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구요? 그럼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은 노동이 아니라서 가치가 없고, 군발이가 목숨걸고 적군을 물리쳐도 노동이 아니라서 아무런 가치가 없고, 김동렬이 족빠지게 글을 써도 돈을 안받기 때문에 전혀 가치가 없다구요.
족빠지게 글을 썼는데 그게 생산이 아니라구요? 미치고 폴짝 뛸 일입니다. 글을 쓰면 글을 낳았는데 그게 생산이지 그럼 뭐가 생산입니까?
농부가 산길을 가다가 산삼을 한뿌리 캐면 그건 생산이 아닙니까? 김동렬이 글을 쓰는 것이나 농부가 우연히 산삼을 캐는 것이나 다 생산입니다.
보세요. 노동과 비노동은 엄격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경제학자들은 자기네들끼리 규칙을 정해서 요건 노동이다 요건 비노동이다 하고 정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건 편의적으로 금그어 놓은 것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그건 학자들의 편의에요. 그러한 임의로운 규칙이 진리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 쯤은 니가 알고 내가 알고 우리가 알고 모두가 아는거 아닙니까?
저는 철학의 차원에서 가치를 논하고 있는데 학자들이 멋대로 정해놓은 규칙을 들이대는건 말도 안되재요. 저는 학자들의 그러한 규칙 즉 노동과 비노동의 구분규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규칙이 잘못되었다고 시비하는데 규칙에 따르면 그건 틀렸다는 식의 반론이 어딨습니까?
인디언들이 심심풀이 사냥을 하면 그게 놀이입니까? 노동입니까? 생산활동입니까? 뭡니까? 우연한 발견, 발명은 노동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야말로 길거리에서 금덩이를 줍는 것이에요. 어떤 사람이 산길에서 노다지를 발견하면 노동이 아니니 그 노다지는 가치가 없군요. 거지가 밥을 빌면 노동이 아니구요?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쥐..
>>>첫째, 고스톱을 치는 사람들은 가치를 만들지 않지만(카지노에 고스톱이 있다면 별문제)
내 친구중에 한 넘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점백짜리 고스톱을 쳐서 그걸로 몇 년동안 먹고 살았어요.(실제 경험임-15년전 일이지만) 그 친구에게는 그게 생산활동입니다. 근데 반은 오락이에요. 이런 지하경제는 그럼 어떻게 셈합니까? 또 카지노의 고스톱은 생산활동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경마장에서 돈 따서 그걸로 먹고 사는 넘은 뭡니까?(실제로 이런 사람 있습니다)
여기서 드러나듯이 생산과 비생산의 구분은 편의적인 구분에 불과하고 엄밀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누구나 느낄 것입니다.
>>>생산이란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경제활동을 말합니다. 따라서 경제활동과 관련이 없는 행위는 생산개념에 제외됩니다.
고스톱은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구요?
>>> 생산과 관련이 있는 행위만이 가치와 관계가 있게 되며
고스톱은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므로 생산이군요. 그렇죠? 고로 고스톱은 가치있다?
>>>위에서 예를 든 고스톱 치는 행위는 경제활동과 무관한 행위이지만 레크레이션 강사가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것은 경제활동입니다.
이런 구분은 경제학의 통계에 잡을 필요가 없다 해서 누락시키는 부분에 불과합니다. 물론 고스톱을 경제학자가 통계에 잡을 필요는 없지요. 그건 통계로 잡자면 피곤한거니깐. 그러나 조폭집단 따위가 커져서 지하경마가 산업이 되고, 고스톱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출현하면 그때는 경제학자의 통계가 그만큼 허술해지는 거죠.
>>>이러한 구분없이 인간의 활동 그자체 또는 타인의 행위를 촉발하는 행위가 가치를 생산한다는 말은 비경제학적, 비과학적인 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경제학적이 아니라 비경제적이겠지요. 왜? 골치아프고 애매하니까.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며 진리의 차원에서 볼 때 배제할 수 없는 것이며 그걸 배제하는 것은 편의적인 결정에 불과합니다.
>>>(생산개념을 전제로한 가치논의는 일반경제학이나 정치경제학에서 통용되고 있습니다.)
