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을 깨달음
자연에는 다섯 가지 미(美)가 있다. 만남은 예쁨이고 맞물림은 고움이고 함께 섬은 어울림이고 하나됨은 아름다움이고 소통함은 멋있음이다.
만나기와 맞물리기, 함께서기, 하나되기, 소통하기는 만유에 공통되는 소통의 절차다. 소통의 진행에 따라 예쁘고 곱고 어울리고 아름답고 멋있다.
성공적인 만나기는 예쁘고 맞물리기의 성공은 곱고 성공적인 함께서기는 어울리고 하나되기의 성공은 아름답고 성공적인 소통은 멋있다.
● 만나기 - 예쁘다.
● 맞물리기 - 곱다.
● 함께서기 - 어울린다.
● 하나되기 - 아름답다.
● 소통하기 - 멋있다.
예쁜 것은 눈에 잘 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사물의 눈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뱀이나 바퀴벌레나 쥐처럼 눈이 잘 보이지 않으면 징그럽다.
아기처럼 둥근 얼굴에 눈이 또렷하고 칼라가 선명할 때 예쁘다. 모든 포유류 동물의 새끼는 예쁘다. 어미 눈에 잘 띄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분과 부분의 연결이 매끄럽게 이어지면 곱다. 표면이 거칠거나 울퉁불퉁하여 인체의 각부분이 시각적으로 잘 연결되지 않으면 곱지 않다.
콜라와 햄버거처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은 어울린다. 콜라와 햄버거, 파전과 막걸리, 김치와 쌀밥처럼 앙상블을 이루어 함께 서는 것이 어울리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각 부위가 따로 놀지 않고 팀을 구성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서로 간에 마찰과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멋은 소통이다. 둘 이상의 개별적 존재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서로 마찰하지 않고 서로를 침범하거나 훼손하지 않고 무리없이 공존할 때 멋있다.
자연은 소통할 때 멋있다. 소통하기 위하여 짝 지으니 아름답고 짝을 찾으니 어울리고 짝에게 다가가니 곱고 짝을 만나니 예쁘다.
멋을 깨달음
미학은 센서를 내미는 것이다. 들키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속 깊은 곳 까지 쳐들어 갈 수 있는가이다. 자극하지 않고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거리는?
욕망을 앞세워 연인에게 다가가려 한다면 상대방은 달아나고 말 것이다. 두려움을 앞세운다면 당신 자신이 먼저 도망치고 말 것이다.
멋있기 위해서는 욕망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려움을 버려야 하고 본능적 욕구를 이겨내야 한다. 욕망 때문에 다가간다 하더라도.
미학은 유혹하는 기술이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 자신에게 다가오게 하는 기술이다. 놀래키지 않고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기술이다.
엄마는 포근함으로 하여 아기로 하여금 자신에게 다가오도록 유도한다. 아기는 귀여움으로 하여 엄마에게 다가감을 허락받는다.
어미는 새끼를 품기 위하여 발톱을 감춘다. 공작의 수컷은 암컷을 끌어당기기 위하여 꼬리깃을 자랑한다. 자연은 아름다움을 통해 소통한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소통하기 위하여 방해물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소통 역시 자연의 소통을 본받지 않으면 안 된다.
슬며시 다가갈 수 있을까? 살그머니 다가오게 할 수 있을까? 놀래키지 않고 상처주지 않고 자극하지 않고 훼손하지 않고.
곰과 호랑이를 한 우리에 가두어 둔다면 반드시 싸움이 일어난다. 개와 원숭이라도 그러하다. 무리없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최적의 거리는?
멋은 어렵다. 부부가 하나의 가정에 공존한다 해도 서로를 침범하고 만다. 서로를 훼손하고 만다. 둘 중 하나는 약화되고 만다.
만약 남편이 가정의 행복을 위해 아내의 사회적 활동을 축소시킨다면 그만큼 상대방을 훼손한 것이다. 그렇다면 멋 없다. 아름답지 않다. 실패다.
공존하면서도 침범하지 않고 도리어 서로의 역할을 극대화 하는 것이 멋이다. 참는 것은 적고 얻는 것은 커야 한다. 그럴 수 있을까?
호연지기를 깨달음
깨달음은 미학을 깨닫는 것이다. 맹자는 호연지기는 인격적으로 내면화 된 미학적 태도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호연지기를 얻는 것이다.
호연지기는 맹자의 유교적 이상주의에서 유래한다. 도덕적 지고함이 주는 당당한 태도가 카리스마를 이루어 천하와 더불어 널리 소통함을 말한다.
호연지기(浩然之氣)의 호(浩)는 호수와도 같은 넓음을 의미한다. 작은 일이 얽매이지 않고 폭넓게 소통할 수 있음을 말한다.
군자라면 성별과 인종과 계급과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과도 소통하고 역사와도 소통하고 진리와도 소통해야 한다.
호연지기는 인격적 완전성을 표상하는 정신의 기상(氣像)이다. 기상은 내면의 기운이 얼굴에 나타난 모습이다. 호연지기는 바르고 곧고 강한 정신이다.
호연지기는 인격적으로 내면화 된 미학이다. 완전의 경지를 탐해야 한다. 정상의 경지를 욕망해야 한다. 우주적인 시야를 얻어야 한다.
소년은 순수가 미학이고 학생은 치열함이 미학이고 청춘은 낭만이 미학이고 장년은 대범함이 미학이고 노년의 여유로움이 미학이다.
맹자는 호연지기가 미학이고 선종불교는 소요자재가 미학이고 노자의 무위가 미학이고 소크라테스는 기개가 미학이고 니체는 반항이 미학이다.
미(美)에 굶주리고 멋에 굶주리고 의(義)에 굶주리고 순수에 굶주려야 한다. 순수에 굶주리고 치열함에 굶주리고 낭만에 굶주려야 한다.
다투되 금전을 다툴 일이 아니라 진리를 다투어야 한다. 대결하되 라이벌과 대결할 것이 아니라 신(神) 앞에서의 정면승부여야 한다.
욕망하되 천하를 욕망해야 한다. 우주적인 규모의 스케일을 가져야 한다. 정상에서의 시야를 얻어야 한다.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욕망할 일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인격을 욕망할 일이다. 신의 마음과 하나되기를 욕망할 일이다. 거침없이 나아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