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
"왜 사는가?"
이 처럼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삶에 목적이 있을 수 있는가?"
"내가 어떤 것을 원한다면 그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는가?"
성공한다, 혹은 출세한다. 혹은 가족을 일군다거나, 돈을 번다거나, 명성을 얻는다거나 하는 따위의 일이 진정한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는가? 없다. 그것들은 모두 삶 안에 갖추어 있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은 의당 삶 바깥에 있어야 한다. 삶 바깥에는 죽음 밖에 없다. 고로 삶의 목적이란 애초에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성공한다는 것은, 혹은 출세한다는 것은 콤플렉스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그것은 외부에서 강요된 것에 다름 아니다. 본래 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타인과 비교하여 내가 비교우위에 선다는 식으로 남보다 더 잘나게 되는 것을 나의 삶의 목적으로 삼을 수 없다.
감옥에 갇힌 죄수는 탈출을 소원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있고 내가 그 안에 갇혀 있다. 갇혀 있는 즉 탈출하자는 것이다. 돈이, 명성이, 출세가 그 탈출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확실히 돈을, 명성을, 권력을 가진 사람은 사회로부터 덜 억압받는다. 그러나 길들여진 죄수가 감방의 규율에 복종함으로서 약간의 자유를 얻은 것에 불과하다. 참된 해방이 아니다.
그러나 갇혀 있지 않다면? 탈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소원할 수 없다. 아무것도 희망할 수 없다. 소년의 나라서 희망한 바는 그 희망과 야심을 말소하는 것 뿐이었다. 나란 애초에 갇혀 있지 않으므로.
감옥의 죄수가 탈출을 원하는 것은 그 해방된 세계가 감옥의 창살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소원할 수 있는 출세나 성공이나 돈이나 명성이나 따위는 그 사회라는 감옥안에 갖추어 있어서 비유하자면 감옥 안의 죄수가 감방장이나 소지로 승진하기를 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감방장이 되는 것이 감옥에 갇힌 죄수의 진정한 소원일 수는 없다. 삶 안에서 무언가 얻고 취하고 가지는 것은 참된 삶의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사는가?
탈출이다. 해방이다. 삶에 갇힌 자에게 소원은 그 삶을 초극하는 거 뿐이다. 사회에 갇힌 자에게 소원은 그 사회가 강요하는 바 그 감옥의 규율되는 성공이니 출세이니 돈이니 따위를 초월하는 거 뿐이다.
알아야 한다. 출세, 명성, 돈, 지위 따위는 세상이라는 감옥의 규율에 불과하다. 출세한다는 것은, 성공한다는 것은 규율을 잘 지키는 죄수가 약간의 특혜를 받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사는가?
[세상 전부와 상대하라]
감옥에 갇힌 자에게 소원은 오직 탈출 하나 뿐이다. 삶의 감옥에서 탈출하자면?
그 감옥 안에서 동료 죄수와 비교해서 약간의 높은 지위를 얻는다거나 혹은 교도관과 친해서 약간의 특혜를 보장받는 것으로 안된다. 그것들은 모두 그 감옥의 구성요소들이다.
탈출은 그 감옥 전체와 상대하는 일이다. 동료죄수와 교도관과 교도소장과 그 모든 것을 상대하는 일이다. 가능한가?
삶에서 삶 전부와 상대한다는 것은 가능한가?
[구심력과 원심력]
돌덩이가 하나 있다. 작은 힘으로 빠르게 내려친다면 그 힘은 돌의 모난 부분에 먼저 전달될 것이다. 그 돌은 한 부분이 깨진다.
반면 큰 힘으로 천천히 내려친다면? 그 힘은 그 돌 전체에 전달된다. 이때 돌은 깨지는 대신 야구공처럼 멀리 날아갈 것이다.