왜? 그게 편하니깐.
>>>전자는 돈이 있는 자가 자기 돈으로 노동자를 고용해서 돈을 벌어보니까 가치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80%가 되더라는 말과 동의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류의 주장은 돈이 돈을 낳는다는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써 노동자의 공격에 대한 자본가들의 진부한 논리일 뿐입니다.
똑같은 돈 1000원으로 1000원짜리 호미를 사면 그것이 투자입니다. 대신 1000원짜리 빵을 사면 소비죠. 투자는 경제활동이고 노동과 같은 것입니다. 즉 노동도 일종의 투자에요. 노동자는 근육의 에너지를 투자하고 기업가는 자본을 투자합니다. 둘의 같은 가치에요. 다시 말해서 노동을 투자하거나 자본을 투자하거나 이윤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동일한데 노동의 투자만 가치있고 자본의 투자는 가치없다고 우기면 곤란하죠.
경험적 사실이라는데 그 경험은 어디서 나온 거에요? 똑 같은 돈 1000원으로 호미를 사서 농사를 지은 사람은 더 많은 이윤을 낳을 것이며 1000원을 빵 사먹고 맨손으로 농사지은 사람은 더 적은 이윤을 내는 것이며 이는 당연한 거지 호미를 사용한 사람과 맨손으로 농사지은 사람이 같은 이익을 분배받아야 하면 이게 날강도지 뭡니까? 호미를 투자한 사람은 투자한 만큼 더 배당을 받는 겁니다. 당연한거 아니에요?
>>>노동이 만든 가치가 가격을 통해서 항상 정당하게 평가되지는 않습니다.
이런 말은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평가하는게 정당하게 평가하는 겁니까? 지렛대로 1초만에 운반한 사람과 맨손으로 한시간 동안 끙끙거려서 열배의 노동을 투입한 사람이 결과물로 똑같이 1톤을 운반했다면 한시간 동안 끙끙거린 사람이 10배의 노동을 투입했으니까 10배의 임금을 줄까요? 지렛대를 사용하건 맨손으로 운반하건 노동투입량과 상관없이 생산결과만 두고 평가하는 것이 정상이죠.
>>> 즉 80정도의 가치를 가진 상품이 80의 가격으로 교환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상품이 어느정도 가치있다는 주장만큼 터무니없는 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전기가 없는 곳에 텔레비젼을 팔면 그 텔레비젼은 얼만큼의 가치가 있죠? 0입니다. 가치없죠. 왜? 전기가 없으니까 텔레비젼이 안나오고 고로 그 텔레비젼은 폐기물 수거료 1만원을 도로 물어줘야 합니다. 가치는 상대적이며 교환되는 가치가 곧 가치입니다. 교환되지 않으면? 가치가 전혀 없는 거죠.
>>>빌게이츠 등 소수가 누리는 혜택도 그들과 같은 조건을 가진 경쟁자들이 출현하여 경쟁하면 가치에 적합한 가격수준으로 조정 됩니다.
빌 게이츠의 경쟁자가 여럿 등장하여 넷스케이프와 익스프롤러외에 제 3의 OS를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면 이용자와 개발자들은 미치고 폴짝 뛸 일입니다. 자 한사람이 각각 세 개 혹은 네 개의 류람기(익스프롤러)를 작동시키면 그 네 개의 류람기를 구매하는 비용과 인터넷업체에서 4개의 홈페이지를 동시에 개발하는 비용은?
빌게이츠의 경쟁자가 있었다면 우리는 인터넷을 하지도 못해요. 인터넷이 망합니다. 망해. 다시 말해서 시장이 알아서 빌 게이츠의 경쟁자를 퇴출시킨 것이며 그것은 비용절감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빌게이츠가 경쟁자들을 제압하여 부당이윤을 얻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시장이 비용절감을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한 것입니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하자구요.
결론적으로 님은 경제학자들이 정해놓은 규칙을 들고 있는데, 저는 그 규칙이 대단히 자의적이고 불분명하며 편의적인 것이며, 시장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로 규칙을 바꾸어야 합니다. GNP가 시장의 변화를 나타내지 못하면 GDP로 바꾸듯이 경제나 생산이나 노동의 개념규정들이 시장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또한 바꾸어야 합니다.
