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정치가 경제보다 더 중요하고 더 윗길의 논리가 된다. 일본의 몰락은 자민당 1당독재의 당연한 결과다. 정치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정치가 안되면 절대로 경제가 안된다.
일본이 몰락하는 이유는 시멘트병 때문이다. 모든 일본인은 시멘트병이라는 특이한 질환을 앓고 있다. 이 질환은 지진 때문에 생겨났다. 모든 일본인은 지진에 대한 공포를 천형처럼 안고 살아간다. 이 지진공포증을 치료하는 기적의 묘약이 발명되었으니 이것이 곧 시멘트이다.
"시멘트를 처발라라. 두텁게 두텁게 시멘트를 바르면 지진을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은 일본을 휩쓰는 시멘트교의 교리다. 일본은 예로부터 지방자치제가 발달했다. 지자체가 하는 일은 두텁게 시멘트를 바르는 일이다. 황소개구리는 일본을 거쳐 들어왔지만 일본에는 황소개구리문제가 없다. 황소개구리가 서식할 습지가 없기 때문이다. 시골의 작은 농수로까지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버렸기 때문에 황소개구리가 살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빈부차가 적다. 빈부차가 적은 이유는 발달된 지자체를 중심으로 시멘트를 두텁게 바르는 방식으로, 농민과 지방민을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예산은 선거를 고리로 지방으로 내려간다. 지방에 전달된 예산은 시멘트를 두텁게 바르는데 쓰여진다.
선거다. 지역구의원들은 지방개발공약을 내건다. 그것은 시멘트를 두텁게 바르겠다는 공약이다. 시멘트를 발라야 지방에 일자리가 생기고, 지방경제가 살아난다. 의원들은 예산을 따내서 시멘트바르기공사에 쓰는데 여기에는 또 로비가 들어간다. 건설회사들이 뇌물을 먹이는 것이다. 뇌물비용은 지방의 하청기업에서 뜯어낸다.
여기서 돈돌리기 게임을 구경해보자. 일단 정부의 예산이 지방으로 들어가고, 이 돈은 다시 지방의 하청기업에 쓰여지고, 하청기업은 건설회사에 뇌물로 상납하고, 건설회사는 지역구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전달하고, 국회의원은 이 돈을 다시 선거때 매표행위에 사용한다. 돈은 돌고 돈다. 그 과정에서 팔리는건 시멘트다.
일본도로공단은 우리돈으로 260조원에 해당하는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다. 일본인들은 열도의 섬과 육지를 연결하고, 바다밑으로 도로를 내고, 고속도로를 2층으로 올리는데, 이 엄청난 돈을 사용했다. 일본은 전국이 이로서 시멘트화되고 말았다.
왜 이런일이 일어났는가? 지진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자연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증을 앓고 있다. 자연 뿐만이 아니라 일본은 모든 면에서 꼼꼼하게 통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묘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고 공기업은 공식적으로 부패한다. 인류는 아직 절대권력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발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공기업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발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을 예로 든다면 왕년에 10여차례의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자잘한 공사의 입찰에 참가한 적이 있다. 서울시청에서 시행한 어떤 공사를 예로 들어 내가 직접 일을 한 경험으로 말하자면 실제 비용은 50만원 정도였다.
말하자면 내게 50만원을 주고 그 공사를 맡겼다면 내 혼자 사흘정도에 해낼 수 있는 규모의 공사였다. 그때 내가 소속된 업체가 낙찰받은 금액은 500만원이었다. 89년경이다.(정확한 기억은 아님) 그때 서울시장도 와서 현장을 둘러보고 격려하고 갔다.
이 경험으로 알수 있는 것은 서울시의 모든 공사는 대부분 10배 비율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예산을 내버리는가 하면 예산을 버리지 않으면 다음해 예산을 충분히 배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공공기관과 공기업은 사촌이다. 공공기관이 썩었으므로 공기업은 다 이런식으로 썩었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는 언제나 한발짝 뒤처져 일본을 따라가곤 한다. 일본공기업이 썩었다면 한국공기업도 썩은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있는 시민사회의 건전한 상식이다. 모든 공기업은 공공연히 썩었다는 거. 공기업이 썩지 않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다는 거.
공무원, 공공기관, 공기업 할거없이 공자 붙은 모든 것은 반드시 썩는다. 공자가 붙었는데도 썩지않는 경우는 거의 상상할 수 없다. 사회주의자들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어디든지 사람 둘이 모이면 반드시 썩는다. 썩지 않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것은 결국 앞으로 해먹느냐 뒤로 해먹느냐, 노골적으로 해먹느냐 숨어서 해먹느냐의 차이에 불과하다. 월든 소로가 말한 바 '최소의 정부가 최선의 정부'라는 언명은 절대 진리이다. 모든 정부는 정부의 등장을 방지하는데만 정부로서의 존재이유를 찾을 수 있다.
상비군이 자신의 존재이유로서의 전쟁을 발명해내었듯이, 상비정부는 자신의 존재이유로 정쟁을 발명해낸다. 상비정부를 해체해야만이 비로소 정치가 이루어진다. 정부는 상설되는 것이 아니라 소집되는 것이어야 한다.
"상비정부가 존재해서 안된다"는 대전제를 거스르는 어떤 진보주의 이론도 실은 교묘한 사기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해먹자" 이거다.