감옥안에서 무언가를 소망한다는 것은 그 힘을 그 전체의 일부에 빠르게 전달하는 일이다. 그 감옥을 탈출한다는 것은 그 힘을 그 돌 전체에 천천히 전달하는 것이다. 가능한가?
핼리혜성은 태양을 향해 전진한다.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이때 태양에 끌려가던 핼리혜성은 돌연 궤도를 바꾸어 태양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기 시작한다. 탈출이다. 왜?
어떤 계가 있다. 그 계의 평형이 있다. 원심력과 구심력이 있다. 그 힘이 그 계에 포함될 때 즉 감옥안의 죄수가 감옥 안에서 동료죄수들보다 비교우위에 서려 할 때 구심력을 받는다. 끌려든다. 핼리혜성은 태양쪽으로 끌려간다.
반면 핼리혜성의 속도가 일정 이상 빨라지면 그 힘은 그 태양계 전체에 전달된다. 이때는 원심력을 받아 태양으로부터 멀어진다. 탈출이다.
즉 어떤 힘이 가해질 때 그 힘을 전달받는 계 전체의 평형을 깨뜨릴 정도로 강한 힘이면 원심력을 받아 탈출의 작용이 있고, 그 반대로 계 전체의 평형을 깨뜨리지 못하는 약한 힘이면 구심력을 받아 인력의 작용이 있다.
요는 힘이 계의 평형 안에서 작용하는가 밖으로 작용하는가이다. 즉 계의 평형을 기준으로 작은 힘은 그 평형을 유지하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이 구심력이고, 더 큰 힘은 계 전체의 평형을 깨는 쪽으로 작용하므로 원심력이다. 탈출이다. 해방이다.
우리는 해방을 소원한다. 그 힘이 계 전체의 평형을 깨뜨리는 즉 탈출이며 그 평형을 깨뜨리지 못한 즉 계의 일부분으로 녹아들이 흡수되는 것이다. 우리의 소원하는 바가 이 사회의 전체의 평형을 깨뜨리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그렇다면?
세상 전부와 상대하라!
"왜 사는가?"
이 처럼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삶에 목적이 있을 수 있는가?"
"내가 어떤 것을 원한다면 그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는가?"
성공한다, 혹은 출세한다. 혹은 가족을 일군다거나, 돈을 번다거나, 명성을 얻는다거나 하는 따위의 일이 진정한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는가? 없다. 그것들은 모두 삶 안에 갖추어 있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은 의당 삶 바깥에 있어야 한다. 삶 바깥에는 죽음 밖에 없다. 고로 삶의 목적이란 애초에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성공한다는 것은, 혹은 출세한다는 것은 콤플렉스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그것은 외부에서 강요된 것에 다름 아니다. 본래 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타인과 비교하여 내가 비교우위에 선다는 식으로 남보다 더 잘나게 되는 것을 나의 삶의 목적으로 삼을 수 없다.
감옥에 갇힌 죄수는 탈출을 소원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있고 내가 그 안에 갇혀 있다. 갇혀 있는 즉 탈출하자는 것이다. 돈이, 명성이, 출세가 그 탈출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확실히 돈을, 명성을, 권력을 가진 사람은 사회로부터 덜 억압받는다. 그러나 길들여진 죄수가 감방의 규율에 복종함으로서 약간의 자유를 얻은 것에 불과하다. 참된 해방이 아니다.
그러나 갇혀 있지 않다면? 탈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소원할 수 없다. 아무것도 희망할 수 없다. 소년의 나라서 희망한 바는 그 희망과 야심을 말소하는 것 뿐이었다. 나란 애초에 갇혀 있지 않으므로.
감옥의 죄수가 탈출을 원하는 것은 그 해방된 세계가 감옥의 창살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소원할 수 있는 출세나 성공이나 돈이나 명성이나 따위는 그 사회라는 감옥안에 갖추어 있어서 비유하자면 감옥 안의 죄수가 감방장이나 소지로 승진하기를 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감방장이 되는 것이 감옥에 갇힌 죄수의 진정한 소원일 수는 없다. 삶 안에서 무언가 얻고 취하고 가지는 것은 참된 삶의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사는가?