요즘은 발견의 시대와 발명의 시대가 지나가서 발견이나 발명이 가치를 별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발명의 시대에는 하나의 발명이 10000명의 노동보다 더 가치있습니다. 근데 경제학자들은 이 부분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왜? 그거 가치로 잡자며 대단히 피곤하거든요.
전기의 발견이 어느정도의 가치를 지니는지 누가알어? 모르죠. 고로 배제하는거죠. 월드컵성공의 가치가 20조다 30조다 그러지만 과연 그런지 누가알어? 이건 걍 해보는 소리에 불과한거죠. 가치란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는 것이며 경제학자들은 그 중에 통계로 잡을 수 있는 극히 일부만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경제학에서 쓰이는 가치개념과 제가 이야기하는 가치개념이 같아야만 한다고 주장하시려는 거죠? 같다면 도리어 문제있는거죠.
노동이 가치있는 것이 아니고 생산활동에 투자형태로 투입된 것이 가치있으며 그러한 투자는 교육, 의료, 휴식, 오락도 포함되는 것이며 노동은 생산활동에 투입되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 하나에 불과합니다.
생산활동에 투입되는 요소는 노동, 토지, 자본, 기술, 자원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석유가 펑펑 난다거나, 금덩어리가 굴러다닌다거나 해서 잘 사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노동가치설에 의하면 사우디같이 석유가 펑펑나는 나라들은 다들 노동을 안하므로 가치없군요. 이건 말도 안되지요.
이를테면 자본은 결국 돈이고 돈은 노동을 통해서 번거니까 결국은 자본도 노동이라고 억지를 쓸 수 있겠지만 자본은 화폐이고 화폐는 신용입니다. 왜냐하면 외상이라는게 있거든요. 자본이 있다는건 돈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다는, 외상을 할 수 있다는, 공장을 지어놓고 물건을 생산할 때 까지 시간차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용있는 사람이 사업을 하는 것이며 그 신용은 교육이나 종교나 지위나 계급이나 인격이나 기타등등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됩니다. 신용을 흔히 우습게 보는데 생산과 분배 사이의 엄청난 시간차를 신용만이 해결한다는 점에서 신용을 우습게 보면 안돼재요.
하여간 토지, 자본(신용), 기술, 자원, 노동 중 하나라도 빠지면 가치를 생산할 수 없어요. 이 중에서 유독 노동만 가치있다고 우긴다면 피곤한거죠.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자본가치설을 주장하여 모든 가치는 자본(신용)만이 생산한다. 노동은 자본으로 구입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우긴다거나 혹은
또 어떤 사람이 기술가치설을 주장하여 기술만이 가치있다 노동도 기술이 없으면 못한다. "개가 노동하는 거 봤니?" 이런 식으로 우길 수도 있겠죠.
즉 기술가치설이나 자본가치설, 토지가치설이 말도 안되듯이 노동가치설도 역시 말이 안되는 겁니다. 노동은 생산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 중의 하나에요.
결론적으로 김동렬이 글을 쓰는 것은 여러분이 읽어주는 한 가치가 있습니다. 글을 생산하면 그게 곧 생산입니다. 경제학자들이 이걸 가치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러면 통계가 복잡해지니까 편의적으로 그러는 것입니다.
님의 주장을 극대화하면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을 완전 무시하는 파쇼발언이 됩니다. 아기를 돌보는 것은 오락이면서 휴식이면서 노동입니다. 노동자가 휴식년제를 채택해서 일년을 쉬어도 노동입니다. 휴식도 노동하기 위한 재충전이면 곧 노동입니다. 프로야구 선수가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도 노동입니다. 대통령의 여름휴가도 노동입니다.
토지(물리적 장소), 자본(신용), 기술, 자원, 노동.... 하여간 이 다섯가지 중에서 단 하나가 빠져도 가치는 절대로 창출되지 않으며, 이 다섯은 서로 교환되므로 다른 것으로 대체되기도 합니다만 원초적으로 배제될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노동은 이 다섯 중 하나입니다.
