 돌아가 보자.
이거 영국에서 50년대 논리학자들 간에 닭이 먼저인 걸로 결론이 난건데
우리나라에는 잘못 알려져 있다.

닭은 하나의 독립된 개체다.
달걀은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닭에 의속된 부분개념이다.

즉 닭은 소나 말에 대하여 닭인데
달걀은 달걀이 아니라 [달걀들]이다. 그것은 복수이며 집합이다.
달걀은 소나 말과 1 대 1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다.

자동차가 먼저인가 티코가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남자가 먼저인가?
전자는 보편개념이고 후자는 특수개념이다.
보편개념이 앞서고 특수개념이 뒤진다.

닭이라고 말할 때 그 닭은 [어떤 닭]이 아니라 [모든 닭]이며
따라서 그 닭 중에는 알을 품은 닭도 있고 그냥 알도 일종의 닭이다.

그러나 달걀을 말할 때 그 달걀은 닭의 모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하나의
난세포일 뿐이다. 그것은 [모든 닭]이 아니라 [어떤 닭]이다.

전체에서 부분품이 분리되어 나올 수는 있어도 부분품에서 전체가
분리되어 나오는 일은 없다. 달걀에서 닭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달걀도
이미 닭인 것이다. 그러나 닭은 달걀이 아니다.

이런 얘기를 왜하는가 하면 보편개념과 특수개념이 있을 때
논리의 규칙이란 특수개념에서 보편개념을 찾아가는 형태로 진행됨을
성파하자는데 있다. 고로 논쟁의 승리란 말빨의 승리, 수다꾼의 승리,
목청 큰사람의 승리, 어거지의 승리가 아니라

특수상황에서 보편상황으로 논쟁을 여하히 전개해나가는가의 승리인 것이다.
특수상황은 1회용이고 보편상황은 항구적이다.

김정일이 북미협상에서 승리할수록 더욱 고립된다.
이길수록 손해이므로 이긴 것은 진 것이다. 조삼모사 원숭이의 승리인가?
원숭이 주인의 승리인가? 원숭이는 이길수록 손해이다.

이를테면 박정희의 정책이 옳았는가 틀렸는가로 논쟁을 한다고 치자.
그 시대에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할지라도 그 때문에 남은 후유증은
누구에게 책임이 귀착되는가?

그러므로 박정희 논쟁은 그 시대 그 상황에서 박정희의 판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서 우리는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로 판단되어야 한다.

여기서 역설과 역설의 역설이 등장한다.
1.순이와 돌이가 싸웠다. 돌이가 이겼다. 돌이의 승리
2.돌이는 집에가서 엄마한테 종아리 백대 맞았다. 순이의 승리
3.돌이는 그 경험의 교훈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돌이의 승리.

1의 설에 대해 2의 역설과 3의 재역설이 등장한다.
보편개념이란 논의를 역설과 재역설로 이어낼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논쟁이 1의 설에서 끝나버리면 특수개념이 된다.

거북이의 승리는 토끼의 낮잠이라는 특수상황에서의 승리이다.
보편상황에서 거북은 토끼에게 절대로 진다.



논리의 규칙.

몇가지 문제를 내어보자.

1. 인천방송의 박찬호 중계는 옳은가 그른가?
2. 황소개구리는 과연 한국의 생태계를 파괴시키는가?
3. 아카시아 나무는 과연 유해한가?
4. 고려장은 과연 고려시대의 장례법인가?
5. 한총련의 대회저지는 잘한 일인가?
6. 중국의 황사는 과연 유해한가?

1. 설- 박찬호 중계는 외화낭비다.
역설- 전체적으로 시장확대의 효과를 가져와 유익하다.
재역설- 통신에서의 인천방송 비난은 통신인들이 단결하여
하나의 유의미한 성공사례를 남기는 가치가 있다.
재재역설- 그런 국수주의 소아병을 극복해야 세계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한다.

2. 설- 황소개구리는 토종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역설- 황소개구리는 자기 생활권을 가지므로 영역권 안에 침입하는
동종 황소개구리에 의해 잡아먹혀 무한번식할수 없고 또 물두꺼비
등 천적이 존재할 뿐 아니라 동작이 굼떠 쉽게 포획된다.
재역설- 다른 외래어종과 연합하여 전체적으로 토종 어종을 고갈시킨다.

