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해하는 기본은 수학이다. 수數는 1로 시작된다. 예컨대 ‘여기에 사과 한 개가 있다’는 식이다. 물 한 개는 곤란하다. 물은 컵에 담겨져야 하는데, 컵과 물로 2가 되어 헷갈리기 때문이다.
새끼곰 한 마리 곤란하다. 뒤에 어미곰이 따라오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미곰도 곤란하다. 그 곰이 암컷이면 뒤에 수컷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똑부러지는 하나를 온전히 분리하기 어렵다. 돌멩이 하나라면 똑부러지는 하나인가? 아니다. 중력이 따라붙는다. 사과 한 개라도 곤란하다. 죽은 사과인지, 산 사과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물론 시장에서 판매하는 사과라면 대개 싱싱한 사과다. 누가 죽은 사과를 팔겠는가? 그러나 과학의 세계에 대충은 없다. 따져봐야 한다. 지폐 한 장이면 확실한 하나다. 물론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면 가을길의 낙엽과 같으니 논외로 해야 한다. 볼펜 한 개라면 안심해도 되는가? 아뿔싸! 종이가 없으면 쓸 수가 없다. 칼 한 자루면 안심하겠는가? 도마가 없으니 쓸 수가 없다. 자연은 모두 짝이 있다. 옳게 짝지어져야 완전한 1이 된다. 이렇듯 짝을 지으면 공간과 시간이 탄생한다. 밤과 낮으로 짝 짓고 아침저녁으로 짝지으면 그것이 시간이다. 상하좌우로 짝지으면 공간이다. 시간과 공간도 짝이다. 시공간과 물질도 짝이다. 자동차라면 차와 운전자가 짝이고, 한편으로 보디와 섀시가 짝이다. 섀시 중에도 동력계통과 조향장치가 짝지어진다. 동력계통도 엔진부와 동력전달부로 짝지어진다. 계속 짝지어져 나간다. 컴퓨터라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있다. 소프트웨어도 OS와 프로그램이 있다. 프로그램도 폴더와 파일이 있다. 파일도 확장자와 데이터가 있다. 계속 짝지으며 하나가 딱 분리되지 않는다. 구조론의 질 개념은 딱 분리되지 않는 하나를 분리시켜 보는 관점이다. 분리의 기준은 에너지의 일순환이다. 에너지의 입력에서 출력까지 추적한다. 여기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각별하다. 입자는 시공간이 원래부터 그냥 있고, 그 무한한 시공간의 좌표 안에 물질이 둘어서 있다고 설정되지만 이건 가짜다. 에너지는 시간을 타고가며 포지션을 지정한다. 공간을 연출해내는 것이다. 수數는 1로 시작된다. 시공간과 물질로 구분되면 2다. 이미 거짓이다. 시간은 흐르고 공간은 펼쳐지며 물질은 운동한다. 이 모두를 1로 바라보는 것이 구조론의 질 개념이다. 곧 양자개념이다. ◎ 수의 출발점은 1이다. ◎ 1을 찾는데서 과학은 출발한다. ◎ 입자는 하나로 딱 분리되지 않는다. ◎ 분리시켜 보는 것은 불완전한 존재의 절반이다. ◎ 둘의 상호작용에서 에너지 순환의 1을 찾아내는 것이 양자다. 입자로는 1을 딱 분리할 수 없지만 양자로는 1을 명확하게 분리할 수 있다. 입자는 연속적이고 양자는 불연속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걸린다. 시계추의 왕복 1회를 1로 치는 것이 양자다. 건전지는 플러스극과 마이너스극이 명확하게 1을 이룬다. 입자는 건전지를 부러뜨려 플러스극과 마이너스극을 떼어놓은 가짜다. 입자는 반드시 배후에 보호자가 있다. 둘을 연결시키는 것이 있다. 구조론은 물리학에 쓰이는 질량개념의 質量을 분리하여 그 사이에 입자, 힘, 운동을 집어넣은 것이다. 그런데 왜 질량일까? 