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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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5700 vote 0 2013.07.16 (13:42:47)

    옛날에는 사람들이 국가의 존재를 실감하지 못하고 살았다. 주민등록도 없고, 국민교육도 없고, 공무원조직도 없고, 국경조차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는 농노들이 고향을 떠나 바깥세계를 본 적이 없으니.


    ‘국가?’ ‘그래서 어쩌라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달나라 이야기쯤으로 들린다. 한국처럼 지형 자체가 국가모양으로 갖추어진 나라는 드물다. 유럽이라면 기독교세계와 무슬림세계가 있을 뿐이고, 사실이지 국가란 것은 가끔 나타나서 세금이나 뜯어가는 산적 비슷한 것이었다.


    2차대전 이전의 독일이 그랬다. 독일인들은 동유럽 곳곳에 흩어져 슬라브인들과 뒤섞여 살았다. 하나의 독일이라는 개념은 희미했다.


    국가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왕들은 전쟁을 벌이거나 혹은 왕실간의 결혼이라는 이벤트를 벌였다. 루이 14세는 자연국경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신이 동쪽을 라인강으로 막고, 남쪽에 알프스를 두고 서쪽에 피레네를 쌓아 프랑스를 구축하고 왕을 내려보냈다는 식이다.


    “국가가 뭐죠?”
    “앉아봐. 내가 설명해줄게. 동쪽에 라인강 있지. 북쪽과 서쪽에 바다 있지. 남쪽은 알프스와 피레네가 막아주지. 결정적으로 가운데 왕님이 우뚝! 자 이해했어?”
    “몰것는디유?”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은 왕도 없고, 왕실도 없고, 궁정도 없고, 왕자도 없고, 공주도 없고, 떠들썩한 결혼식도 없고, 궁중무도회도 없다. 귀족도 없다. 전쟁도 없다. 도무지 국가의 존재를 납득시킬만한 근거가 없다.


    사람들이 국가의 존재를 믿지 않으니, 유럽이 잿더미가 되어도 참전할 수가 없다. 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재벌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카네기, 록펠러, 하워드 휴즈 등 몇몇 부자가문이 사실상의 왕노릇을 하는 판이다.


    국민들은 재벌의 암투에 흥미를 느끼고, 국가보다 재벌에 귀속감을 느끼는 판이었다. 놔두면 알 카포네가 대통령보다 더 인기를 끌 판이었다.


    지방 산적들을 제압하고, 번듯한 국가를 만들려면 주지사의 권한을 제한하고 중앙집권을 해야 한다. 근대사는 왕권을 민중에게로 옮겨가는 절차인데 미국은 반대로 민권을 국가에 위임하는 절차다. 일본이나 독일도 국민이 왕에게 권한을 바치는 구조였다.


    구조론으로 보면 국민이 국가에 권한을 위임하는 절차가 상부구조다. 왕의 권한행사는 하부구조다. 그런데 의회도 없고, 쿠릴타이도 없고, 화백회의도 없고, 전쟁도 없다면? 애매해진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라는 존재다. 과연 존재 맞나? 국민은 하나의 단일체인가? 국가든 국민이든 관념에 불과할 수 있다.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하려면 뭔가 눈에 보이는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국민을 위하여’라고 말하지만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민은 하나의 단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 허상이다.


    한국인들은 국민교육헌장이 있으니까 국민이 있다는 식이다. 그거 박정희가 5분만에 지어낸 속임수다. 국민교육헌장? 장난하나? 주민등록증? 장난하나. 간첩 때문에 만든 한국만의 예외적인 현상이다.


    도무지 국민이 국민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도대체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눈에 보이는 것을 들고오라는 말이다.


    루즈벨트가 국민과 국가의 존재를 인식시킨 수단은 라디오였다. 라디오를 듣고 미국인은 비로소 국민이 되었다. 무엇인가? 국민은 국민 단위의 의사결정 주체다. 그런데 국민 단위의 의사결정은 현실에서 가능한가?


    국민에 의한 국민 단위의 의사결정은 역사에 있어본적이 없다. 그리스 아테네에 광장이 있었고 조선에 선비집단의 공론이 있었으나 특수한 예다. 라디오의 등장에 의해 비로소 미국인들은 자신이 의사결정의 주체임을 깨달았다.


