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4018 vote 0 2002.09.10 (11:22:54)

책을 바르게 읽는 방법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들

[이장호의 영화보기]

참고 - 씨네21 251호 '한국영화회고록 - 이장호편'

이장호는 많은 영화를 만들었는데 뜻밖에 히트한 경우도 있고 예상외
로 실패한 적도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가 조감독 시절에는 영화 흥행
여부 예측에 족집게였는데 감독이 된 후 예측이 종종 빗나갔다고 털어
놓고있는거다.

왜 감독이 된 후에는 족집게의 예측능력이 떨어졌을까?

흥행은 그 영화의 내적인 완성도 보다는 그 시대의 분위기가 더 영향
을 미친다.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가 잘 쓴 소설이어서 히트한 것이
아니듯이 영화 역시 그 시대 대중의 기호와 문화적 코드를 포착하는가
에 달려있다.

조감독 이장호는 타인의 영화를 평하면서 그 영화의 바깥, 외부를 열
심히 보았는데 감독이 되어 자기영화를 만들게 되자 너무 잘 알기 때
문에 영화바깥보다 영화 내부를 비중있게 고려한 데서 예측력이 떨어
진 것이다.

그의 '어우동'은 대히트를 기록했지만 '깜동'은 실패했다. 깜동이 어우
동보다 더 열심히 만들었기에 흥행을 자신했지만 바깥에서 보기에 깜
동은 어우동의 속편 격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소설 아버지를 이미
읽은 독자들이 영화 아버지를 외면하듯이.

여기서 교훈.. "밖에서 보아야 더 잘 보인다."

[김용옥이 연출하면]

이장호가 실패한 '깜동'이나 임권택이 체면을 구긴 '개벽'은 김용옥이
대본을 쓴 것이다. 김용옥이 대본을 쓰면 영화가 실패한다. 김용옥 연
출, 각본, 감독, 주연의 EBS 노자특강은 대히트를 기록했는데 말이다.

[계몽주의 그리고 낭만주의]

19세기 어떤 문예비평가가 "문화에 있어 진보라는 것은 가구 따위에
있는 장식을 없애는 것이다"라고 선언한 후 일대변혁이 일어났는데 그
래도 한때는 이양호 전국방부장관의 연애편지처럼 속닥하였다거니 해
서 리얼리즘 입장에서 보자면 낭만주의나 모더니즘이나 역시 감정과잉
의 장식적 수사에 지나지 않으니 내 가끔 한마디 해주는 김규항 따위
의 소박한 윤리주의도 내게는 감정과잉의 장식처럼 보이었던 바 ..

이를테면 신경숙이니 은희경이니 아줌마군단의 폐해, 김수현드라마의
한계 역시 감정과잉의 장식이 본질을 압도함에 있거니와 나아가

나한테 줄곧 욕얻어먹는 라즈니시 따위 사꾸라들 또한 감정과잉 형식
과잉의 그 장식이 본질을 압도함에 있거니와 나아가

이를테면 개다리소반이라도 하나 만든다면 조선시대 선비들의 책상처
럼 단아하고 절제된 즉 본질에 있어서의 실용성이 앞선 것과 18세기
서구 왕실가구처럼 눈이 현란한 장식위주의 가구가 그 격이 같을 수
없는 것은

인디안의 울긋불긋한 깃털장식이 야만을 노출함에 다름아니고 유목민
의 덜렁덩렁한 귀고리며 팔찌며 은제 단추며 역시 장식이 본질을 가리
는데서 가치평가가 이루어지는 바

감정과잉, 장식과잉, 본질의 함몰,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보건데 본래
문예라는 것은, 혹은 문화라는 것은 ..

미망인과 여왕봉..이 의미를 알것인가? 가난한 시골 서생이 먹고 살기
위하여 파리나 비엔나로 입성하였대서 돈많고 할 일없는 유한마담이나
꼬셔서 후원자를 만듦에 있어서 시라도 한수를 땡기고 소설이라도 한
페이지 써볼양이면

거래함에 있어서, 허영심에 가득찬 귀부인이 원하는 것은 성적인 자유,
극도의 문란한 풍속과 청교도적인 엄숙주의..위선적인 윤리의식의 모순

예를 들자면 러시아의 압제자 에카테리나여제는 디드로, 달랑베르, 루
소 따위 백과전서파 계몽주의 지식인들을 후원하였는데 80명의 남첩을
거느렸던 그녀의 바람기를 옹호하는 것은 자유주의 지식인이어서

위선의 극치..계몽주의가 옹호하는 것은 인간해방, 귀족제도의 타파, 그
러나 그들 계몽주의자를 후원하는 것은 귀족, 압제자, 전제군주..이 기
막힌 모순

이른바 살롱문화하는 것이 그 본질이었던 바 돈많은 귀족부인은 가난
한 계몽주의 지식인과 거래하면서 그들을 옹호하고 자신의 허영과 바
람기를 충족시키는 반대급부로 서재라도 한칸 마련해주고 경제적 후원
을 해주었던 것이 살롱문화였기로서니

무엇인가? 계몽주의는 구체제 타파에 앞장선다. 그 계몽주의를 후원하
는 것은 구체제의 중심인 귀족들이다. 계몽주의의 활약에 의해 구체제
는 무너지고 구체제의 붕괴로 하여 살롱문화도 종말을 고하게 되며 계
몽주의 역시 종말을 고하고 부르조아 시대가 들이닥치면서 문예부흥은
끝나게 된다.

