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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26 vote 0 2025.06.12 (15:23:27)


   구조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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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다는 원래 곰이었다. 420만년 전부터 고기맛을 잊어버리고 대나무를 먹게 되었다. 우리는 진화가 필요한 형질을 획득하는 플러스 변화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무언가를 잃게 되는 마이너스 변화다. 420만년 전에 판다는 고기맛을 느끼는 아미노산 수용체를 잃었다.


    플러스 변이로는 진화할 수 없다. 내부의 밸런스가 깨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조의 모순이다. 하나가 변하면 전부 변해야 하고 전부 변하지 못하므로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화는 짧은 시간에 일어나고 금방 멈춘다. 우리가 신종을 관찰하기 어려운 이유다.


    진화의 트리거는 무언가의 손실 형태로 존재한다. 진화의 본질은 구조의 비가역성이다. 늑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인간의 손을 탄 개는 다시 늑대 무리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남아메리카의 원숭이는 아프리카에서 왔다. 대륙이 이동하여 아프리카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진화는 비가역성에 따른 구조적 필연이다. 진화를 우연으로 설명한다면 틀렸다. 진화는 구조의 모순에 따른 밸런스의 복원력에 의해 강제된다. 부분의 변이는 전체의 밸런스를 파괴하므로 제거된다. 종과 환경의 밸런스가 진화의 자궁이다. 그것을 생태적 지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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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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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을까? 사냥설, 직립설, 지능설, 도구설 등이 알려져 있다. 틀렸다. 판다가 단번에 미각을 잃었듯이 인간은 오백만년 전에 풀을 먹는 능력을 잃었다. 잎을 먹지 못하므로 나무를 떠났다. 대체재를 찾아야 한다. 채집활동으로 잡식을 하게 되었다.


    나무를 떠난 인류의 조상은 먹을게 없어서 굼벵이와 지렁이를 먹었다. 그것은 강제된 것이다. 강제성은 구조적 필연이다. 강제되므로 우연이 아니다. 막대기로 땅을 파서 지렁이를 먹고 돌로 썩은 나무를 부숴 굼벵이를 먹었다. 도구의 사용이다. 문제는 힘을 쓸 수 있는가다.


    직립하지 않으면 하체의 힘을 쓸 수 없으므로 채집을 못한다. 직립은 도구의 사용에 따른 구조적 필연이다. 인간이 나무를 떠나 곧바로 석기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통나무를 들어올리고 바위를 넘어뜨려서 작은 동물을 채집하려면 체중을 실어야 한다. 직립해야 가능하다.


    지렛대의 원리 때문이다. 물체를 들어올릴 때는 하체를 지렛대로 사용한다. 인간이 직립하지 않으면 신체가 지렛대로 작용하지 않는다. 팔힘 만으로는 통나무를 밀어내고 작은 동물을 잡을 수 없다. 인간의 긴 하체는 지렛대다. 일은 손으로 하지만 힘은 하체에서 받쳐준다.


    사냥 가설은 틀렸다. 고대 인류가 하루종일 사슴을 쫓아서 사슴을 지치게 만들어 사냥했다고 하지만 죽은 사슴을 해체하지 못한다. 침팬지의 팔힘으로는 말가죽을 찢지 못한다. 말가죽은 질겨서 말이 가시덤불 속을 달려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 도구 사용이 아니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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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의 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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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의 자궁은 생태적 지위다. 생태적 지위는 종과 환경의 밸런스다. 자궁은 완전하다. 무언가를 잃어서 밸런스가 무너졌을 때 밸런스의 복원은 강제된다. 무너진 자궁을 복원하면서 밸런스를 갈아타는 것이 진화다. 잎을 먹는 원숭이 밸런스에서 채집하는 인류 밸런스로 바뀐다.


    도구와, 직립과, 지능은 밸런스 복원 과정에 강제되며 그것은 부수적 효과다. 마이너스는 강제한다. 무언가를 잃으면 궁하다. 궁즉통이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낸다. 반면 플러스는 강제가 아니다. 그냥 잎을 먹으면 되는데 왜 힘들게 사냥을 하지? 원숭이가 먹는 잎은 흔하다.


