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 동적균형 손에 한 줌의 진흙이 쥐어져 있다. 진흙을 쥐고 크게 원을 그리며 공중에서 빙빙 돌리면 어떻게 될까? 진흙은 산산히 흩어져버리거나 아니면 둥글게 모여 공모양을 이룬 채로 잘 반죽될 것이다. 진흙에 밀도가 다른 이물질이 섞여 있다면 흩어져 버린다. 내부에서 결따라 작용 반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이물질이 없이 밀도가 균일하다면 도자기를 빚을 정도로 진흙은 반죽된다. 진흙이 흩어져 버린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에너지는 관통해 버린다. 의사결정은 없다. 진흙이 잘 반죽된다면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 먼저 진흙을 잘 반죽해야 한다. 이물질을 거르고 내부를 균일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은 팀플레이다. 팀원들 간에 긴밀하게 호흡을 맞추기다. 공교육을 실시하거나, 같은 종교를 신앙하거나, 가족을 이루거나 등의 방법이 있다. 민족주의 강조도 내부를 균일하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다. 그렇게 내부가 균일해지면? 한 점이 전체를 대표하게 된다. 이때 대칭성이 작동한다. 대칭은 축에 의하여 판정되어 에너지를 처리한다. 그 상태에서 에너지를 투입하면 그 에너지는 적절히 처리되어 밖으로 배출된다. 이 상태가 동적균형이다. 모든 사건은 동적균형 상태에서 촉발된다. 곧 구조론의 질이다. 의사결정이 가능한 상태다. 계가 동적균형에 도달하지 못하면 외부에서 작용하는 에너지를 처리하지 못하므로 의사결정에 실패한다. 자연에서 동적균형을 잃어 물리적 의사결정에 실패하면 구조가 깨진다. 형태가 부서진다. 사회에서 동적균형을 잃은 조직은 집단의 의사결정에 실패하여 내분을 일으킨다. 이때 외부에서 타격하면 조직은 붕괴하여 통진당 꼴이 난다. 보통은 ‘옳다 그르다’ 논리에 빠져 노선을 다툰다. 내 노선이 옳다거니 네 노선이 그르다거니 하며 말로 다투지만 사실은 동적균형을 잃은 것이며 이는 단순한 물리현상일 뿐이다. 물질이나 사회나 작동원리는 같다. 움직여야만 균형이 맞아진다. 달리는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는다. 달리는 자전거를 밀면 그 에너지가 처리되어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달리게 된다. 외력이 흡수되는 것이다. 바퀴의 회전이 내부를 균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멈추어 있는 배가 파도를 만나면 전복되지만 빠르게 달리는 배는 파도를 타고 넘는다. 동적균형이 있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팽이를 채찍으로 치면 오히려 더 빨리 돌아갈 뿐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통진당은 동적균형을 잃어서 멈추어져 있는 팽이 신세가 되었기에 외부에서의 작은 타격을 내부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분열된 것이며 이는 잘못된 노선의 채택 때문이 아니라 내부 밀도차 때문이다. 팀플레이를 통해 내부의 밀도를 균일하게 만들어야 한다. 토대를 공유해야 한다. 그것은 교육에 의해 가능하지 않다. 일본인이 뭐라고 하든 조선인은 달라지지 않았다. 9시에 나오라면 오후에 나왔다. 중국인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보다 300년 먼저 유럽에 진출하여 파리와 런던에 지점을 내고 무역을 했다. 그러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인도인 역시 변하지 않았다. 500년 동안 고집부렸다. 인도인이 갑자기 변했다. 구자라트주는 작년에 13퍼센트 성장을 했다. 왜? IT시대다. 수학이 먹어주는 판이다. 수학이라먼 인도다. 그들은 세계와의 팀플레이에 눈을 뜬 것이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변했다. 