질은 불연속, 양은 연속된다. 불연속연속? 이상하다. 양질전환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양질전환은 없다. 언제나 질량전환 뿐이다. 양자는 연속적인 양을 불연속적인 덩어리로 전환시킨 것이다. 양질전환은 없는데 양질전환시킨게 양자다. 불연속/연속개념으로 보면 질량이 양자와 같다. 자동차라면 바퀴는 연속운동을 한다. 피스톤은 왕복운동을 한다. 불연속성을 가지는 것이다. 자동차만 그런가? 배가 노를 저어도 왕복운동을 한다. 노는 불연속적으로 움직인다. 모든 자연의 운동은 불연속>연속의 과정을 거친다. 물레방아는 연속적으로 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을 받는 포켓이 있다. 역시 불연속적이다. 햇빛은 연속적으로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광전효과로 불연속성이 입증되었다. 우주 안에 연속적인 운동의 촉발은 없다. 방아쇠를 당길 때 불연속적으로 당긴다. 기관총을 난사한다 해도 불연속적이다. 심장은 불연속적으로 뛴다. 우주와 자연에서 100억개의 표본을 관찰해도 단 한 개의 연속촉발은 없다. 모두 불연속에서 연속으로 바뀐다. 밥을 먹어도 한 숟갈씩 먹는다. 술은 연속적으로 술술 잘 넘어가지 않냐고? 사래들린다. 물을 마시더라도 공기를 뱉어야 하므로 불연속적이다. 수돗물은 연속적으로 나오지 않느냐고? 최초의 수원지에서 불연속적이다. 모터는 연속적으로 돌지만 극을 바꿔야 하므로 불연속이다. 비는 불연속적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불연속의 질에서 연속의 양으로 바뀌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불연속이 갑자기 연속되는게 아니고 입자, 힘, 운동을 통해 연속으로 변환된다. 우리는 1을 찾는 것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점으로 삼으려 하지만 자연에 1은 없다. 나무 한 그루를 1로 정할 때 그 나무는 뽑혀서 죽는다. 입자는 연속되어 있으므로 분리할 수 없다. 입자의 분리는 인간의 관념이다. 양자는 주사위를 한 번 던지는 것을 1로 삼는다. 주사위+던지기로 2가 1세트를 이루는 것이다. 이때 시간이 가담한다. 확정되는 것은 에너지다. 불연속적인 에너지의 덩어리이므로 양자다. 그것이 질이다. 피아노처럼 한 음씩 끊어치는 것이 불연속이고 피리처럼 계속 소리가 이어지는 것이 연속이다. 그 피리도 숨고르기를 해야하므로 호흡의 호+흡으로 불연속성을 가진다. 음은 자음+모음의 불연속성을 가진다. 모음으로만 된 단어가 있다면 연속성을 가진다. a e i o u같은 모음도 맨 앞에 오면 자음이 된다. ㅇ이 자음인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음으로만 발음해도 결국 자음+모음이 된다. 연속은 소거되기 때문이다. 응응응을 발음하면 ㅇ은 음가가 없으므로 다 모음이지만 실제로는 불연속적인 자음+모음이다. 으~~~~~~와 응응응은 전혀 다른 발음이다. 우주 안에 모음만으로 이루어진 발성은 원리적으로 없다. 구조론의 질=양자다. 둘은 같다. 이 말은 물리학의 양자개념을 끌어와서 구조론에서 그 의미를 확대시켰다는 뜻이다. 물리학자들은 양자를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이다. 우주 안에 연속적인 운동의 촉발은 없기 때문에 양자인 것이다. 운동은 불연속으로 촉발되고 연속으로 종결되며 그 변환과정을 설명해야 하므로 입자 힘 운동이 끼어들어 질(양자) 입자 힘 운동 량이 된다. 불연속에서 연속으로 바뀐다. 양은 침투되어 다른 불연속을 만든다. |