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4259 vote 0 2002.09.10 (11:24:59)

-소유와 무소유-

[법정의 무소유]

법정스님이 '무소유' 개정판을 내었다. 76년부터 지금까지 300만부가
팔렸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
은 소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초의 언어, 최후의 언어]

과연 법정이 무소유를 이해하고 있다면 이 글을 쓰지 않는다. 소유는
최초의 언어이며 무소유는 최후의 언어이다. 신이 발주하고 인간이 역
사하여서 문명은 소유와 무소유 사이에서의 얽음이요 진리는 그 설계
도이다.

[20세기의 화두]

20세기의 화두는 단연 '소유/소외'이었다. '무소유', '공유', 혹은 '사유'까
지가 그러하다.

[소 그리고 권]

所有의 所에 대한 對는 權이다. 權利, 人權, 所有權, 또는 모든 權,

所有나 無所有에서 有나 無는 술어일 뿐이다. 일단 배제된다. 깨달음없
는 땡중의 바보같은 소리에 지나지 않고.

[바]

所는 바다. 바가 뭐지? 바? 멀 바? 국어사전에 의하면 '방법 또는 일의
뜻으로 쓰이는 말'로 되어 있다. 어리석은 풀이다.

용례로 보면 '아는 바 없다' -> 아는 방법이 없다? 아는 일이 없다?
어색하다.

해결방법을 찾아라 -> 해결 바를 찾아라? 이건 아니다.
일은 좀 했니? -> 바는 좀 했니? 말도 안된다.

바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바를 모르고 어찌 所를 알것이며 소를 모르고 어찌 소유를 알것이며
소유를 모르고 어찌 소외니 무소유니 공유를 논할 것인가? 어리석다.

소유의 유는 소의 주어에 대한 동사로서 소를 나타내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기차가 간다. / 기차가 가지 않는다'
기차를 모르면서 기차가 가면 어떠하고 아니가면 어떠하다는 말인가?

소를 모르면서 소유가 무엇이며 무소유가 또한 무엇이란 말인가? 의미
없다.

[딸림과 끌음]

술어는 주어에 딸려있다. '가다/아니가다'는 '기차'에 딸려있다. 여기서
끄는 것이 주어이며 딸린 것(끌음에 의해 끌려가는 것)은 술어이다.

소는 그 끌개이며 그 끌개에 의해 끌린 것이 그 소유된 바 자산이다.

소유를 이해가 위해서는 이 끌개와 딸림을 이해해야 한다. 나(自我)는
끌개(母體)이며 나의 삶, 나의 재산, 나의 가족, 나의 나라, 나의 모든
것은 그에 딸린(從屬) 것이다.

[아는 바 없다]

'아는 바 없다' <- 여기서 바는 끌개이며 아는 바 없다는 것은 그 끌
개가 없으므로 딸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모른다'와 다르다.

모른다 - 그것이 존재하나 계측되지 않는다. 사건에 관련되어 있으나
설명할 수 없다. (술어, 동사의 부정)

아는 바 없다 - 그것이 원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건에 관련되어
있지 않다. (주어의 부정)

[홍길동은 죽었는가?]

'모른다' - 홍길동을 알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른다.(술어부정)
'아는 바 없다' - 홍길동이 누구인지 모른다(주어부정)

'아는 바 없다'는 식의 표현은 정치인이 즐겨 쓰는 말이다. 無知가 아
니라 無關이다. 否認이 아니라 빠져나가기(발뺌)다.

[끌개와 딸림]

세상은 끌개와 그 끌개에 딸림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곧 構造다. 소유
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조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構造를 확대하면 건축이 된다. 우리는 건물에 깃들어 살고 있다. 곧 집
이다. 끌개는 곧 집이요 딸림은 그 집에 소속된 식구다.

[소유 - 소의 확장]

소는 모든 존재하는 것의 주소지이다. 소유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그 어떤 것의 주소지로 한다는 것이다. 소외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주소지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소유할 수 없다]

공수래 공수거, 인간은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
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어떤 것을 소유하려 한다면
먼저 그것이 존재해야 한다.

그대가 많은 돈을 원한다면 돈을 소유할 수 없다. 돈은 원래 없기 때
문이다.

그대는 그대의 아내도 그대의 가족도 심지어 그대 자신마저도 조금도
소유할 수 없다.