탈출이다. 해방이다. 삶에 갇힌 자에게 소원은 그 삶을 초극하는 거 뿐이다. 사회에 갇힌 자에게 소원은 그 사회가 강요하는 바 그 감옥의 규율되는 성공이니 출세이니 돈이니 따위를 초월하는 거 뿐이다.
알아야 한다. 출세, 명성, 돈, 지위 따위는 세상이라는 감옥의 규율에 불과하다. 출세한다는 것은, 성공한다는 것은 규율을 잘 지키는 죄수가 약간의 특혜를 받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사는가?
[세상 전부와 상대하라]
감옥에 갇힌 자에게 소원은 오직 탈출 하나 뿐이다. 삶의 감옥에서 탈출하자면?
그 감옥 안에서 동료 죄수와 비교해서 약간의 높은 지위를 얻는다거나 혹은 교도관과 친해서 약간의 특혜를 보장받는 것으로 안된다. 그것들은 모두 그 감옥의 구성요소들이다.
탈출은 그 감옥 전체와 상대하는 일이다. 동료죄수와 교도관과 교도소장과 그 모든 것을 상대하는 일이다. 가능한가?
삶에서 삶 전부와 상대한다는 것은 가능한가?
[구심력과 원심력]
돌덩이가 하나 있다. 작은 힘으로 빠르게 내려친다면 그 힘은 돌의 모난 부분에 먼저 전달될 것이다. 그 돌은 한 부분이 깨진다.
반면 큰 힘으로 천천히 내려친다면? 그 힘은 그 돌 전체에 전달된다. 이때 돌은 깨지는 대신 야구공처럼 멀리 날아갈 것이다.
감옥안에서 무언가를 소망한다는 것은 그 힘을 그 전체의 일부에 빠르게 전달하는 일이다. 그 감옥을 탈출한다는 것은 그 힘을 그 돌 전체에 천천히 전달하는 것이다. 가능한가?
핼리혜성은 태양을 향해 전진한다.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이때 태양에 끌려가던 핼리혜성은 돌연 궤도를 바꾸어 태양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기 시작한다. 탈출이다. 왜?
어떤 계가 있다. 그 계의 평형이 있다. 원심력과 구심력이 있다. 그 힘이 그 계에 포함될 때 즉 감옥안의 죄수가 감옥 안에서 동료죄수들보다 비교우위에 서려 할 때 구심력을 받는다. 끌려든다. 핼리혜성은 태양쪽으로 끌려간다.
반면 핼리혜성의 속도가 일정 이상 빨라지면 그 힘은 그 태양계 전체에 전달된다. 이때는 원심력을 받아 태양으로부터 멀어진다. 탈출이다.
즉 어떤 힘이 가해질 때 그 힘을 전달받는 계 전체의 평형을 깨뜨릴 정도로 강한 힘이면 원심력을 받아 탈출의 작용이 있고, 그 반대로 계 전체의 평형을 깨뜨리지 못하는 약한 힘이면 구심력을 받아 인력의 작용이 있다.
요는 힘이 계의 평형 안에서 작용하는가 밖으로 작용하는가이다. 즉 계의 평형을 기준으로 작은 힘은 그 평형을 유지하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이 구심력이고, 더 큰 힘은 계 전체의 평형을 깨는 쪽으로 작용하므로 원심력이다. 탈출이다. 해방이다.
우리는 해방을 소원한다. 그 힘이 계 전체의 평형을 깨뜨리는 즉 탈출이며 그 평형을 깨뜨리지 못한 즉 계의 일부분으로 녹아들이 흡수되는 것이다. 우리의 소원하는 바가 이 사회의 전체의 평형을 깨뜨리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그렇다면?
세상 전부와 상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