    기후변화로 아프리카가 건조해져서 사막이 되었다고? 먹이를 찾아 이동하면 된다. 변이로 인해 풀을 소화시키는 장내 미생물을 잃어버린 고대 인류가 나무에서 내려왔다. 초식을 하려면 장이 길어야 하는데 장이 짧아졌다. 장이 짧으면 허리가 날씬해져서 허리 힘을 쓰게 된다.


    하체 힘을 써야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팔힘 만으로는 체중을 싣지 못해 바위를 들어올리지 못한다. 초식을 버리면 도구와 직립은 자동이다. 지능은 중요하지 않다. 지능은 고대인류 간의 경쟁에 의해서 발전했다. 씨족에서 부족으로 커지면서 전쟁에 의해 지능이 발달하였다.


   호주와 태즈매니아에 고립된 부족민은 지능이 낮다. 정글에 고립된 식인종도 마찬가지다. 식인은 교류의 거부다. 교류하지 않으므로 전쟁도 없다. 안다만 제도에 고립된 부족민은 불을 사용하지 않는다. 도리어 퇴행했다. 전쟁을 하면 동료와 협력하게 되므로 지능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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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의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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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진화 순서는 다음과 같다. 소화기관 변이로 장내 미생물 활동 축소> 나무에서 땅으로> 내장의 축소> 날씬해진 허리> 하체 힘의 사용> 도구의 사용> 직립보행> 장거리 추적 사냥> 사회적 협력> 언어의 등장> 대집단 발생> 전쟁의 등장> 종교의 출현> 농업의 출현> 문명의 발전.


    중요한 점은 생태적 지위가 요구하는 환경과의 밸런스에 의해 진화의 자궁이 진화를 강제한다는 점이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내려온 이후로는 일사천리다.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장이 짧아져서 장내 미생물의 도움이 충분하지 않으면 풀에서 충분한 칼로리를 획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석기는 고도로 발달한 것이다. 나무를 떠난 초반에는 땅을 파서 지렁이를 잡고, 통나무를 들어올려 굼벵이와 작은 동물을 찾고, 가공하지 않은 돌로 뼈다귀를 부수어 뇌와 골수를 빼먹고, 바위를 치워 개구리를 잡는 정도였다. 당기는 힘이 아니라 미는 힘을 쓰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는 힘에 맞게 신체구조가 변한 결과 마침내 도구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날을 세워서 가공된 석기는 그 이후에 사용되었다. 직립보행은 미는 힘을 사용해야 가능하다. 직립보행이 아니면 도구를 사용해도 힘이 약하다. 손목과 발목과 허리가 가늘어져야 도구를 쓸 수 있다.


   진화는 강제된다. 강제성이 아니면 이론이 아니다. 그럴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면 주변 환경과 결이 어긋나서 정착되지 않는다. 우연히 얻은 형질은 금방 사라진다. 우연히 석기를 사용한 원숭이가 있어도 기술이 자손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밸런스의 강제가 진화의 엔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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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성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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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마이너스다. 마이너스는 강제한다. 강제하지 않으면 인간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팔을 다친 원숭이는 직립보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고기맛을 느끼는 미각을 잃어버린 판다는 대나무를 먹지 않을 수 없다. 잃은 자가 얻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진보의 엔진은 마이너스다.


    무언가 좋은게 추가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추가되면 밸런스가 무너져서 주변과의 호환성을 잃는다. 신체의 다른 부분과 결이 어긋난다. 하나가 바뀌면 거기에 연동되어 전체가 다 바뀌어야 하는데 다 바꿀 수 없으므로 하나도 못바꾼다. 우연히 추가된 변이는 슬그머니 사라진다.


    백인 탐험가 일행이 돌도끼를 쓰는 정글의 부족민들에게 쇠도끼를 선물한 이야기가 유명하다. 몇 개월 후 탐험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들렀더니 쇠도끼를 버렸더라고 한다. 쇠도끼 하나로는 부족하다. 전부 바꿀 수 없으므로 포기한다. 부분적 변화가 모여서 진화하는 일은 절대 없다.


