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3819 vote 0 2011.04.05 (00:08:44)

 

 

비틀즈의 let it be

무슨 뜻일까? 혹자는 ‘순리에 맡겨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혹자는 ‘내버려두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대로 될지어다’로 번역한 것도 있더라. 대략 매끄러운 번역이기는 하지만 지나친 의역의 소지가 있다.


직역해야 진짜 의미를 안다. 문제는 be와 is의 차이다. is는 it에서 온 말로 턱으로 눈앞의 사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be는 by와 통하는 말로 입술로 어떤 추상적인 사건의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너 지우개 있냐?"

"너 아버지 있냐?"

 

같은 '있다'라도 두 말은 쓰임새가 다르다. 아버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있기는 있는데 그게 눈앞에 있는 물체가 아닌 경우가 있다. 그것은 주로 포지션이다. 눈에 보이는 물건은 is이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포지션은 be다. 이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바’다.


바는 ‘아는 바 없다’는 식으로 다른 말에 붙여쓰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바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필자는 20살 무렵 ‘바’를 깨닫기 위해 3년 이상 줄곧 생각했다. 그리고 '바를 깨닫는 것이 깨닫는 것이다' 하고 말하고 다녔다. 물론 3년동안 밥먹고 딱 그것만 줄곧 생각한 것은 아니다.)


‘바’는 ‘바로’와 가까운 말로 어떤 소속, 어떤 포지션의 존재를 나타내며,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다른 어떤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가까운 곳에 속해 있다는 뜻이다.


'바'는 공간적으로 근처에 달라붙어있다는 뜻이며, 동시에 추상적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져 있다는 뜻이다. 바는 바로다. 기승전결로 곧장 포지션이 연결되는 것이 by다. 말하자면 축구시합에서 바로 패스를 받을 수 있는 포지션이 by다. 곧 be다. ‘바’다. 기성용과 차두리 콤비처럼 딱 붙어있는 단짝이다.


let it be는 '그것이 거기에 소속된 채로 있도록 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대로 될지어다’가 그럴듯하다. 물론 아주 딱 맞는 말은 아니다. ‘내버려두라’거나 ‘순리에 맡겨라’도 좋은 표현이기는 하지만 과잉의역의 소지가 있다. '그냥 있는대로 두라'고 해도 되겠다.


'내버려두라'고 하면 '버리다' 때문에 포기하라는 인상을 주어 약간 허무하다. '순리에 맡겨라'고 하면 어떤 법칙에 의존하라는 뜻이 되며 너무 엄격하다. 이 둘은 서로 충돌한다. '내버려두라'는 너무 소극적이고, '순리에 맡겨라'는 너무 적극적이다. ‘그대로 될지어다’가 그나마 본래의 의미에 가깝다.


let it be는 '사명이 이루어질 거'라는 긍정적 표현이다. 결코 ‘냅둬유’가 아니다. ‘내비도’가 아니다. 어떤 위력적인 법칙에 맡기고 손떼라는 말도 아니다. 직역하면 let it be는 하라+그것+바(소속, 포지션)다. 쓸데없이 건들어 파토내지 말고 이것이 속해 있는 자연스러운 그 결대로 하라는 거다. '그 있는 바를 따르라'다.


왜 부바키키프로젝트를 하는가? 번역이 엉터리이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님이 주신 지혜의 말씀이 '깝치지 말고 순리에 맡겨라'는 권위적인 말씀일 리도 없고, '얌마 그냥 냅둬!' 하는 자포자기의 말씀일 리도 없기 때문이다. 각자의 맡은 '바'대로 이루어진다는 축복의 말씀일거라.(실제로는 폴의 어머니를 뜻하지만 종교적인 맥락상.)

 

폴 매카트니가 음반이름을 'get back'로 하려고 했는데 존 레논이 반대했다는걸 보면 '원래대로 두어라',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뜻이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멤버들이 분열되기 이전의 좋았던 처음 모습 그대로 두어라는 뜻.


 *** 동두천에 소요산이 있고, 소요산에 자재암이 있고, 자재암에 원효굴이 있다. '소요자재'는 장자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는데 원효성사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필자는 3년 동안 줄곧 생각하던 끝에 바의 의미가 소요자재라고 결론을 내렸다. 원효굴에 앉아서. 왜 그런지 논하자면 말이 너무 길어질테고. ***


http://gujoron.com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닭도리탕 닭볶음탕 논란 종결 update 2 김동렬 2024-05-27 2575
6701 직관적 사고 김동렬 2024-03-06 1345
6700 정의당의 몰락공식 김동렬 2024-03-06 1549
6699 동이족은 없다 김동렬 2024-03-05 1281
6698 초월자 김동렬 2024-03-05 1187
6697 인간에 대한 환멸 2 김동렬 2024-03-04 1550
6696 인간에 대한 환멸 김동렬 2024-03-02 2225
6695 양면전쟁과 예방전쟁 김동렬 2024-03-02 1399
6694 사람이 답이다 1 김동렬 2024-03-01 1527
6693 셈과 구조 김동렬 2024-03-01 1046
6692 문명과 야만 김동렬 2024-02-29 1276
6691 배신의 정치 응징의 정치 김동렬 2024-02-28 1561
6690 손자병법의 해악 김동렬 2024-02-28 1297
6689 임종석과 자폐증 진보 4 김동렬 2024-02-28 1619
6688 기정과 탱킹 2 김동렬 2024-02-27 1411
6687 유권자의 갑질 김동렬 2024-02-26 1366
6686 신의 존재 김동렬 2024-02-26 1269
6685 오자병법 손자병법 2 김동렬 2024-02-26 1459
6684 달콤한 인생 김동렬 2024-02-25 1509
6683 초인 김동렬 2024-02-25 1133
6682 존재의 존재 김동렬 2024-02-24 1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