    미국인들이 한 번 라디오를 틀자 알 카포테, 카네기, 록펠러, 존 모건 같은 지방 산적들은 단번에 권위를 잃었다. 시골영웅은 필요없어. 이젠 세계영웅이 필요해. 미국인들이 눈을 바깥으로 돌린 것이다.


    비로소 유럽이 보였다. 그들은 2차대전에 참전했다. 라디오의 힘이다. 라디오를 이용한 두 번째 인물은 히틀러다. 히틀러는 라디오를 이용해 독일인들이 국가의 존재를 발견하게 했다.


    국민체전(베를린올림픽), 국민도로(아우토밴), 국민차 따위를 쏟아부어서 독일인들이 국가의 존재를 체감하게 한 것이다. 그렇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만져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움직인다.


    한국인들이 경상도니 전라도니 하는 지역주의에 매몰되어 있듯이, 지방정치의 암투에 매몰되어 있던 독일인들이 비로소 게르만이라는 하나의 단일체를 발견하였다. 그것이 의사결정의 주체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유럽 각지에 흩어져서 슬라브인과 뒤섞여 있던 독일인들이 소속감을 느끼고 자기 정체성을 발견한 것이다. 피아구분이 생겼다. 그러다가 오바가 점점 심해서 국가로는 성에 안 차고 아주 제국으로 치달으니 히틀러의 제 3제국이다.


    다시 한번 국가를 호출하는 시대가 도래하였으니 케네디다. 케네디는 TV를 통해 고립주의에 빠져 있던 미국인의 관심을 세계로 돌렸다. 미국땅만 해도 충분히 넓다고 생각했던 미국 촌놈들에게 TV는 새로운 시야를 제공했다.


    미국 바깥에도 많은 땅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비로소 깨우친 것이다. 이를 악용한 자가 부시다. 그는 전쟁을 TV로 생중계했다. 그리고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다.


    법칙이 작동한다. 항상 진보가 선찰하고 보수가 후창한다. 라디오의 루즈벨트와 히틀러가 그렇다. TV의 케네디와 부시가 그렇다. 인터넷의 어준과 일베가 그렇다. 역사는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지금 다시 인터넷이 초국가적 의사결정 단위의 존재, 인류단일체의 존재를 지구인에게 각성시켰다. 스노든이 왔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 선지자가 출현한 셈이다.


    처음 국가의 의미를 발견하고 촌놈들이 광분했듯이 이제 인류의 의미를 발견하고 흥분해야 한다. 무엇인가? 당신은 국민인가? 깨어있는 시민이라고 한다. 시민은 의사결정의 주체다.


    당신은 인류단위 의사결정의 주체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스노든은 해냈다. 당신은 그럴 용기와 배짱이 있는가? 지금 인류는 재편성되고 있다. 여태 인류를 발견하지 못한 부족민들과는 말도 하지 마라.


   


[레벨:5]거침없이

2013.07.16 (16:28:50)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를 동렬옹 처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감탄이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까뮈

2013.07.16 (22:54:35)

엘비스를 만나고 비틀즈를 만나고 마이클 잭슨을 만나고 스팅 등등을 만나면 

그리고 노무현을 만나면..


한번에 빵터지고 그 이 후는 각자 알아서^^

프로필 이미지 [레벨:10]id: 배태현배태현

2013.07.17 (08:12:46)

아부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선생님의 칼럼은 어쩜이리 읽을때마다 알차고 시원한지 모르겠습니다.ㅎ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3.07.17 (18:19:37)

대한민국은 지금 국가단위로 의사결정능력을 심각하게 시험하는 중이고,

스노든은 단번에 인류단위의 집단지성과 의사결정시스템 작동에 심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금 우리가 문제해결에 성공하면 인류 집단지능의 진보에 금자탑을 쌓게 되는 것이요

해결을 못하면 인류문명의 발전에 큰 해악을 끼치게 될 것이다.


중심국가, 일류국가를 우리 스타일로 만들어 만방에 보여줄 중요한 찬스다

마카 정신차렷!

프로필 이미지 [레벨:9]무득

2013.07.17 (19:01:29)

인터넷과 미디어 발달은 세계를 단일 민족으로 만들어가 고 있는 중인것 같습니다.

아직은 지역주의 국가주의 이념주의의 한계에 부딪혀 있어 상당기간 과도기를 겪겠지만

결국 지구라는 땅덩이 밖에 없다는 것을 세계인이 깨닫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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