    마이너스 변이가 진화의 자궁을 만든다. 결핍은 채워야 하므로 변이가 강제된다. 풀을 못먹게 되어 나무를 떠난 원숭이는 손해를 봤지만 대신 경쟁자가 없는 채집환경을 독점하게 되었다. 경쟁자가 없으므로 열성인자가 살아남아서 급격하게 진화한다. 진화의 속도는 의외로 빠르다.


    보통은 변이가 일어나도 열성인자가 개체수에 희석되어 사라진다. 늑대 무리에서 우연히 개가 나와도 인간이 데려가서 키우지 않으면 다시 늑대로 돌아간다. 목이 짧은 기린 무리에 목이 긴 기린이 하나 출현해도 없던 일이 된다. 목만 길어서는 신체 밸런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리적인 격리도 중요하다.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이에 맞게 진보의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 결함을 만들어 진보를 강제하는 구조에 가두지 않으면 인간은 진보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잃어서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한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지정학적 구조는 진보를 강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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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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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을 짓는 방법은 플러스법이다. 주춧돌과 기둥과 벽돌을 하나씩 모아 차근차근 건축하면 된다. 불이 타는 것은 마이너스법이다. 자연의 법칙은 불이 타는 것이다. 우주의 팽창, 생물의 진화, 문명의 진보, 기업의 발전은 우연히 붙은 불이 꺼지지 않아서 계속 옮겨붙는 것이다.


    불은 복제된다. 복제는 완전해야 한다. 집은 하나씩 자재를 모아 건축하면 되지만 불은 처음부터 모두 갖추어야 한다. 산소와, 연료와, 열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불이 붙지 않는다. 산소와 연료와 열이 불의 자궁이다. 자궁이 갖추어진 다음에는 일사천리다. 반드시 자궁이 있다.


    환경과 종과 유전자가 모여서 만드는 생태적 지위가 진화의 자궁이다. 다윈설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건축은 인간이 하는 것이고 자연은 무언가를 파괴할 뿐이다. 태양이 파괴되어 그 에너지로 지구의 생명이 자란다. 무언가 파괴되지 않으면 변화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지정학적 환경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진보의 자궁을 만든다. 이 셋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진보는 없다. 변화는 밸런스를 깨기 때문이다. 밸런스를 지키려는 복원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게 보수주의다. 현상을 유지하려는 완강한 보수반동의 힘 때문에 플러스는 실패다.


    지리적 잇점과 넓은 영토와 매장자원은 지정학적 환경이다. 진보의 토양이 갖추어진 셈이다. 민주주의는 집단의 방향전환을 끌어낸다. 지본주의는 부적격자를 제거한다. 환경의 지원, 집단의 부단한 방향전환, 부적격자 제거의 3박자가 갖춰지지 않으면 진보의 엔진은 없다.


    조금씩 진보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근본이 되면 나머지는 자동이다. 닫힌계 내부 자원들의 상호작용에 따른 유체의 압력에 의해 진보는 강제된다. 상호작용을 끌어내는 것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집단을 유체로 만들면 자발적 진보가 가능하다.


    집이 강체라면 불은 유체다. 진보는 유체의 압력에 의해 물이 흐르듯이 저절로 되지만 최초의 불씨는 어떻게든 조건을 맞춰줘야 한다. 최소한의 물꼬를 터주면 이후로는 순조롭다. 국제분업 구조에서 역할을 얻으면 진보의 자궁이 작동한다. 무언가를 잃어야 자궁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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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성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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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거짓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환경이면 일단 거짓으로 봐야 한다. 진실은 거짓이 불가능한 구조에만 존재한다. 속일 수도 있고 속이지 않을 수도 있다면 일단 속인다고 봐야 한다. 만약 속이지 않았다면 장차 속이기 위한 빌드업이다.


    음모론이 거짓인 이유는 거짓이 물리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속일 수 있는데 속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속이는 사람이 전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속일 수 있는데도 속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집단에 리스크가 된다. 거짓이 없는 사회는 거짓말에 취약한 사회다.


    자연의 진화원리나 인간의 진보원리나 같다. 진보의 본질은 강제성이다. 집은 선택되고 불은 강제된다. 유럽은 수십 개의 나라가 경쟁하므로 진보가 강제된다. 중국은 천하가 통일되어 경쟁이 없으므로 강제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발전이 강제되는 점이 사회주의와 다르다.