3. 설- 아카시아는 속성수로서 산림녹화에 유익하다.
역설- 아카시아는 외래수종으로 임산환경을 파괴하며 무덤을
헤치고 잔디를 손상한다.
재역설- 아카시아는 양지식물이면서 습지식물이라서 다른나무의 그늘에서
자라지 못하고 건조한 지역에도 못자라므로 생태계를 크게 파괴하지
않으며 유익한 밀원식물이다.

4. 설- 고려장은 고려시대의 장례법이다.
역설- 고려장이라는 말은 고리장의 와전으로 인도 불교설화를
잘못 번역한데서 온 착오이다.

5. 설- 한총련은 이적단체다.
역설- 광주학생운동으로부터 비롯된 70년 역사의 세계에서 유일한
학생운동의 성공사례다.

6. 설- 황사에는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다.
역설- 중국 황토지대와 한국의 비옥한 토양은 황사가 만들어낸
것이다. 엄청난 량의 비료를 매년 공짜로 얻어쓴다.

산성비를 맞으면 대머리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낭설이다.
인체의 산도는 PH 5.5 정도의 산성이므로 적당한 산성비는 피부미용에 좋다.
산성비는 강우초기 10분 동안에만 내린다.
비가 많은 한국에는 산성비로 인한 수목의 피해가 적다.
산성비보다는 오히려 새벽의 산성안개(도시지역에서 새벽조깅은 치명적임)
산성눈이 위험하다. 독일이나 영국같이 가랑비가 많은 나라에서
산성비는 매우 위험하다.

어떤 주장이든 설이 있으면 반드시 역설이 있다.
역설이 있으면 그 역설의 역설이 있다.
그 역설의 역설의 역설까지 생각해보고서야 결론을 내릴수 있다.

우리가 논쟁을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설의 역설과 역설의 역설이
존재함을 파악하므로서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아니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자세를 가지게 하는데 있다.

비로소 논쟁이 된다 하는 것은 논리규칙을 따라 특수상황에서
보편상황으로 끊임없이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데 보탬이 된다 하는 것이다.

닭과 달걀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논쟁은 필요없다.
사실인즉 닭과 잘걀도 쳇밭퀴를 돌지 않는다.

박정희가 옳았느니 그르느니 하는 논쟁은 의미없다.
그 특수사건이 어떻게 오늘의 시대의식에서 새로이 조명되고
재평가 재해석되며 그러한 변화에서 진정한 것과 삿된 것을 모색하는데
의의가 있다.

설- 박정희는 위대하다.
역설- 그 위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시켰고 그 폐해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재역설- 그러한 시대에는 그러한 인물이 나타나는 것이 역사의 필연이며
그 뒷감당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가 잘못해놓고 과거를 나무라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재재역설- 올바른 비판을 통하여 미래에 대비할수 있다.

이러한 역설과 재역설의 반전을 통하여 다람쥐 쳇바퀴로 도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지향점을 획득하게 된다.

최초의 설은 한 시대 한순간 시점과 위치를 고착시켜 놓고 보는 것이며
역설과 역설의 역설로 나아갈수록 더 길게 보고 더 넓게 보며
마침내 더 넓어질수 없는 최대한도의 인식에 도달하였을 때 일반성을
획득하게 되고 그것이 보편개념이며 논쟁의 목적은 그 보편개념에
도달하는데 있다.

설-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이다.
역설- 선과 악은 주관적인 관념일 뿐이다.
재역설- 두명이상의 주관의 일치는 하나의 사회개념이 된다.
재재역설- 사회개념도 하나의 집단무의식의 주관일 뿐이다.
재재재역설- 선악은 개인의 사회적 실천이 사회의 사회적목적과 일치여부에
대한 판단이다.

1. 한 개인을 기준으로 고착시켜 놓고 보아 내게 유익하면 무조건 선이다.
2. 두명이 모이면 내게 좋은 것이 남에게 나쁘므로 선은 주관적 관념이다.
3. 두명이상이 의견일치이면 내게 좋은 것이 남에게도 좋으므로
선은 선이다.
4. 두명이상의 집단도 하나의 무리이므로 결국 주관적 관념이다.
5. 모집단의 크기를 전 세계 전시대에 걸치도록 확장하면
인류전체의 목적과 지향이 드러나므로 절대적인 선악판단이 가능하다.

