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3985 vote 0 2011.04.05 (00:08:44)

 

 

비틀즈의 let it be

무슨 뜻일까? 혹자는 ‘순리에 맡겨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혹자는 ‘내버려두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대로 될지어다’로 번역한 것도 있더라. 대략 매끄러운 번역이기는 하지만 지나친 의역의 소지가 있다.


직역해야 진짜 의미를 안다. 문제는 be와 is의 차이다. is는 it에서 온 말로 턱으로 눈앞의 사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be는 by와 통하는 말로 입술로 어떤 추상적인 사건의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너 지우개 있냐?"

"너 아버지 있냐?"

 

같은 '있다'라도 두 말은 쓰임새가 다르다. 아버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있기는 있는데 그게 눈앞에 있는 물체가 아닌 경우가 있다. 그것은 주로 포지션이다. 눈에 보이는 물건은 is이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포지션은 be다. 이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바’다.


바는 ‘아는 바 없다’는 식으로 다른 말에 붙여쓰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바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필자는 20살 무렵 ‘바’를 깨닫기 위해 3년 이상 줄곧 생각했다. 그리고 '바를 깨닫는 것이 깨닫는 것이다' 하고 말하고 다녔다. 물론 3년동안 밥먹고 딱 그것만 줄곧 생각한 것은 아니다.)


‘바’는 ‘바로’와 가까운 말로 어떤 소속, 어떤 포지션의 존재를 나타내며,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다른 어떤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가까운 곳에 속해 있다는 뜻이다.


'바'는 공간적으로 근처에 달라붙어있다는 뜻이며, 동시에 추상적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져 있다는 뜻이다. 바는 바로다. 기승전결로 곧장 포지션이 연결되는 것이 by다. 말하자면 축구시합에서 바로 패스를 받을 수 있는 포지션이 by다. 곧 be다. ‘바’다. 기성용과 차두리 콤비처럼 딱 붙어있는 단짝이다.


let it be는 '그것이 거기에 소속된 채로 있도록 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대로 될지어다’가 그럴듯하다. 물론 아주 딱 맞는 말은 아니다. ‘내버려두라’거나 ‘순리에 맡겨라’도 좋은 표현이기는 하지만 과잉의역의 소지가 있다. '그냥 있는대로 두라'고 해도 되겠다.


'내버려두라'고 하면 '버리다' 때문에 포기하라는 인상을 주어 약간 허무하다. '순리에 맡겨라'고 하면 어떤 법칙에 의존하라는 뜻이 되며 너무 엄격하다. 이 둘은 서로 충돌한다. '내버려두라'는 너무 소극적이고, '순리에 맡겨라'는 너무 적극적이다. ‘그대로 될지어다’가 그나마 본래의 의미에 가깝다.


let it be는 '사명이 이루어질 거'라는 긍정적 표현이다. 결코 ‘냅둬유’가 아니다. ‘내비도’가 아니다. 어떤 위력적인 법칙에 맡기고 손떼라는 말도 아니다. 직역하면 let it be는 하라+그것+바(소속, 포지션)다. 쓸데없이 건들어 파토내지 말고 이것이 속해 있는 자연스러운 그 결대로 하라는 거다. '그 있는 바를 따르라'다.


왜 부바키키프로젝트를 하는가? 번역이 엉터리이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님이 주신 지혜의 말씀이 '깝치지 말고 순리에 맡겨라'는 권위적인 말씀일 리도 없고, '얌마 그냥 냅둬!' 하는 자포자기의 말씀일 리도 없기 때문이다. 각자의 맡은 '바'대로 이루어진다는 축복의 말씀일거라.(실제로는 폴의 어머니를 뜻하지만 종교적인 맥락상.)

 

폴 매카트니가 음반이름을 'get back'로 하려고 했는데 존 레논이 반대했다는걸 보면 '원래대로 두어라',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뜻이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멤버들이 분열되기 이전의 좋았던 처음 모습 그대로 두어라는 뜻.


 *** 동두천에 소요산이 있고, 소요산에 자재암이 있고, 자재암에 원효굴이 있다. '소요자재'는 장자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는데 원효성사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필자는 3년 동안 줄곧 생각하던 끝에 바의 의미가 소요자재라고 결론을 내렸다. 원효굴에 앉아서. 왜 그런지 논하자면 말이 너무 길어질테고. ***


http://gujoron.com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공지 닭도리탕 닭볶음탕 논란 종결 2 김동렬 2024-05-27 25901
공지 신라 금관의 비밀 image 7 김동렬 2024-06-12 15753
2272 딴겨레의 몰락 김동렬 2006-03-13 12960
2271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는 생각방법 image 12 김동렬 2013-01-23 12961
2270 신은 우주를 창조할 수 없다. image 1 김동렬 2017-11-07 12964
2269 구조주의 선언 김동렬 2008-03-29 12972
2268 구조론이란? 4 김동렬 2010-01-22 12976
2267 개혁당은 인터넷정당이 아니다. 김동렬 2003-02-07 12977
2266 노무현의 리더십 image 김동렬 2004-06-13 12983
2265 지구 둥글기 확인 image 1 김동렬 2017-03-31 12983
2264 달구벌성에 삭풍이 몰아치니 image 김동렬 2005-02-07 12985
2263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시간차 문제 image 김동렬 2017-08-23 12987
2262 인생의 답은 나다움에 도달하기 image 1 김동렬 2018-02-23 12987
2261 종교 믿으면 행복해지나? image 10 김동렬 2018-03-16 12988
2260 마음이 바래는 것은? image 김동렬 2017-02-13 12989
2259 세종 한글의 비밀 image 3 김동렬 2014-11-14 12991
2258 세상은 마이너스다 image 김동렬 2017-08-09 12991
2257 정말 알고싶습니다 지역감정 아다리 2002-10-09 12992
2256 안희정의 소통, 노무현의 소통 image 1 김동렬 2017-02-23 12992
2255 구조로 본 상대성 image 8 김동렬 2017-05-31 12996
2254 금정 농구경기장을 다녀와서(좀 더 적었습니다) 아다리 2002-09-30 12997
2253 한국인 그들은 누구인가? 김동렬 2004-05-16 12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