    인간의 행위도 강제된다. 욕망에 의해 선택된다는 생각은 틀렸다. 집단의 무의식이 작용하므로 호르몬에 의해 강제된다. 어떤 사람의 어떤 행동은 흥분 때문이고, 흥분은 호르몬 때문이고, 호르몬은 집단을 의식한 결과다. 창피하고 어색한 느낌은 집단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은 유혹이 아니라 회피다. 좋은 것을 찾는게 아니라 나쁜 것을 피한다. 맛있는 밥을 원하는게 아니라 배고픔의 고통을 피한다. 이미 먹기로 결정한 상태에서 이왕이면 맛있는 것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행위를 추동하는 근본이 아니다.


    집이냐 불이냐다. 집의 건축은 적당히 지으면 된다. 돈을 벌어 층수를 높이면 된다. 불은 멈출 수 없다. 도망쳐야 한다. 물살에 떠밀려 계속 간다. 인간의 진실은 강체를 수집하는 플러스가 아니라 유체의 압력에 떠밀리는 마이너스다. 이에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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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체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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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인다. 길은 원래 구불구불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유학자 숙손통에 대한 평가다. 에너지는 유체이고, 유체는 파동이고, 파동은 간섭한다. 곧은 길이 굽어보이는 이유는 양자역학의 불연속성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파동의 보강간섭 때문이다.


    존재는 유체다. 유체는 인간의 의도와 반대로 움직여서 숱한 역설을 일으킨다. 유체는 원래 가려는 방향의 반대쪽에 먼저 조치한다. 왼쪽 깜박이 넣고 오른쪽으로 핸들 꺾는다. 닫힌계 내부에서 지렛대를 만들고 가기 때문이다. 그냥 가는게 아니라 내부에 길을 만들어서 간다.


    강체 - 주어진 길을 간다.


    유체 - 먼저 길을 만들고 그 다음에 간다.


    유체는 닫힌계 내부에 대칭을 만들고 축을 움직여 가려는 방향의 반대쪽을 때려서 되돌아오는 반작용의 힘으로 간다. 뱀은 몸을 S자 모양으로 꼬아서 간다. 사실은 사람도 유체다. 에너지의 방향을 파악해야 한다. 사람은 발로 뒷땅을 밀어서 간다. 반대쪽을 밀어서 전진한다.


    겉보기로는 전진하지만 에너지는 반대쪽을 밀고 있다. 줄다리기는 줄을 당기는 시합이 아니라 발로 땅을 미는 시합이다. 반대쪽으로 이동하는 시합이다. 에너지는 유체다. 유체는 닫힌계를 만들고 내부에 축과 대칭을 만들어 길을 닦은 다음 전진하므로 의도와 반대로 된다.


    에너지는 반드시 사전작업을 한다. 집단은 유체다. 유체는 길을 만들고 간다. 집단은 권력을 만들고 간다. 생물의 진화는 환경과의 밸런스로 자궁을 이룬다. 자궁은 유체다. 닫힌계는 유체다. 진보는 유체다. 시장은 유체다. 유체는 파동의 보강간섭이 에너지를 출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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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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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는 강제된다. 첫 단추를 잘 꿰어 진보의 자궁이 만들어지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자궁은 강제력이 있다. 강제력은 물리학의 영역이다. 진보의 전략은 물리적 가능성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옳으냐 그르냐의 도덕논리에 잡혀 있는게 보통이다. 물리적 제압에는 돈과 실력이 필요하지만 도덕의 논리싸움에는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입진보가 실패하는 이유다.


    귀납과 연역의 모순이다. 귀납은 논리에서 심리를 거쳐 물리에 이르러 집단의 구성원 모두를 가담시키는 것이고 연역은 결정된 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진화가 강제된다는 말은 연역과정에 해당된다. 즉 집단이 결정한 것을 실천하는 문제다. 실천하려면 이겨야 된다. 이기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스파르타의 권위주의를 이기지 못하면 그럴듯한 논리도 필요없다.