왜? 공산화 과정에서 세계와의 팀플레이에 눈을 떴다. 공산주의라면 1등 소련은 논외로 해도 2등은 자신있지. 이렇게 된 거다. 조선은 변했다. 왜? 만주 때문이다. 만주로 진출하면 자신있다. 무엇인가? 그렇게 교육해도 안 되던 조선이, 그렇게 교육해도 안 되던 청나라가, 그렇게 교육해도 안 되던 인도가 갑자기 변했다. 그것은 물질의 유혹 때문도 아니고 정신의 칭찬 때문도 아니다. 세계와의 팀플레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선은 만주를 발견하자 갑자기 눈을 떴고 중국은 공산주의를 발견하자 갑자기 눈을 떴고 인도는 IT를 발견하자 갑자기 눈을 떴다. 만주나 공산주의나 IT는 진짜가 아니다. 그것은 미끼일 뿐 진짜는 팀플레이다. 세계라는 팀에 들어간 것이다. 7인의 사무라이에 끼어든 것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궁극적 본질은 팀이다. 팀 안에 인간을 긴장시키는 동적균형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긴장하면 깨어난다. 긴장감이 설레임을 낳고 설레임이 쾌감을 낳고 그 쾌감에 중독되기 때문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진짜는 교육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고 오직 팀플레이 뿐이다. 그것은 1이다. 팀은 외부의 작용에 대해 1로 대응하는 것이다. 의사결정단위가 되는 것이다. 일본이 아무리 설득해도 말 안듣던 조선이 만주를 보자 변심했다. 만주라면 내가 의사결정의 주체가 될 자신이 있지. 공산주의를 본 중국은 변심했다. 다른건 몰라도 공산주의라면 우리가 후발주자가 아니야. 선두그룹 들 수 있어. IT를 보자 인도는 변했다. 수학이라면 인도 아냐. 의사결정그룹에 들 수 있어. 답은 동적균형에 있다. 지식인이 주장하는 것은 정적균형이다. 기울어진 축구장을 바로잡아 수평을 맞추면 된다고 여긴다. 기울어진 축구장을 그르다 하고 수평이 맞으면 옳다고 한다. 옳고 그름의 논리에 집착한다. 그런데 애써 균형을 맞춰놓으면 다시 기울어져 버린다. 동적균형은 그 축구장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기울지 않는다. 유시민은 먼저 진보에 들고 그 다음 축구장을 움직이려 했다. 거꾸로 가야 한다. 먼저 축구장을 움직이면 균형이 잡힌다. 일단 선수로 뛰었어야 했다. 웨이터가 쟁반을 들고 있으면 기울어진다. 그러나 그 쟁반을 들고 걸어가면 오히려 기울지 않는다. 그 쟁반에 와인잔 스무개가 올려져 있어도 한 방울의 와인도 넘치지 않는다. 동을 부여하면 축구장은 저절로 수평이 맞아진다. 노무현은 선제대응으로 계속 이슈를 던져 끝없는 동을 조직했다. 그것은 팽팽하고 긴장된 상태를 연출하는 것이다. 노무현은 정몽준 대 정동영+추미애로 균형을 맞추어 긴장된 상태를 만들려고 했지만 정몽준은 그 동적상태의 팽팽한 긴장을 못견딘 거다. 정동영 추미애도 마찬가지로 동적균형의 긴장상태를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튕겨져 나갔다. 안철수가 추구하는 것은 정적균형이다. 박근혜가 너무 보수로 가니까 진보쪽으로 오지만 민주당이 진보니까 진보 안에서 보수를 한다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정적균형을 추구하면 반드시 축구장이 기울어져서 모든 것을 쏟아버린다. 노무현은 한국을 세계무대에 데뷔시켰고 세계와의 상호작용에 정신없이 바쁘게 했고 세계와 겨루다 보면 저절로 축구장의 균형은 맞아진다. 동적균형을 이루면 외력을 처리한다. 외력과의 상호작용의 1단위가 되어 에너지를 순환시킨다. 동적균형은 1회의 의사결정을 하는 상태, 이를 위해 1을 이룬 상태, 1을 이루기 위해 내부를 균일화 시킨 상태다. 입자는 동적균형이 내부에 갇혀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는 상태다. 가만있는 물체도 실제로는 중력을 처리하고 있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질은 그 처리과정이 보인다. 스포츠면 승부장면이 보인다. 