어떤 한가지 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태도는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세상은 다양한 요소들의 적절한 구성에 의해 물리적으로 실현되어 있다는 발상이 중요한거죠.
족빠지게 글을 썼는데 그게 생산이 아니라구요? 미치고 폴짝 뛸 일입니다. 글을 쓰면 글을 낳았는데 그게 생산이지 그럼 뭐가 생산입니까?
농부가 산길을 가다가 산삼을 한뿌리 캐면 그건 생산이 아닙니까? 김동렬이 글을 쓰는 것이나 농부가 우연히 산삼을 캐는 것이나 다 생산입니다.
보세요. 노동과 비노동은 엄격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경제학자들은 자기네들끼리 규칙을 정해서 요건 노동이다 요건 비노동이다 하고 정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건 편의적으로 금그어 놓은 것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그건 학자들의 편의에요. 그러한 임의로운 규칙이 진리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 쯤은 니가 알고 내가 알고 우리가 알고 모두가 아는거 아닙니까?
저는 철학의 차원에서 가치를 논하고 있는데 학자들이 멋대로 정해놓은 규칙을 들이대는건 말도 안되재요. 저는 학자들의 그러한 규칙 즉 노동과 비노동의 구분규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규칙이 잘못되었다고 시비하는데 규칙에 따르면 그건 틀렸다는 식의 반론이 어딨습니까?
인디언들이 심심풀이 사냥을 하면 그게 놀이입니까? 노동입니까? 생산활동입니까? 뭡니까? 우연한 발견, 발명은 노동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야말로 길거리에서 금덩이를 줍는 것이에요. 어떤 사람이 산길에서 노다지를 발견하면 노동이 아니니 그 노다지는 가치가 없군요. 거지가 밥을 빌면 노동이 아니구요?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쥐..
>>>첫째, 고스톱을 치는 사람들은 가치를 만들지 않지만(카지노에 고스톱이 있다면 별문제)
내 친구중에 한 넘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점백짜리 고스톱을 쳐서 그걸로 몇 년동안 먹고 살았어요.(실제 경험임-15년전 일이지만) 그 친구에게는 그게 생산활동입니다. 근데 반은 오락이에요. 이런 지하경제는 그럼 어떻게 셈합니까? 또 카지노의 고스톱은 생산활동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경마장에서 돈 따서 그걸로 먹고 사는 넘은 뭡니까?(실제로 이런 사람 있습니다)
여기서 드러나듯이 생산과 비생산의 구분은 편의적인 구분에 불과하고 엄밀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누구나 느낄 것입니다.
>>>생산이란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경제활동을 말합니다. 따라서 경제활동과 관련이 없는 행위는 생산개념에 제외됩니다.
고스톱은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구요?
>>> 생산과 관련이 있는 행위만이 가치와 관계가 있게 되며
고스톱은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므로 생산이군요. 그렇죠? 고로 고스톱은 가치있다?
>>>위에서 예를 든 고스톱 치는 행위는 경제활동과 무관한 행위이지만 레크레이션 강사가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것은 경제활동입니다.
이런 구분은 경제학의 통계에 잡을 필요가 없다 해서 누락시키는 부분에 불과합니다. 물론 고스톱을 경제학자가 통계에 잡을 필요는 없지요. 그건 통계로 잡자면 피곤한거니깐. 그러나 조폭집단 따위가 커져서 지하경마가 산업이 되고, 고스톱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출현하면 그때는 경제학자의 통계가 그만큼 허술해지는 거죠.
>>>이러한 구분없이 인간의 활동 그자체 또는 타인의 행위를 촉발하는 행위가 가치를 생산한다는 말은 비경제학적, 비과학적인 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경제학적이 아니라 비경제적이겠지요. 왜? 골치아프고 애매하니까.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며 진리의 차원에서 볼 때 배제할 수 없는 것이며 그걸 배제하는 것은 편의적인 결정에 불과합니다.
>>>(생산개념을 전제로한 가치논의는 일반경제학이나 정치경제학에서 통용되고 있습니다.)
왜? 그게 편하니깐.