여기서 기막힌 역설..살롱문화..허영기와 바람기를 충족하고 자유를 얻
으려는 유한마담들과 그들의 살롱을 드나들면서 정신나간 머저리 귀부
인을 칭송해주고 이른바 상류층문화라는 것에 기생하면서 몇푼 잔돈을
얻어썼던 가난한 계몽주의 지식인들의 그 추악한 창녀근성의 위험한
거래의 결과 살롱문화와 계몽주의의 동반몰락 그리고 살벌한 부르조아
시대..문예는 죽고 장식은 걷히고 거품은 꺼지고 시인은 자살하고 문예
인플레는 사라진다.

18세기는 문예가 거품이었고 문예가 인플레였다. 그 한가운데 유한마
담의 살롱이 있었고 거기 출입하며 푼돈을 얻어쓰던 계몽주의사상가가
있었다.

에밀을 쓴 루소는 자기 자식 다섯명을 전부 고아원에 보냈다. 그러면
서 어린이의 인권에 관하여 진보적인 주장을 하였다. 이 기막힌 위선..

백과전서를 쓴 디드로는 농노해방을 부르짖으며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한편 러시아의 압제자 에카테리나여제로부터 고린 돈을 얻어썼다.

가구에 장식이 사라지면서 문예에 거품이 사라지면서 현대가 탄생하였
다. 부르조아의 시대가 열리면서 살롱의 문은 닫혔고 유한마담들은 글
쟁이들을 불러모아 놓고 몰래 바람을 피울 필요도 없이 그냥 이혼하고
새서방을 얻어 살림을 나갔고 글쟁이들은 사서나 회계로 취직하였다.

그리하여 문예는 죽었고 거품은 꺼졌고 인플레는 사라졌으며 시인은
떠났고 소설가는 회사원이 되었고 모든 것이 바로잡아졌다.

위선과 거짓의 시대..문예가 거품이었던 시대, 가구가 장식이었던 시대
그 시대는 갔다. 정녕 다시오지 않을 것이다.

그대 감탄하지 말라. 참회하지 말라. 감동하지도 말라. 감격하지 말라.
노래하지 말라. 까불지 말라. 거품일 뿐이다.

[나의 글쓰기와 글읽기]

나는 논점을 파한다. 그 논의의 기준이 되는 가치판단규칙을 까발기고
그 근거없음을 입증하므로서 논의가 무의미함을 증명한다.

A나 B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쪽이든 무의미함을 증명하므로서
그러한 판단 자체를 무위로 돌린다.

예)
'공자는 詩로 일으키고 禮로 서고 樂으로 이룬다' 했다. 여기서 볼 것
은 과연 시로 일으키는가의 진위여부가 아니라 시, 예, 악은 '빼고 일
으키고 서고 이룸'이 하나의 기승전결적인 자기완결형태를 가지고 있
다는 점이다.

노상 말하는 바는 이렇게 어떤 명제의 진위를 판단하기 앞서 산문의
구조를 파악하라는 것이다. 공자의 말이 옳다고 하면 과연 시가 일으
키기 때문에 옳은 것이 아니라 기승전결식의 자기완결형 접근방법이
옳은 것이다.

공자가 효를 강조했다해서 효도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 효나 예를
예로 들어 문명과 야만을 구분했다는 점이 옳은 것이다. 빌어먹을 효
도이겠는가? 고로 우리는 효도할 필요도 예법을 따를 필요도 없지만
문명과 야만의 구분에는 동의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석가나 예수나 노자에게서 취함도 이와 같다. 그들의 명제는 엉
터리지만 언어구조 측면에서 그들의 접근방식에는 반드시 배울 점이
있다.

거품을 걷고 이제 진실을 보자. 효니 예니 윤리니 도덕이니 다 거품이
아니겠는가? 18세기 가구 장식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현대란 무엇인
가? 그것은 가구의 장식을 제거하는 것이다.

유목민의 화려한 칼라, 인디언추장의 요란한 깃털, 티위오리진의 어지
러운 칼자국문신, 거품이 아니던가?

의식과잉, 감정과잉, 윤리과잉, ..척과잉..거품을 걷자는 것이다.

창녀근성에 가득한, 의식과잉, 감정과잉, 낭만과잉, 윤리과잉, 절망과잉
의 서푼짜리 글쟁이들에게 말함..거품을 끄는 것이 현대이며 진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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