자본주의가 강도라면 사회주의는 사기다. 강도범과 사기범을 경쟁시키므로서 도둑들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고 인민의 이익을 취하자는 것이 시민의 지혜이다.
일본이 몰락하는 이유는 시멘트병 때문이다. 모든 일본인은 시멘트병이라는 특이한 질환을 앓고 있다. 이 질환은 지진 때문에 생겨났다. 모든 일본인은 지진에 대한 공포를 천형처럼 안고 살아간다. 이 지진공포증을 치료하는 기적의 묘약이 발명되었으니 이것이 곧 시멘트이다.
"시멘트를 처발라라. 두텁게 두텁게 시멘트를 바르면 지진을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은 일본을 휩쓰는 시멘트교의 교리다. 일본은 예로부터 지방자치제가 발달했다. 지자체가 하는 일은 두텁게 시멘트를 바르는 일이다. 황소개구리는 일본을 거쳐 들어왔지만 일본에는 황소개구리문제가 없다. 황소개구리가 서식할 습지가 없기 때문이다. 시골의 작은 농수로까지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버렸기 때문에 황소개구리가 살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빈부차가 적다. 빈부차가 적은 이유는 발달된 지자체를 중심으로 시멘트를 두텁게 바르는 방식으로, 농민과 지방민을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예산은 선거를 고리로 지방으로 내려간다. 지방에 전달된 예산은 시멘트를 두텁게 바르는데 쓰여진다.
선거다. 지역구의원들은 지방개발공약을 내건다. 그것은 시멘트를 두텁게 바르겠다는 공약이다. 시멘트를 발라야 지방에 일자리가 생기고, 지방경제가 살아난다. 의원들은 예산을 따내서 시멘트바르기공사에 쓰는데 여기에는 또 로비가 들어간다. 건설회사들이 뇌물을 먹이는 것이다. 뇌물비용은 지방의 하청기업에서 뜯어낸다.
여기서 돈돌리기 게임을 구경해보자. 일단 정부의 예산이 지방으로 들어가고, 이 돈은 다시 지방의 하청기업에 쓰여지고, 하청기업은 건설회사에 뇌물로 상납하고, 건설회사는 지역구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전달하고, 국회의원은 이 돈을 다시 선거때 매표행위에 사용한다. 돈은 돌고 돈다. 그 과정에서 팔리는건 시멘트다.
일본도로공단은 우리돈으로 260조원에 해당하는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다. 일본인들은 열도의 섬과 육지를 연결하고, 바다밑으로 도로를 내고, 고속도로를 2층으로 올리는데, 이 엄청난 돈을 사용했다. 일본은 전국이 이로서 시멘트화되고 말았다.
왜 이런일이 일어났는가? 지진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자연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증을 앓고 있다. 자연 뿐만이 아니라 일본은 모든 면에서 꼼꼼하게 통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묘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고 공기업은 공식적으로 부패한다. 인류는 아직 절대권력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발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공기업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발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을 예로 든다면 왕년에 10여차례의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자잘한 공사의 입찰에 참가한 적이 있다. 서울시청에서 시행한 어떤 공사를 예로 들어 내가 직접 일을 한 경험으로 말하자면 실제 비용은 50만원 정도였다.
말하자면 내게 50만원을 주고 그 공사를 맡겼다면 내 혼자 사흘정도에 해낼 수 있는 규모의 공사였다. 그때 내가 소속된 업체가 낙찰받은 금액은 500만원이었다. 89년경이다.(정확한 기억은 아님) 그때 서울시장도 와서 현장을 둘러보고 격려하고 갔다.
이 경험으로 알수 있는 것은 서울시의 모든 공사는 대부분 10배 비율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예산을 내버리는가 하면 예산을 버리지 않으면 다음해 예산을 충분히 배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공공기관과 공기업은 사촌이다. 공공기관이 썩었으므로 공기업은 다 이런식으로 썩었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는 언제나 한발짝 뒤처져 일본을 따라가곤 한다. 일본공기업이 썩었다면 한국공기업도 썩은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있는 시민사회의 건전한 상식이다. 모든 공기업은 공공연히 썩었다는 거. 공기업이 썩지 않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다는 거.
공무원, 공공기관, 공기업 할거없이 공자 붙은 모든 것은 반드시 썩는다. 공자가 붙었는데도 썩지않는 경우는 거의 상상할 수 없다. 사회주의자들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어디든지 사람 둘이 모이면 반드시 썩는다. 썩지 않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것은 결국 앞으로 해먹느냐 뒤로 해먹느냐, 노골적으로 해먹느냐 숨어서 해먹느냐의 차이에 불과하다. 월든 소로가 말한 바 '최소의 정부가 최선의 정부'라는 언명은 절대 진리이다. 모든 정부는 정부의 등장을 방지하는데만 정부로서의 존재이유를 찾을 수 있다.
상비군이 자신의 존재이유로서의 전쟁을 발명해내었듯이, 상비정부는 자신의 존재이유로 정쟁을 발명해낸다. 상비정부를 해체해야만이 비로소 정치가 이루어진다. 정부는 상설되는 것이 아니라 소집되는 것이어야 한다.
"상비정부가 존재해서 안된다"는 대전제를 거스르는 어떤 진보주의 이론도 실은 교묘한 사기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해먹자" 이거다.
자본주의가 강도라면 사회주의는 사기다. 강도범과 사기범을 경쟁시키므로서 도둑들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고 인민의 이익을 취하자는 것이 시민의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