정치판이면 투표장면이 보인다. 동적균형을 이루고 에너지를 처리하는 과정이 눈에 보이면 질이고 감추어지면 입자다. 먹구름이 소나기를 쏟아버리는 것은 동적균형을 이룬 구름이 에너지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듯 내부의 엔진이 겉으로 드러난 상태가 질이고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 상태가 입자다. 질은 1을 이루는 과정이 전시되고 입자는 이미 1을 이루어 있다. 우리는 1을 이루는 과정을 생략하므로 동적균형에 실패한다. 가족이니까, 팀이니까, 국가니까, 회사니까, 동아리니까 하고 이미 1의 상태에 도달해 있다고 여기지만 세월호 박그네 선장은 제일 먼저 도망쳐서 우리가 1이 아님을 국민은 뒤늦게 알게 된다. 우리가 남이라는 사실을 김기춘은 알게 한다. 깨달음은 모든 사유와 판단에 있어서 동적균형 상태를 척도로 삼는 것이다. 동적균형은 동의 상태에서 균형을 이루고 내부에 대칭구조가 있으므로 쉽게 파악된다.
깨달음은 동적균형 상태에서 척도를 세우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모든 주의 주장들, 정치노선들은 동적균형 내부의 대칭구조 안에서 포지션을 찾는 것입니다. 균형 그 자체를 지배하는 균형자는 아닙니다. 동적균형은 김대중과 김영삼 둘을 비교하여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이기택이 아니라 둘의 부단한 상호작용 과정에서 양쪽 다 세가 점점 불어나며 젊은이는 김대중쪽에 모이고 늙은이는 김영삼 쪽에 모여서 저절로 균형이 맞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균형이되 기계적인 균형이 아닙니다. 역사를 전진시키는 균형입니다. 롤러블레이드나 스케이트보드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므로써 오히려 추력을 얻고 전진하게 하는 힘을 얻듯이 불균형을 통해 오히려 균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앙에서 균형을 이루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좌우를 교대하며 물고기가 꼬리쳐서 계속 나아가는 것입니다. 끝없는 전진만이 모든 호흡하는 것의 균형을 이루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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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이 민주주의의 요체인데 이 세금을 취하는 상부구조에 앉아있는 작자들이 언제부터인가 이 취약한 부분을 교묘히,아니 적나라하게 대놓고 나서서 흔들고 배배틀고들 있으니 갈 길이 멀어지고, 죽어나자빠질 일들이 더 많아지게 되겠지요.
이 중차대한 싯점에, 이 동북아 균형자 노릇을 제대로 발휘해야할 싯점에
뭘 바라고 민주의 약한 고리를 농락하며 세월호 모습을 닮아가는 짓들인지요.
아 이 단순한 깨달음이 없으니 대한의 조직된 힘이, 에너지가 다 새나가 버린다는 것.
그래서 정말 국민의 의사결정이 왜곡돼 버린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그렇다면
집안 망하기 전에 살을내주고라도 뼈를 취하는 중대결단이 필요한 싯점에
한사코, 대의 팽개치고 내식구만 챙기기로 방향을 잡기로 한다면,
고독한 섬의 에너지 충만한 인재들은 덤 인생으로 바뀌내...
2년 전 한국에 나왔을 떄
국회의원 선거에 희망을 걸었었다.
당시 구조론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예측했다.
결과는 패배였다.
대선도 그렇게 넘겨주었다.
이번에는 어쩔건가?
민주가 실종되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에게 필요한 만주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이 역사의 판을 흔들고 있는 건가?
수첩공주 뒤의 기춘이를 무엇으로 몰아낼 것인가?
촛불로는 너무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