>>>전자는 돈이 있는 자가 자기 돈으로 노동자를 고용해서 돈을 벌어보니까 가치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80%가 되더라는 말과 동의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류의 주장은 돈이 돈을 낳는다는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써 노동자의 공격에 대한 자본가들의 진부한 논리일 뿐입니다.
똑같은 돈 1000원으로 1000원짜리 호미를 사면 그것이 투자입니다. 대신 1000원짜리 빵을 사면 소비죠. 투자는 경제활동이고 노동과 같은 것입니다. 즉 노동도 일종의 투자에요. 노동자는 근육의 에너지를 투자하고 기업가는 자본을 투자합니다. 둘의 같은 가치에요. 다시 말해서 노동을 투자하거나 자본을 투자하거나 이윤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동일한데 노동의 투자만 가치있고 자본의 투자는 가치없다고 우기면 곤란하죠.
경험적 사실이라는데 그 경험은 어디서 나온 거에요? 똑 같은 돈 1000원으로 호미를 사서 농사를 지은 사람은 더 많은 이윤을 낳을 것이며 1000원을 빵 사먹고 맨손으로 농사지은 사람은 더 적은 이윤을 내는 것이며 이는 당연한 거지 호미를 사용한 사람과 맨손으로 농사지은 사람이 같은 이익을 분배받아야 하면 이게 날강도지 뭡니까? 호미를 투자한 사람은 투자한 만큼 더 배당을 받는 겁니다. 당연한거 아니에요?
>>>노동이 만든 가치가 가격을 통해서 항상 정당하게 평가되지는 않습니다.
이런 말은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평가하는게 정당하게 평가하는 겁니까? 지렛대로 1초만에 운반한 사람과 맨손으로 한시간 동안 끙끙거려서 열배의 노동을 투입한 사람이 결과물로 똑같이 1톤을 운반했다면 한시간 동안 끙끙거린 사람이 10배의 노동을 투입했으니까 10배의 임금을 줄까요? 지렛대를 사용하건 맨손으로 운반하건 노동투입량과 상관없이 생산결과만 두고 평가하는 것이 정상이죠.
>>> 즉 80정도의 가치를 가진 상품이 80의 가격으로 교환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상품이 어느정도 가치있다는 주장만큼 터무니없는 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전기가 없는 곳에 텔레비젼을 팔면 그 텔레비젼은 얼만큼의 가치가 있죠? 0입니다. 가치없죠. 왜? 전기가 없으니까 텔레비젼이 안나오고 고로 그 텔레비젼은 폐기물 수거료 1만원을 도로 물어줘야 합니다. 가치는 상대적이며 교환되는 가치가 곧 가치입니다. 교환되지 않으면? 가치가 전혀 없는 거죠.
>>>빌게이츠 등 소수가 누리는 혜택도 그들과 같은 조건을 가진 경쟁자들이 출현하여 경쟁하면 가치에 적합한 가격수준으로 조정 됩니다.
빌 게이츠의 경쟁자가 여럿 등장하여 넷스케이프와 익스프롤러외에 제 3의 OS를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면 이용자와 개발자들은 미치고 폴짝 뛸 일입니다. 자 한사람이 각각 세 개 혹은 네 개의 류람기(익스프롤러)를 작동시키면 그 네 개의 류람기를 구매하는 비용과 인터넷업체에서 4개의 홈페이지를 동시에 개발하는 비용은?
빌게이츠의 경쟁자가 있었다면 우리는 인터넷을 하지도 못해요. 인터넷이 망합니다. 망해. 다시 말해서 시장이 알아서 빌 게이츠의 경쟁자를 퇴출시킨 것이며 그것은 비용절감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빌게이츠가 경쟁자들을 제압하여 부당이윤을 얻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시장이 비용절감을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한 것입니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하자구요.
결론적으로 님은 경제학자들이 정해놓은 규칙을 들고 있는데, 저는 그 규칙이 대단히 자의적이고 불분명하며 편의적인 것이며, 시장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로 규칙을 바꾸어야 합니다. GNP가 시장의 변화를 나타내지 못하면 GDP로 바꾸듯이 경제나 생산이나 노동의 개념규정들이 시장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또한 바꾸어야 합니다.