[소유하기에 앞서]

소유는 하나의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과정이다. 먼저 그 과정에 대한
참여가 있어야 한다.

그대는 그대가 창조한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 창조과정에서 그대
가 개입하게 되며 창조과정에 의하여 그대가 그 대상의 끌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소유할 수 없는 것은 그대가 창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대
는 그대의 재산을, 아내를, 자녀를, 창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의 주인인 그대 자신을 그대가 창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대의 소유물이라고 믿는 그대의 아내나 그대의 자녀나 그대
의 재산이나 그대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없는 것은 그대 자신이 그대
가 창조하지 않은 바 그대 스스로 그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로 먼저 자신을 소유한 이후에 대상을 소유할 수 있고 자신을 소유
하기 위해서 자신이 자신을 창조하는 과정이 존재해야만 한다.

[노예와 주인]

노예는 창조과정에 참여하지만 소유할 수 없다. 노예가 수확한 소출은
노예에게 소속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예는 자기 자신을 창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은 창조과정에 참여하지 않지만 소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인은
노예를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을 창조하였기 때문에 인간
이 창조한 문명을 소유할 수 있다. (※ 노예와 주인의 정의는 왜곡되
어 있으나 여기서는 일정부분 유의미하다)

[소유냐 존재냐?]

소유 이전에 존재가 있었고 존재 이전에 창조가 있었다. 창조과정에
개입하고서 만이 존재할 수 있으며 존재하고서야 소유할 수 있다.

우리는 약탈하거나 훔치거나 혹은 시장에서 거래하는 방법으로 창조하
지 아니한 것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는 얼마간의 속임수
가 개입해 있다.

문명은 인류의 공동창조에 속하므로 문명에 속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인
간은 일정부분 소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간접적으로 우리는 시장에
서 거래되는 그것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냐 존재냐?]

자동차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어야 한다. 운전하
지 못한다면 그것은 소유가 아니라 보관이며 지배가 아니라 피지배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많은 자식을 거느려도 한 인
간이 소유할 수 있는 절대량은 그 인간이 탄생 후 지금까지 창조한 총
량에 비례하며 그 제한을 넘을 수 없다.

사용법을 모르고 혹은 사용하지 않으면서 소유한다는 것은 그 대상의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다.

참된 소유는 적극적인 창조의 과정이며 이미 창조된 것을 소유한다는
것은 불능이다. 즉 참된 의미에서 소유는 창조과정으로 완결되며 이미
창조된 것은 소유되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 있어서도.

고로 우리는 이 세상에 이미 창조되어 있는 한 인간을 소유한다거나
혹은 1억원의 재화를 소유한다거나 하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창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소유할 수 없다]

인간이 인간을 소유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창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
로 노예는 기만이며 실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재화를 소유한다. 1백원이나 1천만원을 소유하고 있다. 그것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가치가 완전하게 창출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한 대의 자동차를 소유한다는 것은 그 자동차의 가치가 미실현가치임
을 의미한다. 즉 그 자동차는 사용되지 않았으며 그 가치는 현재 0이
며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가치로 환원될 것을 약속한 데 다름 아니다.

고로 많은 재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많은 재산의 가치창조작업에 자신
이 개입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재산은 명백히 많은 가치를 창조
하는가?

한 인간이 고유한 창의성에 의하여 혹은 부지런한 노동에 의하여 창조
할 수 있는 총량은 한정되어 있다. 고로 인간이 많은 재산을 소유한다
는 것은 많은 기만을 진열함에 다름 아닌 것이다.

[창조는 사랑이다]

인간이 인간을 소유할 수는 없다.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왜냐
하면 신이 먼저 창조하고 난 다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많은 부분을 창조하고 있다. 곧 사랑이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미실현가치를 창조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운행하지 않은 자동차는 그 가치가 창조되지 않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그 참된 가치가 창조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사랑의 방법으로 인간을 소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에 의
해 실현된 모든 가치는 전적으로 창조된 것이며 그것은 그 창조한 사
람의 몫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고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잠재된 미실현가치를 충분
히 발굴하여 드러내고 실현함으로서 창조한다는 것이며 그 창조한 만
큼 그대의 남자나 혹은 여자를 또는 자녀를 소유할 수 있다.

