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강우도 구름이 있어야 한다. 힉스입자도 힉스장이 있어야 한다. 힉스장이 구름이면 요드화은이 힉스입자다. 구름씨로 요드화은을 살포하면 수증기가 요드화은에 달라붙어 커다란 덩어리가 된다. 덩어리는 무겁다. 빗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빗방울이 사라지면 빈 공간이 생긴다. 빈 공간에 주변의 구름이 몰려들며 방향성을 일으킨다. 한 번 방향성이 특정되어 기류의 쏠림이 일어나며 가속된다. 가속적인 쏠림으로 소나기가 된다. ‘구름≫구름씨≫빗방울’로 전개하는 인공강우 메커니즘이나 ‘힉스장≫힉스입자≫기본입자’로 가는 힉스 메커니즘이나 같다. 구조론의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기본입자가 질량을 얻어 물질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 일어나려면 먼저 계의 포화상태가 있어야 한다. 닫힌계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힉스장이 준비되어어야 한다. 거시세계에서 입자가 만들어지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딱총화약이나 별사탕에 좁쌀을 핵으로 쓰는 것과 같이 외부에서 인위로 핵이 투입되는 것이다. 구름씨로 요드화은을 뿌리는 것과 같다. 둘은 눈사람을 만들 때 처음 손으로 눈을 단단하게 다지듯이 고도의 스트레스를 가하면 저절로 핵이 형성된다. 우유를 가죽부대에 넣고 흔들면 저절로 치즈가 생기는 것과 같다. 이 경우는 약하다. 일본은 동경만에 출현한 흑선에 의해 외부에서 핵이 조달되었다. 동학혁명은 스트레스에 의해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핵이 조달되었다. 동학은 약했다. 징기스칸은 내부에서 스스로 일어났지만 강했다. 구조론은 거시세계의 양자론이다. 기본입자가 질량을 얻는 과정은 거시세계에서 대칭이 축을 얻어 사건을 일으키는 과정과 같다. 그런데 양자론은 힉스장이 원래 그냥 어디에나 있다고 말한다. 힉스장이라는 울타리 안에 한 무리의 양떼들이 흩어져 있다. 힉스입자라는 늑대가 나타나면 양떼들이 한 덩어리로 뭉친다. 입자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왜 힉스장은 원래 있는가? 이건 모른다. 우리는 사건이 원래 있다고 여긴다. 사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학교가 있다. 입학하면 된다. 그러나 학교가 없다면? 학생이 모여서 최초의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면? 학교건설하는 방법은 둘이다. 최초의 대학은 교수가 모여서 조합을 구성하고 학생을 모집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학생이 모여서 조합을 결성하고 교수를 초빙한 경우도 있는데 어떻든 모여서 학교를 지어야 한다. 절차가 있다. 그냥 입학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학교가 없으면 교수도 없는데 어디서 교수를 초빙하지? 학교가 없으면 학생도 없는데 어떻게 학생들을 모으지? 곤란하다. 양자론은 질을 생략하고 입자를 해명한다. 구조론은 질을 해명하므로 양자론보다 위다. 양자론은 입자에서 출발하는 인식론적 전개이므로 불완전하다. 지구가 둥근 이유는 모르지만 마젤란은 세계일주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분명히 입증했지만 아직 중력은 발견하지 못했다. 구조론은 중력을 발견했다. 연역적인 전개라야 완전하다. 힉스장이 그냥 있다고 말하면 불완전하다. 일의성이 완전하다. 질 입자 힘 운동 량 질 – 데이터의 1회 왕복이다. 입자 – 내부의 데이터 교환구조다. 힘 – 내부에서 데이터를 처리한다. 운동 – 외부로 데이터를 출력한다. 량 – 외부에 침투되어 매개된다. 입자개념을 타파해야 한다. 양자론은 여전히 입자개념에 붙잡혀 있다. 장이 존재하는 것이며 그 장이 일정한 형태로 요동을 치면 그것이 입자다. 입자는 장의 요동이 특정지점에서 반복되는 거다. 힉스입자와 기본입자는 힉스장에서 튀어나왔다. 하나의 존재는 하나의 상호작용이며 그것은 1회의 데이터 왕복이고 이때 왕과 복으로 2 포지션이 있어야 한다. 혼자는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없다. 물론 혼자서 중얼거릴 수도 있다. 이때는 혼자 1인 2역을 해야 한다. 어떻든 말하는 자기와 듣는 자기로 둘이 필요하다. 둘을 세팅하여 하나로 치는 것이 질이다. 일의성에 의해 해명된다. 실제 자연의 모든 존재는 질로 존재한다. 숫자 1은 사과 하나가 아니라 사과와 나의 관계 1을 말하며 관계에는 이미 데이터의 왕복이 반영되어 있다. 입자는 질의 성질이 모든 개체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집은 대문이 있고 사람은 이름이 있다. 외부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구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입자 혼자서 기동할 수 없다. 칼에 손잡이가 있으나 그 뿐이다. 칼이 스스로 벨 수는 없다. 질은 에너지가 있으므로 스스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 시동이 걸려 있다. 배터리가 장착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동상에 바지를 입혔다면 어떨까? 동상에 입힌 옷은 벗길 수 없다. 벗기려면 칼로 잘라야 한다. 즉 입을 수 없는 옷은 옷이 아닌 것이다. 컵인데 밑이 뚫렸다면 물을 담을 수 없다. 칼인데 손잡이가 없다면 자를 수 없다. 만약 에너지가 있고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그것을 실행할 수 있어야 입자다. 갖추어져야 한다. 담배연기로 링을 만들었다 치자. 그 링을 손가락에 끼고다닐 수 없다. 그것이 갖추어져야 입자다. 질은 둘이 데이터를 교환하는 1단위 세팅이며 입자는 그러한 성질을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의 갖춤이며 힘, 운동, 량은 같은 패턴을 복제하여 컵의 손잡이와 몸통과 담는부분의 시소를 촉 부분에 다시 한번 써먹은 것이 힘이고, 운동은 그네처럼 시간을 태워 왕복함으로써 이 구조를 복제하며, 량은 외부의 매개에 침투되어 이 구조를 복제한다. * 과학운동 하는 인문학 사이트 구조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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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을 읽으니 콜라가 슬러쉬 되는게 떠오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5T68TvdoSbI&feature=player_embedded
그리고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사고가 일어낫는데 한사람이 도와주니 주위의 모든사람이 붙어서
도왔던 뉴스가 생각이 납니다. 군중심리가 그냥 일어나는게 아니군요?
미시세계와 사회현상이 다름이 아니라는게 원리를 아니 이해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