그렇다. 논쟁의 최종목적은 위 역설과 반역설의 전개에서 최종단계
전인류 전시대라는 최고의 보편개념을 획득하는 데 있다.
그것은 진리이며 절대적이고 영구불멸한 것이다.

이러한 [특수-> 보편]으로의 지평확대가 논쟁의 규칙이며
논쟁을 잘한다는 것은 그러한 역설의 도입. 시야의 확대, 일치점의 발견에
능하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박정희에 대한 나의 말이 맞다니 너의 말이 맞다니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여서 결론이 안나는 고로
이기거나 지는 것일수 없다는 것.

그러나 진정한 논리규칙을 도입하면 서로 다른 의견들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의견일치를 이끌어낼수 있고 그 의견일치를 확대시켜나가는데서
논쟁의 묘미의 장점이 발견된다는 것.

예를 들면
오반 - 박정희는 0이다. 파파 - 박정희는 *이다. (의견불일치)
오반 - 박정희에게 *도 있지만 더 크게보면 0가 우세하다.
파파 - 박정희에게 0도 있지만 더욱더욱 크게보면 역시 *가 우세하다.
(부분적 의견일치)
오반 - 그 말도 맞지만 더더더 크게보면 역시 0다.
파파 - 그 말도 맞지만 더더더더더더 크게보면 역시 *이다.
(의견일치 부분의 확대)

이러한 전개에서 의견일치를 보이기 위해서는 논의의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부분을 보지말고 전체를 보아야 우리는 어느 한구석이라도
일치점을 찾아낼수 있다.

논리를 모르기 때문에 이빨 센사람이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논쟁에서 이기는 걸로만 여긴다.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진정한 영역에서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많이 하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있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릴 수 있다.





















짧은 이야기.

긴 얘기를 하면 뉴우런이 꼬이는 분들을 위하여 결론을 정리하면.

주관과 객관의 문제다.
논리 혹은 논쟁은 주관으로 출발하지만 객관으로 끝난다.

여기서 관점의 확대.
어떤 하나의 독립된 사건이 있을 때 그 사건자체는 철저하게 객관이다.
그 평가는 주관적이지만 더 긴 시간, 더 넓은 공간에 그 사건을 적용하면
다시 객관이 되는데 그것을 더욱 넓히면 다시 주관으로 돌아오고
더더욱 넓히는 다시 객관이 되는데
이러한 반전의 단계가 5단계 뿐이므로 최종에는 객관이 된다.

1. 객관 -> 2.주관 -> 3.객관 -> 4.주관 -> 5.객관
1. 존재의사실2.개인의평가3.사회적평가4.사회의변화5.사회발달의지향성

1. 사과는 빨갛다. (객관. 자연은 절대객관이다)
2. 빨간 사과가 좋다 (주관. 인간은 맘대로다)
3. 빨간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객관. 사회는 객관이다)
4. 유행이 변하면 노란사과를 좋아하게 된다. (주관. 사회도 변한다)
5. 빨간사과든 노란사과든 사람들은 잘 익은 사과를 좋아한다.
(객관. 사회는 일정한 방향으로 변한다)

이러한 역설의 전개를 깨달음이 유익한 것은 우리가
사회적 평가(사회다수가 옳다고 말하는 것)을 개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여부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데 남들이 그르다고 믿을 때
선과 악은 주관적 가치이므로 고집을 부릴 것인가 남들말을 추종할 것인가?
주관이 없어서도 안되고 고집을 피워서도 안된다.

본래 신이 창조한 자연에 주관은 없다.
모든 자연존재는 절대진리이며 절대사실이며 절대객관이다.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주관으로 변하고
사회에 이입하면서 객관적 사실이 되지만 사회도 변하므로
다시 주관이 되고 사회변화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므로 최종진리 차원에서
우리는 다시 자연의 절대객관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최종결론은 [절대진리는 존재하며 인간에 의해 발견되고
그것은 가치있다]
다만 그것이 개인을 벗어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사회발달에 의해 또 변질되면서 마침내 최후에는 다시 진리로 돌아온다는
믿음. 그것이 깨달음이다.

지구가 해를 돈다 (자연의 객관)
해가 지구를 돈다 (인간의 주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사회의 객관)
기독교의 반격 (사회변동의 주관)
과학의 재반격 (진리는 처음 자연의 객관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인간은 믿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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