[소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소유하기 앞서 존재한다는 것이며 존재하기 앞서 창조한다는
것이며 창조하기 앞서 사랑한다는 것이며 사랑하기 앞서 역할한다는
것이다.

[무소유, 혹은 공유]

법정스님은 '무소유'라고 말했다. 그것이 소유의 부정, 문명의 부정이라
면 틀린 생각이다.

변산공동체의 윤구병님은 무소유는 곧 공유라고 말했다. 역시 충분하
지 않다. 공유의 개념은 소유에 앞서 존재상태에 대한 적절하지 않은
이해이다.

존재가 역할할 때 곧 소유이며 사적 소유와 공유가 있다. 공유는 공적
인 소유이며 그 역시 소유이다. 국가 혹은 집단이 소유함이 공유이며
이는 소유의 한 형태일 뿐 무소유가 아니다.

공유는 소유를 사적 소유와 공적 소유로 구분한 구체화된 개념이며 무
소유는 소유 이전의 존재로 더 추상화된 개념이다.

소유 이전에 존재가 있었고 존재 이전에 창조가 있었고 창조 이전에
사랑이 있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창조과정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소비 혹은 소외]

마르크스의 소외는 언필칭 휴머니즘에 기초하고 있으나 논리전개상 소
유 이전의 존재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 이후의 소비 단계로 진
행하고 있으므로 역시 무소유와는 거리가 멀다.

사랑->창조->존재->소유->소비/소외

공유 혹은 소외의 개념은 소유 이전의 창조과정에 대한 논의와 지속적
으로 충돌을 유발하는 즉 혼돈된 논의가 된다.

[탐욕 그리고 사랑]

욕망 혹은 분노는 인간의 근원적 에너지원으로서 선하다. 욕망이 없으
면서 사랑할 수 없으며 분노(콤플렉스) 없이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함이
없이 창조할 수 없으며 창조하지 않고 존재는 부정되며 존재하지 않는
바 소유되지 않는다.

죄악은 사랑의 실패이며 그것은 욕망 혹은 분노를 잘 조직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며 무지에 기초하고 있다.

근원의 선은 존재한다. 근원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악은 무지
에 의한 선의 실패이며 역시 선으로부터 비롯된다.

탐욕, 분노는 긍정되어야 한다. 참된 무소유는 탐욕을 혹은 분노를 버
림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탐욕 혹은 분노를 지혜롭게 잘 조
직함으로서 얻어진다.

[무지로서는 사랑할 수 없다]

그대 내면에 선의와 사랑이 충만하더라도 무지로서는 실패할 뿐이다.
악을 결과한다. 고로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완전한 사랑은 완전한 지에 의해 가능하다. 온전한 깨우침만으로 가능
하다. 온전한 소유 역시 가능하다.

[소유한다는 것은 역할한다는 것이다]

깨치라.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라. 가치기준을 전도하라. 보편규범을
해체하라. 부디 깨달으라.

선과 악은 가치판단의 올바른 잣대가 될 수 없다. 호와 오로도 판단할
수 없다. 가치는 역할에 의해서만 참다이 평가된다.

행복이나 불행 역시 가치판단의 잣대가 될 수 없다. 잘 살고 잘 먹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목표가 아니며 인류의 이상 역시 아니다.

[문명의 참된 가치]

문명은 그대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고로 문명에 의하여 불행해졌다
고 한탄하지 말라.

문명은 그대를 선하게 하지 않는다. 고로 문명에 의하여 악해졌다고
한탄하지 말라.

문명은 그대를 좀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 고로 문명에 의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그대 화내지 말라.

부디 착각에서 깨어나라. 더 행복하고자 한다면, 잘 살고자 한다면, 나
빠지지 않기 원한다면 그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인간이 겨우 얻는
데 성공하는 유일한 것은 죽음 뿐이다. 신통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역할하기 그리고 역할의 주인공]

문명이 인간에게 베푸는 것은 역할이다. 문명은 60억 인간 모두를 각
자의 영역에서 주인공으로 만들고자 한다.

사랑하므로서 창조하므로서 우리는 잘하면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러
나 그대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그대가 주인공
으로 성공하여 행복과 선과 우월과 권력과 재화를 소비하며 즐기려는
순간 막을 내리고 무대는 파하고 관중들은 흩어지며 모든 것은 사라져
버린다.