요즘은 발견의 시대와 발명의 시대가 지나가서 발견이나 발명이 가치를 별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발명의 시대에는 하나의 발명이 10000명의 노동보다 더 가치있습니다. 근데 경제학자들은 이 부분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왜? 그거 가치로 잡자며 대단히 피곤하거든요.
전기의 발견이 어느정도의 가치를 지니는지 누가알어? 모르죠. 고로 배제하는거죠. 월드컵성공의 가치가 20조다 30조다 그러지만 과연 그런지 누가알어? 이건 걍 해보는 소리에 불과한거죠. 가치란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는 것이며 경제학자들은 그 중에 통계로 잡을 수 있는 극히 일부만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경제학에서 쓰이는 가치개념과 제가 이야기하는 가치개념이 같아야만 한다고 주장하시려는 거죠? 같다면 도리어 문제있는거죠.
노동이 가치있는 것이 아니고 생산활동에 투자형태로 투입된 것이 가치있으며 그러한 투자는 교육, 의료, 휴식, 오락도 포함되는 것이며 노동은 생산활동에 투입되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 하나에 불과합니다.
생산활동에 투입되는 요소는 노동, 토지, 자본, 기술, 자원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석유가 펑펑 난다거나, 금덩어리가 굴러다닌다거나 해서 잘 사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노동가치설에 의하면 사우디같이 석유가 펑펑나는 나라들은 다들 노동을 안하므로 가치없군요. 이건 말도 안되지요.
이를테면 자본은 결국 돈이고 돈은 노동을 통해서 번거니까 결국은 자본도 노동이라고 억지를 쓸 수 있겠지만 자본은 화폐이고 화폐는 신용입니다. 왜냐하면 외상이라는게 있거든요. 자본이 있다는건 돈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다는, 외상을 할 수 있다는, 공장을 지어놓고 물건을 생산할 때 까지 시간차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용있는 사람이 사업을 하는 것이며 그 신용은 교육이나 종교나 지위나 계급이나 인격이나 기타등등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됩니다. 신용을 흔히 우습게 보는데 생산과 분배 사이의 엄청난 시간차를 신용만이 해결한다는 점에서 신용을 우습게 보면 안돼재요.
하여간 토지, 자본(신용), 기술, 자원, 노동 중 하나라도 빠지면 가치를 생산할 수 없어요. 이 중에서 유독 노동만 가치있다고 우긴다면 피곤한거죠.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자본가치설을 주장하여 모든 가치는 자본(신용)만이 생산한다. 노동은 자본으로 구입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우긴다거나 혹은
또 어떤 사람이 기술가치설을 주장하여 기술만이 가치있다 노동도 기술이 없으면 못한다. "개가 노동하는 거 봤니?" 이런 식으로 우길 수도 있겠죠.
즉 기술가치설이나 자본가치설, 토지가치설이 말도 안되듯이 노동가치설도 역시 말이 안되는 겁니다. 노동은 생산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 중의 하나에요.
결론적으로 김동렬이 글을 쓰는 것은 여러분이 읽어주는 한 가치가 있습니다. 글을 생산하면 그게 곧 생산입니다. 경제학자들이 이걸 가치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러면 통계가 복잡해지니까 편의적으로 그러는 것입니다.
님의 주장을 극대화하면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을 완전 무시하는 파쇼발언이 됩니다. 아기를 돌보는 것은 오락이면서 휴식이면서 노동입니다. 노동자가 휴식년제를 채택해서 일년을 쉬어도 노동입니다. 휴식도 노동하기 위한 재충전이면 곧 노동입니다. 프로야구 선수가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도 노동입니다. 대통령의 여름휴가도 노동입니다.
토지(물리적 장소), 자본(신용), 기술, 자원, 노동.... 하여간 이 다섯가지 중에서 단 하나가 빠져도 가치는 절대로 창출되지 않으며, 이 다섯은 서로 교환되므로 다른 것으로 대체되기도 합니다만 원초적으로 배제될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노동은 이 다섯 중 하나입니다.
어떤 한가지 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태도는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세상은 다양한 요소들의 적절한 구성에 의해 물리적으로 실현되어 있다는 발상이 중요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