    인간의 행동은 논리학에서 심리학을 거쳐 물리학으로 결판난다. 그 과정에 개인의 생각이 집단의 의지로 바뀐다. 심리학이 중간 연결고리가 되어 개인의 문제를 집단의 문제로 확대하면 결국 힘싸움으로 결판난다. 최후에는 돈으로 이기거나 전쟁으로 이긴다. 논리와, 심리와, 물리가 헤겔의 정반합을 이루며 이중의 역설을 성립시킨다. 반대편으로 갔다가 다시 반대의 반대로 간다.


    집단의 의사결정에는 반드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이 필요한 이유다.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고 한번은 엎어졌다가 회복된다. 헷갈리는 이유는 후진국은 이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후진국은 선진국의 시행착오를 답습할 이유가 없다. 선진국은 반드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이 없으면 집단의 구성원 일부가 가담하지 않아 동원력이 약해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윤석열 일당의 반동을 한 번 하고와야 이재명호의 전진에 힘이 실린다. 반동을 거치지 않으면 집단 전체가 동원되지 않아 속도를 내지 못한다. 왼쪽 깜박이를 넣어서 왼쪽 힘을 빼놔야 오른쪽으로 꺾는데 힘이 실린다. 이는 집단이 유체이기 때문이다. 내부에 출렁임을 만들어 파동의 보강간섭을 만들어야 권력에 힘이 실리고 자원을 전부 동원하여 탄력을 받아서 속도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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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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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론은 세상을 변화로 보고, 유체로 보고, 집합으로 본다. 구조론 반대는 원자론이다. 원자론은 세상을 불변으로 보고, 강체로 보고, 원소로 본다. 원소는 집합에서 떨어져 나온 개체다. 개체는 변화에 드는 비용을 조달하지 못하므로 원자론은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인류의 정신을 지배해 온 사상은 원자론이다. 인류가 틀렸다. 구조론의 유체중심적 사고로 갈아타야 한다.


    구조론 세계관 : 세상은 유체다. - 변화는 마이너스다. - 변화는 강제된다.


    원자론 세계관 : 세상은 강체다. - 변화는 플러스다. - 변화는 선택된다.


    구조는 연결이다. 연결의 접점은 공유된다. 공유의 효율성을 통해 비용을 조달하므로 자발적 변화가 가능하다. 변화는 에너지의 방향전환이다. 궁극적으로 우주에 방향전환이 있을 뿐이다. 에너지는 파동이고 파동은 유체다. 우주는 유체다. 원자는 강체다. 강체는 변화할 수 없다. 강체가 변하면 깨지기 때문이다. 유체의 방향전환에 따른 순서와 방향의 법칙으로 세상은 모두 설명된다.


    변화에는 방향이 있다. 변화는 언제나 전체에서 부분으로 가는 일방향성을 가진다는 것이 엔트로피 증가 법칙이 말하는 비가역성이다. 전체는 자원의 공유를 통해 변화의 비용을 조달하지만 부분은 비용을 조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닫힌계 안에서 전체가 부분으로 나눠지는 변화는 있어도 그 역은 없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는 대개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되는 귀납의 오류다.


    헤겔 변증법은 유체의 성질을 잘못 이해한다. 인간의 인식은 귀납적이다. 부분의 논리에서 집단의 심리를 거쳐 물리로 결판낸다. 구조를 모르는 지식인은 논리로 덤비지만 호환성 문제가 생긴다. 논리는 부분을 건드리고 부분의 변화는 전체와 결어긋남을 일으키므로 강력한 보수의 저항에 직면한다. 하나를 바꾸려다 전부 바꾸거나 전부 바꾸지 못하면 하나도 바꾸지 않는게 심리다.


    논리는 사건의 범위를 좁혀서 속인다. 물리의 검증은 반대로 범위를 넓힌다. 그것이 구조다. 구조는 엮여서 다른 부분과 연동된다. 하나가 참이면 전부 참이고 하나가 거짓이면 전부 거짓이게 된다. 여기서 검증된다. 구조적으로 참이면 참이다. 전체가 참이면 참이기 때문이다. 참은 작동한다. 작동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구조의 공유에서 유도되는 효율성에서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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