[미래를 위하여 약속하지 말라]

신이 인간에게 약속하는 것은 드라마가 전부이다. 그것을 얻을 수 있
지만 얻은 시점에서 막은 내려진다.

건물을 짓지만 입주하여 살지 않는다. 만약 그대가 입주하여 잘 살기
를 원한다면 그 건축을 위한 임시숙소에의 입주가 그대에게 허용되는
전부이다.

인간은 죽고 또 태어난다. 문명이라는 인류의 거대한 건축은 계속된다.
신은 존재한다. 그러나 건축이 끝난 후 천국행의 약속 같은 것은 없다.

고로 그대 재빠르지 않으면 안된다. 결혼하기 전에 충분히 사랑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대가 얻으려하는 그 전부는 그대의 항해가 끝나기 전에 신천지에 도
착하기 앞서 항해의 배 안에서 전부 얻지 않으면 안된다.

[권, 신의 반격]

所의 대칭은 權이다. 권은 인간이 소를 이탈하였을 때 신의 되돌려놓
음이다.

인간에겐 천부의 인권이 있다. 합리성의 이름으로 신의 부지런한 되돌
려놓기가 있다.

권리, 혹은 권력, 인권, 선전권, 소유권, 특허권, 인간이 임의로 소를 침
해하여 멀쩡한 인간을 노예로 만들 때 신은 권의 방법으로 그것을 본
래로 되돌려 놓는다.

인간에겐 천부의 소유권이 있다. 즉 영장으로서 인간의 만유에 대한
소유는 천부의 권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연한 획득]

둘이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이 금을 발견한다면 혼자서 독식하는 것보다
동행에게 조금 나누어 주는 것도 좋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적용하여
두 사람이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다면 이는 권의 침해가 된다.

공평하게 나누어야 할 것을 예측하는 순간 그는 금을 보고도 모른채
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몰래 혼자 와서 금을 파가야지"

고로 금은 시장에 공급되지 않고 자본은 유통되지 않고 신용은 차단되
고 그것은 결국 모두의 손해로 귀결된다.

권이 인정될 때, 민주주의가 부정되고 게임의 법칙이 받아들여질 때
금은 시장으로 공급되고 자본은 유통되며 신용은 증가한다. 모두에게
이롭다.

[소비되지 않는 소유, 소외]

소외는 금이 시장에서 유통된 이후 소비단계에서 발생한다. 소유는 결
국 소비로 귀결된다. 소유는 하나의 가능성이며 신용에 의해 담보된다.

소유가 궁극적으로 소비되지 않으면 시장은 붕괴하며 신용은 해체되고
따라서 소유는 이탈한다.

소외는 소비되지 않는 소유에 의해서 발생하고 이는 시장구조의 불안
정성에서 빚어진다. 부의 편중이 소비되지 않는 소유를 발생한다.

[전략적 소유 - 다 쓰고 죽자]

저축은 죄악이며 재앙이다. 저축 대신에 보장이어야 한다. 모든 소유는
궁극적으로 소비되어야 하며 여기에 전략적 가치판단이 따라야 한다.

[아내를 소비하라]

인간은 평등하므로 남편이 아내를 소유한다던가 자녀를, 제자를, 노동
자를, 약자를 지배할 수 있다는 봉건적 관념은 척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대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아내를 소유할 수 있다. 이때 아
내의 가치는 은닉되고 저축되고 감추어지고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사
용되어지고 드러내어지고 소통된다.

참된 사랑은 아내를, 남편을, 자녀를 적절하게 소비하는 것이다. 소비
하므로서 가치는 이탈한다.

아내는 자유롭게 그대를 떠나고, 자녀는 독립하고, 노동자는 창업하여
독립하고 노예는 반란한다. 그러나 떠남에 의해 독립에 의해 창업에
의해 독립에 의해 그대의 사랑은 완성된다.

[소유에서 소비로]

소비한다는 것은 미래를 위하여 은닉된 가치를 현재에 개방하여 이전
하고 이탈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의 소유물들은 모두 그대에게서 떠나버린다. 그러나 빨
라야 한다. 신이 먼저 그대를 소비하고 그대를 떠나게 하기 전에.

참된 무소유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창조하고 스스로 존재하
며 모든 것을 소유하고 또 그 모든 것을 그대로부터 떠나보내는 것이
다. 신이 그대를 떠나보내기 보다 더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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